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을 지키지 않은 김대중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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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28일에 명동성당에서 인권운동사랑방 서준식 대표를 비롯한 16명의 인권활동가들이 "개혁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추악한 독재자의 모습을 닮아 가는 김대중 정부에게 국가보안법 및 국가 인권위원회법의 폐지·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노상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노상 단식농성은 올해 1월 9일까지 이어졌다. 농성 과정에서 여야의 몇몇 국회의원들이 명동성당을 찾았지만 농성자들에게 눈덩이로 얻어맞거나 소금 세례를 받고 돌아갔다. 농성단은 해단 성명에서 "3대 개혁입법의 희망을 파묻을 수 없었기에 결행한 우리의 투쟁은 영하 20도의 추위와 20년 만의 폭설을 뚫고 연말연시의 동면을 깨울 수 있었다. 개혁 '지체'가 아니라 개혁의 '시작'조차 구경 못한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과 정치권에 대한 총공세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고 결의했다.
3대 개혁 입법
김대중은 1997년 대통령직 인수위를 통해 인권법을 비롯한 개혁입법 제정을 임기 중 추진할 100대 과제에 포함시킨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김대중은 3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개혁입법에 대해 현란한 말만 늘어놓았을 뿐이다.
인권 대통령을 표방한 김대중의 야심작이었던 인권법 제정은 착수되지도 못했다. 법무부는 인권위원회를 실질적인 권한을 지닌 독립 국가 기구로 하자는 시민단체의 요구에 대해 비정부 민간 기구로 하자며 3년 동안 시간만 끌었다.
작년 16대 국회가 들어선 뒤에도 서영훈 당시 민주당 대표는 "인권법을 연내 개정하겠다"고 몇 차례 말했지만 말로 그쳤다.
작년 8월 법무부가 인권위원회를 비정부 기구로 하고 시행령 제정권을 법무부에게 여전히 귀속시키는 내용으로 만든 인권위원회 설립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당정협의도 열지 않은 채 그저 방관하고 있었다.
민주당은 10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확정되자 뒤늦게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국제 수준에 맞는 인권위를 만들겠다"면서 10월 18일 인권향상특위(위원장 정대철 최고위원)를 구성하고 시민단체와 법무부를 불러 조율에 나섰다. 정대철은 11월 1일 "인권위를 국가기구로 만들겠다"고 거듭 약속하며 인권법 제정에 제법 박차를 가하는 듯 했다.
그러나 작년 11월에 발표한 민주당의 개정안은 인권위원회에 "국가기관이라는 형식을 덧씌웠을 뿐" 여전히 법무부의 시행령 제정권을 보장하고 있다. 또 상임위원 숫자는 법무부안보다도 4명이나 줄였다. 결국 시민단체의 분노를 폭발시켰을 뿐이었다.
시민 단체의 커다란 반발 때문에 12월 8일 여야 92명의 의원이 시민단체 의견을 많이 수용한 인권위원회법을 연대 서명해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이를 무시하고 12월 29일 법무부와 당정협의를 통해 법무부안과 민주당안을 절충하겠다고 밝혔다.
시민·사회단체들의 요구에는 국가보안법 폐지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김대중은 보수 우익들의 반대라는 명분을 이용해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대중의 요구를 무시하고 개정 추진이라는 생색만 내고 있다. 김대중은 올해 1월 1일에도 동국대 전총학생회장을 종로에서 연행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시켰다. 김대중 집권 3년 동안 양심수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김영삼 정권 때보다 더 많은 구속·수배자가 생겨났다. 지금 이 시간에도 220여 명의 국가보안법 수배자들이 경찰의 미행과 감시에 쫒겨 다니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자신의 지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이용해 왔던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김대중 역시 국가보안법을 유지하려 한다.
단지 남북 교류·협력과 모순을 빚는 조항을 없애는 정도에서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려 한다. 국가보안법 위반자 가운데 7조로 유죄 선고를 받는 사람들이 90퍼센트가 넘는데도 핵심 조항인 7조 삭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특히 7조 3항(이적단체 구성·가입)은 결코 삭제하지 않겠다고 한다.
반부패법도 마찬가지다. 정권 초기부터 대형 부패 사건의 주인공이 돼 온 민주당이 부패 방지에 적극적일 리 만무하다. 시민단체들의 요구인 반부패법도 민주당은 이름만 유지한 실효성 없는 법안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민주당 반부패 법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고위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권력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게 수사할 수 있는 기구가 없다는 것이다. 상설 조사 기구인 비리조사처를 없앴고, 한시적 특별검사제 도입조차 줄기차게 반대하고 있다. 또, 돈세탁 규제의 대상에서 가장 핵심적인 정치자금을 제외했다.
김대중 집권 3년 동안 시장 개혁이 아닌 민주적 개혁은 시작조차 되지 못했다. 그러나 시민·사회 단체들은 김대중 집권 이후 '수구파'가 득세할까파 대 '개혁파'에 대한 비판을 삼가면서 김대중에게 지지를 보냈다. 이러한 정치적 오류 때문에 민주적 개혁을 쟁취하기 위해 독자적 행동들을 적극적으로 할 수 없었다. 작년 연말 시민단체들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며 명동성당 농성에 들어간 것은 지난 3년에 대한 자기 반성에서 비롯했다. 김대중을 지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투쟁할 때만 민주적 개혁을 쟁취할 수 있다.
김중권 대표 체제 그리고 DJP 공조
김대중의 개혁을 좌우파 모두가 비판하자 12월 말 김대중은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두 가지 선택을 한다. 하나는 김중권을 민주당 대표로 세운 것이고 다른 하나는 DJP 공조 복원이다. 김중권은 5·6공 시절 법사위원장과 정무수석을 지낸 인물이었으며, 김대중 정부 초기에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내다 옷로비 사건 때 물러난 자이다.
김중권이 대표가 되면서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은 정치권에서 유례없는 저질 코미디였던 의원 임대 사건이었다. 김중권은 '강력한 여당'을 주장하며 국회 표결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DJP 공조는 불가피하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1월 8일 김대중과 김종필은 DJP 공조를 선언했다.
의원 임대 사건과 DJP 공조에 대한 대중의 여론이 악화되자 김대중은 신년사에서 개혁 입법을 제정하겠다고 또다시 약속했다. 그러나 이것은 다시 한 번 말잔치나 어설픈 제스추어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금융종합과세를 연기했던 것이나 이주 노동자 고용허가제 도입 연기 등에서 보여지듯이 김대중은 말로는 좌파인척 하지만 행동에선 극우파와 타협해 왔다.
1월 19일 이한동 총리가 20대 국정 과제를 발표하면서 "국가보안법은 폐지에서부터 개정 불가까지 다양한 의견이 있고, 개정을 해도 전면이냐 부분이냐 하는 문제가 있다"며 "정부는 서두르지 않겠다"며 국보법 개정조차 반대함을 분명히 했다.
또 1월 26일 김중권 민주당 대표는 자유 투표에 맡기자는 제안을 거부하면서 "2월 1일 법무부 장관과 민주당 최고위원들의 간담회에서 당론을 확정"하겠다고 했으나, 간담회를 연기하면서 "현 정권에서 할 수 없는 것은 다음 정권으로 넘기는 용기도 발휘해야 한다."고 말해 개정조차도 하지 않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자민련 김종호 총재대행은 1월 30일 "보안법 개정 문제는 이 나라 생존권과 연결되는 사안"이라며 개정을 반대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도 1월 1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지금 국보법 개정 논의를 하는 것은 좌우논쟁을 촉발해 국론 분열을 낳을 우려가 있다"며 국가보안법이 존속돼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1월 15일 '국보법이 인권과 무슨 관계가 있나'라는 사설에서 "일부 법조항의 '과잉'이 있지만 자유민주체제를 수호할 최후의 보루로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떠들어 댔다. 유엔인권위원회가 국보법을 폐지하라고 권했던 사실에 대해서도 "외국의 무슨 단체들이 '나라의 안보' 문제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며 국보법 폐지에 완강히 반대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난 1월 21일 여야의 소위 '소장파 개혁 모임' 의원들이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의원입법으로 공동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진보 세력 일부에서는 기대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지난 1년간 그들이 한 일을 되짚어 보면 '소장파 개혁모임'의 한계를 분명히 알 수 있다. 6월 29일 이한동 총리에 대한 임명동의안 표결 처리 과정이 대표적이다. 투표 전에는 5, 6공 참여 및 공안검사 전력을 문제삼아 거부하겠다고 분명히 밝혔지만 표결 결과는 138표 찬성이었다. '386의원'들이 모두 찬성표를 던졌던 것이다.
또 지난해 말 자민련 교섭단체 등록을 위해 국회법 개정안을 처리하기 위해 민주당 386의원들이 한나라당 386의원들과 몸싸움을 하는 장면이 TV에 중계되기도 했다. '소장파 개혁모임' 의원들은 당의 거수기 역할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3대 개혁 입법 제정 투쟁
서준식 인권운동사랑방 대표는 "인간의 고통을 없애기 위한 여러 운동이 힘겹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체질'을 바꾸는 선결 과제가 3대 개혁입법의 제정이라고 믿"기 때문에 3대 개혁입법 제정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들이 우리 사회의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는 체념을 하고 있는데,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인권과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한 운동에 일상적으로 국민들이 참가할 수 있겠습니까? 3대 개혁입법은 바로 이렇게 경직된 사회에 유연성을 주면서 막힌 부분을 뚫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게 될 것입니다."
지난 세월 동안 많은 투사들이 국가보안법에 의해 구속·수배됐고 고문·미행·도청·납치·의문사 등 인권 유린을 당해 왔다. 또한 노동자 계급이 생산한 많은 재화가 부패의 사슬로 흘러 들어가 노동자들을 억누르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쓰여져 왔다. 반민주적이고 부패한 김대중에 맞서 노동자들이 투쟁할 때 3대 개혁 입법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