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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에릭 드루커의 대홍수!》:
미국 자본주의에 보내는 만화 경고장

《대홍수!》는 미국의 급진적인 화가 에릭 드루커가 1992년 미국에서 출간한 장편만화로 그 해 미국 도서상 수상과 〈뉴욕 타임스〉 ‘주목할 만한 책’ 선정 등 많은 호평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그가 오랫동안 살아 온 뉴욕을 배경으로 도시에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과 사회의 문제를 아무런 대사와 지문 없이 오직 그림만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대홍수!》는 단편만화 세 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세 편 모두 서로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지만 앞서 말한 주제로 연결돼 있다.

《에릭 드루커의 대홍수!》에릭 드루커, 다른, 1만 4천 원, 1백99쪽

첫째 이야기 ‘집’은 공장 폐쇄로 실업자가 된 노동자가 고통스럽게 부랑자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가슴 아프게 그렸다. 작가는 이를 통해 세상에서 쫓겨난 사람들 개인이 아니라 경제 사회적 구조가 문제라고 말한다.

이어지는 둘째 이야기 ‘L’은 지하철을 탄 어느 한 사나이의 꿈 이야기를 다룬다. 사나이는 꿈속에서 원시 부족과 춤을 추고 노래하며 사랑을 나눈다. 어둠은 나무로 변하고 사람들은 새로 변한다. 그러나 경찰견이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잠을 깬 현실은 그와 반대다. 지하철 개찰구는 동물원과 같은 감옥창살처럼 보인다. 이러한 환상은 억눌린 도시인들이 음악, 동료, 예술에 목말라 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마지막 이야기 ‘대홍수’는 좀더 방대하고 환상적이다. 가난한 주인공 화가는 빗물이 새는 화실에서 자신을 주인공 삼아 그가 느끼는 이 도시의 슬픔과 소외, 폭력을 그린다. 이야기 말미에 소외된 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군·경찰에 맞서 온갖 악기로 저항하는 장면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이 장면은 작가가 실제 1988년 톰킨스스퀘어 공원에서 노숙자와 무단거주자들을 몰아내려 한 경찰 폭력을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라 더욱 사실적이고 강렬하게 느껴진다.

이야기 끝은 대홍수로 종말을 향해 가지만 그 결말은 낙관적이고 희망적으로 그려진다. 이는 작가가 시민들의 연대 속에서 희망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방대한 주제를 대사와 지문 없이 그림만으로 완성했다는 것에 놀라움을 느낀다. 장면 하나하나가 이야기의 흐름을 깨지 않으면서도 각 장면을 하나의 독립적인 작품으로 느껴지게 하는 작가의 예술성과 주제를 시각화하는 능력에 감탄할 뿐이다.

전체적으로 작가가 바라보는 미국의 모습 즉, 폭력과 억압, 뒤틀린 가치관 등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 설정이 매우 훌륭하다.

스크래치보드 위에 잉크를 칠하고 날카로운 도구로 긁어내는 방법으로 완성된 그림은 목판화와 같은 거친 느낌과 섬세함이 어우러져 있다. 흑백의 색상은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게 하고 때로 함께 사용된 푸른색은 작품을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장면 하나하나 주의 깊게 볼 만한 멋진 만화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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