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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노동자 2만 5천 명이 다짐한 과제:
“공공부문 민영화를 우리가 막겠다”

정부가 끝내 병원 민영화에 물꼬를 텄다.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영리병원을 설립할 수 있게 하는 시행규칙을 고시한 것이다.

이명박은 고작 4개월 임기를 남긴 레임덕 처지에서도, 범국민적 반대 여론을 거슬렀다. 민영화 정책에 대한 지배자들의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킨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새로 들어설 정부가 좀 더 쉽게 민영화를 추진할 수 있도록 발판을 닦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철도의 시설과 운영을 분리하며 시장화의 길을 놓은 덕에, 정권을 넘겨받은 이명박이 별도의 법 개정 없이 KTX 민영화를 시도할 수 있었듯 말이다.

그래서 일단 국회를 통하지 않고 정부가 직접 처리할 수 있는 시행령·시행규칙 개정 ‘꼼수’만으로 민영화의 쐐기를 박아놓으려는 것이다.

정부가 지난 9월 입법예고한 ‘도시가스사업법’ 시행령도 이런 맥락에서 추진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는 이명박이 임기 내에 이 시행령을 처리할 수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 그래서 가스 노동자 2천여 명은 고무적이게도 10월 31일 하루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10월 31일 가스 민영화에 반대하며 하루 파업을 벌인 가스 노동자 ⓒ사진 고은이

가스 민영화는 이미 김대중 정부 때부터 추진돼 왔으나, 2002년 철도·발전·가스 노조의 공동 투쟁으로 저지된 바 있다. 정부는 가스공사 분할 매각이 실패하자 우회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직접 소비하는 천연가스에 대해서는 ‘직도입’ 제도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민간 발전사인 포스코, GS칼텍스, SK E&S와 같은 대기업들이 천연가스 사업에 뛰어들게 했다.

이 기업들은 한전발전 자회사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순이익을 내고 있지만, 요금은 인하하지 않았다. 이들은 천연가스 직수입 가격이 높을 땐 가스공사에 공급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부담을 줄였다. 이 때문에 최근 몇 년간 추가 비용 1천1백79억 원이 발생했고, 이것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부담으로 전가됐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런 폐해를 더 확대하려 한다. 직수입 요건을 완화하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더 많은 민간 사업자, 사실상 대기업들의 천연가스 시장 진출 활로를 열어주려는 것이다. 이 기업들은 값싸고 안전한 에너지 제공은커녕, 오로지 이윤 확대에만 관심이 있다.

이미 SK와 GS가 판매하는 소매 도시가스의 비중은 34퍼센트나 된다. 이 기업들이 산업용 가스마저 공급하게 되면, 가스 산업은 거의 민영화된 것이나 다를 바 없어진다.

노조에 따르면, 인구 밀도가 낮고 산업용 수요 이탈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일부 지역에선 최대 4백60퍼센트의 요금 인상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일본·영국·미국·캐나다에서도 민영화와 경쟁 도입 이후 요금이 폭등했다.

요금 폭등

그런데도 정부는 민영화 추진을 계속할 태세다. 정부는 10월 31일에도 인천공항, 산업은행의 지분 매각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이명박 정부는 임기 내내 철도, 의료, 가스, 공항, 대학 등 공공부문에서 민영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2008년 촛불시위 등으로 광범한 민영화 반대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정부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민영화를 둘러싸고 이해관계가 걸린 각 분야의 지배자들 내 갈등도 이 정책이 일사천리로 추진되는 데 발목을 잡았다.

최근엔 인천공항 면세점 민영화도 비판에 직면했고, 불과 얼마 전에도 철도 민영화를 위한 국토부의 역·기지 회수 계획은 관료들과 정치권 내 이견에 부딪혀 유보됐다. 철도 사측은 최근 임단협에서도 파업까지 불사하겠다는 노조를 무마하기 위해 부분적인 양보를 해야 했다. 현대차, 쌍용차 등 곳곳에서 투쟁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한 군데라도 봉합시켜야 한다는 정부의 주문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대선 국면을 활용해 싸워 볼만 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싸워보지도 않고 협상을 마무리한 노조 지도부의 태도에도 아쉬움은 있다.

현재 지배자들 사이에선 공공 부문에 시장과 경쟁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확고한 공감대가 있다. 민영화의 방식과 시기, 주도권 문제에서 이견이 있을지라도, 공공부문에 대한 정부 지원의 축소, 경쟁 강화, 공공요금 인상, 인력감축과 구조조정 등 신자유주의적 고통전가의 필요성은 모두 지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대선을 앞두고 관료들의 반발을 의식하고 있는 박근혜도 민영화 정책에는 찬성한다. 문재인은 노동자들의 반발과 사회적 압력 때문에 ‘재검토’를 말했지만, 민영화 중단을 분명히 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김대중 정부에 이은 역대 정권들은 사회적 반발에 직면해서도 우회적 방식으로 꾸준히 민영화를 추진해 왔다. 정부가 내년 긴축 예산을 확정한 것을 보면, 새정부가 누가 되든 공공부문에 대한 공격과 구조조정을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가스공사 노조의 파업 출정식에서 최준식 지부장이 말한 것처럼, “돈벌이에 혈안이 돼 있는 SK·GS가 있는 한, 민영화를 찬양하는 재경부가 있는 한, 정권이 바뀌어도 싸움은 계속돼야 한다.”

10월 31일 여의도 광장에 모인 2만 5천여 명의 공공부문 노동자들 ⓒ사진 박재광

10월 31일 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동자 2만 5천여 명이 하루 파업 등을 하며 민영화 철회, 임금 인상과 노동조건 개선 등을 요구한 것은 너무나 반갑다. 지금 철도·가스·의료 등 공공부문 노조들과 사회단체들 내에서 민영화 반대 투쟁을 구축해 나가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2002년과 2008년에 아래로부터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민영화를 막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 것처럼, 정부가 각개 격파로 민영화를 밀어붙이지 못하도록 함께 싸워야 한다. 위기에 빠진 정부가 감히 도발을 하지 못하도록 지금부터 대중운동을 건설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