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노동운동의 현 단계 ─ 분석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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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에 맞선 2월 11일 이집트 총파업은 기대에 못 미쳤다. 그러나 이집트 노동자들의 파업과 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노동조건 개선과 재국유화를 요구한 대중교통 노동자 파업은 파장이 매우 컸다.
5월 대선을 앞두고 이슬람주의자들이 투쟁의 발전을 가로막고 독재 체제 인사들이 반격을 꾀하는 상황에서 이집트 노동자 운동의 가능성을 분석하는 것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이집트의 새로운 노동운동이 가진 장점과 단점, 노동운동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세력들을 앤 알렉산더가 살펴본다.
《이집트 혁명과 중동의 민중 반란 1, 2》(책갈피)의 공저자인 앤 알렉산더는 영국의 대학강사로 중동 문제 전문가이고, 사회주의노동자당이 발행하는 이론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의 편집부에서 활동하고 있다.
무바라크가 몰락한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집트 노동운동의 풍경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파업 물결의 에너지는 끊임없이 재충전되고 있다.
파업 건수가 늘었다 줄었다 하는 상황이지만 다달이 새로운 행동이 폭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옛 어용 노총은 비록 무너지진 않았으나 크게 손상을 입고 약화했다.
새로운 민주노조들이 매우 빨리 성장하고 있고, 수많은 노동자들을 규합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노조들 가운데 상당수는 노조 전통이 거의 없는 부문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민주노조의 성장은 고르지 못하고, 개별 작업장 수준을 뛰어넘는 단체를 만드는 일도 어려움을 겪었다.
노동자 조직의 성장은 혁명 운동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거대한 거리 시위와 광장 농성이 계속된 덕택에 새로운 급진적인 활동가 세대가 나타났다. 이러한 활동가들의 분노는 주로 집권 세력인 이집트군 합동참모본부의 장군들[최고군사위원회]한테로 향했지만, 최근에는 새로 선출된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개혁주의적인 이슬람주의 정당들한테로 향하고 있다.
서방 언론들은 자유주의적 엘리트들이 반란에 참가하는 것처럼 보도하지만, 대규모 거리 투쟁에 참가하고 있는 것은 주로 노동계급과 빈곤 계층의 젊은이들이다.
군부 통치를 끝장내자는 총파업 날인 2월 11일, 헬완과 만수라의 지방 대학들에서는 학생 수천 명이 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바로 공장 노동자와 공무원의 아들딸이었다. 그러나 직장과 거리의 혁명적 분위기 사이에는 온도차가 있다. 많은 학생이 시위에 나선 반면 파업 선언에 호응한 노동자는 매우 적었다.
이러한 간극은 극복될 가능성이 있다. 매우 중요한 싸움들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파업 요구 속에는 사회 변화를 바라는 노동자들의 기대가 담겨 있다. 노동자들은 안정된 일자리, 인간다운 삶을 위한 임금, 노동자들을 괴롭히는 부패한 관리자 제거를 바란다.
그러나 무슬림형제단*의 ‘자유와 정의당’ 정치인과 다양한 살라피주의* 정당의 정치인 들은 새로운 의회가 노동자들의 희망을 실현할 것이라는 모호한 약속을 반복한다.
묘수가 거의 없다
다른 한편으로 같은 정치인들은 이집트의 경제 엘리트, 국제 금융기구, 워싱턴에 있는 무바라크 정권의 오랜 후원자들한테 자신들이 노동자 파업을 막을 것이라고도 약속한다.
이러한 자가당착뿐만 아니라 세계경제 위기라는 상황 탓에 새로운 정부에게는 사태를 해결할 묘수가 거의 없다. 이집트는 아직 그리스 같은 형태의 금융 붕괴 상황에 이르진 않았으나, 이미 이집트 부채는 GDP의 70퍼센트에 이르고 신용평가 회사인 S&P는 지난 넉 달 동안 이집트의 신용 등급을 세 번이나 강등했다.
노동자 운동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이해하려면 반드시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봐야 한다.
첫째는 아래로부터 바라보는 관점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파업 활동이 직장 내에서 노동자들의 자신감과 조직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몇몇 부문에서는 각 작업장 노동자들 사이의 협력이 강력한 조직으로 발전해서 전체 산업 부문들에 걸쳐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운동을 ‘위로부터도’ 살펴봐야 한다. 이러한 관점은 국가와 정당의 활동이 노동자 조직의 발전 판도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고려한다. 이러한 두 가지 관점으로 신생 민주노조들을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민주노조들 내부에, 특히 새로 생겨난 전국적 연맹 지도부와 현장 사이에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파업 동력은 아직 강력하다. 혁명 전보다 노동자들의 파업 참가 수준이 엄청나게 높다. 지난해 9월 한 달 동안에만 50만~75만 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가했다. 교사들의 전국적 파업과 같은 최초의 거대한 연대 파업들이 벌어졌다.
또, 버스 노동자들, 우편 노동자들, 설탕공장 노동자들도 연대 파업을 벌였다. 공항 노동자들은 12월 말에 군인 관리자를 해임하고 민간인 관리자를 파견하라고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올해 2월 말에는 대규모 버스 파업이 벌어져 나일강 삼각주 전체를 마비시켰고, 법원 노동자 수만 명도 전국적 파업을 벌였다.
이집트 노동조합총연맹(ETUF)은 수십 년 동안 무바라크 정권을 떠받치는 버팀목 구실을 했다. 이집트 노총은 한편으로 직장에서 노동자들의 불만을 감시하고 억누르는 구실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복지 혜택을 분배하는 구실을 했다.
이집트 노총은 거대한 선거 기구이기도 했다. 이집트 노총은 ‘노동자와 농민’에게 할당된 의회 의석 50퍼센트를 차지하려고 여당 편에서 활동했다. 오랫동안 이집트 노총은 선거나 특정 캠페인을 위한 집회·시위에 조합원들을 버스로 실어 나르면서 독재 정권한테 ‘대중적 지지’라는 허울을 제공했다.
혁명 전에도 이집트 정부의 사유화 정책은 두 측면에서 이집트 노총을 약화시켰다. 이집트 노총은 사유화된 부문에서 수많은 조합원을 잃었고, 남은 조합원들은 노총이 노동자들의 이익을 거의 돌보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집트 노총이 적극적으로 반대했음에도 파업이 거대하게 벌어져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하는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집트 노총의 노동자 동원 능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무바라크에 맞선 항쟁이 일어났을 때, 이집트 노총 지도부는 독재 정권의 마지막 보루였다. 이집트 노총은 ‘낙타 전투’* 당시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대를 공격한 깡패들을 모으는 일이나 무바라크를 지지하는 ‘대중 시위’를 소집하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이러한 시도는 모두 실패했고, 수많은 노동자는 파업에 돌입해 독재자의 운명에 종지부를 찍었다.
파업의 고삐를 죄다
그러나 이집트 노총이 완전히 해체된 것은 아니다. 노총은 이제 파업 물결의 고삐를 죄려는 무슬림형제단의 시도를 돕고 있고 이 일에서 점점 더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무슬림형제단의 고위 인사들은 친무바라크 관리들과 소수 좌파, 노동자 대표들과 함께 2011년 8월에 이집트 노총의 임시 집행부로 임명됐다. 2012년 2월 말 무렵 무슬림형제단과 관리 출신의 간부들은 노동조합의 자유에 대한 법안을 함께 작성했고, 기존 노총을 대신해서 경영주들과 협상할 특별 위원회를 창설해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자고 의회에 제안했다.
이집트 노총 소속의 일부 노조들은 여전히 현장에서 강력한 힘을 행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육상운송 노조는 카이로 대중교통 기관에서 새로 생긴 민주노조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2월 11일 총파업 선언에 호응해 버스 파업을 벌이자는 요구를 좌절시키는 데 바로 이 육상운송 노조가 핵심적인 구실을 했다.
‘위로부터’의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국가가 민주노조들을 부분적으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이집트 노총에 가맹한 노조만을 인정하는 현행법과 본질적으로 모순이지만, 정권은 새로운 민주노조들을 합법화했다.
무바라크가 몰락한 이래 민주적인 두 노총이 생겨났다. 이집트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조합원이 1백40만 명 정도라고 주장한다. 이집트 민주노총의 위원장은 세무 공무원 노조의 지도자인 카말 아부 아이타다. 세무 공무원 노조는 혁명 이전에 생긴 최초의 민주노조였다.
그보다 작은 이집트 민주노동회의는 2백46개 노조를 가맹 단체로 두고 있다고 한다. 민주노동회의의 지도부는 전 금속노동자인 카말 압바스가 설립한 NGO 출신들인데, 이 NGO는 이집트 민주노총의 의사결정 기구에서 일하는 NGO 직원들의 구실을 둘러싸고 벌어진 심각한 논쟁 이후 지난 여름에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강력한 민주노조들은 대개 파업의 직접적 결과물로서 생겨났다. 예를 들어 카이로 대중교통 노동자들이 만든 민주노조는 지난해 5월과 9월 사이에만 네 차례 파업을 벌였다. 민주적인 교원 노조들은 교사 파업의 전국 지도부를 구성하는 데 핵심적인 구실을 했고, 파업에 참가한 교사 수는 새로운 노조들의 조합원 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 훨씬 많았다.
그러나 민주노조 설립이 합법화되는 과정에서 ‘유령’ 노조나 한 줌의 노조원만으로 노조를 만드는 일도 가능해졌다. 또, 현장의 직접적 압력에서 자유로운 노조 간부층이 출현할 여지도 생겼다.
현재 이집트 민주노조의 관료 기구는 매우 작고 재원과 상근 간부들도 매우 적지만, 이 노조들도 파업 노동자와 고용주 사이에서 중재자 구실을 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다. 이러한 간부들이 파업을 배신하는 데 이용할 메커니즘이 아직은 매우 취약하지만, 거래 시도나 책략은 조합원들의 수동성과 좌절감을 키우고 자신감과 조직력을 약화할 것이다.
현장 기반을 건설하기
민주노조들을 군부 통치를 둘러싼 갈등에서 비롯한 정치적 문제들과 관련지어 살펴보면, 민주노조의 지도부와 현장 사이의 단절은 또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민주노조의 지도적 활동가들은 군부에 맞서 파업을 벌이자는 혁명 활동가들의 호소를 강력히 지지했지만, 현장에서는 별로 성과를 얻지 못했다.
무바라크 몰락 후 1년이 되는 2월 11일을 기해 총파업을 선언했음에도 호응이 적었던 것은 앞서 말한 배경 때문이다. 이 총파업은 지난 1년 동안 거대한 시위와 가두 투쟁을 경험하며 급진화한 혁명적 활동가들이 호소했고, 이것은 혁명적 좌파 말고도 폭넓은 층의 사람들이 파업을 매우 강력한 무기로 본다는 점을 보여 줬다.
그러나 혁명 운동은 현장에서 정치적 파업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낼 만큼의 기반을 아직 닦지 못했고, 군부와 무슬림형제단이 합동으로 벌이는 파업 반대 캠페인에도 맞서야 한다.
정치적 파업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내려면 전체 혁명 운동과 진행 중인 노동자 투쟁을 결합시킬 수 있는 더 큰 혁명적 활동가들의 네트워크가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