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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새로운 단계와 좌파의 과제

유럽의 위기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2008년 시작된 경제 위기는 1930년대 이후 최악의 위기였다.

2010년과 특히 2011년에는 이에 맞선 투쟁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그리스, 스페인·포르투갈·프랑스·벨기에 등에서 대형 파업이 발생했고, 2011년 봄에는 포르투갈·스페인·그리스에서 ‘분노한 사람들’ 운동이 나타났고, 가을에는 미국에서 ‘점거하라’ 운동이 시작됐다.

이제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분노와 반란의 물결이 선거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유럽 대륙 전체에 강력한 이데올로기적·정치적·경제적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6만여 명이 모였던 멜랑숑의 마지막 대선 유세 유럽의 노동자들이 갈수록 왼쪽의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 Blandine LC (플리커)

프랑스에서는 올랑드가 우익 후보인 사르코지를 물리치면서 17년 만에 사회당 후보가 프랑스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리스에서는 이런 경향이 좀더 극적으로 표현됐다. 얼마 전 선거에서는 긴축을 지지하는 그리스 양대 정당인 그리스사회당과 신민주당의 득표율이 폭락했다. 이 과정에서 좌파, 특히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의 득표율이 급증했다.

또, 최근 이탈리아에서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정당과 연정 파트너였던 인종차별주의 정당 ‘북부동맹’이 선거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독일 지방 선거에서는 메르켈이 이끄는 집권당인 기독민주당의 지지율이 크게 줄었다.

사회 윗부분에서의 이런 정치적 변화는 두 가지 직접적 결과를 가져 왔다. 하나는 이데올로기적 변화다. 특히 올랑드의 승리는 긴축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는 숨막히는 합의를 부쉈다. 물론 올랑드가 자신의 약속을 지킬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예컨대 그는 여전히 재정 적자를 줄이겠다고 말한다), 선거 결과는 긴축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자신감을 높여 줬다.

또 다른 결과는 경제적인 것이다. 긴축 정책을 강요하는 것의 정치적 비용이 커진 덕분에 그리스는 유로존에서 탈출하기 일보 직전이다. 이것이 특히 이탈리아, 스페인과 프랑스 은행에 얼마나 심각한 금융적 충격을 가져올 것인지에 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사실은 긴축 지지 정당들의 지지율을 깎아 먹은 주된 요인이 무엇인지 잘 보여 준다. 그것은 유럽의 경제 위기다. 유로존에 속한 17개 나라 중에서 8개가 불황에 빠졌다.

독일 경제의 완만한 상승만이 유로존 전체가 더블딥 불황에 빠지지 않은 요인이다.(유로존의 대형 국가들 중에서 독일만이 2008년 위기 발생 이전의 경제 생산 수준을 회복했다.)

평균 실업률

이런 경제 위기는 엄청난 고통을 낳았다. 예컨대, 유로존의 평균실업률(10.9퍼센트)은 1999년 유로존 출범 이래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스페인과 그리스의 실업률은 25퍼센트(청년 실업률은 50퍼센트)다.

이것은 자본축적 과정의 재개에 필요한 동력인 이윤율을 회복하기 위해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두 가지 주요 메커니즘과 연관돼 있다. 하나는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을 낮춰 이윤율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이윤율을 충분히 확보할 수 없다. 또 다른 방책은 이윤이 남지 않는 자본을 파괴해 좀더 이윤율이 높은 생존 자본들이 번영할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2008년 경제 위기 발생 이후 각국 정부가 수요를 창출하고 ‘대마불사’ 은행과 자동차 회사 들을 구제한 결과 본격적 자본 파괴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덕분에 많은 유럽 기업은 ‘좋은 불황’을 겪고 있다.

올해 초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렇게 보도했다. “유로존 기업들이 보유한 현금 액수는 2조 유로에 달한다. 법인세 인하와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는 노동시장 개혁 덕분에 가계들에 비해 기업들의 소득이 크게 늘었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투자하지 않고 있다. 수익 창출이 가능한 투자처가 별로 없기 때문에 유럽의 기업 투자 수준은 60년 만에 최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이 넘쳐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면, 은행들은 정반대 문제를 겪고 있다. 유로존 은행들은 사실상 파산 상태인데 이것은 그들이 2001∼2008년 자산 거품에 투자하면서 만들어진 막대한 ‘악성 부채’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2011년 말 유럽중앙은행이 1조 3천억 유로를 저금리로 은행들에 쏟아부은 덕분에 유럽연합 은행 체계의 붕괴는 막을 수 있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수익을 못 내는 엄청난 액수의 자본이 아직도 은행 장부에 쌓여 있다. 이것은 은행뿐 아니라 유럽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럽 남부 국가들이 현재 겪고 있는 경제 불황과 고통의 수준은 동유럽 국가들이 소련 몰락 후 1990년대 ‘충격 요법’ 아래 겪어야 했던 것에 육박한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서유럽 진영에서 그토록 심각한 불황을 겪은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바로 이것이 전통적 정당 지지 체계를 뒤흔들면서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양극화

양극화의 수혜를 얻고 있는 것은 좌파만이 아니다. 프랑스 대선에서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이 6백50만 표를 얻었다. 그리스에서는 ‘양복 입고 점잔 빼는 파시스트 정당’인 국민전선과 달리 전투형 파시스트 정당인 황금새벽당이 최초로 의회에 진출했다.

인종차별주의자와 파시스트 들의 약진은 좌파가 유로존 위기에 성공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을 때 앞으로 재앙이 발생할 수 있음을 잘 보여 준다.

좌파 진영에서는 두 가지 경향이 나타났다. (신자유주의에 깊이 헌신한 덕분에) 권좌에서 밀려났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무제한적인 신자유주의에 어느 정도 반대 의견을 표명하면서 지지율을 약간 회복할 수 있었다. 따라서 사민주의를 죽은 세력으로 폄하하는 주장들은 잘못됐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동시에, 좀더 많은 사람이 급진적 대안을 찾으면서 주류 사민주의 왼쪽에서 대안 세력이 성장했다. 이 경향은 프랑스와 그리스에서 가장 명백히 나타났다. 프랑스 대선에서 좌파연합 후보로 나온 멜랑숑은 선거 운동 기간 중에 열렬한 지지자 수만 명을 몰고 다녔다. 반자본주의신당(NPA)의 프랑수아 사바도는 이렇게 말했다. “멜랑숑의 선거 운동 기간 동안에 대중적 영향력을 가진 좌파 개혁주의 세력이 부활했다.”

사바도는 이런 부활의 이유 중 하나로 이런 점을 지적했다. “(프랑스뿐 아니라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에서) 공산당들이 대중적 영향력을 회복했는데, 그것은 이 공산당들이 오랫동안 집권한 적이 없었고, 각종 사회 기구와 노조 조직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리스 시리자의 핵심 구성원들은 옛 친소련 그리스공산당에서 분열해 나온 그리스 공산당(KKE)의 한 분파에서 유래했다.(다만 시리자는 KKE와는 달리 노조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현재 유로존 위기가 불러온 급진화와 위기에 반대하는 저항은 반자본주의 혁명적 좌파보다는 좌파 개혁주의 세력의 영향력을 높였다. 이것은 당연하다. 대중은 자신이 전통적으로 충성하던 정당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일차적으로 좀더 급진적 형태의 개혁주의에 이끌리는 경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노동자들이 자기 힘에 의존해 싸워야 하고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스스로 사회를 통제해야 한다는 혁명가들의 메시지보다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변화가 가능하다는 주장이 아직은 좀더 수월해 보이고 실현 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선거들로 표현된 양극화는 유럽 전역에서 계급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 줬다.

따라서 앞으로 중대한 전투들이 벌어질 것이고, 그 투쟁들은 급진화에 왼쪽으로 가속도를 붙일 수 있다. 특히 혁명보다는 다양한 형태의 개혁주의적 해결책들이 현실의 실험을 받게 될 나라들에서 그럴 것이다.

혁명가들은 지금 멜랑숑이나 시리자에게 표를 던지고 기대를 거는 사람들과 끈기를 가지고 연관을 맺으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 사이에도 혁명가들은 늘 일자리 파괴, 임금 인하나 나치들에 맞선 투쟁을 주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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