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소련의 붕괴는 세계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미국과 대척하던 소련이 붕괴하자 많은 좌파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위기 없는 성장을 지속하는 듯했던 소련은 왜 침체에 빠지고 결국 붕괴했을까요? 서방 권력자들의 말처럼 그것은 자본주의의 승리일까요? 오늘날 자본주의가 아닌 대안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소련 붕괴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미얀마 쿠데타가 반 년을 막 넘겼습니다. 미얀마 대중도 끈질기게 저항을 이어가고 있죠. 마침 오늘은 1988년 이른바 8888항쟁 33주년입니다. 한국에서도 오늘 저항을 지지하는 온라인 캠페인이 있습니다.
최근 미얀마 군부는 1년 후 총선 실시 약속을 뒤집고 군부 수장인 홀라잉이 총리로 직접 나섰죠.
군부가 권력을 공고히 하고 있음을 보여 주려는 듯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보입니다. 코로나 확산과 경제 위축으로 경제·사회적 위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대중의 분노와 불신도 여전합니다.
미얀마 민주주의 항쟁을 지지하며, 꾸준히 미얀마 저항을 보도한 기사 모음을 소개합니다.
길어지는 경제 침체,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펜데믹의 고통, 기후 변화가 불러 온 곳곳의 재앙들, 갈수록 첨예해지는 미·중 갈등 등.
위험한 오늘의 세계입니다. 대중의 저항도 자라지만, 권위주의적 반동이나 극우 대중운동이 성장합니다. 위험이 위험을 키우는 것이죠.
사회주의적 대안이 성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위기와 혼돈 속에서 변화하는 세계를 이해하려는 지도적 사회주의자들의 주장과 토론을 소개합니다.
성별, 인종, 성적 지향 등을 둘러싼 차별이 만연합니다. ‘우리 안의 차별주의자’가 ‘혐오 사회’를 만든다고 진단하는 시각도 있는데, 과연 각종 차별은 어디서 비롯하는 걸까요?
한편, 우파들은 ‘정치적 올바름(PC)’이 문제라며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말라’고 합니다. 이를 둘러싼 논란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정치적 올바름은 차별에 맞서는 효과적 무기일까요? 차별을 끝장낼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