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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학생행진의 지방선거 입장 비판:
지방선거에서 좌파에게 필요한 전술은 무엇인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학생행진(이하 행진)이 “6.2 지방선거를 바라보며”라는 글을 발표했다. 여기에서 행진은 ‘북풍’과 ‘노풍’으로 얼룩진 선거판의 “이전투구 속에서 민중들의 생존의 권리와 평화의 권리는 온데 간데 없다”고 말한다.

이 상황에서 민주노동당 등 진보진영의 다수가 민주대연합에 매달리면서 “기층 대중조직에 소속된 이들은 굉장한 혼란을 겪게”됐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지금은 “빈곤과 궁핍에 맞서는 노동자 민중의 아래로부터 투쟁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했다.

행진의 주장처럼 지금은 지배자들의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서는 아래로부터 투쟁과 단결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런 대중 투쟁을 건설하기 위해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활동가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투쟁에 나설 수 있도록 대중의 자신감을 고취해야 하고, 그러려면 대중 속에서 끈기있게 선전·선동하고 조직화를 해야 한다.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만일 당신이 ‘대중’에게 도움을 주고 ‘대중’의 동조와 공감과 지지를 얻고자 한다면 … 반드시 대중이 있는 곳에서 활동해야만 한다. … 참을성 있고, 끈덕지고 끈기 있게 선전과 선동을 하기 위해 어떠한 희생도 치를 수 있어야 하며, 어떠한 난관도 극복할 수 있어야만 한다”(《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고 강조한 바 있다.

이렇게 하려면 대중의 정서를 이해하고, 그에 따라 대중과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한 구체적 전술을 채택해야 한다. 그런데 행진은 이에 대한 잘못된 답을 내놓고 있다.

현재 지방선거를 앞두고 노동자 대중의 압도적 정서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과 분노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를 패배시키기 위해 썩 미덥진 않더라도 민주당과도 연대해야 한다는 ‘차악론’이 존재한다. 다른 한편 지난 10년간 민주당의 배신 때문에 고통받은 노동자들은 이명박에 맞서 민주당이 아니라 진보정당을 지지하려고 한다.

이 상황에서 사회 변혁을 추구하는 활동가들은 우선, 이명박에 맞서 또 다른 자본가 정당이 아니라 노동자 진보정당을 지지하겠다는 노동자들과 연대해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후보들에게 투표해야 한다.(두 진보 정당이 경합하는 선거구의 경우에는 둘 중 좀 더 좌파적인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

그런데 행진은 진보정당과 후보에 대한 지지를 말하지 않는다. 행진이 진보 후보에 대한 투표를 호소하지 않은 이유는 두가지다. 하나는 “반MB연대에 대한 환상” 때문에 “노동자·민중이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차이 자체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물론 민주노동당이 민주당과 연합에 매달리면서 차별성을 흐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진보신당도 일관되게 민주대연합을 반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대중의 눈에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차이가 사라졌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다. 민주당은 불과 몇 년 전까지 집권해서 이라크 파병과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였고 진보정당은 그것에 반대해서 싸웠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진보정당은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공약의 차이도 있다. 노회찬·심상정 등 진보 후보들은 주요 정책과 공약에서 민주당보다 더 급진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무엇보다 진보정당과 민주당은 그 계급적 기반에서 확연한 차이가 난다. 한나라당보다는 적다 하더라도 민주당은 기업주들에게서 정치자금을 받는 자본가 정당이다. 반면에 진보정당은 민주노총 노동자들을 주된 기반으로 한다.

행진은 또 진보정당이 분열해 있기 때문에 “진보 후보 지지운동을 벌이자는 주장은 정치적 올바름을 떠나 어떠한 정치적 ‘효과’도 내지 못하는 것이기에 한계적”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진보정당이 분열한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진보대연합이 실패했다고 해서 진보 후보를 지지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진보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의 정치적 효과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진보 후보에게 던지는 표는 이명박 정부에 반대해 민주당이 아닌 진보적 대안을 지지하는 왼쪽의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이것은 이명박에 맞서며 민주당에도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노동자 투쟁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예컨대 지난해 울산 재보선에서 조승수 의원의 당선과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선거 승리는 그런 효과를 나타냈다. 따라서 행진이 진보 후보에 대한 지지를 말하지 않는 것은 매우 아쉽다.

행진은 “일각에서는 … 행진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나 선거라는 국면 자체에 대한 무관심으로 일관해 온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물론 행진이 원칙적으로 자본주의에서 모든 선거 개입을 거부하는 초좌파적 태도인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행진은 이번 뿐 아니라 2007년 대선 때도 “일체의 환상을 버려야 한다”며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를 분명히 지지하지 않았다. 한나라당 이명박과 민주당 정동영에 맞서 노동자 정당 후보를 지지할 필요가 있었는데 말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행진은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진보정당 지지 호소를 회피하고 있다. 비록 개혁주의적이지만 노동자 대중에 기반한 진보정당의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종파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행진은 “전교조 보위의 측면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교육감 선거에서는 … 후보 지지 활동 또한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이처럼 진보 교육감 당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왜 지방선거에서는 진보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것일까? 행진의 선거 입장은 일관된 기준이 없는 듯하다.

대중의 정치적 경험

한편, 이번 지방선거에서 진보 후보가 출마하지 않은 곳에서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그런 곳에서 개혁적 이미지의 민주당 후보가 출마해 있고, 노동자 대중이 한나라당의 승리를 막기 위해 그 후보에게 투표하려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행진은 “‘진보 후보가 없는 지역에서는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도 할 수 있다’는 주장”을 비판한다. 물론 한나라당에 반대해서 무조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계급적 기반이나 정책에서 근본적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노동자들이 민주당이 싫지만 한나라당의 집권 연장을 저지하기 위해 민주당에게 투표해야 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진보 후보가 출마하지 않아 마땅한 대안이 없는 선거구에서는 진보적 노동자들이 개혁적으로 여기는 민주당/참여당 후보에게 비판적 투표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행진은 이런 입장이 “대중운동의 이념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행진의 이런 태도야 말로 대중운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선거에서 누구를 찍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원칙이나 이념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그런 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사회주의적 원칙을 가지지 않은 어떤 후보도 지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에서 우리의 입장은 전술적인 것이다. 누구에게 투표할지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노동자들의 정서이고 그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다.

개혁적으로 보이는 민주당/참여당 후보에게 투표해서라도 한나라당을 심판하고 싶어하는 노동자들과도 미래를 위해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타협을 거부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레닌도 “볼셰비즘의 온 역사가 유연한 대응, 협조, 부르주아 정당을 포함한 다른 정당들과의 타협의 사례로 가득차 있음”을 말한 바 있다.

부르주아 개혁주의 정당인 민주당의 후보는 당선하더라도 결국 한나라당과 다르지 않는 정책을 펼치게 될 것이다. 이런 타협은 그럴 때 민주대연합을 비판하며 진보대연합이 필요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레닌도 지적했듯 “변화는 대중들의 정치적 경험으로써 창출되는 것이지 선전만으로 생겨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아래로부터 대중투쟁을 건설하려면 추상적으로 “대중운동의 이념”만 선전해서는 안 된다. 종파적 태도로 노동자 대중의 정서와 어긋나서도 안 된다. 대중의 모순된 의식을 파악하고 면밀하게 개입하기 위한 구체적 전술이 있어야 한다.

일부 사람들은 선전을 통해 의식이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더 광범한 사람들의 의식은 경험과 투쟁을 통해 바뀐다. 대중운동을 건설하려는 좌파라면 노동자 대중의 정서를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하고 연대하면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