유럽 경제, 폭풍우가 몰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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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기업주와 정치인 들은 경제 위기가 국제적으로 확산되리라는 걱정이 커지는 가운데 2010년을 맞이했다.
국제 신용평가 회사인 무디스는 “정치·사회적 긴장”이 2010년에 더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적으로 기업들에 자문을 해 주는 옥스퍼드 애널리티카의 수석 컨설턴트 샘 윌친은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보면, 2009년보다 2010년에 사회적 불안이 더 커질 위험이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해에 경제 위기는 시위와 반란으로 이어졌고, 아일랜드와 라트비아에서는 정부가 실각하기도 했다. 1년 전에 정부들은 은행과 산업 부문에 자금을 지원하느라 돈을 풀었다. 그런데 이제 정부들은 복지 지출을 삭감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공격하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물리려고 달려들고 있다.
국제적으로 그리스가 관심의 초점이 됐는데, 유럽연합과 IMF는 그리스에게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한 엄격한 조처를 시행하라고 요구한다. 그리스의 국제신용등급은 하락했다. 그리스가 유로권에서 이탈할지 모른다는 전망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위기가 막바지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독일과 프랑스 같은 주요 경제국들이 공식적으로 침체 국면을 벗어났고 아일랜드·스웨덴·일본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들은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혜택을 대폭 삭감하면서 침체에서 ‘탈출’했다. 노동자들에게 위기는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일자리 감소, 임금 삭감, 공공 지출 축소는 올해에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유럽 도처에 깔린 지뢰들을 살펴보고 저항의 잠재력을 진단한다.
위태위태한 그리스
그리스는 지난해 세계경제 위기의 중심에 있었다. 정부 부채와 예산 적자 급증, 국가신용등급 하락으로 이 나라 경제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새로 당선한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그리스 사회당(PASOK) 정부는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폐기하라는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과연 부채를 갚을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총리 게오르게 파판드레우는 2008년 12월 항쟁의 재현을 피하려 노력해 왔다. 국가의 불황 대책에 성난 노동자들이 대규모 파업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정부는 “위기의 책임을 평범한 사람들이 지지 않게 할 것”이라는 미사여구를 사용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예산을 40억 유로나 삭감하려 한다.
2009년 내내 경제 ‘전문가들’은 “회복의 청신호”가 보이며 곧 경제가 안정을 되찾아 파산한 은행을 구제하는 데 투입하는 막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해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면서 “출구전략”을 즉시 펼쳐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대다수는 더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국가가 금융권을 계속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는 새로운 부도 사태를 막으려면 정부 개입이 필요했다. 그런데 진정한 문제는 정부가 그럴 만한 처지에 있었냐 하는 것이다. 그리스 정부는 그럴 형편이 못 됐다.
그리스 정부는 2009년에 6백억 유로를 차입했다. 이 돈은 은행에 주는 보조금뿐 아니라 그리스 경제의 주요 기둥인 관광업과 조선업에도 투입됐다.
그러나 침체는 깊어졌다. 세입은 줄고 실업수당은 늘어서 적자가 쌓여 갔다.
정부는 은행에서 돈을 더 빌렸다. 한동안 이 전략이 먹히는 듯했다. 은행에 막대한 이윤을 안겨 주면서도 부담을 국가 예산으로 떠넘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중앙은행은 그리스 은행들에 대한 값싼 신용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유로화의 안정이 유럽 변방의 소규모 자본주의 경제의 생존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 생각하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보기에는 그랬다. 그러나 그리스가 파산에 직면하자 유로화의 수호자들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그리스의 파산은 유로화 위기를 촉발할 방아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지배계급은 그리스가 2000년대 초 아르헨티나처럼 될까 봐 노심초사한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정부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주요 은행이 위기를 맞았고 그 결과 장기 불황과 정치적 격변으로 이어졌다.
유럽의 지배자들은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겨 위기를 피하려고 하는 점에서는 그리스 지배자들과 한통속이다.
그리스 사회당 정부는 유럽연합에 이른바 ‘안정화 계획’을 제출할 예정이다.
이 계획 목적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임금을 7퍼센트 삭감하고 일자리 10만 개를 임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공공서비스업 퇴직 자리 다섯 중에 한 자리만 충원될 계획이다. 보건의료 재정은 삭감된다.
하지만 심지어 장관들도 이미 그리스의 임금과 연금이 유럽 평균과 비교해서 너무 낮아 이들을 삭감하는 조처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인정한다.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다. 2008년 12월 봉기 1주년 기념 집회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12월 17일에는 신문 가판대에서 신문을 살 수 없었다. 언론 노동자들이 교사와 다른 노동자 들의 파업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이 파업은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아래로부터의 거센 압력에서 시작된 총파업이었다. 이런 파업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다.
파노스 가르가나스(그리스의 반자본주의 주간지 〈노동자 연대〉 편집자)
거품이 터지면서 저항이 분출한 아일랜드
1990년대 ‘켈트 호랑이’의 호황은 유럽 신자유주의의 성공담이었다. 그러나 이제 아일랜드는 혹독한 경제 붕괴를 겪고 있다.
최근 통계를 보면, 아일랜드는 기술적으로는 침체 국면에서 빠져나온 듯하지만, 경제 구조의 취약성이 이 나라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아일랜드의 호황은 미국의 투자 덕분이었다. 미국 다국적 기업들이 아일랜드를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한때 아일랜드는 미국의 대유럽 투자 가운데 4분의 1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인구가 고작 유럽 전체의 1퍼센트밖에 안 되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미국 기업들이 더 저렴한 투자처를 발견하자 이 자금이 말라 버렸다.
아일랜드 국가는 자산 거품을 키우는 방식으로 이에 대응했다. 2006년에 건설업은 국내총생산의 20퍼센트를 차지했다. 노동자 일곱 명당 한 명이 건설업에 종사했다.
조그만 마을들이 거대한 베드 타운으로 개발됐고, 주택, 병원, 사무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아일랜드의 은행들은 여기에 족히 1천억 파운드 넘게 대출을 해 줬다. 이 은행들은 자신이 물 위를 걸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건설업 호황은 대형 부패 스캔들을 낳았다. 개발업자들은 허가를 받거나 정부의 건설 계획에 영향을 미치려고 뇌물을 갖다 바쳤다.
동시에 아일랜드 지배계급은 아일랜드 경제가 영국 시티[금융업]의 숨겨진 ‘지원 부서’ 구실을 하면 유동자금을 충분히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06년 한 해에만 아일랜드 금융서비스센터[아일랜드 국제금융특구]에 헤지펀드 4천5백억 파운드가 유입됐다. 이 자금의 70퍼센트 정도는 원래 조세 피난처인 캐이먼 군도에 있던 것이다.
투기 과열이 계속되는 동안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임금을 낮은 수준으로 묶어 두는 데 일조했다. 그들은 그 대가로 권력에 입김을 넣게 됐다고 주장했다.
과거의 영광은 모두 물거품이 됐다. 사장들의 정당인 아일랜드 공화당이 현재 집권당인데, 전에는 중도좌파를 자처하던 녹색당이 연정에 참여했다.
두 정당은 함께 노동자 자르기에 나섰다. 은행에 1백30억 파운드를 지원하려고 복지 혜택을 줄이고, 임금을 깎고, 일자리를 줄이고 싶어 한다.
지금 아일랜드에서는 노동조합과 지역 단체 들이 정부에 반대해 거의 매일 시위를 벌인다.
지난해 11월 24일에는 노동자 30만 명이 정부 정책에 항의해 파업을 벌였다. 심지어 경찰관도 파업했다.
그러나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더 나아가지 않았다. 임금 삭감 철회와 1만 5천 명 해고, 구조조정과 새로운 형태의 유연성 도입을 맞바꿨다.
물론 정부가 임금을 삭감하지는 않았지만, 노조 관료들은 노동자들의 분노를 달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 지도자들에게 가해지는 압력이 증대하고 현장조합원 조직들의 힘이 강화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사이먼 바스케터(영국의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 기자)
아이슬란드 파산 1년
아이슬란드의 노동계급은 나라 경제가 파산하면서 큰 대가를 치렀다. 60대 노인에게 주는 연금이 20퍼센트 삭감됐다. 중년 노동자들이 그동안 납부한 연금 총액 중 28퍼센트가 사라졌고 25세 미만 노동자들이 부은 연금은 몽땅 날아갔다.
공식 실업률은 10퍼센트를 유지하고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시간제 일자리밖에 못 구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교통비를 줄이고자 버스를 이용하지만 버스 운행은 줄었다.
별거 아니라고?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버스를 30분 기다려 보라.
수도 레이캬비크 주변 아파트 부동산의 모기지가 50퍼센트 급등했다. 2만 여 명이 대출금을 갚지 못할 형편이다.
맥도날드가 이 나라에서 철수했다. 1940년대 이래 아이슬란드에서는 코카콜라가 가장 대중적인 음료였는데 더는 그렇지 못하다. 세븐업이 더 싸기 때문이다.
기초 식료품 가격이 크게 뛰었다. 심지어 거의 모든 아이슬란드인이 10세기부터 먹던 저지방 고단백 유제품 스카이어마저 가격이 올랐다. 향이 포함된 것은 이제 사치품이 돼 버려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향도 없고 맛도 없는 스카이어를 구매한다. 또 다른 특산물인 건어물 가격도 대폭 상승했다.
수도에 있는 벼룩시장 콜라포트에서는 식료품 생산자들이 수퍼마켓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없는 소비자들에게 물건을 직접 판매한다. 이 시장은 1980년대에 주차장 지하에서 점포 몇 개가 모이면서 생겨났다. 이제 그 필요성 때문에 이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그러나 공급량이 충분하지 않다.
1천5백~2천 가구가 식량 저장 배급소에서 매달 식료품을 지원 받는다. 그러나 12월에 비축 식료품이 바닥나서 기부를 호소하고 있다. 이제 레이캬비크 시는 어린이집 지원금 가운데 50만 파운드를 삭감하려고 한다.
어린이집 위원회는 아이들에게는 영향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 주장인즉, 보육교사의 휴일을 줄이고 청소 비용을 삭감하겠다는 것이었다! 농촌 학교들도 폐교될 것이다.
12월에 사람들은 주택 소유주도 고통을 분담하라고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IMF 구제금융 조건을 거부하라는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대중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 덕분에 금융 스캔들에 연루된 두 명이 사기 혐의로 징역을 선고 받았다. 고작 징역 8개월형과 얼마 안 되는 벌금형을 선고 받았지만 말이다.
평범한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한 새해를 맞으려면 이런 쓰레기 같은 상황이 벌어진 책임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지우려고 하는 자들이 모두 사라져야 한다.
사라 엔서(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활동가)
기적이 신기루가 된 스페인
지금 스페인에서는 경제 위기의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를 두고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정부와 기업주들은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길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기업들이 단기 계약으로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대신에 국가가 노동자 임금의 부족분을 일부 보조하는 것을 골자로 한 노동법 개정을 발의했다.
스페인 경제인연합회는 노동자를 더 쉽게 해고할 수 있게 만들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그래야 기업들이 더 많이 고용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면서 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페인 건설업은 호황을 누리며 단일 부문으로서는 유럽연합에서 일자리를 가장 많이 창출했다.
그런데 이제 노동자들은 실업이냐, 아니면 임금 삭감이냐를 놓고 선택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실업률이 거의 20퍼센트까지 치솟았다. 유럽연합에서 라트비아를 빼면 제일 높은 수치다. 거의 4백만 명이 일자리가 없다.
지난달에 많은 부모들은 자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 주지 못했다. 상황이 이토록 악화된 것은 오랜만의 일이다.
게다가 상황은 더 악화하는 듯하다. 신용평가 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가 지난달에 스페인 경제 전망치를 낮춰 잡으면서 “부정적”이라고 내다봤다. 정부 재정 상태가 나쁘다는 것이 이유였다.
또 다른 신용평가 회사 무디스도 스페인을 ‘고통지수’ 1등에 올려 놓았다. 정부 재정 적자와 인플레이션, 높은 실업률이 이유였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거리에서 저항하고 있다. 지난달 수만 명이 마드리드 거리를 행진하며 실업을 줄이고 임금을 인상하고 일자리를 안정화할 대책을 세우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많은 노동자들의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는 것은 한 펼침막에 적힌 문구를 보면 알 수 있다. “한 달이라도 버티고 싶다.”
이날 시위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계획에 맞서 총파업을 벌이자고 호소했다.
아직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이런 요구를 지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노동자에 대한 공격이 더 거세진다면 급진적이고 전투적인 행동만이 저항의 최선책이 될 것이다.
세이디 로빈슨(영국의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 기자)
경제를 망치는 신용평가 회사들
정부들은 신용평가 회사의 결정을 두려워 한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 핏치, 무디스 같은 신용평가 회사들은 한순간에 한 나라의 등급을 내릴 수 있다.
이 결정은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자금이 나라 밖으로 빠져나가고 정부는 지출을 삭감한다.
심지어 등급이 내려갈 것이라는 소문만 돌아도 고약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나 바로 이런 회사들이 최근의 경제 위기를 불러온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 폭락에 결정적 책임이 있다.
이 회사들은 불량 채권에 높은 등급을 매긴 대가로 막대한 이득을 남겼고, 서브프라임 대출자들은 불량 채권을 금융계 전체로 확산시켰다.
이런 회사들은 다른 사람들의 절망에 기생해 돈을 번다.
아무도 이 회사들을 선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망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