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민주당과 포용정책2.0:
진정으로 한반도 평화를 진전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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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의 집권 기간 내내 남북 관계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이명박 정부는 인도적 지원조차 중단하는 등 대북 강경 노선을 고집했다. 정부 관계자들의 입에서 ‘선제 타격’ 같은 얘기가 서슴지 않고 튀어 나왔고, 북한도 이명박을 가리켜 “역적”, “괴뢰 도당”이라며 반발했다.
남북 간의 긴장은 그저 말에 그치지 않았다. 금강산 피격 사건에 이어 서해 교전이 터지고, 2010년 연평도에서 처음으로 남북이 상호 포격을 하는 사태까지 터졌다.
지금도 남북 관계는 매우 불안정하다. 이명박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핑계 삼아 은근슬쩍 미국의 MD 체제에 참가하려 하면서, 미국의 동의를 얻어 미사일 사거리를 최대 8백 킬로미터까지 연장했다. 또한 한일 군사협정을 몰래 추진하는 등 한미일 군사동맹을 발전시키려 했다.
당연히 이런 짓들이 북한을 더욱 자극해 한반도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처럼 남북 관계가 너무 엉망진창이니, 대북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점차 높아져 왔다.
특히 이종석, 임동원 등 김대중·노무현 정부 출신 외교·안보 라인 인사들이 중심이 돼, 다시 대북 포용정책으로 돌아가자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즉,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포용정책1.0’의 성과가 훼손됐고 한반도 주변 환경도 변했으니, 이제 포용정책2.0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포용정책2.0은 백낙청 교수가 주도하는 이른바 ‘2013년 체제론’의 핵심이며, 문재인의 대북 정책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포용정책2.0의 골자는 기존의 포용정책에 더해, 남북연합의 건설, 남북 협력에 대한 시민 참여의 획기적 강화 등 보완책을 마련하자는 데 있다.
“평화-경제-복지의 선순환 시대의 실현”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남북 관계의 진전이] 국내 민주주의와 경제·복지 발전을 촉진하는 요소로 작용하도록” 하겠다며, 이 문제들을 총체적인 국가 전략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더 나아가 포용정책2.0은 “연립정부 내지 민주진보진영 연합의 근거”이기도 하다.
이명박의 호전적인 대북 정책에 비해, 남북이 교류·협력하면서 화해하고 평화를 실현하자는 구상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 남북 간 대결보다는 화해가 상대적으로 남북 노동자 계급에게도 더 도움이 된다.
그러나 포용정책은 단지 평화·화해의 구상만을 담고 있지 않다. 포용정책은 남한 국가가 북한 국가에 절대적인 우위에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에 두고, 남북 관계를 남한 주도로 이끌려는 구상에서 비롯됐다. ‘포용정책의 전도사’라는 전 통일부 장관 임동원은 1999년 1차 서해 교전에서 남한이 승리한 것을 두고 “햇볕정책이 결코 ‘유화정책’이 아니라 ‘강자의 정책’임을 국내외에 과시하는 기회가 됐다”고 평가했다.
강자의 정책
남한의 국력 우위를 바탕으로 북한이 시장 자본주의적 개혁·개방을 하도록 유도하겠다는 포용정책에서 강력한 군사력은 기본 전제다. 실제로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국방비의 연평균 증가율은 이명박 정부보다 훨씬 더 높았다. 지금도 문재인은 남한의 미사일 사거리 연장을 지지한다. 이것이 북한에 가할 위협과 그에 따른 반발은 엄청난데 말이다.
북한 개혁·개방의 목적도 평화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남한 민중에게 통일은 2천5백만 명의 민중과 함께하는 것이지만, 남한 자본가들에게는 마음껏 착취할 수 있는 노동력 2천5백만 명을 새로 얻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은 “북한 동포들한테는 약간 미안한 얘기지만,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고 땅값이 싼 북한 지역에 공장들을 지어서 북한의 산업을 일으키면 남북이 서로 윈윈 하는 거다” 하고 주장한다.
게다가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 남북 경제 협력이 가장 활발할 때조차 서해 교전 등 군사적 긴장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핵심에는 미국의 패권 유지 전략이 있는데, 남북 경협의 발전과 포용정책은 그 틀 내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물론, 포용정책은 냉전 해체 후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동아시아 질서에 대한 대응책이다. 정세현은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경제 강국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이 … 지금과 같은 분단상태로는 잘못하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으로 희생당할 수가 있다”고 염려했다.
그래서 남한 주도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고, 국력을 강화해 동아시아 지역에서 ‘제 몫’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자주외교론, 자주국방론, 한반도경제론 등과 연결돼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여전히 세계 최강 패권 국가인 미국과의 동맹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동북아 균형자론을 앞세운 노무현 정부도 세계 질서가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친미적 자주’라는 모순된 주장을 내놓았다.
그래서 민주당은 집권 기간에 언제나 실천에서는 한미동맹을 넘지 않았고 북핵 문제 등에서 대체로 미국과 보조를 맞췄다. 오히려 한미동맹을 강화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라며 이라크에 파병을 했고, 자주 국방을 명분으로 주한미군의 평택기지 확장에 동의하고 전략적 유연성도 합의해 줬다. MD 참가의 물꼬를 트고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시작한 것도 바로 노무현 정부 때였다. 이런 조처들이 모두 한반도 평화에 큰 위협이 됐다.
지금도 이종석·임동원 등이 속한 한반도평화포럼은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과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이 한미동맹과 함께 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미국의 제국주의 전략에 협력하고 대중·대북 압박에 동조하면서 한반도에서 긴장을 해소한다는 것은 완전한 모순이다.
오늘날 한반도 평화는 중미 갈등, 동아시아 군비 경쟁 등 지역적·세계적 차원의 문제들과 깊이 연관돼 있다. 따라서 문재인과 민주당처럼, 격화하는 제국주의 경쟁에 맞서기는커녕 줄타기를 하면서 군비 증강을 통해 긴장 고조에 일조하는 방식으로는 한반도 평화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지난 포용정책의 경험은 우리에게 남북 화해가 자동적으로 국내 민주주의와 진보적 개혁을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는 점도 보여 줬다. 물론 남북 화해 무드가 국내에서 개혁을 요구하는 투쟁을 건설하는 데 더 좋은 조건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남한 민중의 투쟁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
그 점에서 포용정책의 주창자들이 계급투쟁을 남북 관계 진전에 종속시키려고 하는 것은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계급 연합의 고리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강제로 분단된 한국에서 남북화해협력 노선은 포퓰리즘적(다계급적) 기반을 갖고 있다. 그래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포용정책에 대한 기대를 이용해 국내에서 노동자 투쟁을 억제하려 했다.
이들은 민족 화해가 우선이라면서, 특정 계급의 이해관계를 앞세워서는 안 된다고 강변했다. 그리고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직후 김대중 정부는 롯데호텔·사회보험 노동자들의 파업을 잔인하게 짓밟았고, 노동자 투쟁은 남북 화해 무드를 해치는 짓으로 비난받았다. 안타깝게도 진보진영과 민주노총의 일부 지도자들은 이런 논리에 휘둘려 투쟁을 자제하곤 했다.
지금도 포용정책2.0에 기반한 2013년 체제론은 계급 연합의 고리로 내세워지고 있다. 포용정책2.0에서 강조하는 “남북 정당 참여 확대”, “시민사회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 등은 바로 이것과 관련돼 있는 것이기도 하다. 진보진영 일부도 ‘6·15 선언과 10·4 선언의 이행’을 근거로 연립정부 수립을 추구한다.
그러나 진보진영은 계급을 뛰어넘은 민족적 단결을 가장 중시한 나머지, 계급투쟁을 여기에 종속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불법 파견과 노동자 탄압을 일삼는 현대차 정몽구 같은 자와, 정당한 권리를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고공농성까지 해야 하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어떻게 같은 민족으로서 화해할 수 있겠는가. 계급투쟁이야말로 진정한 사회 진보의 동력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포용정책2.0과 지배계급 일부에 의존해서는 한반도 평화도 실현할 수 없다. 갈수록 첨예해지는 제국주의 경쟁 그 자체에 맞서려는 생각이 전혀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국주의와 친제국주의 지배자들에 맞서는 동아시아 노동계급과 피억압 민중의 계급적 단결을 통해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평화를 실현하려는 진보의 독자적인 대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