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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혁명과 여성 해방

아랍 혁명은 21세기 혁명의 현실성뿐 아니라, 여성이 사회변화의 주인공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튀니지 여성들은 프랑스에 맞선 독립운동 이래로 사회적 변화에 앞장섰고, 이번 혁명에도 열정적으로 참가했다.

이집트 여성들은 타흐리르 광장을 지키고 대중파업 물결에 참가하면서 무바라크를 쫓아낸 주역이다. 리비아의 가장 보수적인 도시에서조차 여성들은 용감하게 시위를 벌였고, 시리아에서도 여성들은 아사드 정권에 맞서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있다. 예멘의 대통령 살레는 ‘여성들이 남성들과 섞여서 시위를 벌이는 것이 부적절하다’며 비난했지만, 여성들은 전례없는 규모로 시위에 동참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혁명은 아랍 여성들이 수동적이고 가정에만 머무른다는 편견을 깨부쉈다.

하지만 체제에 아로새겨진 여성 차별의 뿌리가 아직은 깊다는 것을 보여 준 또 다른 그림도 있었다. 이집트에서 한 무리의 남성들이 타흐리르 광장에서 여성들을 쫓아내려 한 것이나, 헌법개정위원회에 여성이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것 등이 그 사례다.

그래서 한국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아랍 혁명에서 여성의 능동적 구실에 주목하면서도 혁명 후 오히려 여성의 권리가 후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한다.

여성은 부엌으로 돌아갔나?

새세상연구소 김애화 연구위원은 “혁명 후 … 여성은 마치 계획됐던 것처럼 다시 부엌으로 보내지고 있다”, “여성이 중동의 혁명적 변화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는 불분명하다” 하고 주장한다.(‘혁명 후 여성은 광장에서 어디로 갔나!')

이것은 아랍 혁명으로 이슬람주의가 득세할 것이고, 그러면 여성의 권리가 후퇴할 것이라는 전망과 관련돼 있다. 김애화 씨는 1979년 이란 혁명 후 이슬람주의 정부가 집권한 사례 등을 거론한다.

전국학생행진(이하 행진)은 이번 혁명이 ‘이슬람 근본주의’로 빠질 것이라는 전망은 “과장”이라고 본다. 하지만 세속적 정부 하에서와 달리 “이슬람 단체의 정치활동이 회복되는 분위기 속에 여성의 권리가 후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좀더 일반적 맥락에서 투쟁 후 여성은 주변화된다는 식으로 주장하기도 한다.(‘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10호)

우선,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여성이 부엌으로 보내지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시위에 참가한 여성들을 공격한 것은 혁명에 참가한 남성들 대부분의 태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혁명 과정에서 얻은 영감과 자신감, 투쟁의 경험 덕분에 여성들은 결코 고분고분 부엌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김애화 씨는 아랍 혁명이 기껏해야 자본주의적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 사이에서 진동할 것이라는 가정을 깔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번 튀니지·이집트 혁명은 이슬람주의 단체의 지도와 통제 바깥에서 탄생했다.

물론 대중은 세속적인 세력의 독재에 이골이 났고, 이런 정서에 힘입어 이슬람주의 야당이 다음 선거에서 득세할 수도 있다. 여성들은 세속적인 옛 정권 계승자보다는, (여성문제에 대해 상대적 보수성을 띠고 있더라도) 반제국주의적이고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인 이슬람주의 정당들을 더 나은 대안으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혁명은 아직 진행 중이고, 반드시 이슬람주의의 득세로 귀결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혁명에 참가한 세력들이 혁명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고 나가느냐가 중요하다.

이슬람주의 : 이데올로기와 현실의 모순

설사 이슬람주의 세력이 권력을 잡는다 해도, 그들이 1백 퍼센트 이슬람주의적 여성관을 관철할 것이라는 전망은 일면적이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이슬람주의자들은 샤리아법을 곧이곧대로 따르는 근본주의자들이고, 여성을 베일로 꽁꽁 싸서 부엌으로 돌려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중적 이슬람주의 단체들 대부분은 자본주의가 성장하고 여성 노동력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그에 따라 여성에 대한 관점을 유연하게 바꿔 왔다. 그래서 그들의 이데올로기와 실제 정책 사이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가령,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은 여성의 베일 착용과 도덕 문제에 관해서는 매우 보수적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성이 대학에 가고, 직장에 다니고, 정치에 참여하는 것에 찬성한다. 무슬림형제단은 이집트에서 여성 회원 수가 가장 많은 단체다.

무슬림형제단의 청년 회원들이 지도부의 보수성에 종종 불만을 표출하고 세속 좌파에도 개방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층 여성 회원들 중 일부는 지도부의 모순적인 태도를 비집고 여성해방에 대한 더 급진적 전망을 발전시킬 수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이슬람주의 정권인 이란 정부조차 여성 정책을 수정해 왔다. 이란-이라크 전쟁과 전후 경제 재건 속에서, 이란 정권은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1984년에 아야툴라 호메이니는 “여성은 이슬람 법령의 틀 내에서 경제·정치·사회 문제에 참여할 수 있다”고 연설했다. 나중에는 피임과 낙태에 대한 태도도 바꿨다.

이란 여성은 주변화하지 않고 다양한 직종에 종사해 왔다. 여성들이 노동자로 대거 진출하자 여성들의 자의식이 향상됐고, 이것은 정부의 여성차별적인 정책에 맞서 저항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그 결과 “가장 서구화한 친미 정부 팔레비 때보다 이슬람 정부가 지배하는 지금, 여성의 성 의식이 더 높다.”(마르얌 포야, 이란 출신 여성 사회주의자)

결국 아랍 여성들의 처지를 개선하는 데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정권이 세속적이냐 이슬람주의적이냐가 아니라, 물질적 변화와 그에 따른 여성들의 조건과 의식 변화, 그리고 여성들의 투쟁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아랍 혁명은 여성들이 여성 해방을 향한 투쟁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줄 것이다.

한편, 나라별로 차이는 있지만 아랍 국가들이 크고 작은 법적 평등 조처들을 도입했음에도 여전히 여성들은 차별받고 있다. 이것은 아랍 세계의 특수한 문화나 가치관 때문이 아니다.

체제 변혁과 여성 해방

아랍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는 여성차별적 기반 위에 유지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지배자들은 여성들이 전례 없이 많이 집밖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가족에 대한 여성의 의무를 각인시키곤 한다. 여성이 가정에서 무보수로 하는 재생산 노동이 체제 유지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윤 논리 때문에 자본주의의 지배자들은 재생산 노동을 사회화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부를 투자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성들은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고, 열등한 취급을 받는다. 세속적 자본주의 국가에서 여성들은 베일 착용을 강요받진 않지만, 눈요깃거리로 취급되고 외모로 평가받는다.

따라서 아랍 혁명이 여성차별을 뿌리뽑고 진정한 여성 해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혁명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도전하는 사회혁명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아랍 민중은 그럴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지금보다 노동계급의 규모가 훨씬 작을 때도 이란의 노동자들은 혁명을 일으켰고, 노동자평의회(쇼라)를 건설했다. 쇼라는 직장 보육원을 설립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나 여성 문맹 퇴치, 여성 노동자 건강 문제 등을 다뤘다. 지금은 훨씬 더 강력하고 큰 규모의 노동계급이 아랍 세계에 존재한다.

“여성권리 쟁취를 위한 그녀들의 중단 없는 투쟁”이 중요하다는 행진의 결론은 옳다. 그것은 체제를 변혁하려는 투쟁 속에서 남성과 여성이 단결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