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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급여 본인부담금 인상:
빈곤층의 밥그릇까지 빼앗는 역겨운 복지 후퇴

MB정부가 지난 4·11 총선 이후 기다렸다는 듯 민생법안에 대한 후퇴안들을 내놓고 있다. 그 연장선으로 지난 5월 31일 기획재정부는 관계부처 장관들과 재정분야 전문가를 모아 제1차 재정관리 협의회를 열어 '기초생활보장지원사업군 심층평가 결과 및 지출성과 제고방안'을 논의했다고 한다.

이날 논의에서 '기초생활보장 지원사업'에 대해 재정지출의 효율성·형평성, 근로능력자 관리 및 근로·탈수급 유인체계가 미흡하고, 의료서비스 과다이용의 문제가 있다고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획재정부는 낮은 본인부담금에 따른 의료이용의 도덕적 해이 가능성이 높아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억제하기 위해 의료급여 본인부담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어 4일에는 국무총리 주재로 '사회보장심의위원회'를 열고 기초-차상위 균형지원,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 해소, 기초생활 통합급여 체계 개편 등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한국보건사회연구소의 실태조사 보고를 통해 생계급여, 주거급여, 의료급여, 교육급여 등 현재 기초생활보장법의 빈곤정책을 전반적으로 개선할 '통합급여체계 개편' 이 논의됐다고 한다.

지난해 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기초생활보장법 중 '의료급여' 개편안은 의료급여 1종 수급자들이 입원할 때도 '본인부담 5퍼센트'를 부과하겠다는 것과 근로능력평가를 강화해 2종 수급권자의 진입을 제한하겠다는 내용이다. 사실상 정부부담을 줄이기 위해 저소득층의 본인부담을 늘리는 동시에 국민건강보험으로 떠넘기겠다는 것이다.

현재 의료급여 1종 수급자의 경우 입원 시 법정본인부담금이 없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선택진료비나 상급병실료 등으로 인해 의료급여 1종 수급자가 입원해도 본인부담이 전체 의료비의 8~15퍼센트 정도 든다. 여기에 법정본인부담 5퍼센트를 추가할 경우 전체 의료비의 20퍼센트 안팎까지 본인부담률이 올라간다.

도덕적 해이?

현 정부가 의료급여를 축소하겠다고 논의하기 이전에는 2006년 참여정부 당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미 의료급여 제도를 개악한 역사가 있다. 당시 유 전 장관은 의료급여 대상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동시대를 사는 다른 국민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받는 사람으로서 이런 정도는 감수할 수 있고, 또 감수해야 마땅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귀중한 그 무엇이 공짜로 제공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고 저는 믿습니다."

유 전 장관은 마치 의료급여 대상자가 모든 건강보험 재정 문제의 원인인 것처럼 수급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운운하며 '의료급여 대상자 본인부담제'를 신설했다. 이제 현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의 의료이용을 인위적으로 축소하고, 의료이용에 대한 책임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떠넘겨 온 개악정책을 또다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이들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담보로 2004~2006년간 평균 21퍼센트에 달하던 의료급여 진료비 증가율이 2007년에는 7.6퍼센트로 낮아져, 연간 2천4백억 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됐다.

이명박 정부도 "보편적 복지가 '칼끝의 꿀'처럼 위험한 것"이라고 하더니, 복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매년 보건복지 예산을 늘려 왔다"며 스스로 '복지 선진국'이라고 우스운 자화자찬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늘어난 복지예산 대부분은 기초노령연금 지급대상 확대분과 건강보험 재정부담금 등 어쩔 수 없이 늘어나는 '법정의무지출'들이었다. 오히려 빈곤·취약계층과 직결되는 사업비는 지속적으로 삭감했고 올 4월 사회복지통합전산망을 통해 복지수급자 일제정비조사를 통해 11만 6천 명에 이르는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정지시켰다.

정부가 빈곤정책이라고 만든 것이 사실상 가난한 사람들에게 본인부담금을 높이는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는 셈이다. MB정부는 부자들에게는 감세를 해주고 4대강 사업으로 대기업들과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재정적자를 키워 놨다. 그러더니 이제 와서는 재정 건전성을 들먹이며 복지 재정을 삭감하고 그 고통을 고스란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떠넘기려고 하는 것이다.

사각지대

지속적인 경제 위기로 빈곤과 불평등이 급속도로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비현실적인 부양의무자 기준과 재산 및 소득기준으로 인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정부발표 자료로 410만 명이 넘는다. 또 최저생계비 이하 빈곤층이 6백만 명으로 조사되고 있음에도 현재 기초생활보장보호법 수급자는 전 국민의 3퍼센트(1백57만 명, 2010년 기준)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로 봐도 이 정부는 수급자 보호와 탈수급에 대해 말은 하지만 실상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가혹한 정부인 것이다.

자유방임적이고 과잉진료를 하는 현재 의료시스템 하에서는, 기초생활 수급자가 복합적인 질병을 얻었을 때 본인부담금이 늘어나면 의료이용을 포기하는 이들은 더 늘어날 것이다. 이미 조사된 결과에서도 지원되지 않은 의료비 때문에 수급자가 의료 이용을 포기한 경험이 20~26퍼센트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나 이는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과잉진료가 얼마든지 가능한 의료서비스 공급체계에 있지 이를 이용하는 기초수급자에게 있다고 볼 수 없다. 이들이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주치의 제도와 같은 정책변화를 통해 의료이용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수급자의 도덕적인 해이를 거론하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낙인을 조장하는 본인부담금 인상 정책은 역겨운 책임전가다. 근본적인 과잉진료 공급체계를 개편하는 일에 대해서는 의료계 반발을 의식하여 무기력하면서도, 가난한 국민에게는 '도덕적 해이'라는 낙인을 전가시키는 짓이야 말로 이 정부의 도덕적 해이를 드러내는 진면목이다. 언제까지 약한 국민들에게 강하고, 강한 기득권에는 '약한 정부'의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변명을 늘어놓을 것인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본인부담금을 높여 의료급여 제도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겠다는 기획재정부의 이번 발표는, 자신들의 의사를 잘 표현하지 못하고 제도 변화에 저항하기 어려운 수급자들의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다. 정부는 경제 위기의 책임을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가시키려고 하는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도덕적 해이'라는 낙인을 함부로 찍어도 되는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 유독 엄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 정부의 도덕성은 과연 얼마나 높은가?

가난한 국민도 국민이다. 아니 가난한 국민을 적극 보호하고 존중하는 정책적 배려를 하는 것이야말로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다.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는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문제이다. 더 이상 가난한 국민 개인들에게 빈곤과 복지의 책임을 떠넘기는 '꼼수'로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지 마라. 가난과 불평등은 사회의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고 공적 책임을 강화시키는 방향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정부는 가난한 이들의 삶을 더욱 악화시킬 의료급여 본인부담금 인상 계획 논의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권과 생명권 평등권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이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더 많은 복지를 확대할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