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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언론 개혁인가?

지난 1월 12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김대중이 '언론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한 뒤 언론 개혁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뒤이어 김대중 정부가 1월 31일 세무조사 계획을 발표하자 이 논란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언론 개혁을 하겠다는 김대중의 발언에 대해 "비판적인 신문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술책"이라고 흥분하고 나섰다. 또, 세무조사 중단을 요구하며 "세무조사라는 칼을 언론의 목에 들이대어 언론 길들이기에 본격 나선 것"이라고 비난했다.

〈조선일보〉도 김대중의 발언에 대해 "언론 자유의 침해 소지가 있다"며 저항했고 〈중앙일보〉는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는 언론 개혁이라는 것은 … 좌파적인 소유구조 개편을 주장하는 지극히 편협한 소수의 소리"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기자의 93.5퍼센트가 언론 개혁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일반 국민과 현직 기자 86.9퍼센트가 언론 세무조사에 찬성했다.

한나라당과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언론 개혁"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펄쩍뛰고 있지만 이것은 완전한 위선이다. 이들이야말로 지난 수십 년 동안 언론·출판의 자유를 막아 온 장본인들이다. 이것은 비단 군사독재 시절 때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1997년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은 자기에 대해 비판적 기사를 쓴 기자에게 "창자를 뽑아 버리겠다", "씨를 말려 버리겠다"고 협박했고, 당시에 〈조선〉, 〈중앙〉 등은 노골적으로 이회창을 지지했다. 1999년 10월에는 한나라당의 언론사 통제 계획이 담긴 '언론대책문건'이 폭로된 바 있다.

난형난제

한편, 언론운동시민단체들은 '언론 개혁' 발언에 대해 "이제까지 되풀이해 왔던 '언론사 자율개혁론'에서 벗어나 언론 개혁의 절박성을 인식한 것"이라고 일단 환영했다. 또, 세무조사에 대해 "공정하고 투명하게 조사"하고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김대중은 지난 10여 년간 계속된 언론 개혁 열망을 제대로 추진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김대중은 언론 개혁을 한낱 정쟁의 수단으로 사용하려 한다.

김대중은 지난 2년 동안 "자율개혁" 논리를 언론 개혁을 회피하는 방편으로 내세워 왔다. 1998년 《말》 지와의 인터뷰에서 김대중은 이렇게 말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언론 정책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언론 정책이라는 말 자체가 정부가 언론을 통제의 대상으로 삼던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서 만들어진 것[이다.]"(《말》, 1998년 6월호.)

김대중 정부가 지난 2년 동안 보여 온 태도는 그 전 정부들과 근본에서 다르지 않았다. 안기부 내 언론 부서를 두고 언론 사찰 활동을 벌였고, 정부의 관련 부처들은 신문의 보도 논조에 노골적으로 개입했다. 한빛은행 불법 대출비리 사건으로 쫓겨난 전 문화관광부 장관 박지원은 청와대 공보수석 시절 자행한 언론 통제로 유명하다. 그는 지난 1998년 7월 20일 〈중앙일보〉의 '하반기 경기 더 나빠진다'는 기사에 대해 삭제하거나 제목을 교체하라는 압력을 넣었다. 같은 해 12월 29일 〈중앙일보〉의 '자충수 빅딜'이라는 기사에 대해서도 "정부가 IMF 극복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데 왜 사실을 호도하느냐"며 "그러면 곤란하다"고 협박한 사실이 폭로됐다.

김대중 정부가 언론 개혁을 할 진지한 의사가 없음은 연합뉴스와 〈대한매일〉 같은 정부 소유 신문의 소유구조개선을 거부한 데서도 이미 드러났다. 대한매일 노사가 정부 지분을 50 퍼센트로 줄이고 나머지를 우리 사주로 하기로 하자 정부는 이를 거부한 바 있다.

며칠 전 열린 한 행사에서 민주당은 경품 1천만 원 가운데 5백만 원 어치 가량이 참석한 기자들에게 돌아가도록 의도적으로 배치했다. 이것은 김대중 정부가 언론 개혁을 하겠다고 언급한 지 한 달 가까이 지난 뒤에 벌어진 일이다.

언론 개혁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은 정부와 민주당이 언론 개혁을, 한나라당이 언론의 자유를 내세우며 공방을 벌이는 것처럼 비친다. 하지만 이 둘 모두 언론 개혁에는 진지한 열의가 없으며 그것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MBC-TV 100분 토론회(2월 1일 방영)에 출연한 〈한겨레〉 여론매체 부장 손석춘 씨는 "언론 개혁 운동이 김대중 정권 이전부터 시작된 운동"임을 지적하며 언론 개혁을 "정부가 주도해 달라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손석춘 씨 말마따나 언론 개혁은 진실을 보도하지 않는 기성 언론에 분노한 수많은 사람들이 십여 년 동안 요구해 온 것이다. 친일에 앞장섰고, 독재 정권에 빌붙었던 신문들이 여전히 권세를 누리고 있고, 특히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신문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언론 개혁시민연대가 언론 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도 정당하다.

민족정론?

민족지임을 자임하는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친일 신문이었다. 두 신문은 일본 왕을 찬양하고 평범한 조선인들을 징용장에 내몰았다. 〈조선일보〉는 일본 왕의 생일을 기념하는 사설(1939년 4월 29일자 1면)에 일본의 위광을 만방에 빛나게 하는 것이 의무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누구나 强要(강요)해서가 아니라 自進協力(자진협력)하야 絶對(절대)의 效果(효과)를 발군해야 할 것은 規律(규율)잇는 國民(국민)의 常識(상식)."이라며 징용을 촉구했다.

김대중은 이런 〈조선일보〉에 창간 80주년에 맞춰 "새 천년에도 민족 앞길 제시를"이라는 영상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민족 정론"이라는 기념 휘호도 써서 보냈다.

오늘날 거대하게 성장한 기성 신문들이 독재 정권에 절대 충성을 보냈다는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다. 그들은 독재 정권에 아부하거나 정당성을 선전하는 일에 앞장서 왔다. 전두환이 광주 민중을 학살한 뒤 권좌에 오른 1980년 8월, 〈동아일보〉는 전두환을 "새 시대의 기수"이자 "평범 속에 비범을 실천하는 인물"이라고 추켜세웠다. 〈조선일보〉의 현 주필 김대중은 광주항쟁 당시 광주 시민들을 "총을 든 난동자들"로 묘사하고 광주가 "무정부 상태"에 빠졌다고 비난했다. 그는 광주 항쟁을 적대적으로 묘사한 기사 덕분에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조선일보〉는 반북·반공주의의 나팔수였다. 〈조선일보〉의 유명한 '오보'인 이승복 이야기는 그 사건이 벌어진 뒤 수십 년 동안 초등학생들의 반공 교육에 사용됐다. 취재 기자가 현장에 나타나지도 않고 '소설'을 쓴 것으로 알려진 이 기사는 단순한 오보가 아니라 반공 이데올로기를 위한 교묘한 조작이었다.

이것은 그저 과거의 일이 아니다. 약 2년 전인 1998년 말 〈조선일보〉는 최장집 교수를 사상검증 도마에 올려 놓았다. 당시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이었던 최교수가 한국전쟁을 민족해방전쟁으로 본다며 반공주의의 나팔을 불었던 것이었다. 또, 〈조선일보〉는 최근의 남북 해빙 분위기에 대해서도 "북한에 비위를 맞추지 말라"며 반공주의를 벼렸다.

〈조선일보〉는 인권 운동 활동가들의 명동성당 단식 농성 압력에 밀려 김대중이 국가보안법 개정을 언급하자 1월 15일치 사설을 통해 '국보법이 인권과 무슨 관계가 있나' 하고 황당한 주장을 폈다. 그들은 좌익에게는 인권도 없다고 여긴다.

특히 노동자·민중 운동에 대한 언론의 악의적 왜곡만큼 언론의 본질과 역할을 잘 보여 주는 사례도 없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국민-주택은행 노동자들이 은행 합병에 반대하는 파업에 들어가자 모든 언론들은 일제히 은행 구조조정이 시급히 이뤄져야 함을 역설했다. 또, 신문들은 파업자들을 분열시키기 위해 복귀율이 늘고 있다는 식의 거짓 보도를 했는가 하면, 〈조선일보〉는 개표도 안 된 조흥은행 노조의 파업 찬성률이 20퍼센트 밖에 안 된다고 거짓말을 늘어 놓았다.

언론의 중립성?

상식으로 통하는 그릇된 환상 가운데 하나가 언론이 중립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언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언론은 항상 지배계급의 편에 서 있다.

〈조선〉, 〈동아〉 등과 같은 신문사도 하나의 기업, 그것도 거대 재벌 기업이다. 〈중앙〉, 〈문화〉 등은 재벌의 신문이다. 1990년대 들어 신문 재벌들의 연 매출액은 수천억 원의 규모에 이르고 있다. 이 가운데 〈조선〉, 〈동아〉, 〈중앙〉이 신문 시장의 70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앞서 얘기했듯이, 이 신문사들이 독재 정권에 잘 빌붙어 혜택을 받으며 거대 신문사로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간지를 창간해도 살아남을 수 없다.

신문사들은 온갖 경품과 무료 구독을 앞세워 치열한 판매 경쟁을 하고 있다. 1996년에는 신문사들간의 판매 경쟁이 치열해지다 못해 〈중앙일보〉와 〈조선일보〉 지국원 사이의 죽음을 부른 다툼까지 벌어졌다.

부채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수익성이 떨어짐에 따라 인력감축을 하려 한다는 점도 신문사와 다른 대기업들의 닮은 점이다. 이런 신문사의 사주들이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기사를 허락할 리 없다.

신문사들의 최대 수입원은 대기업의 광고비다. 신문사들은 돈줄인 대기업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1996년에 〈세계일보〉는 과학 의료면 머릿기사로 "삼성의료원 의료 서비스 부실"을 뽑은 적이 있다. 삼성의료원의 의료비가 너무 비싸면서 의료 사고도 잦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기사는 가정 배달판에서 돌연 실종되고 말았다. 당시 편집국장은 그 이유를 이렇게 털어놓았다. "신문이 나간 뒤 광고국에서 기사 삭제를 요청해 왔다. 광고주의 압력은 어느 신문사에나 있다. 특히 신생 신문사는 광고쪽 주문을 안 들어줄 수 없다."

1995년 6월 13일 삼성중공업 소속 직원 3명이 기아자동차 공장 주변에서 기아의 신형 봉고차를 망원렌즈로 사진 촬영하다 붙잡힌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조선일보〉는 이 기사를 사회면과 경제면에 다룰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시내판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당시 〈조선일보〉의 경제부 데스크는 "삼성그룹 홍보실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이해해 달라며 로비를 했던 게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한 신문사의 판매지국장은 보통 구독자가 1천 명이라면 본사로부터 3천 부를 받아 2천 부를 그날 새벽에 파지로 팔아버린다고 실토한다. 신문사가 신문 판매 수익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발행 부수에 따라 달라지는 광고비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신문

광고비율(%)

신문

광고비율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한겨레신문

서울경제신문

강원일보

광주매일

국제신문

74.5

73.2

84.9

72.4

90.4

76.2

84.3

87.8

경인일보

부산매일

부산경제신문

경남신문

대전일보

인천일보

전남일보

제주신문

72.7

85.8

95.3

79.7

75.4

79.4

73.5

72.1

신문수입 중 광고수입 비중 (출처 : 기자협회, 1995년)

서구의 언론도 광고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CBS 사장을 역임했던 프랭크 스탠톤은 "우리는 광고에 의해 유지되고 있으므로 광고주들 전체의 일반적인 목적과 욕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했다.

또한 유럽과 미국의 언론사를 보면, 기업들에 비판적인 진보 신문들은 광고주의 광고 거부로 말미암아 이미 20세기초에 대부분 몰락했다. 판매 수입보다 광고 수입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늘어나면서 튼튼한 광고 수입이 보장된 보수 신문들이 신문 판매가를 인하했고, 이것이 진보적 언론의 숨통을 조이는 직접적 계기가 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