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모델은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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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 위기는, 전 세계를 강타한 뒤 지금은 잠시 진정되는 듯하다. 그럼에도 이 위기가 끝났다고 단언할 수 없는 이유는 두더지 게임처럼 세계경제의 약한 고리에서 위기가 나타나 다시 세계경제를 집어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리스와 스페인 등 남부 유럽에서 위기 재발의 전조가 나타났지만 내일은 동유럽이나 또 다른 곳이 될 수 있다.
세계경제가 너무나 불안정할 뿐 아니라 회복의 기운도 취약한 상황에서, 그리고 신자유주의와 워싱턴 컨센서스의 모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이 경제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난해 중국이 거둔 경제 실적은 분명 돋보이는 것이다.
2009년에 중국은 경제가 8.7퍼센트 성장했고, 외환보유고도 1조 달러를 넘어섰으며, 독일을 제치고 세계 2위 무역대국이 됐다.
개혁·개방 이후 비약적 성장을 이룩하고 특히 이번 경제 위기에서도 큰 타격을 받지 않은 점이 중국을 신자유주의의 미국을 대체할 세력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마틴 울프는 “과거는 영국의 세기였고, 현재는 미국의 세기라면 미래는 중국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말해 이런 견해를 압축적으로 보여 줬다. 최근에 위기에 빠진 미국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으로 중국 모델이 새로운 힘을 얻고 있다.
중국 모델
최근에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중국모델이 의미하는 바는 중국이 시장개방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회주의적 요소들을 가진 ‘국가사회주의’나 ‘사회주의 시장경제’고, 따라서 시장의 맹목적이고 통제할 수 없는 힘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는 것이다.
또 중국은 해외시장 의존도를 줄이고 내수시장을 확대하고 있으며,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論)으로 표현되는 불균형 성장에서 이제는 서부개발과 농촌 지원 확대로 균형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는 주장도 덧붙는다.
중국 모델에 대한 이런 설명은 2004년 조슈아 라모가 주조한 베이징 컨센서스에 그 기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는 동안 중국이 진정한 승자로 등장했고 그 결과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더 넓게는 전 세계에서 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영향력이 역전됐다고 설명하면서, 이를 워싱턴 컨센서스 대신 베이징 컨센서스라고 주장했다.
라모는 베이징 컨센서스가 두 가지 특징을 지닌다고 주장했는데, 하나는 ‘지역화’고 다른 하나는 ‘상호주의’다. 지역화는 신뢰하기 힘든 워싱턴 컨센서스의 만병통치약식 처방보다는 지역 상황에 맞고 지역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고, 상호주의는 미국의 일방주의 대신에 경제적 상호 의존에 기초한 새로운 국제질서를 건설하는 데 국가 간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지오반니 아리기도 이런 전망을 가진 인물로 볼 수 있는데, 그는 “실패한 신보수주의 전략에 대한 보다 ‘현실적인’ 대안은 새로운 남북 동맹을 맺고 여기에 중국이 적극 참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현대판 반둥회의 결성에 중국의 구실을 기대했다. 그의 이런 기대에는 세계 화교자본의 구실과 중국이 특유의 ‘비자본주의적 시장경제’라는 생각이 밑바탕에 있다.
중국 내외의 많은 학자들(리밍치, 딕 로 등)은 경제에서 국유기업이나 집체기업의 비중이 여전히 높은 것을 근거로 중국이 사회주의 시장경제 또는 혼합경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중국 모델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하기 전에 지적할 것은 중국 모델이라는 것의 내용이 너무나 모호하고 포괄적이어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 용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중국 모델이라는 용어를 동아시아 발전국가론과 비슷한 개념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럼에도 이런 중국 모델 또는 사회주의 시장경제 담론에서 공통점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중국은 미국과 디커플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가능성을 지난해 경제 성장에서 보여 줬다.
둘째, 중국은 자본주의가 아닌 경제 체제고 이런 특징은 중국이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는 데 큰 구실을 했다. 셋째, 중국은 미국 헤게모니를 대체할 잠재력을 지녔다.
디커플링
중국이 미국과 단절하고 자본주의가 아닌 새로운 대안을 보여 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중국의 고도성장은 외국 자본들이 중국에 진출하고 이로부터 생산된 소비재가 미국을 포함한 세계 시장에 수출되는 것 뿐 아니라 중국이 무역수지 흑자로 벌어들인 자본이 다시 미국으로 흘러들어가는 구조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정부의 대규모 경기부양 덕분에 소비가 증대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이것은 재정적자 확대와 은행 부실채권 증대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또한 이번 위기로 민간부문의 투자 위축은 국가의 경제 개입을 더 강화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추진하는 중국 지도자들에게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중국 경제에서 국유기업이나 집체기업의 비중이 높다는 것을 근거로 중국이 자본주의가 아닌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지극히 형식주의적이다. 이런 이유로 중국을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한다면 박정희의 한국이나 히틀러의 독일을 마찬가지로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모순이 발생한다.
사실 중국의 관료들은 시장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직접 기업을 경영하거나 후원하는 등 경제의 핵심 주체로 등장했다. 따라서 중국의 국유기업 또는 집체기업은 민간기업(사영기업이나 외자기업)과 경쟁에 직면해 더 자본주의적 기업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셋째 문제와 관련해선, 중국의 경제 규모가 (논란은 있지만) 미국의 절반에도 되지 않기 때문에 중국이 미국을 대체하거나 추월한다는 주장은 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경제 위기가 더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는 중국과 미국의 공조도 있지만 이에 못지않게 갈등과 긴장도 더 많이 나타날 것이다. 위안화 평가절상 압력이나 무역분쟁, 대만의 무기 수출을 둘러싼 갈등이 그 예다.
중국 모델은 중국 경제를 과장하고 결과적으로 헛된 희망을 품게 하는 개념이다.
중국에 이렇게 환호하는 분위기와 달리 중국 지배자들은 중국이 처한 현실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사회주의라고 ‘자랑’할 마지막 보루인 공산당의 일당 지배와 정치적·시민적 권리 억압도 경제 성장 덕분에 그동안 용인된 것뿐이다. 이번 경제 위기에 직면해 중국 정부는 막대한 경기부양으로 대처하고 있다. 하지만 적자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 정책을 무한정 지속할 수는 없다. 세계경제가 회복되지 않아 수출이 회복되지 않고 민간투자가 계속 정체한다면 중국은 경제적 위기를 맞이할 뿐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격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 모델이 칭송받는 바로 그 순간 중국은 정말로 기로에 서 있다는 사실이 역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