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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무너지는 환상》:
자유 자본주의의 쌍둥이 위기

2008년 8월 초 러시아-그루지야 전쟁과 9월 15일 리먼브러더스 파산은 “시대의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역사적 전환점”을 계기로 세계의 정치·경제 질서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마르크스주의 시각에서 분석하고 전망하는 것이 이 책의 주제다.

1부 “무너진 금융”에서는 금융·경제 위기의 과정과 원인을 분석한다. “위기가 금융권에서 시작됐다고 해서 원인이 꼭 그곳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태의 발단이 된 금융 붕괴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금융화의 세 가지 의미를 살펴본다.

《무너지는 환상》 알렉스 캘리니코스. 책갈피, 1만 3천 원, 240쪽

금융화는 금융 부문의 자율성 확대, 금융기관과 금융상품의 증대, 다양한 경제주체의 금융시장 진입으로 봐야 한다.

단, 캘리니코스는 “금융, 특히 은행이 경제를 지배”하는 것이 금융화라는 일부 견해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캘리니코스는 “생산의 동역학과 금융 현상의 관계를 통합적으로 파악하는” 마르크스와 하비의 관점을 바탕으로, 현재의 “경제 위기가 … 단지 금융시장의 고장이 아니라 자본축적 과정 전체에서 작동하는 심각한 모순을 밝히 보여 준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이해하려면 세 가지 차원을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첫째는 장기적인 과잉 축적과 수익성의 위기다.

1949~1973년의 전후 대호황기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예외적인 시기였고, 이는 미국과 옛 소련의 막대한 군비 지출로 자본의 유기적 구성 상승 경향이 상쇄돼 이윤율이 높게 유지된 덕분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말부터 이윤율이 하락하기 시작했고, 1973년의 경제 위기 이후 세계 자본주의는 오랫동안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1973년 이후를 위기의 시기로 설명한다고 해서 상시적 정체의 시기로 본다는 말은 아니다.” 위기가 지속되는 와중에도 노동자 착취율 증가와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이윤율이 회복되고 경제가 성장하는 시기가 드문드문 있었다.

“역사적 전환점”

둘째는 만성적으로 불안정하고 구조적으로 불균형한 세계 금융 시스템이다.

전후 브레턴우즈 협정에 따라 국민국가들이 국제 자본 이동을 규제하던 1945~1971년에는 금융 위기가 38차례 일어난 반면, 1971년 미국의 금태환 중단으로 국제 금융 제도가 변동환율체제로 전환한 이후 1973~1997년에는 금융 위기가 무려 1백39차례나 일어났다.

또, 지금의 불균형 상황, 즉 “미국이 금 태환이 되지 않는 달러를 발행할 수 있는 권한을 이용해서 만성적 국제수지 적자를 메우는 상황”은 “어찌 보면 미국의 헤게모니가 지속되는 것을 보여 주는 지표 같고, 또 어찌 보면 이 헤게모니가 이제는 얼마나 위태로워졌는지를 보여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셋째는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신용 거품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른바 ‘주식시장 케인스주의’로 재화·서비스 수요를 자극하는 ‘자산 효과’가 단적인 예다. 그리고 2000년 봄에 닷컴 거품이 꺼지자 불황을 막기 위해 금리가 거의 제로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거품이 주식시장에서 주택시장으로 이전됐다.

이런 ‘상시 부채 경제’는 2004년 6월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 조처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차입자들이 압박을 받아 주택 가격이 폭락하면서 결국 붕괴하고 말았다.

캘리니코스는 현재 경제 위기의 두 가지 중요한 측면을 지적한다. 하나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다. “중국 노동자들의 낮은 소비는 중국 자본의 높은 이윤과 맞물려” 있고, 이에 따른 중국의 ‘저축 과잉’이 미국의 막대한 국제수지 적자를 메우는 재원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가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경제 위기의 타격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미봉책일 뿐 체제의 근본적 모순을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다음과 같은 구조적 딜레마에 빠져 있다.

“주요 국가들이 시장에서 비효율적인 자본들이 일소되도록 자유방임한다면 그 결과는 장기 불황일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나서서 자본의 대대적 가치 저하를 막는다면 과잉 축적과 수익성의 장기적 위기가 지속될 것이다.”

물론 이런 딜레마가 있다고 해서 경기 회복이 결코 없을 것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경기부양책의 효과와 기업의 재고 비축 필요성 때문에 경제성장은 재개될 것이다. 그러나 그 회복의 배후에는 심각하고 해결되지 않은 구조적 문제들이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한편, 이번 세계 경제·금융 위기는 지난 20년 동안 유행하던 신화, 즉 세계화의 효과로 국민국가가 쇠퇴하고 약해졌다는 신화를 깨뜨렸다. 금융권과 산업계를 구제하러 나선 것이 바로 국가였다. 이렇듯 “이번 위기에서 나타난 탈세계화 현상들은 국가와 자본 간의 세력 관계 변화를 보여 준다.”

국민국가가 자본보다 강력해지는 것이 전반적 추세다. 물론 “아직까지 세계 경제·금융 위기에 대한 대응은 1930년대 국가자본주의만큼 멀리 나아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방향은 똑같다.”

지정학적 갈등

그리고 2008년은 국가 간의 지정학적 갈등 양상에 의미심장한 변화가 일어난 해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미국의 후원을 받는 그루지야를 군사적으로 패퇴시킴으로써, 냉전 종식 이후 나토를 동쪽으로 확대해 러시아를 봉쇄·압박하려는 미국의 전략에 좌절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그루지야 전쟁을 “새로운 냉전의 시작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미국과 러시아의 경제력·군사력 격차가 냉전 때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냉전 종식으로 미국의 초제국주의가 탄생한 것이 아니라 더 치열한 지정학적 경쟁과 세계적 불안정의 시대가 열렸다. 오늘날 미국은 여전히 세계경제의 핵심이지만 경쟁자들의 도전을 받고 있다. 중국 경제는 영국과 독일을 따라잡았고 머지않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세계경제의 중심축으로서 미국을 대체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려면 “지난 30년과 같은 엄청난 성장률을 계속 유지해야 할 뿐 아니라 내수를 대폭 늘려서 다른 나라들을 위한 거대한 수출 시장 구실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수출 주도형 모델”은 단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 자본주의에 깊이 뿌리박힌, 그래서 바꾸기 어려운 계급 관계와 이해관계의 실타래에 연결돼 있다.”

따라서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미국이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2위 국가와의 격차도 상당한)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 지배자들은 금융 시스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중추적 지위를 계속 무기로 활용할 것이다. 그리고 오바마를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자본으로 이용해서 부시 집권기의 재앙들을 수습하고 미국의 세계적 지위를 새롭게 구축하려 할 것이다.

결론 부분에서 캘리니코스는 “2008~ 2009년의 국가 개입은 경제 파탄을 막기 위한 비상 조처였을 뿐 경제 관계의 변화를 예고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국가는 급한 불 끄는 소방수 구실만 하고 퇴장해야 한다는 관점 때문에, 비교적 과감하다는 정부들조차 “거시적 케인스주의와 미시적 신자유주의를 혼합한 듯한 정책”을 구사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특정 형태의 자본주의의 실패가 아니다. “2007~2009년에 재앙을 몰고 온 금융 부문의 과잉 팽창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를 괴롭혀 온 훨씬 더 뿌리 깊고 오래된 위기, 즉 과잉 축적 위기와 이윤율 저하 위기가 다른 형태로 전이된 것이었다. 한마디로 이번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위기다.”

현재의 금융·경제 위기의 본질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은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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