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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남북 간 대립은 북미 관계의 불안정을 반영한 것

올해 초 많은 한반도 전문가들이 북미 관계와 더불어 남북 관계도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12월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 보즈워스 방북 이후, 북한 당국이 남북 관계 개선을 바란다는 신년 사설을 발표하면서 이런 기대가 커졌다.

그러나 1월 중순 들어 남북 관계는 극단적으로 모순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북한 당국은 한편에선 평화협정 체결을 원한다고 발표하면서, 바로 며칠 뒤에는 이명박 정부가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비상통치계획’을 세운 것이 드러나자 돌연 국방위 성명을 통해 남한 당국에 “보복성전”을 선포했다.

1월 20일 한국진보연대가 통일부 앞에서 ‘비상통치계획-부흥’을 폐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그 이후에도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북핵 시설을 선제타격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북한 당국의 대응은 27일 오전 서해에 NLL(북방한계선) 인근에 해안포를 발사하는 등 군사적 시위로까지 발전했다.

북한 당국의 행동은 남북한 민중운동의 자주적 반제국주의 운동을 고무하는 방식이 아니라, 국가 간 군사적 대결을 선호하는 스탈린주의 국가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남북 관계가 악화한 데에는 남한 정부의 책임이 훨씬 크다.

이명박 정부의 ‘비상통치계획-부흥’은 북한 영토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했을 때, 북한 영토로 진격한다는 ‘작전계획5029’의 연장선상에 있다. “급변시 북한에서 비상 통치를 담당할 ‘북한자유화행정본부’(가칭)를 세우고 통일부 장관이 본부장을 맡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북한 점령 계획인 것이다. 이런 남한 당국의 호전적 태도가 북한의 반발을 불렀다.

이명박 정부가 워낙 호전적이다 보니, 최근 사태는 그동안 많은 개혁주의적 한반도 전문가들과 좌파 민족주의 경향의 분석, 즉 북미 관계는 순탄히 발전할 것이므로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만 바꾸면 남북 관계도 병행 발전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반발은 단지 남한 당국의 대북 정책만 겨냥한 것 같지는 않다.

최근 북한은 북미 대화에 속도를 내려고 했지만, 미국의 반응은 시종일관 시큰둥했다. 북한 외무성이 11일 평화협정 회담을 제안하면서 회담 방식은 양보할 수도 있다고 밝혔지만, 미국은 북한더러 먼저 비핵화에 나서라는 기존 방침만 재천명했다. 제재를 해제하면 6자회담에 복귀할 수도 있다는 북한의 방침을 두고도 미국은 조건 달지 말고 6자회담에 선복귀하라는 주장을 고수했다.

북한 당국이 1월 26일 NLL 인근에 남한 선박 항행금지구역을 선포한 데 이어 바로 다음 날 곧장 해안포를 발사한 것은 정전체제의 문제점을 부각해 평화협정 회담을 쟁점화하려는 의도로도 볼 수 있다. 즉, 최근 남북 관계의 불안정은 북미 관계의 불안정과도 관계있는 것이다.

키 리졸브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에 6·15 공동선언 10주년인 해인 데다 북미 간 대화가 시작됐다는 점 때문에 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기대가 높다. 그러나 보즈워스가 방북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평화협정 체결과 비핵화 간 순서 문제, 6자회담 복귀와 제재 해제 순서 문제 등 북미 간 이견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회담 속도가 늦어지는 것에 불만을 품은 북한이 3월에 예정된 한미 연합 훈련인 키 리졸브 훈련 중단을 요구하며 NLL에서 해안포를 발사한 것보다 더 높은 수위의 군사적 시위를 벌일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전선과 이란 핵문제 개입에 집중하느라 북한과의 대결 구도를 지속하기 어려운 처지 때문에 북한과 대화에 나섰지만, 대화 국면이 곧 북미 관계 개선으로 순탄히 발전할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공화당 정부에서든 민주당 정부에서든 지난 20년간 북미 대화는 근본적인 관계 개선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대화와 긴장 국면의 불안정한 교차가 반복됐다.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로 동아시아의 경제적 위상이 더 올라갈수록 미국은 동아시아 강대국들을 더욱 견제하려 들 것이고, 이는 북미 관계 불안정을 낳을 수 있다.

물론 우여곡절 끝에 더 진전된 북미 간 합의가 도출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이 중동 전선에서 처한 어려움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합의가 과연 진정한 평화체제를 보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어떤 내용을 담은 평화협정이냐 하는 문제(한미일 동맹 존속 여부와 주한·주일 미군의 존재 여부 등)도 있는 데다, 평화협정을 체결하더라도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놓지 않으려는 미국이 과연 그 협정을 온전히 지킬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해결해 주진 못한다.

진보진영은 북미 회담 결과를 지켜보는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에 대한 민중의 높은 열망을 동아시아 불안정의 근본 원인인 열강의 경쟁적 세계 지배 체제(제국주의) 자체를 변혁하는 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