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천의봉 철탑 일기 ③:
“투쟁만이 현대차의 벽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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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비정규직 천의봉, 최병승 동지가 15만 4천 볼트 전기가 흐르는 송전탑에서 비와 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목숨을 건 철탑 고공 농성을 160일이 넘게 이어가고 있다. 다음은 천의봉 사무국장이 지난 1월에 쓴 일기들이다.
이 기사를 읽기 전에 “현대차 천의봉 철탑 일기 ②: “승리할 때까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를 읽으시오.
1월 1일
새해 첫날이다. 우연의 일치인가 마치 짜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77일로 새해 아침을 연다. 행운의 징조다. 철탑 원래 주인인 까치도 계속 지저귄다. 올해 뭔가 잘 풀릴 것 같은 행운의 징조다.
오늘은 새해 첫 이벤트로 경향신문에서 크레인을 동원해 인터뷰 일정을 잡았다. 크레인도 있을 때 우리 동지들한테 60만 원짜리 호텔을 무료 개방하기로 했다. 70여 일 만에 동지들을 위에서 내려다만 봤지 바로 앞에서 보니 감회가 남다르게 느껴진다. 어떤 감정이랄까 오랜만에 사람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많은 동지들과 같이 하면서 좀 더 많은 동지들을 보고 싶었건만 야속한 크레인 기사는 우리들의 만남의 시간을 재촉한다. 아휴... 얼마 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인데 개인적인 심정으로 지회에 얘기해서 우리가 크레인을 1시간 더 임대하고 싶은 마음이다. 참자 참어. 무엇이든 아쉽게 해야 나중에 더 소중하다는 걸 알지. 아쉬움을 뒤로 하고 1시간여 만에 동지들과 상봉을 마쳐야 했다.
법륜 스님도 신도들과 함께 찾아와서 인사도 하고 그런다. 2달여 동안 문명의 혜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나는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는데 주변 사람들 얘기를 들으니 보통 유명한 사람이 아니란다.
나는 불심이 강하다. 어렸을 적 할머니나 어머니 따라서 절에 가면 마음이 포근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기억 때문에 심신이 지친 내 몸은 절로 많이 향했던 것. 어머니가 태몽을 황금 부처가 색동 구슬을 안겨주는 꿈을 꿔서 절에 큰 스님이 내 이름을 지어주셨던 탓이기도 하다. 여하튼 많은 인파가 몰려와서 썰물 빠지듯 훅하고 빠지니 되레 마음은 씁쓸하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지 않던가.
옆에 3공장은 70여 일 동안 불 꺼진 모습을 한 번도 못 봤다. 그러나 연말 31일에는 야간 조 근무마저 없어서 공장 안도 휑하기만 했다. 서울은 눈이 온다 하던데 쌍차 동지들, 아산·유성 지회장 동지들이 있는 농성장이 걱정이 된다. 괜히 내가 남쪽 나라 울산에 살고 있는 게 미안해진다. 내일부터는 우리의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달려가자.
1월 3일
새해 첫 출근인 오늘 울산이 영하 8도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바람은 잔잔했으나 공기부터 다른 공기였다.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예사롭지 않은 아침 공기였다. 체감온도는 영하 15도 정도 되는 거 같다. 평상시 같으면 천막 안에 습기가 얼어붙은 얼음은 손난로를 잠깐 피워놓으면 열이 전달돼서 바로 녹아 떨어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손난로를 30분이 넘게 켜놨는데도 그 주변만 녹고 나머지는 요지부동이다.
오늘 하루 한파 대책을 세워야겠다. 되도록 밖에 나가지 말고 안에서 할 수 있는 걸 찾아 봐야겠다. 아침에 유성 홍종인 지회장이 사진을 보내왔는데, 농성장에는 고드름이 달려 있었다. 어렸을 적에나 처마 끝에 달린 고드름을 봤지 아휴, 내가 춥다 소리하면 안 될 거 같다.
오후 3시가 지날 무렵 회사와 한전이 낸 퇴거가처분과 집회금지가처분이 법원에서 받아들여 집행관들이 고시를 부착하고 갔다. 고작 80일도 안됐는데 속전속결이다. 있는 놈은 법의 보호도 받고 법을 지키라는 사람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10년 동안 불법파견 노동자를 사용하고 아직까지 법의 심판대에 서지 않은 정몽구, 노동자의 깡다구로 오늘부터 누가 이기나 해 보자.
그리고 오늘 많은 친구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인터넷에서 보고 전화한 거란다. 평소에 연락도 안되던 놈이 전화가 와서 나를 걱정해주고 있다. 친구들 위로를 받으니 차갑기만 하던 겨울 바람도 좀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여기 올라오면서 친구 2명이 결혼을 했는데 가지도 못하고 전화로만 축하를 해줬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여서 내 맘은 편할 리가 없었다. 밤도 무르익어가고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그나저나 안에서 조합원들이 신규채용 징계의 압박에 흔들리지 말아야 될텐데... 난 항상 우리 조합원들을 믿는다. 내 자신을 못 믿는 거지...
1월 5일
아침부터 왜 이리 설레는 것일까? 마치 어릴 때 소풍 가기 전날 밤처럼. 오늘은 희망버스가 오는 날이다. 재벌들의 악랄한 탄압에 분노에 찬 시민들의 자발적인 행동 아닌가. 150만 평의 공장 안에는 비정규직 무법천지의 공장, 절망의 공장에 희망을 불어주는 시민행동대다. 한진중공업은 자발적으로 나선 시민들이 5차례나 희망을 실어 날랐다. 이로 인해 85호 크레인에서 부처님이 될 뻔한 김진숙 지도위원을 안전하게 우리 품으로 구출했고, 악질 조남호에게도 복직 명령을 받아냈지 않던가... 조남호의 말장난에 또 한 명의 동지를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보냈으니... 이제 시민들이 다시 나서야 할 차례다.
3시가 넘어갈 무렵 전국에서 희망을 실은 버스는 한 대, 두 대 도착하기 시작했다. 연령 때도 각계각층이었다. 추운데 아이들을 중무장시키고 나들이 온 가족, MT 온 분위기의 대학생들, 머리가 서리 앉은 것처럼 백발의 노약자들, 휠체어를 타고 희망을 불어 넣어주겠다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오신 장애인들, 형형색색의 깃발로 인해 어느 순간 주차장은 희망으로 가득 메워지고 있었다.
저기 옆에서는 이제 5~6살 먹은 꼬마 아이들이 비정규직 철폐 구호를 외친다. 순간 할 말을 잃어버린 나. 아이들이 비정규직이 뭔지 알까? 아님 엄마, 아빠 따라다니면서 몸에 익숙한 말일까? 그래도 저 아이들이 대견하기만 하다. 한편으로 생각하니 막막한 것도 있다. 저 애들이 커서 사회에 나올 때는 정규직 일자리가 없어 또 다른 비정규직 노예 형태로 살아가야 한다니, 이 사회를 혁명을 일으키지 않고서야 천민 비정규직 제도를 없앨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목이 멘다.
소한의 날씨지만 많은 동지들의 온기가 있어 그런지 춥게 느껴지지 않는다. 밑에 분들이 많이 추워 보여서 위에서 보는 내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시간아 여기서 멈추어 다오. 혼자만의 주문을 외워보곤 한다. 썰물 빠지듯 훅 빠져 버리면 이 썰렁함을 어떻게 이겨내지? 집회 분위기도 무르익어가고 마무리 행사와 함께 동지들도 한 명, 한 명 떠날 채비를 하니 나의 외로움은 더해져간다.
절망의 담장 너머 회사는 단단히 보았을 것이다. 성난 시민들의 분노를 내 자식만큼은 비정규직으로 살게 하고 싶지 않은 우리들의 약속을... 이제는 정몽구도 결단해야 하지 않을까. 더 이상 추운 겨울 우리 시민들이 뿔나서 달려오지 않게...
많은 동지들이 훅 빠지고 바닥에 새겨진 희망 승리라는 글자밖에 안 남았다. 원래는 ‘인간 글자 채우기’가 여기 마무리 행사였는데 부산으로 가야하는 동지들 발걸음 때문에 이 행사는 하지 못했다. 반드시 우리 조합원들로 저 곳을 채워서 페북에 올려야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신규 채용 분노에 찬 조합원들로 반드시 완성시키리라.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같은데 벌써 부산에 도착해서 한진중공업 동지들과 희망을 나누고 있었다. 아빠가 오지 않는다며 엉엉 울고 있다는 최강서 동지의 막내가 있단다. 저런 자식을 보며 뭐가 그리 급해 세상을 등졌을까 그래. 노동해방이겠지 더 이상의 희생 없이 우리 힘으로 노동해방을 쟁취하자. 두려울 것이 뭐가 있냐, 여기 수많은 동료들이 있지 않은가.
1월 7일
오늘은 현대차 공장이 생기고 이제는 기억 저편에 묻혀 버리는 야간 근무를 없애기 위해 오늘부터 2주간 주간연속2교대 시범 실시 시간이다. 그로 인해 아침에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비며 혹한의 날씨 속에 입김으로 손을 녹여가며 출투를 했던 날들도 바뀌어가는 근무 형태로 이제는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출근 투쟁을 진행한다. 그 동안 야간근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피곤에 쩔어 살며 얼마 되지도 않은 돈 벌라고 생명을 단축하는 야간노동에 목 메었던가.
2주간 시범 실시 기간 동안 여기 철탑도 아침에 일어나야 하는 부담감도 덜었다. 아침이면 얼마나 침낭 안에서 나오기 싫은지 내가 나오고 나면 나의 체온으로 따뜻하게 만들어진 침낭이 다시 바람으로 식지는 않을지 이런 걱정을 여기서도 안 해도 되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해 볼만한 10분만 더 자자를 행동으로 옮겨도 되는 시간이다.
늦잠을 잤다고 생각한 나의 핸드폰 시계는 7시 45분이었다. 아침부터 희망버스 때 써준 동지들의 편지를 읽었다. 아무리 읽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거의 책 한 권을 읽는 듯한 시간이었다. 그렇다. 이거는 형형색색의 편지가 아니라 한 장 한 장이 모인 바로 희망인 것이다. 흔들리는 버스 전국에서 많은 동지들이 만들어 준 희망을 잘 지키고 내려가서 내가 또 다른 사람들에게 또 다른 생명체에게 이 희망을 돌려주고 싶다. 점심을 먹고 따사로운 햇살 아래 좋은 소식인가 아님 우리를 분열시키기 위한 소식인가. 내가 볼 때는 한편으로 좋은 소식인 것만 그렇다.
그토록 오랜 법정 싸움과 오랜 투쟁의 성과라 할까, 병승이 형이 회사에서 인사 발령을 내고 사번까지 부여됐다. 이제는 확실한 정규직인 것이다. 오늘부터 확실히 원하청연대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기구가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에 와서 인사 발령을 내고 마치 자기들은 들어줄 것 다 들어준 마냥 언론에다가 생색내기를 하는 것일까? 분명 요즘 흔히 말하는 꼼수인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 시간을 벗어나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까하는 꼼수 말이다.
한편 병승이 형은 이것을 받기 위해 2번이나 빵에 가야 했고 천문학적인 손해배상도 이겨냈다. 그렇지만 또 다시 여기를 지켜야 할 설계를 해야 한다. 분명히 판결문에도 현대차에서 도급이 불가능하다고 했고 전체 컨베이어에 해당되는 판결이라고 명시돼있다. 또 앞으로 얼마나 험난한 길을 가야할 지 훤히 보인다. 그렇지만 병승이 형은 굳건히 지킬 거라 한다. 옆에 병승이 형과 어떻게든 지키려고 하는 조합원들이 든든한 버팀목이 있기에 오늘도 굳건히 버티고 있다. 자랑스럽다. 내가 만약 저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나도 두렵다. 어디에서 말로만하고 실천하지 않은 내가 될까봐 두렵다.
누구한테 이런 말을 들었다. 몸 대고 돈 대도 주둥이만 대지는 말라고. 그리고 앞으로 다가 올 시간도 얼마나 많은 흔적을 남겨야 병승이 형처럼 사번을 받을 수 있을까. 밑에서 우리 동지들이 이제는 기다리지 않을 거다. 우리의 부당함을 우리들이 직접 목소리를 낼 거다. 원래 이런 날이면 소, 돼지 한 마리 잡아서 잔치해야 되지 않겠나... 잔치는 우리가 완전 승리 할 때 같이 하자. 전국에 동지들 다 불러 놓고 말이다. 이 잔치를 하려면 열심히 싸워야 하지 않겠나.
1월 8일
자유, 평등, 정의라고 써진 법원 그리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고 알고 있다. 누구를 위한 평등한 법인지, 오늘 내 눈으로 경험을 했다. 불법으로 파견된 노동자를 10년간 사용하면서 우리가 노조법 파견법 위반으로 수차례나 고소했건만 검찰에 기소는커녕 오히려 대한민국 경제에 이바지 한 공이 크다는 이유로 극찬을 받고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법 지키라고 하면 천막도 불법이 되는 것이다. 법도 엿같다.
정몽구 회장이 대법 판결에 따라 정규직 전환만 했더라면 이 추운 겨울에 도로 바닥에 천막 치겠냐. 정몽구 회장이 불법파견 피해가기 위한 꼼수만 부리지 않았다면 이 동지들이 이 겨울에 이런 고생하겠냐. 국가 경제에 이바지 한만큼 공이 크다면 바로 불법파견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피와 땀이지 않느냐. 그러고도 노동자에게 법을 지키라고 말할 수 있느냐. 기초 질서 지키기 해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를 기본 법질서 지키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이젠 너희들이 상식이 통하고 기본적인 법을 지켜야 하지 않겠냐?
참 경찰들도 답답하기만 하다. 저들의 경비도 아닌데 회사 말은 곧잘 듣네. 내가 지금 저 경찰들을 욕하다니, 나도 의경을 자원입대해서 노동자들과 싸우면서 머리띠 매고 있는 노동자가 나의 적이었으나 지금은 개과천선한 거다. 쟤네들도 위에서 시키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나의 군 생활도 명령 내릴 때 노동자들이 파업한다고만 했지 왜 파업을 하는지 어느 지휘관도 언급이 없었다. 군인이니 오로지 명령에만 따르라 한다. 제길, 그 덕분에 나는 2년간 아주 많은 적을 노동자로 생각하고 살아야 했다.
지금 보면 참 바보짓 한 2년인 거 같다. 내 자신 내 부모도 못 지키면서 재벌들 정문 지켜주고 썩어빠진 정치인들 지키려고 했던 나의 군 생활... 화려했던 군 생활의 얘기는 여기서 하면 밑에 동지들한테 돌 맞을 것 같아서 여기까지만 하고 이후에 다시 군 생활 얘기는 해야 할 듯하다.
나는 오늘 해고자 동지들의 의연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천막 주변은 온통 동지들 차로 막고 올 테면 와봐라 마치 싸움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여유로움. 어떤 동지들 얼굴에도 긴장감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이 동지들도 처음에는 두렵고 겁도 나고 했을 것이다. 현대차가 이 동지들을 독종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워낙 많이 당하다보니 지금에서야 의연해진 거지.
그래 지금은 위기이자 역공의 기회이기도 하다. 이럴 때 일수록 내가 흥분하지 말고 차분해야 한다고 내 마음을 달래 본다. 앞으로 우리가 승리할 때까지 이런 일 수차례 많을 거다. 웃으면서 슬기롭게 파헤쳐 가는 게 승리를 위한 빠른 길이다. 오늘 해고자 동지들의 의연함을 본받아 내일도 즐기면서 고고~
1월 14일
주간연속2교대 시범실시로 인한 나의 패턴도 이제 여기에 적응하고 있는 게 사뭇 느껴진다. 주야맞교대도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고 당연하듯 흘러가고 있다. 역시 사람인가 보다. 환경에 어느 동물보다 빨리 적응하고 있지 않은가. 밑에 동지들도 빠른 적응을 하고 있는 인간이란 동물일거다.
날씨도 많이 풀리고 좁은 공간에서 따사로운 햇볕을 쐬러 자주 나가곤 한다. 아직 대한도 지나지 않은 1월이지만 이제는 옷을 많이 입고 있는 게 저기 햇살에게는 부끄럽게 느껴진다. 해도 많이 길어지는 거 같아 예전에 집회를 시작할 때엔 5시 15분만 돼도 온통 주변이 어둡기만 했는데 이제 한 시간이 지난 시간이지만 아직 밖에는 약간의 밝음도 있다. 즉 겨울도 다 가고 봄이 가까워 오는 자연의 신호탄인 것이다. 저녁으로 달래 된장국이 올라왔는데 이거 또한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반찬이 아닌가.
향수의 최고 대명사 흙을 못 밟은 지 오늘이 90일째다. 자랑할 건 아니지만 우리가 전국의 철탑 농성계에서는 기록을 갱신했다. 참 세우지 말아야 할 기록을 깨고만 것이다. 이거 잔치라도 해야 하나. 아휴, 이런 생각하는 게 부끄러운 짓이다. 그러고 보면 정몽구 회장이 얼마나 인간 독종인지 우리들의 농성 기록에서 나오지 않느냐. 오로지 돈과 권력에만 욕심이 있지 사람의 인권에 대해선 아무 반응도 없으니 말이다.
90일간 지내다보면서 나도 나의 욕심으로 채워진 시간이었던 것 같다. 썰렁하기만 했던 농성장도 살기 위한 최소한의 물품들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욕심으로 채워진 세월이 아닌가 싶다. 인간은 알몸으로 와서 떠날 땐 맨몸으로 떠나건만 정몽구는 죽어서 돈과 권력을 가지고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돌려 줘야 하지 않겠나. 입만 벌리고 있으면서 감나무에 감이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지 않을 거다. 정몽구 회장에게서 피가 마르고 비정규직이 치가 떨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완고한 투쟁으로 우리의 빼앗긴 권력을 되찾아 오리라.
1월 18일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는 전화기를 꺼 놓고 잠자리에 들곤 한다. 추운 날씨 덕분에 배터리 방전이 빨리 돼서 그렇다. 아침에 전화기를 켜니 문자와 수 십 통의 축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오늘이 생일인데 여러 사람 고생시키는 것 같아 정말 말하기 싫었다. 아침밥은 미역국에 갈비찜 잡채까지 해서 밥이 올라왔다. 이걸 만들려고 추운 날씨에 새벽부터 일어나서 준비했을 생각을 하니 미안하고 고맙고 정말 잊지 못할 오늘이 될 것 같다.
동지들이 준비한 아침을 먹고 분주한 바깥을 내다보니 컨테이너가 실린 차량 2대를 발견했다. 4년 전 오늘 용산 망루에 올랐던 5명의 열사가 발생했던 그리고 쌍차 공장 지붕에 처절하게 외치고 있던 많은 노동자를 짓밟았지 않았던가. 그런 컨테이너가 왜 여기 있지? 순간 머릿속이 섬뜩해졌다. 4년 전 용산참사가 내 눈앞에서 벌어질 것만 같았다. 어느 순간에 컨테이너 차량은 자취를 감춰버렸다. 명촌 정문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른 시간부터 그런데 오지 말아야 할 법원집행관들이 아침부터 와서 분주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우리도 오늘의 불청객에 대해 준비를 해 논 상태다. 불상사로 부서질지 몰라 차로 이중삼중 방어벽을 치고 한 번의 경험이 있었던 터라 이젠 주변에 생활용품을 치워 놓지도 않았고 태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한전에서 동원된 인원 50여 명은 우리 사이를 뚫지 못했다. 완강히 버티고 있는 우리 대오를 뚫는 것은 무리인 듯 했다.
그런데 집달관이 여기 올라와서 강제철거는 안 할 테니 인증샷만 찍자고 지껄이고 있다. 목숨 걸고 올라온 이곳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를 지껄일 수 있을까 하며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나를 달래 본다. 한심한 양반들 그렇게 하려고 대학 나와서 공부했냐! 오늘 투입된 인원이 200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일당이 12만 원인데 여섯 시간 만에 2400만 원이다. 현대차가 돈이 쓸 데가 없구나. 겨울방학에 결식아동이 몇 끼를 먹을 수 있는 돈을 이렇게 허비한단 말이냐. 그럴 시간에 노사교섭으로 지금 현안 문제 풀어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현대차를 씹어 본다.
용역도 빠지고 이제 다시 우리에게 평화가 찾아온다. 사회자가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광고까지 하고 많은 사람들이 함성으로 축하해 줬는데 순간 나의 눈시울이 뜨거워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밖으로 흘러내릴 거 같아서 참는데 고생이었다. 오늘 만약 강제집행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오늘 확대간부 및 조합원들은 금속노조 지침으로 서울상경투쟁을 했을지도 모른다. 오늘 강제집행이 있었기에 전체조합원들 앞에서 축하를 받은 것 같다.
그리고 최고의 선물을 받지 않았나 싶다. 통합사업부에 근무하는 왕식이 형님이 전화가 와서 뭐 먹고 싶냐고 그러기에 먹고 싶은 거 없다고 하니, 그럼 위에서 먹고 싶은 거 사먹으라며 돈 5만 원을 올려주신단다. 계속 고집을 피우다간 형님한테 한 대 맞을 수 있겠다 싶어 알았다 얘기했지만 왜 이리 편하지 않은 것일까? 형님은 내 나이 또래 아들이랑 같은 업체에 다니는데 아들의 고용 안정을 위해 싸우고 계신다. 정작 형님은 정규직이 되어도 단협상 몇 년 근무하지 못 할 거다. 그렇지만 아들만큼은 내가 살아온 길을 걷게 하지 않겠다 하시며 헌신적으로 열심히 하시는 분이다. 내려오면 한우 배 터지게 사주신단다.
이 형님 간절히 바랬던 건 바로 비정규직 청산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자는 거다. 이런 형님의 염원을 배신하고 자본과 신규채용으로 타협할 수 있단 말인가... 회사도 똥줄이 타긴 타나보다. 다시 교섭을 하자고 공문을 보냈으니... 그렇지만 이 교섭에서 진정된 회사의 반응을 보여야지 또 얄팍한 수를 쓴다면 이제는 우리도 좌시하지 않을 거다. 내가 있는 곳이 법에 위배된다면 나는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 하지만 혼자서 빵에 가지 않을 거다. 저 오만한 현대차 정몽구와 함께 가야 하겠지.
1월 28일
우리가 뭐라도 하려면 심술궂은 날씨는 우리 뜻대로 되게 놔두지 않는다. 2차 희망버스가 있었던 날도 매서운 바람으로 인해 온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야속한 바람이 밉기만 했다. 이 자리를 만들기 위해 서울에서 새벽 밥을 먹고 잠도 쪽잠을 자며 이 자리에 도착했건만 자연을 대신해 내가 많은 동지들한테 사과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바람으로 인해 여기에 서 있는 것도 괴로웠다. 밑에 사람들은 오죽할까.
많은 집회와 많은 연대 동지들이 함께한 100일의 숫자가 짧았던 거 같지만 많은 것을 남긴 시간이었다. 회사는 8년 동안 한 번도 뽑지 않았던 신입사원을 우리가 쟁의행위를 하니 그것도 한 달에 두 번이나 신규채용 공고를 냈다. 이 신규채용 면접에서 철탑에 관해서 물어 봤다고 한다. 5천 명이 넘는 인원이 신규채용에 응시했다고 보도하면서 또 다시 2차 공고를 내는 이유는 뭘까? 바로 강건히 버티고 있는 우리 조합원들을 우리의 정당한 투쟁과 바꾸자고 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탈퇴한 조합원을 이용해 온갖 비방글로 조합원들을 유혹해 보려 하지만 이것마저도 쉽지 않은가 보다. 회사의 작전은 우리 투쟁에 대해 연일 실패작이다. 그렇지만 우리 조합원들도 긴 투쟁의 성과는 하나 없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제자리에서만 맴돌고 있는 게 힘든가 보다. 동료들과 술 한잔하면서 전화 오는 조합원들이 최근 들어 많다. 우리 업체에서도 신규채용에 응한 인원이 많다는둥 한잔 먹은 김에 눈물까지 같이 들먹인다. 대뜸 하는 얘기가 사람은 배신하지 말라 한다. 같이 노조를 만들고 같이 투쟁의 현장에서 머리를 맞대고 싸운 조합원들이건만 신규채용으로 정규직이 되는 길을 택하고 말았단다. 그리고 우리 싸움이 이렇게 끝나도 좋으니 몸 건강히 내려오란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은 주체를 못하고 흘러내리고 만다.
여기서 울고 싶었던 때도 많이 있었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피 터지게 싸우는 조합원들 앞에서 결코 나약해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우리 싸움이 정상 바로 밑에서 정상이 보이면 막바지 산행이 힘든 거라며 이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고맙다 말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남자들끼리 할 말도 없을텐데 무슨 할 말이 그리고 많은지 하소연을 구구절절 얘기하고 나서야 내 마음도 후련했다.
또 일요일에는 경원이 형이 철탑에 올라왔다. 이 형은 고소공포증이 있는데 그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의 안전을 돌보기 위해 올라와서 펑펑 울어 댄다. 누가 이 여린 사람을 이렇게 서글프게 울게 만들었을까? 평소에 우는 모습을 못 봤건만... 말은 조금 터프하게 하고 거친 면이 있어도 진짜 소박한 사람이다. 이번에는 울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고 등 뒤로 숨는데 아휴, 감정을 감추는 게 이리 힘들구나 싶었다.
우리 투쟁이 주간연속2교대 시범실시다, 금속노조의 안을 낮춰라, 현자지부와 의견 충돌이 있어 교섭은 교착 상태였고 회사는 지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어서 그게 맘이 아팠나보다. 다행히 강고한 투쟁을 배치한다는 대의원대회가 있었다. 우리는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지금 우리 현실에서는 이론이 필요 없다. 오로지 행동으로 실천할 때다. 거기 벽 앞에는 커다란 현대차가 있다.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닐 것이다. 집요한 노동자들의 투쟁만이 돌파할 수 있지 않겠냐.
1월 29일
정말 전화기를 켜기 무섭다. 아침에 전화기를 켰는데 누가 목을 매서 자결했단다. 기아차 비정규직이라는 소리에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길 빌었다. 그런데 불안했다. 이름만 듣고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이다 했는데 기아차 동지들이 낸 대자보에 있는 영정 사진은 분명히 아는 얼굴이었다.
작년 희망뚜벅이 순회 투쟁 때 울산에서 우리 지회에서 준비한 막걸리와 안주는 과자 부스러기에 수박 몇 통이 전부였다. 지회 예산 관계로 많이 준비 못했다고 하자 동지들이 감사하다고 그랬었다. 소박한 막걸리였지만 동지들과 함께 마시며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 중에서 진짜 노동자 외모로 생기지 않은 밝고 명랑한 한 사람이 있었다. 해고자였지만 현장에 동지들 걱정이 먼저였고 불법파견 비정규직 싸움에 관심이 많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새벽 늦게까지 얘기를 나눴다. 아침이면 출근 선전전을 나가야 하는데 이 동지가 일어나지 않아 깨운다고 고생했었다. 이런 동지가 죽음을 택하다니 나로서는 믿겨지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SNS에 글 올라온 것을 보니 현실은 냉혹했다. 멘붕이었다.
정몽구, 정의선이 이 동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생각하니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어찌할 수 없었다. 생각나는 것은 술이었다. 그 동지가 그렇게 좋아했던 막걸리 말이다. 이제는 같이 마시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다.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마음으로 위로해 주고 우리들의 가슴으로 이 동지를 편안히 보내는 거다.
그렇지만 더 열받는 것은 정규직 집행부다. 사람 목숨을 갖고 잣대질을 하고 한 사람 목숨을 장난친 거 사람이 죽었는데 천하태평인 사람들이 주둥이만 살아있는 사람들이 뭣 때문에 운동을 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자리가 사람 버리는구나 생각하니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어떻게 달랠 수는 있어도 마음은 치유가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