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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천의봉 철탑 일기 ②:
“승리할 때까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현대차 비정규직 천의봉, 최병승 동지가 15만 4천 볼트 전기가 흐르는 송전탑에서 비와 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목숨을 건 철탑 고공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천의봉 사무국장은 매주 2차례 정도 철탑 일기를 쓰고 있다.

이 기사를 읽기 전에 “현대차 천의봉 철탑 일기 ①: 15만 볼트 송전탑에서 비를 맞으며”를 읽으시오.

아침부터 분주하다. 울산공장 포위의 날, 우리 해고자 동지들이 전국에서 몰려오는 손님 맞을 준비로 어느 하루보다 바쁘게 움직인다. 바쁜 일손을 도와줄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래를 내려다본다.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현대자동차 2공장 라인순회를 하러 갔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오늘은 울산, 아산, 전주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두 하루 파업을 하고 철탑으로 모이는 날인데, 내가 일하던 2공장의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가장 조합원이 많았던 2공장이다. 예전에는 자부심이 많았는데, 지금은 눈치를 보는 사람이 더 많다. 한편으로 보면 이런 조합원들을 이해할 수 있는데, 또 한편으로는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행진

‘힘내라 비정규직’ 현대차 울산공장 2차 포위의 날 약속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조합원들이 하나 둘 들어오면서 허전했던 주차장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정문에서 집회를 마친 조합원들이 오색만장을 들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얼마나 모일까 걱정이었는데 행진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내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집회 시작과 동시에 철탑 위에서 집짓기 공사가 시작됐다. 흔들리는 철탑에 휘청거리는 몸을 밧줄을 동여매고, 좁다란 판자에 앉아 매미처럼 매달려 있는 우리들이 안타까웠는지 플랜트노조 선배들이 철탑 위로 올라왔다.

뚝딱뚝딱... 금속노조 집회가 마무리될 무렵, 하늘을 쳐다보던 나는 ‘우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두 다리를 뻗을 수조차 좁다란 합판 위에서 열흘을 보냈더니, 온 몸이 쑤시고 저려왔는데, 순식간에 머리 위에 축구장만한 집이 지어진 것이었다.

들뜬 마음에 밑에 있던 짐을 하나하나 위로 올려 보낸다. 빨리 이 불안한 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내 아래에 있는 병승이 형한테 짐 싸서 빨리 올라오라고 얘기하고 내가 먼저 새 둥지로 이사를 왔다.

새 집

한편으로는 진짜 고마웠는데 또 한편으로 생각하니 얼마나 오래 있으려고 이렇게까지 집을 지어주는 것일까, 이러다 이 겨울을 철탑 위에서 보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도 잠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제대로 눕지도 못해 다리에 계속 쥐가 났던 시간을 생각하니 신이 났다.

새 집으로 올라오자마자 한 발로 굴러본다. 음~ 역시 튼튼하구나. 드디어 하루하루 불안에 시달려야 했던 나는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몇 분 뒤 병승이 형도 올라오더니 환호성을 지른다.

10월 17일 밤 우리는 같은 마음으로 올라왔지만 공간 때문에 아래층과 윗층으로, 이산가족으로 지냈어야 했다. 이제 같이 살 수 있다니 안도의 한숨이 나오기 시작했다. 쪽방에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한 기분이랄까?

짐을 풀고 문화제를 즐기려는 순간 카톡에 ‘박현제 지회장 구속영장 기각’이라는 소식이 뜬다. 법원이 우리 손을 들어주기 시작한 거다. 앞으로 우리 싸움이 탄탄대로구나 하는 생각과 철탑 아래에서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에 내 몸은 나도 모르게 덩실거리고 있었다.

배고픔도 잠시, 새로 이사한 집과 지회장 석방 소식을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알린다고 내 손가락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철탑 아래에 있는 조합원들에게 우리 집들이에 초대한다고 장난도 해본다.

새 집으로 이사도 했겠다, 오늘 밤은 무조건 재밌게 노는 거야 하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불법파견 정규직화에 맞서 싸워왔던 지난 10년의 시간과 우리 조합원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어른거렸다. 여기서는 울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우리가 승리했을 때 승리의 눈물을 흘리겠다며 눈물을 삼킨다.

갑자기 소주 생각이 간절해진다. 철탑 밑에서는 박현제 지회장 석방 소식에, 전국에서 ‘비정규직 힘내라’며 달려온 동지들의 연대에 행복한 술잔이 돌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철탑 밑으로 내려가 동지들을 부둥켜안고 술잔을 들이키고 싶었다.

그러나 어쩌랴. 침낭 속으로 들어가 하늘을 바라본다. 밤하늘의 별은 맑기만 하다. 철탑 아래의 노랫소리가 조금씩 잦아들며 나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잠자리에 든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동이 트기 시작했다. 열흘 만에 첫 숙면이었다.

열흘 만의 첫 숙면

밤새 철탑을 지키던 조합원들이 이제 막 새우잠을 든 것 같은데 빗발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얼른 우비를 꺼냈다. 일인용 비닐 천막도 친다. 철탑 밑에서는 출근 선전전이 끝나고 아침식사를 마친 조합원들과 연대 동지들이 집에 갈 채비를 하고 있다.

순간 머리 속에는 이 많은 동지들이 가고 나면 이 허전함을 어떻게 이겨낼까 하는 생각이 불현 듯 스친다. 서울에서 열리는 비정규직 없는 일터와 사회 촛불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또 먼 길을 떠나야 하는 동지들이 손을 흔든다. 아쉽고 허전하고,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몸이 으스스 떨려와 라면 국물 생각이 났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라면을 끓였다. 평소에 등산을 좋아했었다. 정상에 올랐을 때 먹던 라면 맛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철탑에서 먹는 라면 맛은 그것을 능가했다.

열흘 동안 이산가족이었던 병승이 형과 오붓하게 비닐 천막에 누워 그 동안 못다 한 얘기를 나눴다. 그런데 비닐 천막에서 물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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