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민중을 위한 디폴트’가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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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정부는 10월 말에 있은 유럽연합(EU) 정상회담의 결정을 그리스인들의 부채 절반을 경감해 주는 “도움의 손길”로 보이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
듣자 하니 은행들은 그리스의 부채 1천억 유로를 탕감해 주는 호의를 베푼 듯하다. 그러나 다음 날 주식시장에서 이른바 ‘헤어컷’[부분적 부채 탕감] 대상이 된 은행들의 주가가 15퍼센트나 반등했다.
이것은 명백히 모순이지만, 헤어컷이 한쪽에만 유리하게 진행되는 것과 연관이 있다. 그리스 국채에 엄청나게 투자한 그리스 연금 펀드는 손실을 입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중앙은행(ECB)이 빌려준 부채는 전혀 손실을 입지 않을 것이다.
이에 더해서 IMF·EU·ECB(셋을 합쳐 “3인방”라고도 부른다)는 그리스 재정 운용을 통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스 노동자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헤어컷
그리스 총리 게오르그 파판드레우는 구제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1월에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때까지 그 자리에 있다면 말이다. 파판드레우의 결정은 그리스 정부가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유럽 지배계급이 보기에도 구제안이 얼마나 불확실한지를 보여 줄 뿐이다.
전통적으로 10월 28일은 1940년 베니토 무솔리니의 침공을 물리친 것을 기념해 군사행진을 벌이는 국경일이다. 올해 그리스 민중은 도로를 점거하고 군사행진을 반정부 시위로 바꿔 버렸다.
테살로니키에서 그리스 대통령은 연단에서 경례를 받을 준비를 하다가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다른 도시에서 열린 행사에서도 관료들은 성난 군중에 쫓겨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이제 대안을 둘러싼 논쟁의 문이 활짝 열렸다. 부채 구조조정 또는 “위로부터의 디폴트”를 한다면 노동자들이 겪을 고난은 끝이 없을 것이다. 관료들의 계획을 보면 그리스의 부채는 10년 후에도 국내총생산의 1백20퍼센트에 육박할 것이다. 이번의 ‘헤어컷’ 결정을 이행하더라도 말이다. 과연 이런 덫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있는가?
그리스의 반자본주의 좌파는 “아래로부터의 디폴트” 또는 “민중을 위한 디폴트”를 주장한다. 정부의 디폴트와 민중 디폴트는 밤과 낮처럼 다르다. 노동자들이 주도해서 부채를 탕감한다면 은행은 고통을 겪겠지만 노동자들은 혜택을 얻을 것이다. 은행에 지불하는 연간 이자 비용은 위기가 시작된 2007년의 1백억 유로에서 현재 1백80억 유로로 급증했다.
이자
이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을 멈춘다면, 학교나 병원을 폐쇄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임금과 연금을 삭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전체 공무원들 임금의 총합은 1백60억 유로로, 이자 비용보다 적다.
우리는 현재 교사, 간호사, 청소 노동자 모두에게 주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부채더미에 앉은 은행들에게 주고 있다. 부채를 청산하고 지급을 거절한다면 금융 시스템에 커다란 혼란이 야기될 것이다. 민중을 위한 디폴트가 은행에 대한 노동자 통제와 밀접히 연결돼야 하는 이유다.
은행 노동자들은 부자들이 자본을 해외의 조세 천국으로 빼돌리는 것, 즉 경제를 망칠 행위를 하는 것을 막을 힘이 있다. 은행 노동자들은 은행들이 모기지 비용을 지불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집을 회수하는 것을 막을 힘도 있다.
이는 백일몽이 아니다. 우리는 이를 힐끗 본 적이 있다. 노동자들이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내는 중앙 컴퓨터실을 점거하기로 결정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실업자들이 요금을 지불하지 못하더라도 전기를 끊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때 말이다.
정부 청사를 점거하고 있던 공무원 노동자들은 파업 중이던 지방정부 노동자들에게 파업 참가자를 해고하라는 정부의 명령을 모두 막아 주겠다고 말했다. 좌파는 이런 선제적 행동들을 방어하고 일반화하려고 분투해야 한다. 그러면 노동자 통제가 아래로부터 모양을 갖추기 시작할 것이다.
물론 ECB는 그리스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이런 길을 간다면 필사적으로 싸울 것이다. 그리스는 유로존에서 쫓겨날 것이고 투기꾼들은 그리스에 새로 도입된 화폐를 공격할 것이다.
우리는 유럽 전역 모든 노동자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투쟁은 그만한 수고를 할 가치가 있다. 우리는 함께 은행들의 탐욕이 아니라 인간 필요를 우선순위에 두는 세계로 향할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정부를 궁지로 몰아넣은 역사상 최대 총파업
10월 19일과 20일 총파업은 그리스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거의 모든 도시에서 파업이 벌어졌다.
파업으로 모든 활동이 중단됐다. 아테네에서는 50만 명이 시위를 벌였다. 그 외에도 전국적으로 50만 명이 시위를 벌였다.
이날 총파업은 이전 총파업과 달랐다. 이날 파업에서는 이전보다 기층 조합원들이 중심적 구실을 했다.
파업위원회
기층 조합원들은 총파업을 호소한 연맹 지도자들이 요구한 이상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보였다.
그들은 조합원 모임에서 파업위원회를 선출했다. 이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과거에는 가장 좌파적 성향이 강한 노조의 기층 조합원들만이 이렇게 주도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지금 많은 곳에서 이런 움직임을 볼 수 있다. 정부 건물 점거도 지역 조합원 총회에서 파업위원회를 선출한 다음부터 시작됐다. 기층 조합원들의 움직임이 탄력을 받으면서 파업으로 발전한 것이었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무차별 발사했고 의회 앞 광장에서 시위대를 몰아내려 했다. 이 과정에서 공산당 소속 조합원 한 명이 사망했다.
정부는 그가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발표했지만 가족과 동료들은 최루탄이 그의 발 밑에서 터진 것이 원인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경찰 폭력의 희생자였지만 주류 언론들은 이 점을 보도하지 않았다. 다음 날 정부 청사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6천여 명이 경찰 폭력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많은 사람은 3인방과의 협상안을 깨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한다. 거의 모든 좌파들이 이 입장으로 선회했다.
즉, 의석을 가진 좌파들도 채무 이행 중단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지금까지 이 입장은 ‘극단적 입장’으로 매도당해 왔다.
번역 김용욱
계속되는 유로존 붕괴 위기
강동훈
그리스 정부가 2차 구제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하자, 전 세계 금융 시장이 다시 한 번 요동쳤다.
10월 말 EU 정상회담은 그리스의 국가 부채 50퍼센트를 탕감하고, 1천억 유로를 추가로 지원한다는 2차 구제안을 제시하는 대신, 대규모 민영화, 공무원 해고와 임금 삭감, 연금 삭감, 세금 인상 등 강력한 내핍을 요구했다.
노동자들이 이런 내핍에 거세게 반발하자 그리스 정부가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만일 투표 결과가 2차 구제안에 대한 반대로 나온다면, 그리스의 완전한 디폴트, 유럽 은행들의 연쇄 도산, 스페인·이탈리아의 재정 위기 심화, 전 세계적인 금융 혼란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커진다.
이 때문에 세계은행 총재 로버트 졸릭 등 유럽 지배자들은 국민투표 계획에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2차 구제안이 확실한 해결책이라고는 유럽 지배계급도 믿지 않는다. 그리스 구제안이 확정된 후에 이탈리아 국채 금리가 위험 수준인 6퍼센트까지 상승(국채 가격 하락)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그리스가 빚을 감당하려면 70퍼센트는 탕감해 줘야 한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이렇게 되면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유럽 은행들의 부실은 더욱 커져 금융 불안정은 다시 높아질 수 있다.
그리스 지배계급 내의 반발과 유럽 지배자들의 반대로 그리스 국민투표가 실제로 실시될지는 두고봐야 한다. 설사 그리스 지배자들이 채무 불이행을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경제적 혼란과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노동자들이 주도해 부채 지급을 거부하고 사회의 자원을 대중을 위해 사용하는 “아래로부터의 디폴트”만이 그리스 노동자들의 삶을 지키는 대안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