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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소위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실체

11년 전(2008년) 중국 사회주의자 천둥이 보내온 글을 재게재한다. 천둥은 중국의 심각한 빈부격차를 고발하고  중국 노동자·농민 투쟁이 서서히 부상하고 있음을 소개하며, 중국 지배자들과 평범한 중국인들의 이해관계가 결코 같지 않음을 보여준다. — 2019년 11월 21일

얼마 후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이라는 구호 아래 개최된다. 그런데 한 줌밖에 안 되는 고관대작들의 세계와 꿈이 과연 평범한 민중의 세계와 꿈과 같을까?

베이징 올림픽 조직위원회 웹사이트는 “꼭 지켜야 할 다섯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검소한 올림픽”이다. 검소? 베이징 올림픽은 초호화 체육관을 짓기 위해 이미 38억 달러[약 3조 8천억 원]를 썼다. 역사상 가장 비싼 올림픽이다! 8년 전 호주 시드니 올림픽은 15억 달러를 썼는데 그 두 배 이상인 것이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의 표 값 최고가는 1만 위안[1백40만 원]이다.

정부는 베이징 올림픽의 평균 입장료(약 1백 위안 = 약 1만 3천9백 원)가 일반 소비자들이 지불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겨우 1천 위안 정도의 월급을 받는 1억 5천만 민공[농촌 출신 이주노동자, 공식적으로는 도시 거주권이 없다]은 지불할 수 없는 가격이다. 정부의 말이 틀렸다고만 할 수는 없는 것이, 민공은 순전히 도시에 와서 일하는 기계로만 여겨졌을 뿐, 그들의 임금이 도시 소비를 뒷받침해 주리라는 기대는 없다. 4천만 실직 국유기업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세계는 극도로 빈곤한 세계이고, 이들의 꿈은 올림픽을 보기 위해 혹은 “단결, 우애, 진보, 화합”을 느끼기 위해 표를 사러 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꿈은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개혁개방 30년 결산

올림픽이 개최되는 올해는 중국 개혁개방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금은 관영언론도 고도 경제성장이 노동자와 환경을 희생시켰음을 마지못해 인정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중국 정부는 세 차례에 걸쳐 대규모 사유화를 단행했다. 공식적으로 결코 인정한 적이 없지만 말이다. 처음엔 주로 중소형 국유기업을 [민간 자본가에게] 팔아버리거나 대형 국유기업을 주식회사로 바꾸었다. 두 번째 시기 사유화의 대상은 국유기업 토지를 포함한 도시의 토지였다. 세 번째 시기 사유화 대상은 바로 농민의 승포지[承包地, 청부 경작지]였다.

상업적 목적을 위한 토지 강제수용이 계속됐고 관료와 자본가 들의 탐욕이 점점 커지면서 농민의 저항도 점차 격렬해졌다. 10년 동안 관료와 자본가에게 토지를 뺏긴 농민의 숫자가 4천만 명에 이른다. 강제수용에 따른 이익 중 농민에게 돌아간 것은 5~10퍼센트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고스란히 관료와 자본가의 지갑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노동자와 농민은 수탈당한 반면 관료와 자본가는 떼돈을 벌었다. 이것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임금의 비율이 계속 하락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래 표를 보면 이 비율은 1980년에 17퍼센트로 이미 하락세였지만, 시장화 개혁이 본격화되면서 계속 하락해 2004년에는 11퍼센트에도 못 미쳤다.

2007년 2월 세계은행의 《중국 경제 분기별 보고서》도 이 점을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노동집약 공업이 여전히 주도적인 중국과 같은 나라에서 이것은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 빈부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최근 0.5에 도달했거나 혹은 초과했다. 30년 전 중국은 지니계수가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 지니계수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로 변했다.

도대체 그 많은 돈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당연히 관료와 자본가의 주머니로 갔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세계’이고 ‘그들의 꿈’이다. 10년 전 세간에 유행했던 노래가 이 점을 잘 보여 준다.

15등급의 사람들
1등급 : 실권을 장악한 사람들, 메모하고 동그라미만 쳐도 바로 돈이 들어오네.
2등급 : 불법 경영으로 폭리를 취하는 국유기업 관료들, 공문서를 바꾸고 그래프를 바꾸네.
3등급 : ‘백’[연줄] 있는 사람들, 명당자리를 차지해 돈을 버네.
4등급: 법관들, 원고 돈을 먹고 나서 피고 돈을 먹네.
5등급: 교통경찰, 길 위에서 돈을 먹네.
6등급: 공공교통 운전사, 시동 걸 때마다 돈을 요구하네.
7등급: 관광 가이드, 사시사철 커미션을 먹네.
8등급: 개체호[幹個體, 도시 지역에서 개인적으로 사업을 벌이는 사람들], 장씨와 이씨[중국에서 가장 흔한 성. 장삼이사, 즉 평범한 사람을 지칭]를 속이고 돈을 버네.
9등급: 전력국 직원, 뇌물을 갖다 바치지 않으면 바로 스위치를 꺼버리네.
10등급: 의사, 뱃가죽을 열어놓고 돈을 달라 하네.
11등급: 세금관리, 고지서를 막지 않으면 재수 없는 일 당한다네.
12등급: 교사, 일년 내내 임금이 체불된다네.
13등급: 노동자, 공장이 문 닫아 먹고 살 수 없다네.
14등급: 농민, 양식을 건네주고 영수증만 받는다네.
15등급: 민공, 어디가 종착지인지 알 수 없다네.

노동자와 농민의 빈곤은 개인 소비를 무력화하고 국내 시장을 축소시켰다. 돈 있는 사람들의 소비만으로는 소비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세계은행 보고서도 중국 국내 소비 장기 하락의 원인을 임금률이 장기적으로 하락한 것에서 찾는다.

빈부격차

한편, 거대한 부를 축적한 관료와 자본가 들은 사치품 소비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돈을 자본 축적에 지출했다. 그래서 GDP 대비 개인 소비의 비율은 계속 하락했고, 총고정자본형성율은 오히려 계속 상승해 최근 몇 년 동안 40퍼센트를 초과했다. 이 수치는 20퍼센트 미만인 미국의 두 배 이상일 뿐 아니라 아시아 주요 국가들보다도 훨씬 높은 것이다.

축적과 소비의 불균형으로 제조업에서 공급이 수요를 훨씬 초과하는 생산 과잉 현상이 나타났다. 중국의 노동자와 농민이 사지 못한다면 외국인들이 사게 하자. 이것이 지난 20년 동안 중국이 악착같이 수출에 매달린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최근 중국의 무역의존도는 GDP의 거의 70퍼센트에 이르는데 이는 중국 같은 인구 대국에서 비정상적인 일이다.

또, 자본가 계급의 돈은 점점 불어나 단지 상품 수출만으로 과잉 자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게 됐고, 과잉 자본의 수출이 더 필요하게 됐다. 이것이 바로 ‘밖으로 나가자’는 전략이 나온 배경이다. 과거 몇 년 동안 중국의 해외 투자는 몇 배나 증가했는데,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이 합법적 혹은 불법적 경로를 따라 국외로 마구 흘러갔다. 이 돈은 먼저 홍콩으로 흘러갔는데, 만약 대륙 자금이 빠지면 홍콩 주식과 부동산은 바로 크게 위축될 것이다. 마카오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농촌이 자본 부족으로 파산 지경에 이르고, 중국 서북과 서남부 같은 낙후 지역도 같은 문제에 처해 있는 데 반해 중국의 관료와 자본가는 오히려 필사적으로 자본 수출에 힘을 쏟고 있다.

한계에 이른 경제 발전 모델

노동자와 농민을 쥐어짜는 것을 대가로 한 수출주도형 발전모델 때문에 대중은 갈수록 곤궁한 처지에 놓이게 됐고, 거대한 사회적‍·‍환경적 위기가 형성됐다.

우선, 중국의 현재 성장률은 각종 원료의 공급 부족 때문에 점점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중국은 석유, 철, 수많은 농산품에 이르기까지 점점 수입에 의지하고 있으며 수입가격은 상승하고 있다. 농업 상황이 특히 주의할 만한데, 보통 사람들에게는 먹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오랫동안 농업을 무시해 온 결과 농업 투자액은 놀랄 만큼 감소해 왔다. 농촌 인구가 7억 명인데, 농업 투자는 총투자액의 2~3퍼센트에 불과하다. 이것이 농업 생산 낙후와 농촌 파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또한 지방 관리들이 [각종 세금을] 쥐어짜면서 소농들은 갈수록 공업 발전 속도에 뒤처지고 있다.

식량 또한 마찬가지다. 중국의 식량자급률은 91퍼센트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수입해야 한다. 중국 같은 인구 대국이 갈수록 식량 수입에 의존하는 것은 중국과 외국 모두에게 좋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중국의 연간 곡물소비량은 현재 국제시장 연간 교역량의 두 배나 되기 때문이다.

중국의 곡물 수입 증가는 물가인상과 국내외 곡물 가격 파동을 낳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이미 시작됐다. 중국 공산당은 ‘식량이 없으면 곧 민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이치를 잘 알고 있지만 눈앞의 이익 때문에 기존의 길을 고수하며 위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부패

세계경제는 이미 냉각되기 시작했는데 오직 중국만 열기가 아주 뜨겁고,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 엄청난 거품이 형성돼 있다. 중앙정부는 위기를 느끼고 끊임없이 경기를 냉각시키려 했지만 모두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중앙]정부의 통제력은 중난하이[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주요기관, 요인의 주택이 많은 베이징의 지역 이름]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조롱만 들었다.

공산당은 곳곳에서 대중을 통제하지만 한 가지만은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 자신이다. 공산당은 공산당 관리들의 부패를 통제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의 자산 빼돌리기를 더더욱 통제하지 못한다. 현재 당 내 고위 관리들은 중앙정부에 자본통제를 해제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 지난해 이들은 합법적으로 자신들의 자산을 해외로 옮길 수 있도록 자금 이동의 자유화를 요구했다.

이미 자본통제는 대폭 해제돼 지하 은행에서 매일 수억 위안의 돈이 홍콩‍·‍마카오‍·‍대만으로 불법적으로 흘러가 투자되고 있다. 중난하이가 결국 자금 이동을 자유화했을 때 중국에서 금융 위기가 폭발하지 않는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위기가 폭발하면 그 파장은 엄청날 것이다.

게다가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노동자와 농민의 저항을 진압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정부는 이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 지금 주강 삼각주[광동 등 대도시가 밀집된 연안의 공업 지역]에서 매일 민공의 파업이 일어나고 있고, 토지 수용에 반대하는 농민의 집단적 저항이 점점 격렬해지고 있다.

경제 위기가 발생한다면 관료와 자본가 들은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와 농민에게 전가하려 할 것이고, 노동자와 농민은 이것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후진타오와 원자바오의 ‘새로운 정치’?

후진타오 주석은 최근 위기를 느끼고 노동자와 농민 착취 정책을 약간 수정하려 한다. 정부는 최근 새로운 노동계약법을 제정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해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강화하겠다고 한다. 또, 농업세를 폐지하고 농촌 의무 교육을 실시하고 농촌 투자를 늘려 ‘사회주의 신농촌’을 건설해 농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처들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중국의 최저임금은 애초에 지나치게 낮게 책정됐다. 국제노동규약을 보면, 최저임금이란 최소한 그 나라 평균 임금의 60퍼센트가 돼야 한다. 그러나 중국의 최저임금은 평균 임금의 40퍼센트에 불과하다. 따라서 최근 최저임금을 인상했지만 기껏해야 물가인상분을 간신히 보충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농촌 투자는 이전의 2천여억 위안에서 2006년의 3천3백97억, 2007년의 3천9백17억 위안으로 비교적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농민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돈은 6백 위안밖에 안 되고 총투자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여전히 10퍼센트도 안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과연 중앙정부의 정책을 기층 정부가 실행할 것인가다. 평범한 노동자와 농민은 이미 답을 가지고 있다. 농민들은 “중앙에서 2천억 위안을 지원해도 농민들이 받는 것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민주적으로 감시받지 않기 때문에 중앙의 농촌 투자 자금은 횡령되거나 유용되곤 한다.

민공들 또한 아무리 좋은 노동자 보호법이 있어도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지방정부는 그 법을 집행할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에만 흥미를 갖는다.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의 착취를 견디다 못해 파업이나 시위를 하면 지방정부는 신속하게 경찰을 보낸다.

당근과 채찍

중앙정부는 설마 이 사실을 모를까? 당연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노동자와 농민의 정치 자유를 압박하는 것을 국가 정책으로 삼아 왔다. 대중의 권리, 예컨대 언론‍·‍출판‍·‍집회‍·‍결사‍·‍시위의 자유 등은 그저 종이 위에 적힌 글자에 불과하다. 노동자들의 파업권은 심지어 종이에서조차 사라져 버렸다.[1982년 헌법에서 삭제됐다]

노동자와 농민이 더는 참을 수 없어 저항할 때 국가 기구의 강철군화는 잔인하게 그들을 짓밟는다. ‘딱딱한’ 강철군화 말고 ‘부드러운’ 제도적 차별도 있다. 중앙정부는 1958년 호구 제도를 통과시켜 농민의 이주 자유와 동등한 시민권을 박탈했다. 만약 중앙정부가 정말로 노동자와 농민에게 관심이 있다면 우선 그들에게 시민권을 보장해 줘야 할 것이다.

일부 ‘신좌파’ ― 사실 민족주의자 ― 는 ‘새로운 정치’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새로운 정치’의 한계는 명확하다. ‘새로운 정치’는 기껏해야 경제상의 미미한 개선일 뿐이고 그것이 실제로 실행될지도 알 수 없다. 노동자와 농민의 가장 절박한 요구인 정치적 권리 보장 문제는 여전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정책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 바로 당근과 채찍이다.

노예주는 선심을 쓰며 노예에게 빵을 몇 조각 더 던져 줄 수 있지만 절대로 노예의 자유를 회복시켜 주진 않는다. 노예가 자유로워지면 노예주가 궁핍해지지 않겠는가? ‘새로운 정치’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은 대중이 빵 한 조각 더 먹었으니 ‘덕치(德治)’라며 소리 높여 만세를 외친다. 이 사람들은 여전히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말한다.

이들이 틀렸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들에겐 그들의 ‘사회주의’가 있고 그것은 바로 공산당의 ‘부권(父權) 사회주의’, 혹은 ‘독점 사회주의’다. 이러한 사회주의에서 대중은 그저 얌전히 앉아 ‘당을 믿고 정부를 믿는다’고 말해야 한다. 조용히 기다리면 지도자가 와서 당신들을 위해 줄 것이다. 만약 지도자가 자신을 위하느라 바빠 대중을 위하지 않는다면 대중은 무엇을 해야 할까? 입 다물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할 뿐!


점증하는 노동 탄압

그러나 노동자와 농민의 생각은 예전과 달라졌다. 그들은 수십 년 동안 당을 믿어 왔지만, 그들의 처지는 “고달픈 수십 년 후 하루아침에 해방 전으로 돌아”간 셈이다.

노동자가 머리를 굽실거려야만 사장에게 초착취당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때, 땀을 쏟아 가며 일해도 임금을 못 받게 될 때, 불 같은 분노가 폭발할 것이다. 노동자들은 확실히 수동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고 있다. 수출가공지역에서 파업은 더는 신기한 뉴스거리가 아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조직할 수 없다면, 자생적 파업이 아무리 빈번하게 일어나도 관료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지방정부 관리들도 자발적 파업을 이전만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꾸준히 유지되는 조직 없이 발생하는 자생적 파업은 금방 떠올랐다 금방 가라앉는다.

그렇다.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조직하지 못하는 한 관료와 자본가 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길 좋아하는’ 인권운동가들이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한 조직 건설을 촉진하려 나섰다. 정부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들을 반드시 채찍으로 다스려야 한다.

실제로 최근 정부는 노동자 지원 NGO에 대한 탄압을 늘리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광둥성에서는 많은 노동자 지원 센터가 폐쇄됐다. 그 중 일부는 홍콩 단체가 지원하는 것이고, 일부는 현지인이 개설한 것이다.

이 밖에도 첫째, 중산대학의 잡지 《민간(民間)》이 강제 정간됐다. 《민간》은 노동자들에게 동정적인 간행물이다. 둘째, 베이징의 《중국 발전 간보(中國發展簡報)》는 본래 아주 온건한데도 지난해 강제 정간됐다. 셋째, 잡지 《백성(百姓))》 웹사이트와 《중국시가(中國詩歌)》 웹사이트가 폐쇄됐다. 넷째, 신좌파라 부르는 《독서(讀書)》의 편집자 왕후이가 해직됐다.

심지어 지난해 말 홍콩 단체가 지원하는 선전의 한 노동자 지원 센터에서 피비린내는 만행이 저질러지기도 했다. 이 센터 책임자의 아킬레스건이 신원미상의 깡패들에 의해 잘린 것이다. 경찰이 현장에 있었지만 제지하지 않았다. 센터 직원들은 노동자들에게 노동계약법을 적극 홍보하면서 자본가에게 더는 속지 말라고 교육한 것 때문에 보복을 당한 듯하다. 사고 후 센터 측은 경찰에 이번 폭력 사건을 공개 비난하라고 요구했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만약 공산당이 정말 대중에게 유용한 일을 하고자 한다면 먼저 노동자와 농민의 시민적 권리와 일체의 정치적 자유를 회복시켜야 한다. 또, 인권을 침해하는 일체의 악법과 사악한 세력을 뿌리 뽑아 노동자와 농민이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게 해 줘야 할 것이다.

물론 공산당은 이럴 계획이 없다. 그러나 공산당이 파업을 금지하는데도 노동자들은 힘차게 파업하고 있다. 노동자와 농민은 지금 깨어나고 있다. 그들은 점차 이 세계가 ‘자신의 세계’가 아님을, 공산당의 꿈이 ‘자신의 꿈’이 아님을 깨닫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힘에 의지해 단결 투쟁할 때만 인간적 존엄을 보장하는 세계를 얻을 수 있음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노동자와 농민이 거대한 사회운동을 발전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베이징 올림픽 기간에 1988년 서울 올림픽 때처럼 운동장 안에서는 올림픽 경기가 열리고 거리에서는 경찰과 민중이 충돌하는 기이한 광경이 벌어질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기대해선 안 된다.

이렇게 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싹은 지금 집요하게 땅 위로 뚫고 나오려는중이다. 옛 경구처럼 이것은 인간의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