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학생 사회주의자가 영국 학생 투쟁을 말한다:
“학생 투쟁이 노동자 행동을 자극할 수 있다”
〈노동자 연대〉 구독
지난해 말 서섹스대학 점거 투쟁에 참여했던 소냐 코퀠린이 최근 영국 학생 투쟁의 의미와 가능성을 〈레프트21〉에 말한다. 코퀠린은 현재 교환 학생 자격으로 한국에 와 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 영국에서 학생 5만 명이 [11월 3일에 ] 시위를 벌이고 보수당사를 점거했다는 뉴스를 봤을 때 처음에는 ‘설마’ 했습니다. 영국에서 그런 일이 과연 가능할까 의심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번 투쟁은 일부 언론이 말하듯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현 집권당인 보수당은 사실 과반 득표도 못했는데 집권했습니다. 꽤 많은 사람들은 신자유주의에 투항한 노동당을 심판하고 싶어했지만 보수당은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자유민주당을 찍었죠. 지금 학생들은 자민당에 크게 화가 나 한때 그런 생각을 한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보수당-자유민주당 연정은 지금 영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공부문 긴축 정책을 추진합니다. 긴축 규모는 대처 정부 때보다 더 큽니다.
현 정부는 대처 때와 달리 거의 모든 공공부문 예산을 삭감하는, 모든 부문을 한꺼번에 공격하는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대처 정부는 현 정부보다는 똑똑했는지 각개격파 전략을 폈죠.
현 정부는 긴축이 ‘국익’을 위한 것이고 우리가 모두 한배를 탄 운명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산 삭감의 진짜 대상은 부자라고 거짓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법인세는 대처 정부 때보다 낮습니다. 반대로 부가가치세는 18퍼센트로 높아졌고, 연금 수령 연령도 상향 조정됐습니다. 또, 이 정부는 교육 부문을 집중 공격해 앞으로 4년 동안 교육 예산이 무려 40퍼센트가 줄어들 것입니다. 대학 지원금도 25퍼센트나 줄어들 것입니다.
이런 공격이 발표됐을 때 사람들의 첫 반응은 프랑스와 달랐습니다.
프랑스에서는 퇴직 연령 조정 발표가 나자마자 총파업 투쟁이 시작됐지요. 영국 사람들은 최근에 이런 문제로 투쟁한 경험이 없었습니다.
또, 영국에서 파업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처 정부가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제한하는 법들을 만든 것도 한 요인입니다. 예컨대, 최근 영국항공 노동자들이 파업했을 때 정부는 법적 수단을 동원해 파업을 강제 중단시켰습니다. 대중의 반격을 가로막는 온갖 법적 장치들이 있어요.
자신감 문제도 있었습니다. 옛 세대들은 1980년대 광원 파업의 패배를 여전히 기억합니다. 많은 이가 ‘강력했던 광원노조마저 패했는데,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 하고 말합니다.
무보수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온갖 황당한 내용을 담은 이번 긴축안에 영향을 받고 있고 이것이 반격을 조직할 기반을 조성했습니다. 예컨대, 앞으로는 사회복지수당을 받으려면 무보수로 일을 해야 합니다.
정부는 아주 오만하게도 ‘사람들에게 일하는 법을 가르치겠다’고 말하면서 이런 정책을 정당화합니다.
그러나 정부의 긴축정책 때문에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고 사람들은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습니다. 이번 긴축은 역사상 최대 규모이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입니다.
교육 부문 공격은 지난해부터 시작됐습니다. 정부는 표적을 미리 정하고 공격했습니다. 그들은 경영학·경제학 등 ‘돈이 되는’ 분야를 건드릴 생각이 없습니다.
일차 공격 대상은 비판적 사고를 약간이라도 고취하는 분야였습니다. 예컨대, 그들은 학생 수가 많지 않고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영국 최고의 철학과로 손꼽히는 런던 미들섹스대학 철학과를 폐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미들섹스대학 철학과에는 사회 비판적 철학자들 이 포진해 있습니다. 정부는 사회 모순에 문제 제기하는 과를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인문학뿐 아니라 환경 관련 학과도 폐쇄했습니다. 저들은 입으로는 환경 보존을 외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환경 관련 학과의 문을 닫았습니다.
이렇게 지난해부터 시작된 교육 부문 공격이 이제 영국 교육기관 전체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1990년대 이래 영국 학생운동은 대규모 투쟁을 벌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정부는 교육 예산을 과감하게 삭감할 때 이 점을 고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육 문제로만 한정하지 않고 본다면, 학생운동은 2008년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 반대 투쟁부터 크게 성장해 왔습니다. 당시 학생들은 큰 시위를 벌였고 대학 30여 곳을 점거했습니다.
이런 대규모 점거는 최근 영국 학생운동에서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이 투쟁으로 영국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사회적 파장력이 큰 투쟁을 벌일 수 있는 잠재력이 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학생들은 2009년에도 이스라엘 상품 불매 운동을 하는 등 투쟁을 이어갔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학생들은 훨씬 투쟁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말에 첫 예산 삭감이 발표되자 가자 연대 투쟁을 벌인 경험이 있던 대학들에서 반격이 시작됐습니다.
제가 있는 서섹스대학을 포함해 일부 대학에서는 점거가 있었습니다. 물론, 점거 투쟁에 참가한 학생들의 숫자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작은 투쟁을 통해 더 큰 운동을 건설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습니다.
별로 정치적이지 않았던 학생들도 무언가 행동을 보여 줘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생각에 영국사회주의노동자당(SWP) 학생 회원들을 포함해 학생 활동가들이 일상적으로 벌인 노력이 이런 정서를 운동으로 연결하는 데서 결정적 구실을 했습니다. 따라서 대규모 투쟁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말하는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닙니다.
활동가들은 끈질기게 운동을 건설했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날마다 사람들과 토론하고 그들의 불만을 행동으로 연결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있는 대학에서 우리는 매주 다양한 문제를 놓고 토론회를 열면서 온갖 문제에 불만을 가진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곳의 투쟁에 관심을 기울이고 서로 연대를 건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에 점거 투쟁에 들어갔을 때 사방에서 연대 성명이 쇄도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곳,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걸 보고 고려대에 오고 싶어졌습니다.
이런 활동이 쌓여 1968년 이래 영국에서 가장 큰 학생 시위가 벌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갑작스레 큰 투쟁이 폭발한 데는 직접적 계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등록금을 9천 파운드로 대폭 상향 조정하겠다는 정부의 발표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학생들이 자민당에 느낀 배신감이었습니다. 자민당은 선거 운동 기간에 집권하면 결코 등록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민당이 보수당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하자 속았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 두 가지가 투쟁을 폭발시키는 방아쇠 구실을 했습니다.
학생들과 강사들이 거리로 나섰고, 그중 일부는 보수당사를 점거했습니다. 11월 24일에는 다양한 대학 구성원들이 참가하는 행동이 벌어질 것입니다. 학생들의 전투성이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치면서 심지어 혁명가라 할 수 없는 녹색당조차 거리 시위에서 ‘계급 전쟁’을 외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노동자들의 연대
제 생각에 투쟁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정부의 공격 규모가 워낙 크고 공격 범위도 넓기 때문입니다.
현재 학생운동의 중요성은 단지 당면 요구를 성취하느냐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이들의 행동이 공격받는 다른 부문의 행동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노동자들의 행동을 자극할 가능성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투쟁을 벌이는 학생들이 그것을 의식적으로 조직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 점거 투쟁을 벌였을 때 우리는 학내에 있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함께 싸우자고 호소했습니다. 또, 우리 투쟁이 사회적 파장력을 가지려면 학내 노동자들뿐 아니라 지역 노조와 노동자들에게도 연대를 호소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학생과 교직원, 강사들의 투쟁들을 결합하기 위해 ‘교육투쟁네트워크’를 건설했습니다.
또, 우리는 학생들의 투쟁을 정부의 전반적인 긴축정책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이해하려 노력했습니다. 따라서 내 학교, 내 지역 투쟁뿐 아니라 전국적인 긴축 반대 투쟁의 일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사실, 학생들만으로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노동자들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노동자 연대를 건설하는 출발점은 강사들이었습니다.
강사들만 긴축정책에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환경미화 노동자, 경비, 도서관 사서들 등 학교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긴축의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같은 문제로 싸우는 다른 학교 학생과 노동자 들과도 연대하려 했습니다.
일부 학생들은 이런 움직임에 반대했습니다. 학생들은 학생 투쟁만 신경 쓰면 된다는 것이었죠.
그러나 학생들의 힘은 한계가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를 생산하는 사람은 노동자들이기 때문에 이들은 잠재적으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학생들이 노동자들에게 투쟁을 호소하는 것이 자기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와 주류 언론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학생들의 투쟁 정신이 다른 곳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소수 아나키스트들이 폭력을 부추긴다는 식으로 주장합니다.
그러나 무엇이 진정한 폭력입니까? 유리창 몇 장 깬 것과 엄청난 긴축으로 사람들의 미래를 파괴한 것 중 어느 것이 진정한 폭력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