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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을 계기로:
이명박이 위기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라

이 글은 12월 20일 다함께 운영위원회가 발표한 성명서다.

조선중앙방송은 어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을 공식 발표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일인 통치권을 물려받은 뒤 17년 동안 북한을 통치했다. 후계자 지위에 오른 뒤부터 따지면 무려 37년 동안 그는 북한의 최고 권력자였다. 그는 자신이 목표로 내세운 강성대국을 이루지 못하고, 1990년대 이래 계속된 북한의 심각한 경제 위기와 북미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유산으로 남겼다.

북한의 미래는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으로 모호하게 뒤덮여 있다. 조선중앙방송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발표를 하면서 “존경하는 김정은 지도자의 영도를 충직하게 받들자”고 강조했다. 그러나 후계 구도가 빨리 안정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 벙커에서 회의하고 있는 이명박 속으로 이 상황을 위기 탈출에 이용할 궁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대물림 받았을 때 그는 50세가 넘었고 후계자 훈련도 20년 넘게 받았다. 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셋째 아들인 김정은은 아직 28세이고 후계자로 공식화된 지 겨우 1년이 조금 넘었다. 게다가 그가 물려받은 유산은 지난 20년 동안 취약해질 대로 취약해진 나라다.

권력이 집중돼 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을 계기로 관료 내 분열이 일어나 불안정이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불안정은 중국에서 분출될지 모를 거대한 저항 등 특정 상황과 맞물리면 아래로부터의 격변으로도 나타날 수도 있다.

동북아 정세의 불안정 증대 가능성

중국·일본·남한 같은 주변국들은 북한의 불안정이 동아시아에 파장을 일으키는 것을 원치 않는다. 특히 중국은 대량 탈북 난민이 밀려들어 사회 불안 요인이 되는 것을 우려해 대북 지원을 해 왔다. 물론 여기에는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처럼, 미국과의 긴장된 관계 속에서 북한의 존재가 하는 구실에 대한 고려도 작용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불안정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이 아래로부터의 분출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미국은 북한의 불안정을 원하므로 이런 기회를 이용해 북한을 흔들려 할 것이다’는 생각이 상식처럼 퍼져 있는데, 이 점에서 그런 생각은 일면적이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에도 미국은 북한의 안정을 선호했고 석 달 후 제네바 합의를 이뤘다. AP통신은 그저께인 12월 18일 북·미가 우라늄 농축 중단과 식량 지원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는데, 〈한겨레〉는 이 합의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시점 뒤에 이뤄졌다고 했다.

물론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보는 한은 북한의 불안정을 이용할 만반의 태세가 돼 있다. 미국과 중국은 북한의 권력 교체기인 현 상황을 이용해 새로운 권력층이 자신에게 친화적이 되도록 서로 암투를 벌일 것이다. 또, 북한의 불안정이 격화하는 상황에서는 자국 영향력을 관철하기 위해 군사력 투입도 마다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중국의 부상과 그것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전략으로 동아시아가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음에 따라 북한의 불안정이 갖는 파급력이 전보다 커질 수 있음을 뜻한다.

남한 현지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예의주시”한다며 군과 경찰에 비상경계태세를 지시했다. 합참과 한미연합사령부는 워치콘(대북정보감시태세)을 격상하지 않고 ‘차분한’ 대응을 하겠다면서도, 정찰기를 늘리고 전투기 출격 태세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마치 지금 당장 북한의 ‘군사도발’이나 ‘급변사태’가 일어날 것처럼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은 호들갑이다. 오히려 이런 호들갑 자체가 북한을 경계하도록 만들어 한반도 긴장을 부추기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남한의 호들갑은 북한의 맞대응을 불렀다.

또, 이명박 정부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디도스 청와대 개입 같은 핵 폭탄급 문제가 묻히기를 바랄 것이다. 지난 두 달 동안 한미FTA 반대에 헌신하던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정국을 이용해 정권 최대 위기를 슬쩍 피해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다른 한편, 정부가 조의 표명에 준하는 언급 또는 ‘차분한’ 대응을 통해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포퓰리스트 지지자들과 정치인들을 달램으로써 위기를 피해가는 효과를 내려 할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정국을 이용해 국가보안법을 통한 마녀사냥을 다시 자행할 수 있다.

진정한 좌파라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에 호들갑을 떨며 긴장감을 조성하려는 우익의 시도에도 반대해야 하지만, 자유주의자들과 포퓰리스트들처럼 북한의 안정을 바라서도 안 되고 좌파 일각에서처럼 슬퍼해서도 안 된다.

특히, 남북 화해·협력에 주안점을 두는 것일지라도 국가간 외교의 관점에서 봐서는 안 된다. 좌파답게 국제 노동계급 운동과 해방이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기 독재 동안 북한은 공포 통치(공개 처형과 수용소로 대표되는)와 빈곤으로 얼룩졌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빈민과 적잖은 노동계급 대중이 굶주리는 동안 미사일과 핵 개발을 우선했다. 반제국주의 투쟁의 원동력은 ‘총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계급투쟁에서 나오는 것인데도 말이다. 더구나 2002년 7·1 조치 이후 지난 10년 동안 재정 지출 삭감 정책으로 보통 인민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고, 불평등이 증대했다. 병으로 쇠약해진 말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3대 세습을 추진했다.

요컨대 북한은 마르크스가 말한 사회주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무늬조차’ 닮지 않았다. 게다가 말년의 김일성 주석과 집권 내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미 관계 정상화를 추구한 것을 보면 진정한 반제국주의도 아니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이라는 진정한 좌파적 관점에서 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을 애석해 할 이유도, 북한의 현 상황이 안착화되기를 바랄 이유도 없다.

진정한 좌파라면 북한의 노동계급이 앞으로 펼쳐질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민주주의와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투쟁에 나서기를 바라야 하고,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지지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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