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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끈질긴 싸움 끝에 복직하는 공무원연금관리공단 비정규직 노동자 성향아 씨:
“이제는 정규직 될 때까지 싸울 것입니다”

2007년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돼, 2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하게 됐다.

당시 나는 비정규직으로 4년 넘게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하 공단)에서 일하고 있었다. 공단은 나를 포함해 대상자 14명을 정규직의 일종인 별정직으로 전환할 예정이었다.

1년짜리 계약을 반복하는 고용불안에서 벗어나고, 각종 복지제도에서 배제되는 차별을 받지 않게 되고, 장기적인 삶을 계획하는 것이 가능해질 거라는 생각에 힘과 의욕이 생겨났다.

연대를 건설해 복직을 쟁취한 성향아 씨

그러나 정규직 전환에 따른 오리엔테이션에는 나를 뺀 13명만 참가할 수 있었다. 나는 인사과로 불려가 ‘민주노동당원’이라서 이번 전환에서 제외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직원의 정치활동 금지’ 규정이 그 근거라고 했다.

고대하던 정규직 전환은 고사하고, 마흔살 나이에 해고 위협을 느끼는 순간, 내 두 다리가 힘 없이 땅 속으로 꺼지는 듯한 공황상태를 겪었다.

하지만 나는 나처럼 민주노동당원이라는 이유로 계약 갱신을 거부당했다가 지방·중앙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라고 판결해 복직한 하남시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판결문을 들고 다니며 투쟁을 시작했다.

믿고 따르던 선배와 동료 들이 ‘생계가 우선이니 일단 탈당부터 하고, 조용히 지내면 설마 해고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며 탈당할 것을 권유했지만, 난 끝내 탈당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 당원 가입을 범죄 취급하는 상황에서, 탈당은 ‘죄인’ 혐의를 자인하는 꼴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탈당한 후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 예전처럼 동료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겠는가? 여가시간에 정치활동을 해 온 것이 누구에게 무슨 해를 끼쳤다고 해고라는 사형 선고를 받아야 하는가?’ 하고 생각했다.

얼마 후 지방·중앙노동위원회는 내가 부당하게 해고됐다고 판결했다.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는 ‘정치활동 금지’ 규정은 헌법과 정당법을 위배하니 법에 맞게 고치고, 나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공단에 권고했다.

그러나 공단은 터무니없게도 내게 1년짜리 계약직을 제시했고, 내가 거부하자 나를 바로 해고했다.

전체 직원들에게 ‘성향아는 공단의 계약요구를 거부하며 제 발로 걸어나갔다’ 하고 비난했다. 그러나 공단에서 7년 넘게 일한 사람도 1년짜리 계약을 거부하며 40여 일 동안 버틴 끝에 승리한 전례가 있다. 나도 끈질기게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다.

공단은 나를 해고한 지 보름 만에 ‘정치활동 금지 규정’을 삭제했다. 공단 앞에서 매일 아침 출근 투쟁을 하던 중 전해 들은 ‘정치활동 금지 규정’ 삭제 소식과 동료들의 격려는 나에게 힘이 됐다.

사형 선고

당시 공단 정규직노조 집행부는 나의 연대 호소를 외면했다. 하지만 나는 정규직노조 사무실에 투쟁물품을 맡겨 두고 매일 들락거리며 노조와의 실낱같은 연결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공공노조 서울본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다함께 등으로 구성된 ‘부당해고 철회 정규직 전환 공대위’ 덕분에 정규직노조와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소송비용을 모아 준 정규직 노동자 31명과, 매일 출근투쟁 때마다 차와 간식들을 건네 준 동료들 덕분에 나는 두 번이나 해고되고도 공단을 제집 드나들 듯할 수 있었다.

동시에 나는 인근 작업장과 투쟁 현장들에 연대하려고 밤늦게까지 돌아다녔다. 선거 때는 민주노동당 선거차량 운전을 자원했고, 뉴코아 해고자들과 함께 지역 노동조합과 사회단체를 돌아다니며 열흘간 7백여만 원을 투쟁기금으로 모았다.

예술의 전당, 국민체육관리공단, 시설관리공단, 강남성모병원, 쌍용자동차 등 수많은 곳에서 탄압과 억압에 맞선 사람들의 저항에 연대하고 나의 투쟁소식을 전하며 지지서명도 받았다.

공단 앞에서 시위할 때 용산참사, 촛불운동탄압, 쌍용차대량해고에 항의하는 유인물을 만들어 출근하는 동료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공단 앞 집중집회에는 매번 1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마침내 2010년 11월, 대법원은 전원일치로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나는 생계를 위해 임시방편으로 하던 일을 정리하고, 공단과 면담해 2011년 1월 중순 복직하기로 했다.

나는 “더는 계약직이 아닌, 3년 전 나로 인해 만들어진 자리에 발령해 줄 것”을 분명히 요구했다.

3년 넘게 벌인 투쟁이 값진 승리를 거둔 것이다.

현재 공단 측은 전환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하면서도 “법원 판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출근을 허용한다”며 자신들의 패배를 순순히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나는 신분 전환될 때까지 어떤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정규직이 되는 것이 지난 3년간 내게 힘을 보태 준 수많은 분들께 가장 큰 보답이 될 것이고,힘겹게 삶과 미래를 지켜 내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것이다. 내가 다른 노동자들의 승리 소식에 왠지 모르게 힘이 생겨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