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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감과 교육 개혁을 위한 투쟁

지난 지방선거에서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한 이후 교육 혁신에 대한 대중의 기대가 높다. 그런데 일부 진보교육감들이 취임하자마자 보인 행보는 적잖은 사람들에게 우려와 실망을 자아내고 있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과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7월 13~14일 교과부가 주관하는 일제고사 시행을 앞두고 보인 우경적 행보는 진보진영에서 두 교육감의 정체성 논란을 낳고 있다.

“진보교육감은 누가 왜 뽑아주었는지 기억해야 한다” 일제고사가 실시된 7월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 시민마당에서는 ‘일제고사·교원평가 경쟁 교육 폐지! 협력교육 실현! 교육주체 결의대회’가 열렸다.

특히 김 교육감은 일제고사 거부 교사들을 징계하겠다고 위협했고, 체험학습을 금지하고 이에 참가한 학생들을 무단결석 처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김상곤 교육감은 “학교장 중심으로 충분한 의견을 수렴한 다음에 교육적 차원에서 알맞은 대응 조치를 취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학교별로 자율적으로 대응하라는 것이다. 김 교육감에게 투표한 수많은 교사·학부모 들의 무한 경쟁 교육 반대 열망을 거의 충족시키지 못하는 실망스런 대응이다.

곽노현 교육감의 태도는 김상곤 교육감보다는 좀 나았지만, 그 역시 우려스러웠다. 비록 곽 교육감이 일제고사 전날 대체학습을 허용하는 공문을 학교에 내려보내긴 했지만, 애초에 선택권 보장이 선거 공약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미적거림은 실망과 우려(심지어 분노까지)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곽 교육감은 취임 이후 교과부가 주관하는 일제고사 수용 의사를 비치면서 선택권 문제에 침묵을 지키다 12일 오전 전교조 서울지부의 공개적 비판이 있고서야 대체 프로그램 마련을 지시하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막판에라도 이런 지침을 내린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일제고사 전날 오후에야 공문을 내려 학교가 대체학습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학부모와 학생 들에게 이를 알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서울시 교육청은 다음날 “대체 프로그램 지침을 시험 선택권 부여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공문을 발송해 또 한차례 동요를 드러냈다.)

곽노현의 당선으로 일제고사 반대 투쟁 활성화에 내심 큰 기대를 건 전교조 교사들과 진보적 학부모들에게 곽 교육감은 당혹감을 안겨주었고 운동 건설에 혼란을 초래했다. 일제고사 반대 여론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시점에 말이다.

곽 교육감의 행보에 우려스러운 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해직교사 복직에 적극 나서겠다고 한 선거 때 약속과 달리, 2008년 일제고사 거부로 해직된 전교조 교사 7명이 하루빨리 복직하는 데 필요한 조처를 우파 눈치를 보며 미루고 있다.

이들 해직 교사들은 지난해 말 서울시 교육청을 상대로 낸 해임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당시 서울시교육청의 항소로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은 당선 직후 해당 검사장에게 항소 취하를 신청했는데, 곽 교육감은 전교조 서울지부 등의 거듭된 요청을 무시하고 아직까지 항소를 취하하지 않고 있다.

국가 탄압

김상곤·곽노현 두 교육감의 유약함은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전교조에 대한 거센 공격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두 교육감은 전교조와 거리 두기(김상곤 교육감이 더 노골적이었다)를 해 전투적 교사들과 좌파들의 반발을 샀다.

두 교육감이 보이는 우경적 행보의 근저에는 국가 탄압이라는 실질적 위협이 있다. 일제고사를 강행하는 교과부가 징계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교육감들이 교과부 지침을 거슬러 일제고사 선택권을 보장하면 최악의 경우 직무 정지까지 감수해야 한다.

국가 기구(예컨대, 사법부)를 이용한 우파의 공격은 실질적 위협이다. 김상곤 교육감은 시국선언 교사의 징계를 유보한 혐의(직무유기)로 기소돼 오는 27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이런 국가 탄압 때문에 김상곤·곽노현 교육감의 우경화 또는 갈팡질팡 행보를 파국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후퇴로 용인하는 정서가 진보진영 내에 상당하다.

물론 진보진영은 국가와 우파 언론 등의 김상곤 교육감 죽이기에 맞서 김 교육감을 분명하게 방어해야 한다. 하지만 이 방어는 김상곤 교육감에 대한 무비판적 방어가 아니라 비판적 방어가 돼야 한다.

김상곤 교육감(과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무비판적 추수는 사람들의 의식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 운동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국가 탄압에 실용주의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파면·해임 등 엄청난 개인적 희생을 치르면서도 운동의 대의를 지키고자 꿋꿋하게 투쟁해 온 많은 전교조 교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 무엇보다, 기회주의적 대처가 마치 탄압에 맞서는 효과적인 방책인 양 대중을 호도할 수 있다.

진보적 인사가 취임 뒤 우파 눈치를 보며 온건해지는 것은 국가 탄압을 막기는커녕 도리어 지지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우파의 힘만 키워준다.

개혁의 동력

국가 탄압의 위협뿐 아니라 민주당에 의존하는 것도 문제를 낳고 있다.

교육 개혁에 필요한 예산을 따내려면 민주당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는 생각에 민주당에 의존하는 게 두 교육감들의 온건화를 부추기는 듯하다. 민주대연합 노선을 추구하는 진보진영 상당수가 이런 두 교육감을 추수하고 있다.

그러나 대중의 변화 열망을 정권 재탈환의 불쏘시개로만 활용하려는 민주당에 의존해서는 제대로 된 교육 혁신을 이룰 수 없다.

국가 탄압과 보수적 교육 관료들의 저항, 우파들의 반발을 뚫고 의미 있는 개혁들을 이루려면 진보교육감 탄생의 원동력인 진보적 대중의 힘을 결집시켜야 한다.

올바르게도 김승환 전북 교육감과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이 그런 구실을 하고 있다.

두 교육감은 교과부의 공공연한 협박 속에서도 일제고사 강행을 비판하며 체험학습 허용이나 대체 프로그램 마련 지시 등 응시 선택권을 보장했다. 김승환 교육감은 현행 교원평가제를 폐지하는 교육 규칙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대중투쟁이 개혁의 동력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르주아 여론과 명망을 중시하면 우파의 위협 앞에 쉽게 위축되기 마련이다. 김상곤·곽노현 교육감이 투쟁에 찬물을 끼얹거나 투쟁을 고무할 수 있는 언행을 극도로 삼가면서 언제든 후퇴할 조짐을 보이는 까닭이다.

서울과 경기 같은 핵심 지역 교육감들의 동요는 우파의 공세를 강화하고 진보진영에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혼란에 따른 악영향을 최소화하고 나아가 그것을 극복하려면 진보진영의 정치적 독립성이 필수적이다.

진보운동 출신 교육감이 올바른 태도를 취할 때는 지지하고, 불필요하거나 배신적 타협을 할 때는 주저 없이, 공개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전교조 서울지부의 공개적 비판은 곽노현 교육감의 우경적 행보에 제동을 거는 데 크게 일조했다.

앞으로 진보운동 출신 교육감들이 지그재그 행보를 반복하고 그 결과 우파의 공세가 강화될지라도 낙담할 필요는 없다. 이명박 정부는 벌써부터 레임덕을 겪고 있고 우파들은 분열하고 있다. 이런 조건은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투쟁에 나서도록 고무할 수 있다.

진보운동 출신 교육감들이 급진적 목소리를 내고 실질적 개혁을 위한 추진력의 일부가 되기를 바라지만, 사회를 바꾸는 힘은 결국 대중운동의 힘에 달려 있다. 보수파들의 반발을 뚫고 의미 있는 개혁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대중 자신의 행동이 중요하다.

좌파는 지금과는 다른 학교, 다른 교육에 대한 대중의 열망에 부응해 개혁주의자들과 공동 투쟁을 벌이는 동시에, 교육 문제를 둘러싼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선명한 좌파적 입장을 제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