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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뀔까 묻는 사람들에게 ①:
자본주의는 그나마 나은 대안인가?

이번 호부터 시작하는 새 연재는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흔한 물음에 답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강동훈 기자가 ‘자본주의가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체제’라는 생각에 도전한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 경제 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최근에는 경제가 조금 회복하는 듯 보이지만 불안정이 지속되면서 해고, 임금 삭감, 복지 축소가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이번 경제 위기 전부터 높은 실업률과 소득 격차 확대 등 양극화로 삶이 어려웠는데, 이제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서울역 앞 노숙자들 한국에서도 IMF 위기 이후 경제 성장은 계속됐지만 빈곤은 오히려 늘었다. ⓒ사진 임수현 기자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자본주의 외에는 대안이 없지 않냐고 생각한다. 다양한 상품을 충분하게 생산하며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자본주의가 현실 가능한 그나마 나은 대안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는 흔히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고, 부족한 물자를 아껴 써 왔단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자본주의는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 끊임없이 혁신하며, 모든 사람들이 먹고 입기에 충분할 만큼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 왔다.

그래서 1백60년 전에 자본주의가 전 세계로 번져갈 무렵,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겨우 1백 년도 못 되는 기간에 과거의 모든 세대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거대한 생산력을 창출해 냈다” 하고 인정했다.

그런데 이런 생산 혁신은 자본가들의 냉혹한 이윤 추구 과정에서 나왔다. 이제 생산은 사람들의 필요가 아니라 자본가들이 이윤을 얻을 수 있느냐에 좌우된다.

그리고 이윤 논리가 이제는 생산력을 충분히 사용하는 것을 가로막고 오히려 그것을 파괴하는 구실을 한다. 가장 적나라한 예는 전 세계 사람들을 비만으로 만들 만큼 충분한 곡물이 생산되는데도 수억 명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이다.

이윤 논리는 재앙을 불러 올 기후변화도 낳고 있다. 자본가들은 이윤을 뺏기거나 줄어들까 봐 재앙으로 가는 환경 파괴와 이산화탄소 배출을 멈추지 않고 있다.

공황

설사 이런 문제들이 있더라도 자본주의 사회가 계속 발전하면, 점차 빈곤이 사라지고 기후변화 같은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생산력을 대규모로 파괴하는 공황을 자본주의는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1930년대 대공황뿐 아니라 1970년대 말, 1990년대 초, 1997∼98년 그리고 이번 경제 위기까지 공황은 계속됐다. 생산이 급작스럽게 중단되는 공황 때, 멀쩡한 자원과 설비 등은 대규모로 파괴되고 사람들은 끔찍한 고통을 받게 된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이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이 공황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자본가는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고 다른 자본가들보다 효율적인 생산방식을 채택하려 애쓴다. 보통 더 효율적인 생산방식은 노동자 한 사람이 사용하는 설비와 기계류가 더 많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 전체에서 공장과 기계류에 대한 투자 비율이 점점 커지고 고용된 노동자들의 수보다 훨씬 더 빠르게 증가한다. 그런데 이윤을 만들어 내는 것은 살아 있는 노동자들의 노동이다. 따라서 이윤율은 점차 하락하게 된다.

이윤율이 떨어져 자본가들이 투자를 줄이면 생산된 제품이 소비되지 못하면서 생산은 급작스럽게 중단되고 공황으로 치닫게 된다.

경제 위기 시기에 자본가들은 노동자 해고, 임금 삭감, 복지 축소 등으로 고통을 전가하며 이윤율을 회복하려 한다.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고 직장에 남은 노동자들은 더 장시간 일해야 한다.

실제로 1980년대 미국의 노동시간은 40시간에서 48시간으로 오히려 늘었고, 이번 위기 전에 미국의 최저임금은 그전 20년 동안 20퍼센트 하락했다. 몇몇 아프리카 국가들은 GDP가 정체하거나 줄기도 했다.

자본주의가 지속되더라도 점차 우리의 삶이 나아질 것이란 기대는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자본주의가 노후화되면서 경제 위기는 더 자주 오고 더 길어지며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무엇보다 자본주의 위기는 끔찍한 야만으로 연결될 수 있다. 1930년대 대공황은 파시즘, 유대인 대학살,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참상을 낳은 바 있다.

계획

이런 불합리에 대한 사회주의적 대안은 간단하다.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자본가들이 이윤에 따라 좌우하는 생산 시스템을 진정한 민주주의로 교체하는 것이다.

대중이 경제적 우선순위를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그런 경제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계획을 수립하고 서로 협력한다면, 일하고자 하는 사람과 기계는 여전히 있는데 생산이 중단되고 사람들은 고통받는 불합리한 상황을 끝낼 수 있다.

흔히 그런 대안은 이상적이지만 현실성은 없다고 한다. 현대 사회는 너무 복잡해서 그런 계획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주요 제품은 몇몇 기업들이 생산을 전담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들 주요 대기업은 모두 나름대로 계획을 세운다.

현대와 도요타 같은 자동차 회사들은 몇 년 전부터 생산 계획을 짜고 공장을 확대하거나, 수많은 자동차 부품을 생산한다. 자동차뿐 아니라 TV, 핸드폰 심지어 음료수, 치약까지 몇몇 대기업들이 생산을 장악하고 나름대로 계획을 짜고 있다.

이윤 경쟁 때문에 파괴적 결과로 연결되는 이런 계획을 대중의 필요를 위한 민주적 계획으로 바꾸자는 주장은 전혀 비현실적이지 않다.

끝으로, 옛 소련과 동구권에서 그런 시도는 실패하지 않았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사회에는 생산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결정이 없었다. 옛 소련에서 지배자들의 목표는 서방과의 군사적 경쟁에 모든 것을 종속시키는 것이었다. 전투기와 미사일 같은 최첨단 무기는 미국과 견줄 만한 것들을 생산하지만, 대중의 삶에 필요한 제품을 생산하는 데는 인색했다.

이것은 서방 자본주의와 다른 형태이긴 하지만 자본 축적에 노동자들의 삶을 종속시킨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생산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사회가 이렇게 운영되지 않는 것은 오늘날 부의 생산을 통제하고 소유한 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온 힘을 다해 저항하기 때문이다. 체제의 부를 생산하는 노동계급의 대규모 투쟁만이 이윤을 위한 생산 체제를 끝장내고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하는 체제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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