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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오늘날 아이티의 위기에 책임이 있다

냉전기에 미국은 독재자 ‘파파 독’ 뒤발리에와 ‘베이비 독’ 뒤발리에(이 둘은 1957~86년에 이 나라를 지배했다)를 후원해 카스트로의 쿠바에 맞서는 대항마로 삼았다.

미국의 비호를 받은 ‘베이비 독’ 뒤발리에는 1970~80년대에 미국 자본에 아이티 경제를 개방했다. 홍수처럼 밀려드는 미국 농산품 때문에 아이티 농업은 붕괴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포르토프랭스의 빈민촌으로 대거 몰려들었다. 수출자유구역에 있는 초착취 공장에서라도 일하며 쥐꼬리만 한 임금이라도 벌려고 말이다.

1980년대에 아이티 대중은 봉기를 일으켜 뒤발리에를 권좌에서 몰아낸 후에, 토지를 개혁하고 농민을 지원하고 삼림을 조성하고 사회기반시설을 확충하고 초착취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임금을 인상하고 노동조합의 권리를 향상시키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개혁파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러자 미국은 쿠데타를 지원해 1991년에 아리스티드를 몰아냈다. 1994년이 돼서야 빌 클린턴은 아이티에 미군을 보내 아리스티드를 복권시켰다. 그러나 여기에는 미국이 부과한 신자유주의 계획을 수용하라는 조건이 붙었다. 아이티인들은 이를 “죽음의 계획”이라고 불렀다.

아리스티드는 미국의 요구 중 일부에 대해서는 저항했지만 많은 부분을 받아들였고, 대중의 개혁 열망을 꺾어 버렸다. 그러나 아리스티드가 집권 마지막 해에 미국에 배상금 2백10억 달러를 요구하는 등 끝내 완전히 굴복하지는 않자 미국의 인내심은 바닥났다. 미국은 아이티 경제를 봉쇄해 이 나라의 목을 조르고 농민과 노동자 들을 더 깊은 빈곤의 나락으로 빠뜨렸다.

2004년에 미국은 아이티의 엘리트들과 합작해 암살단을 후원해서 정부를 무너뜨리고 아리스티드를 납치해 추방했다. 유엔은 군대를 보내 이 나라를 점령했고 제라르 라토르튀를 수장으로 한 꼭두각시 정부를 세워 미국의 신자유주의 계획을 계속 추진하게 했다.

라토르튀는 짧게 집권했지만 철저하게 부패했다. 라토르튀와 그의 측근들은 경제봉쇄가 해제된 후 미국과 다른 강대국들이 아이티에 투입한 자금 40억 달러 가운데 상당 부분을 착복했다. 라토르튀 정권은 아리스티드가 가까스로 이뤄 놓은 조그만 개혁을 모두 되돌렸다. 결국 이 나라의 빈곤과 황폐화가 가속됐다.

2006년 선거에서 아이티 대중은 아리스티드의 오랜 동맹인 르네 프레발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러나 프레발은 유약한 인물이어서 미국에 협조했고, 점증하는 사회적 위기에 대처하지 못했다.

사실 미국과 유엔과 다른 제국주의 강대국들은 프레발 정부를 우회해 NGO들에게 돈을 댔다. 그래서 이브 엥글러는 “아이티는 이제 인구 1인당 NGO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고 말한다. 프레발 정부는 실제로는 제국주의 강대국들과 이들이 선택한 국제 NGO들이 이 나라를 주무르는 상황을 가리는 정치적 구실을 했다.

오바마 정부의 대(對) 아이티 정책

진정한 국가 권력은 프레발 정부가 아니라 미국이 후원하는 유엔 점령군에게 있다. 브라질의 지휘 아래 유엔군은 아이티의 부자를 보호했고 아리스티드와 그의 라발라스가족당 지지자들을 공격하는 우익 테러 집단에 눈을 감았다.

점령군들은 빈곤, 파괴된 사회간접시설과 급속한 삼림 파괴 등 자연재해의 충격 ― 2004년과 2008년 허리케인과 이번의 지진 등 ― 에서 아이티를 취약하게 만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점령군들은 아이티 사회의 재앙적 상황을 관리했을 뿐이고, 다른 나라의 경찰처럼 범죄적 만행들을 많이 저질렀다. 댄 비톤은 ‘아메리카 대륙에 관한 NACLA 보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2004년 6월 임무를 시작한 유엔아이티안정화지원단(MINUSTAH)은 처음부터 살인, 강간과 폭력 행위를 저지르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에는 부시 정부, 지금은 오바마 정부가 아이티의 쿠데타와 사회적·자연적 위기를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확산하는 기회로 이용해 왔다.

오바마 정부는 아이티 국가부채 12억 달러를 탕감했지만, 아이티의 전체 국가부채를 탕감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이티는 여전히 엄청난 돈을 미주개발은행에 갚아야 했다. 사실, 부분적 부채 탕감은 이전 미국 정부와 별로 다를 바 없는 오바마의 진정한 아이티 정책을 감추기 위한 위장막이었을 뿐이다.

오바마는 신임 유엔 아이티 특사인 빌 클린턴과 손을 잡고 다른 카리브해 나라들에게 강요된 것과 별로 다를 바 없는 경제 정책 ― 관광산업과 초착취 공장 유치, 민영화와 탈규제화로 경제에 대한 국가 통제력을 약화시키기 ― 을 아이티에 도입했다.

특히, 클린턴은 아이티 북부를 관광단지로 개발하는 계획을 밀어붙였다. 그는 포르토프랭스의 거대한 슬럼가 문제에 대해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클린턴은 항구 개발에 로열캐리비언 크루즈라인스를 끌어들였고 이 회사는 2050년까지 항구를 임차하는 조건으로 5천5백만 달러를 투자했다.

아이티 관광산업은 새 항구에서 출발해 산악 요새인 시타델과 상수시 궁전 ― 이 모두 아이티의 반노예제 혁명의 지도자인 앙리 크리스토프가 지었다 ― 을 등반하는 관광 상품을 판매할 꿈에 부풀어 있다. 〈마이애미 헤럴드〉는 이렇게 보도했다.

“이 4천만 달러짜리 계획은 시타델과 상수시 궁전이 위치한 조용한 소도시 밀로트를 공예 시장, 레스토랑과 포장도로를 갖춘 활력 있는 관광단지로 바꾸려 한다. 관광객들은 복잡한 캅아이티엔[빈민가]을 지나는 페리를 타고 항구에 도착한 뒤, 플랜테이션들을 지나는 버스를 탄다. 일단 밀로트에 도착하면, 관광객들은 도보나 말을 타고 1982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시타델로 올라갈 수 있다.”

에코투어[생태 관광], 유적지 탐사와 부두교 의식 탐방을 내세워 관광객들을 유혹하려 노력해 온 아이티 관광산업은 로열캐리비언라인스가 세계 최대의 유람선을 유치하기로 한 마당에 새로운 구경거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팻 로버트슨[미국의 우익 목사]이 아이티의 위대한 반노예 혁명을 악마와의 거래였다고 비난한 반면에, 클린턴은 그 혁명을 호객 상품으로 변화시켰다.

동시에, 클린턴의 아이티 계획에는 아이티의 값싼 노동력(아이티의 도시 빈민들)을 이용해 초착취 공장을 확대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미국 정부는 아이티산 의류에 무관세 특혜를 부과하기로 했고, 초착취 공장이 아이티에 우후죽순으로 건설됐다.

클린턴은 악명 높은 신타스 사(社)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아이티의 직물 공장들을 순회 방문하면서 초착취 공장의 발전을 찬양했다. 그는 조지 소로스가 초착취 공장 단지에 5천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고 2만 5천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거라고 말했다. 클린턴은 기자회견에서 아이티 정부가 “토지 임대료를 포함해 기업 활동 비용을 낮추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하고 주장했다.

트랜스아프리카의 창립인 랜달 로빈슨은 ‘데모크라스 나우’[미국의 진보적 라디오 프로그램]에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지금 아이티가 필요로 하는 형태의 투자가 아닙니다. 아이티는 자본 투자를 필요로 합니다. 아이티는 자립하고 국민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종류의 투자를 필요로 합니다.”

클린턴이 노골적으로 초착취 공장을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후원한 쿠데타가 모든 저항을 억누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쿠데타는 아리스티드 대통령과 최저임금을 올리는 그의 ‘버릇’도 제거했다. 쿠데타 세력은 아리스티드를 나라 밖으로 내쫓았고 그의 지지자들을 공격하고 아이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당인 라발라스가족당의 활동을 금지했다. 쿠데타 정부는 초착취 공장에서 활동하는 노조 조직자들을 공격했다.

이 결과 클린턴은 기업주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당신이 아이티에서 감수할 정치적 위험이 이토록 낮은 적이 없었습니다.”

결국 오바마 정부는 역대 미국 대통령의 선례를 따라 아이티의 엘리트들을 지원하고 다국적 기업들이 아이티 노동자들을 싼값에 고용하도록 돕고 아이티 국가가 사회를 운영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이런 상황에 반대하는 모든 저항세력을 탄압했던 것이다.

아이티의 위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 정책들이 아이티 국가를 약화시키고 사회기반시설을 파손시켰고, 허름한 건물들과 절망적 빈곤이 만연한 상황을 고착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처음에는 허리케인, 그리고 이제 지진이 닥치자 엄청난 사회적 재앙이 발생한 것이다.

모든 사람은 당연히 아이티 구호 활동을 지원해야 하지만, 정치적 배경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엥글러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적으로 아이티 구호는 제국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됐다. 이 점은 미국과 캐나다 정부들이 쿠데타 정부를 대하는 방식과 과거 아리스티드 정부를 대했던 방식을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미국과 캐나다는 아리스티드 정부 당시 지원을 일절 중단했다. 그러나 쿠데타가 발생한 뒤 그들은 아이티 사회에서 가장 반동적인 세력에게 엄청난 돈을 지원했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과 다른 열강이 이번 위기를 자신들의 계획을 고통 받는 아이티에게 강요하기 위한 기회로 활용하려는 모든 시도에 반대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국제 NGO들의 구실에 대해서 비판적이어야 한다. 많은 NGO는 위기를 해결하려 애쓰고 있지만 미국과 다른 나라 정부들은 아이티인들의 민주적 자결권을 약화시키기 위해 NGO들에게 지원금을 보내고 있다. 국제 NGO들은 아이티 국가나 아이티 국민에게 책임을 지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을 통해 자금을 보내는 것은 아이티인들이 자기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것마저 약화시킬 수 있다.

또, 오바마 정부는 아리스티드의 귀환 금지 조처를 즉각 해제해야 하고, 라발라스가족당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마약상이자 쿠데타 지도자인 기 필리페와 그의 국민재건전선은 선거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가. 아리스티드와 그의 당은 여전히 가장 인기 있는 정치 세력이며 공정한 선거에 참가할 권리가 있다.

미국 정부는 위기때문에 자기 땅에서 떠나야 했던 아이티인들의 추방을 중단하고 아이티 난민들에게 체류신분보호(TPS) 지위를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 쿠데타, 허리케인과 지진으로 발생한 정치적·사회적 위기로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미국에 남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우리는 미국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요하지 말라고 요구해야 한다. 미국은 수십 년 동안 아이티에 해를 끼쳤다. 아이티가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가 진실이다. 미국, 프랑스, 캐나다와 유엔은 과거 아이티를 약탈하고 파괴한 대가를 아이티인들에게 지불해야 한다.

그렇게 확보한 자금과 새롭게 열린 정치적 공간을 통해 아이티인들은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경제적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2백 년 전 위대한 노예혁명이 꿈꾸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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