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세계경제 ─ 분석과 전망
〈노동자 연대〉 구독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는 2012년에도 지속될 것이다. 특히 최근의 유로존 위기 상황을 보면,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후의 금융 위기보다 더 큰 금융 위기가 2012년에 몰려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로존 위기는 포르투갈·아일랜드·스페인·이탈리아로 전염된 데 이어, 프랑스가 최고 신용등급에서 강등될 것이라고 전망이 나오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나 무디스 같은 신용평가회사들은 유럽연합(EU) 내 모든 국가의 신용등급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최근에는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설이 나오고,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이 중단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그리스 3월 디폴트’설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유로존은 재정·금융·실물의 위기가 악순환하고 있는 상태다.
유럽 각국은 재정적자를 줄인다며 가혹한 내핍 정책으로 임금과 복지를 공격하고 있는데, 이는 다시 실물 경제에 타격을 주면서 성장률을 떨어뜨리고 있다. 성장률 하락은 세수를 줄여 재정적자를 다시 늘린다. 금융 위기와 재정적자 위기는 기업이 돈을 구하기 어렵게 하고 수요도 줄여서 결국 실물 경제 위기도 심해지는 것이다.
유로존 위기가 심화하면서 유로화 체제가 붕괴할 수 있다는 전망이 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지적처럼 “지금 고삐를 잡지 않으면 유로를 지키기 위한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정치인들이 감당할 범위를 넘어서게” 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 정부는 유로존 붕괴에 대비하는 비상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고, 전 세계 주요 은행들도 유로존 붕괴에 대비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는 프랑스 프랑, 독일 마르크, 이탈리아 리라 등 옛 통화로 돌아갈 경우 각 통화의 가치가 얼마나 될지 예측하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프랑스 총리 프랑수아 피용은 “유로존 붕괴에 따른 손실은 엄청나다. 경제 강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25퍼센트, 경제 약국은 약 50퍼센트의 손실을 볼 수 있다”며 “유럽 대륙 전체가 파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래서 IMF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현 [유로존] 위기에 면역력이 있는 국가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전 세계 경제가 1930년대와 유사한 위기 국면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유럽 지배자들은 위기를 진정시키려고 다양한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국가 간 갈등과 무능력으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유로존 내 최대 경제 강국인 독일이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지만, 독일 지배자들은 독일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다며 거부하고 있다.
독일 지배자들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야 하는 게 못마땅할 뿐 아니라 자신들의 능력으로 유로존 위기를 진정시킬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독일 재무장관 볼프강 쇼이블레는 “독일은 유로존 위기를 지원할 만큼 큰 나라가 아니다” 하고 말했다.
IMF가 유로존 위기에 개입하는 방안도 나오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IMF가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최대 약 4천억 달러인데, 유로존 위기 진정에 필요한 것으로 예측되는 2조 유로에 견주면 턱없이 부족하다.
IMF가 재원을 확충하려면 미국이 가장 많은 돈을 내야 하는데, 국가 채무 위기로 제 코가 석 자인 오바마 정부는 IMF의 재원 확충과 유로존 지원에 반대하고 있다.
결국, 유로존 지배자들은 노동자들에게 긴축·내핍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앞서 지적했듯이 해결책이 아닐 뿐 아니라 되레 위기의 악순환만 낳을 수 있다. 무엇보다 총파업, 광장 점거 등 계급투쟁을 격화시키며 정치적 격변을 불러오고 있다.
미국과 중국 ─ 발전하는 위기와 저항
세계경제의 또 다른 한 축인 미국의 2011년 경제 성장률은 연초의 전망치였던 3퍼센트에 훨씬 못 미치는 1.5퍼센트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서 노동소득의 비중은 계속 하락하면서, 미국 경제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소비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2011년 미국 총소득(자산소득+임금소득+정부이전소득) 중 노동소득 비중은 58퍼센트인데, 이는 지난 65년간의 평균치인 63퍼센트에 견줘 크게 떨어진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 노동소득이 평균 수준인 63퍼센트라면 미국 노동자들의 임금은 지금보다 7천4백억 달러가 늘어났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미국 노동자 1인당 5천 달러에 이르는 거금이다. 임금 감소와 높은 실업으로 미국의 공식 빈곤 인구는 15.1퍼센트로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인 6.6명당 1명이 빈곤층인 셈이다.
반대로, 미국의 국가 채무는 오바마 대통령 취임 때보다 5조 달러나 늘어, 2011년에 15조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규모다. 미국의 GDP 대비 국가 채무는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아일랜드(94.9퍼센트), 포르투갈(92.9퍼센트)보다도 높다.
게다가 유럽 위기는 미국 경제에 직격탄을 날릴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2012년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확률은 50퍼센트가 넘는다”며 “유럽 국가 한 곳이라도 디폴트(채무불이행)로 가면 미국 경제는 다시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계속되는 위기 속에서 커지는 빈부격차와 평범한 사람들의 고통이 지난해 미국 ‘점거하라’ 운동의 배경이었다. 따라서 올해도 정치적 양극화와 급진화는 계속될 것이다.
‘점거하라’ 운동
한편, 중국은 물가·부동산 안정과 성장률 견인, 임금·고용 확대라는 모순된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다.
중국의 성장률은 2011년 1분기 9.7퍼센트에서 3분기 9.1퍼센트로 떨어졌다. 2012년 성장률은 8퍼센트대로 떨어질 것이 거의 확실하다. 유럽 위기가 더 심각해지면 중국 수출이 20퍼센트가 줄어들어 중국이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중국 제조업 침체도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 11월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9로 전달(50.4)보다 떨어졌다. 중국 PMI가 50 미만(경기 후퇴)을 기록한 것은 지난 2009년 2월 이후 처음이다.
게다가 2008∼09년에 경기 부양을 위해 중국 은행들은 대출을 크게 늘렸는데, 그중 상당 부분이 지하철·도로·공항 건설 등 지방정부의 인프라 확충에 투입됐다. 그러나 지방정부들이 채무상환을 못해 중국 은행들에 심각한 타격을 줄 가능성도 여전하다.
수출 감소와 제조업 침체, 부실 대출의 급증은 중국 경제 성장률에 큰 타격을 주고, 실업 문제도 점차 커질 것이다. 2015년까지 도시 지역에서 일자리 1천3백만 개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특히 대졸자 중 2백만 명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빈부격차도 심각하다. 세계은행은 중국 지니계수가 0.5를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지니계수는 소득의 불평등을 측정하는 지표로 0.4가 넘으면 빈부격차가 매우 심각하다고 해석된다.
부동산을 비롯한 물가의 급등과 빈부격차 확대 등으로 말미암은 대중의 불만은 점차 행동으로 표출되고 있다. 최근 우칸촌의 투쟁은 그 좋은 사례다. 우칸촌 주민들은 바리케이드를 쌓고 관료들을 몰아내서 마을을 해방구로 만들며 투쟁해서 승리했다. 〈뉴욕타임스〉는 중국 시위가 지난 2003년 6만 건에서 2010년에는 18만 건으로 7년 만에 세 곱절이 됐다고 전했다.
한국 ─ 수출 둔화와 경기 침체
이명박 정부는 2011년과 2012년 경제성장률이 각각 3.8퍼센트와 3.7퍼센트에 그칠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7월에 4퍼센트대 성장률을 전망하던 것에서 말을 뒤집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최근의 경기 악화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기획재정부 장관 박재완은 “유로존 해법이 상반기에 가닥을 잡지 못하고 하반기까지 불확실성이 지속하면 3.7퍼센트를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으로 성장을 견인해 온 수출은 지난 11월부터 이미 하강세가 시작된 듯하다. 대EU 수출이 지난해에 견줘 13.8퍼센트나 감소해 11월에는 3억 8천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대중국 수출도 둔화하고 있다. 11월에 대중국 수출은 6퍼센트 증가했지만 증가율이 지난 4월(9퍼센트)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 세계 경제의 침체로 한국의 주요 산업들도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2008∼2009년 위기 때 심각한 타격을 받은 건설·조선·해운 산업에 더해 반도체·디스플레이·항공 산업이 특히 취약한 것으로 예측된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은 세계적인 과잉 생산으로 가격이 폭락하고 있다. 예를 들어 42인치 크기의 LCD 패널 가격은 2011년 동안 16퍼센트나 떨어졌다.
부동산 시장 침체와 미분양으로 건설 산업은 위기가 가중되고 있다. 1백 대 건설사 가운데 24곳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가 진행되고 있다.
2008∼2009년 위기 때 심각한 타격을 받은 조선과 해운 산업에선 2010년 이후 생산이 급증해 배가 넘쳐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해운 산업에 대규모 차입이 필수적이어서 유럽 금융 위기가 전 세계 해운 산업의 줄도산을 초래할 것이란 ‘공포’가 고조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자동차 산업도 안전하지 않다. 예를 들어, 르노삼성은 12월 24일부터 일주일간 휴무에 들어갔다.
순이익
수출 감소와 성장 둔화로 상장 기업의 순이익이 감소하고 있다. 상장회사 6백12곳 2011년 3분기 실적을 보면, 순이익이 8조 3천57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50.1퍼센트 감소했다.
2011년 3분기부터 수출과 산업 생산이 확연히 떨어지면서, 내년에 투자가 침체할 것으로 예상돼 취업자 증가도 낮아질 것이다. 한국의 주요 경제연구소들은 2012년 상반기에 유럽 위기가 진정될 것이라고 희망 섞인 예측을 하고 있는데도, 취업자 수는 20여만 명 정도만 늘어 2011년의 절반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제조업 취업자 수가 감소세로 돌아서는 등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일자리를 찾는 ‘2030세대’의 불만을 더욱 늘릴 공산이 크다.
게다가 실업 증가와 물가 상승으로 2011년 실질임금은 3.5퍼센트 감소했는데, 2012년에는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정부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성장률 견인과 물가 억제라는 모순된 목표로 곤란한 처지에 빠져 있다. 이명박 정부는 경기 둔화에 대처한다며 2012년 상반기에 예산의 60퍼센트를 지출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물가 상승을 억제하겠다는 목표와 모순된다.
임금 인하, 실업 증대 등 때문에 국내 주요 기업의 절반 이상은 2012년 노사관계가 지난해보다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경총, ‘2012년 노사관계 전망조사’)
물가가 오르고 실질임금이 떨어지면서 대출이 증대해 금융 불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기타 대출도 급증하고 있다.
기타 대출의 상당 부분이 자영업자 대출일 것으로 예상된다. 자영업자에 대한 은행권의 대출 요건이 강화되면서 마이너스 대출 등으로 사업 자금이나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영업자 수는 2005년 이후 해마다 감소했지만 2011년 들어 다시 13만 명이나 늘어났다. 이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한 40∼50대가 대부분이다. 2008∼2009년 위기 때 자영업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데 이어, 2012년에도 자영업자들이 다시 커다란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유럽 위기가 어떻게 결론이 나든 2012년 한국 경제는 올해보다도 나빠질 것이 확실하다. 재정·금융 위기는 한국의 금융 불안정성을 높일 것이고, 전 세계 산업 침체는 한국 수출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특히 중국의 위기는 한국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건설·조선·해운·반도체·디스플레이·항공 등 취약 산업에서는 각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가속화하면서 노동자 투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미 청소·학교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3·8 여성의 날’을 맞아 파업과 연대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민주노총도 1월 말 대의원대회에서 8월 정치 총파업을 선언하겠다고 한다.
물론 이런 계획들이 얼마나 실질적일지는 지켜봐야 한다. 경제 위기가 계급투쟁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하지 않고 주관적인 노동자들의 의식과 자신감이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따라서 경제 위기일수록 노동자 투쟁에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대응과 대안 제시가 중요해진다. 좌파는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서는 노동자 투쟁과 연대를 건설하면서, 투쟁의 승리를 위한 정치적 주장과 대안, 효과적 전술 제시에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