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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남북관계는 어디서 비롯했는가

최근 남북관계는 평화 염원 대중의 바람과 달리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책임 공방, 금강산 관광 중단과 남한 소유 부동산에 대한 북한 당국의 몰수·동결 조처, 상호 비방 심화 등 긴장과 대결 국면의 연속이다.

한중관계 마찰도 무릅쓰며 북풍을 조장하는 이명박 정부 통일부 장관 현인택(우)이 주한 중국대사(좌)를 만나 김정일 방중 관련 항의를 했다. ⓒ사진 제공 통일뉴스

올해 초만 해도 연내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거론됐던 터라 상황이 일변한 듯한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올해 초조차 남북관계가 근본에서 개선됐던 것은 아니었다.

올해 초 북미 대화 국면이 도래하는 듯하자, 북한은 남한 당국에 대한 태도를 조금씩 누그러뜨렸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한편에선 정상회담 가능성을 흘리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대북 강경책을 버리지 않았다. 대북 지원도 북핵 문제와 연계하겠다고 고수했고, 금강산 관광 사업 재개도 거부했다.

이처럼 당시에도 남북관계는 불안정했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와 우파들이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공격 때문이라고 몰아가면서, 남북관계는 적대적 분위기가 더 심해졌다.

이명박 정부 들어 계속되는 남북관계의 불안정과 긴장 강화는 경제 위기가 낳은 정치적 양극화 심화와 관계있다.

한편에선 지배자들이 경제 위기의 책임을 필사적으로 노동자·서민에게 전가하려고 결속을 도모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선 고통전가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대중의 불만은 비록 더디긴 하지만 노동자 투쟁의 활성화로 나타나고 있다. 여당이 지방선거에서 패배하고 정권이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총체적 위기로 발전할지도 모를 상황에서, 정권은 ‘북한 위협’이라는 냉전적 카드를 내밀어 우파들의 결속을 꾀하고 정권과 체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위축시키려 하는 것이다.

불안정

남북관계 악화는 이런 국내적 요인뿐 아니라, 더 큰 그림에서 보자면 북미관계 불안정과도 관련돼 있다.

지난해 말 보즈워스 방북 이후 북미 대화 국면이 조성되는 듯했지만, 그 이후에도 미국은 대화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미국은 평화협정 체결 논의는 북한의 핵폐기 후에나 가능하다든가, 북한이 먼저 6자회담에 복귀해야 제재 해제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든가 하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시간을 끌었다.

미국에게는 여전히 경제 위기 대처와 강대국 간 경쟁 심화에 따른 지정학적 경쟁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승기를 잡고 이란을 효과적으로 압박하는 것이 사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2차 핵 실험 등 때문에 일단 북한 문제를 봉합하려고 나섰지만 북미관계를 실질적으로 개선할 생각이 애당초 없었던 것이다.

또한 세계경제 위기가 지속되면서 지난해 말부터 무역분쟁, 위안화 절상 문제, 대만에 대한 미국의 무기 수출 문제 등을 둘러싸고 미중 간 갈등이 고조돼 온 점도 올해 초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던 배경 중 하나인 듯하다.

한편 올해 미국은 그동안 약화됐던 자신의 핵 통제력을 복원하고자 4월 핵정상회의와 5월 NPT 평가회의를 활용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그에 앞서 작성한 핵태세보고서에서 이란과 북한이 미국의 핵 통제에 따르지 않는다며 핵선제공격 대상에 포함시켜 압박을 강화했다. ‘핵 없는 세계’ 구상을 오바마 자신이 쓰레기통에 처박는 순간이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는 “미국은 …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9·19 공동성명을 위반한 것이기도 했다. 당연히 북한은 오바마가 부시와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고 반발했다.

이런 북미관계의 불안정이 이명박 정부가 국내 정치적 이유로 대북 강경책을 강화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했다.

천안한 침몰 사고를 두고도 미국은 오락가락했다. 이명박 정부가 군사적 행동에 나서 동아시아의 불안정을 심화시키는 것을 반대하면서도, ‘천안함 사고 진상 규명 없이는 6자회담도 없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지지했다.

한편 남한 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 때문에 관계 개선이 당분간 어려워진데다 북미 대화도 순조롭지 않자, 북한은 화폐 개혁 후에도 개선되지 않는 경제 상황을 타개하고자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김정일은 북중 경제협력, 6자회담 재개 등을 논의하고자 5월 초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중국 정부는 김정일 방중 사흘 전에 이명박과 정상회담을 하면서도 남한 정부에 그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았는데, 중국의 이런 행동에는 최근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문제를 이용해 한반도 주변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에 대한 불만이 담겨 있는 듯하다. 남한 정부는 중국 대사를 불러 항의했지만, 이는 남한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자초한 일이었다.

현재까지 중국은 미국의 동아시아 개입을 약화시키려고 한반도 주변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점진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북한 문제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이 못마땅해 처음에는 김정일 방중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던 듯하지만, 김정일 방중이 실제 추진되자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북중 정상회담 결과, 6자회담이 재개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지난 몇 개월간 한반도 정세가 매우 어지러웠던 데에서도 보듯이, 6자회담이 재개된다 해도 유화 국면과 갈등 국면이 반복적으로 교차하게 될 것이다.

경제 위기가 지속될수록 동아시아에서 패권 다툼을 일삼는 강대국들의 각축전은 더욱 심화해 한반도 주변을 계속해서 불안정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문제를 더 꼬이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