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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집트에서 무슬림형제단의 무르시가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으로 취임한 상황에서, 이 글은 이슬람주의를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은 무엇인지 다루고 있다.

이슬람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슬람주의를 단지 보수반동적, 과거 회귀적 이데올로기로 보는 관점이다. 〈한겨레〉 등 자유주의자들이 대표적이지만 일부 좌파도 공유한다. 〈한겨레〉는 이집트 대선을 두고 “내용면에서는 과거로의 회귀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며 사실상 군부와 무슬림형제단이 거의 차이가 없는 듯 묘사했다.

무르시 당선을 기뻐하며 거리로 나온 이집트 민중 이슬람주의의 모순적 성격 때문에 무르시는 옛 군부와 기층 민중 사이에서 동요할 것이고, 혁명을 낳은 조건이 지속될 것이다. ⓒ사진 출처 Zeinab Mohamed (플리커)

이런 관점은 대통령으로 군부가 지원하는 샤피크가 되든 무슬림형제단이 되든 상관없다면서 방관하거나, 혁명이 다 끝난 듯한 비관주의를 조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집트 지배계급을 대변하는 샤피크의 당선은 광폭한 반혁명 책동에 녹색등을 켜주는 일이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슬람주의를 피지배계급의 진보적, 반제국주의적 운동으로만 보는 관점이다. 이 관점의 실천적 결론은 이슬람주의에 대한 무비판적 지지다. 예컨대 일부 좌파는 2009년 이란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면서 운동을 탄압하는 이란의 이슬람 정권을 지지했다.

이런 두 가지 오류는 이슬람주의의 계급적 성격과 모순을 파악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한다. 이슬람주의는 현 사회의 문제점들을 이슬람 사회를 재건해서 해결하자는 정치 신조다. 이슬람주의는 자본주의(제국주의)의 충격에 상처받은 사회에서 등장했다.

1757년 영국 동인도회사가 벵골 지역을 장악한 이래 서구 열강은 이슬람 세계를 체계적으로 지배·수탈·억압했다.

제국주의에 상처받은 사회

제국주의의 지배와 자본주의의 발전이 이슬람 세계의 모든 사회 세력에 똑같은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옛 지배계급의 일부는 몰락했지만 제국주의와 결탁한 다른 일부는 막대한 부를 쌓고 서구식 생활을 즐기게 됐다. 일부 농민은 농업 자본가로 변모해 성공했지만, 대다수는 일자리를 찾아 도시를 전전하는 빈민이 됐다.

이슬람주의는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제국주의, 그리고 제국주의와 결탁한 토착 엘리트들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며 등장하고 성장했다. 따라서 이슬람주의가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 시대로의 회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슬람주의자들은 대체로 현대 산업과 현대 기술을 받아들인다.

이슬람 사회 재건은 부조리가 만연한 현재 사회를 이슬람의 정신에 맞게 개조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다양하게 해석 가능한 모순된 이데올로기만으로 이슬람주의를 판단하는 것은 협소하다. 핵심적으로는 이슬람주의의 사회적 기반을 이해해야 한다.

이슬람주의자들의 계급적 구성은 다양하다. 그러나 이슬람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기반은 아랍 세계의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등장한 신중간계급과 학생들이다. 이들은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제국주의와 이들에 협조적인 토착 엘리트들 때문에 자신들의 야망이 좌절됐다고 느꼈다. 이슬람주의는 이 프티부르주아지의 열망을 주로 대변한 것이다.

특히 학생 출신 실업자들은 대학 밖의 불만 가득한 수많은 청년들과의 연결 통로가 됐다.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은 정부가 손 놓고 있던 기초적인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빈민들 사이에서 이슬람주의 사상을 널리 퍼뜨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슬람주의가 처음부터 아랍 저항운동의 지배적인 세력이었던 것은 아니다. 세속적 좌파들(아랍 민족주의자들과 공산당)의 무능이 이슬람주의의 성장과 큰 관련이 있었다.

예컨대, 이집트에서 이슬람주의 운동이 처음 발전한 것은 약 1920년대 말 하산 알 반나가 무슬림형제단을 창설하면서였다. 그때는 세속적 민족주의 정당인 와프드당이 영국의 이집트 지배에 도전하지 못하는 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환멸을 느끼던 때였다.

그러나 이슬람주의는 대중을 착취하고 지배하는 계급·국가 들에만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세속주의, 이슬람의 ‘정숙’ 관념을 지키지 않는 여성, 좌파, 소수 민족이나 종교 집단에도 맞서 싸우며 반동적 태도를 취할 때가 있다.

또한, 이슬람주의는 급진적 미사여구를 동원해 기존 질서를 공격하면서도 프티부르주아지와 사적 소유 원칙 자체를 위협하는 일은 의도적으로 회피한다. 이런 이슬람주의의 모순적 성격은 핵심 활동가들의 계급적 기반에서 비롯한다. 프티부르주아지 계급은 일관되고 독자적인 정책을 추구할 수 없다.

모순적 성격

이슬람주의의 모순적 성격은 ‘이슬람 사회 재건’이라는 목표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에서도 드러난다. 그것은 주요한 사회 구조는 그대로 둔 채 종교적 관행들을 부활시키는 것만을 뜻할 수 있다. 그래서 일부 이슬람주의자들은 위기를 이용해 옛 지배계급과 거래해서 그들이 ‘이슬람 가치들’을 시행하게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전망은 특정 종류의 이슬람주의를 지지하는 기존 사회 집단, 청년기에는 급진 이슬람주의자였으나 이제는 신분 상승에 성공한 사람들의 욕구에 딱 들어맞는다. 그러나 그것은 가난한 학생들이나 학생 출신 대중, 도시 빈민가에서 그들과 뒤섞여 사는 농민 출신 대중의 열망에는 맞지 않는다.

이집트에서 정권을 잡은 무슬림형제단은 이제 진정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한편에서는 군부가 옛 질서를 수복하려는 압력을 넣을 것이고, 대중은 여러 개혁을 시행하라는 압력을 넣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슬림형제단은 갈팡질팡할 것이다. 심지어는 권력 유지를 위해 군부와 더 손 잡으며 운동을 단속하려 들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체제 자체에 강력히 도전하지 않는 한 무슬림형제단은 자기 지지자를 포함한 대중의 개혁 열망을 충족시키지 못하리라는 점이다. 이로 말미암아 무슬림형제단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긴장이 조성될 것이고, 그런 긴장은 지지자들 사이의 격렬한 이데올로기 논쟁으로 표출될 것이다.

사회주의자는 이런 모순들을 이용해서, 더 좌경적인 일부 이슬람주의자들이 이슬람주의 사상과 조직에 충성하는 것을 의심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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