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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 가는 경제 위기와 노동운동의 대응 과제

한국 경제의 3분기 성장률이 지난해 대비 1.6퍼센트 증가에 그치면서 경기 하강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처럼 한국 경제가 다시 위기로 급속하게 빠져들고 있는 것은 2008년에 시작된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경제에 가장 큰 위협 요소는 유로존 위기다. 유로존 위기는 매우 장기화하고 있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유럽 위기가 이처럼 질질 끌며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것은, 유럽 지배자들이 경제 위기의 해법을 두고 분열해 있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박근혜도 “내년에 닥칠 세계적 경제 위기가 초점”이라며 본색을 드러내는 상황에서 우리도 대비해야 한다. ⓒ이윤선

특히 독일 정부가 이런 통화·재정 정책에 ‘강력한 긴축’이라는 조건을 내걸어, 유럽 지배자들 내에 합의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독일 지배자들은 그리스·포르투갈·스페인 등 위기 국가에 대한 대규모 지원으로 인플레이션이 생겨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까 봐 걱정하고 있다. 실제로 독일 베를린의 주택가격이 최근 1년 동안 약 20퍼센트나 상승했다.

따라서 유로존 위기가 최악의 사태로 악화되지 않더라도, 유로존 경제 침체는 갈수록 더욱 심화할 것이다. 재정적자를 줄이려면, 정부지출 축소, 세금 인상, 실업수당·연급지급 축소 등의 긴축정책은 계속될 수밖에 없고, 이는 내수 부진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2011년 하반기부터 성장률이 조금씩 오르며 고용도 늘어나던 미국도 2012년 2분기부터 다시 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매월 4백억 달러의 주택저당증권을 매입하는 3차 양적완화 정책을 추진하며 경기를 반등시키려 했지만, 이미 2차례의 양적완화도 별 성과가 없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미국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고 예상하기 힘들다.

미국 경제의 더 큰 문제는 ‘재정절벽’ 위기다. 미국 정부는 최근 급증한 국가 부채 때문에 세금 인상, 지출 삭감 등으로 2013년에 7천2백80억 달러(GDP의 4.6퍼센트)의 대규모 긴축을 시행해야만 한다. 미국 의회에서 긴축 유예에 합의하지 못하면 2013년 미국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편, 세계경제 성장의 견인차 구실을 하던 중국 경제는 2012년 2분기 수출과 내수가 같이 둔화되면서 경제성장률이 불문율로 여겨지던 8퍼센트를 밑도는 7.6퍼센트를 기록하더니 3분기에는 7.4퍼센트까지 떨어졌다.

2012년 1~8월 중국의 수출 증가율은 7퍼센트에 그쳤다(2011년 수출 증가율 20퍼센트). 수출의 70퍼센트가 선진국으로의 수출이어서, 유로존 위기와 미국의 재정절벽 위기 등을 고려하면 당분간 중국 수출이 빠르게 회복될 가능성도 낮다.

중국 정부는 2009년과 같은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쓰기도 힘들다. 기존의 투자도 부실 위험이 높은데다 물가 급등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 세계 경제에서 침제가 뚜렷해지면서 2012년 들어 한국 수출은 정체하고 있고, 투자 증가세도 크게 꺾였다. 주택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하우스푸어와 렌트푸어도 증가하고 있어 가계부채 부실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상황을 종합해 보면, 유로존 위기, 미국의 재정절벽, 중국의 경착륙 등 커다란 위험 요소가 현실화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2013년 경제는 2009년 극심한 침체 이후 가장 안 좋은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높다.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 경제도 산업 생산이 줄어들면서 기업들이 큰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

샌드위치론

이에 따라 재벌들은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가 성장률을 떨어뜨리고 일자리를 줄인다며 공세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한국 지배자들은 1990년대 이후 경제 상황이 악화될 조짐이 보일 때마다 ‘넛크래커론’, ‘샌드위치론’ 등을 펼치며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강요해 왔다.

게다가 재벌들은 실제로 투자를 연기하며 정치권을 압박하는 듯도 하다. “전경련 등 재계를 대변하는 경제단체의 잇단 협박을 마치 주요 그룹사들이 뒷받침하듯 이를 실행하고 또 언론에 흘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압박에 영향을 받아 박근혜는 말뿐이던 ‘경제민주화’조차 주워 담고 있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 내에서 김종인조차 박근혜가 “재벌 논리에 동화되고 있다”며 지적할 정도다.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들도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은 단지 재벌과 새누리당만의 것은 아니다.

안철수는 이미 “내년 세계경제가 위기를 맞을 텐데 그 과정에서 이 전 부총리가 가진 지혜가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헌재를 영입했고, ‘혁신경제’론을 내세우며 복지 확대와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는 경제 성장이 꼭 필요하다는 주장도 한 바 있다.

물론 문재인과 안철수는 복지 확대 주장을 버리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야 한다는 이들 주장은 경제 위기로 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지면 복지도 힘들다는 가정을 포함하고 있다.

게다가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또는 안철수가 승리하더라도 국회에서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반대뿐 아니라 대기업·부유층과 경제관료의 압박에 타협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노무현 정부가 이미 그런 길로 간 바 있다.

따라서 경제 위기에서 노동자들의 삶을 지키는 힘은 기성 정치권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투쟁을 발전시키는 것에 있다.

최근 노동자들의 투쟁과 전진도 이것을 멋지게 입증하고 있다. 그동안 대법원 판결이 나왔는데도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았던 현대차 사측은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과 광범한 사회적 지지에 밀려 결국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최근 파업을 벌인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호봉제를 적용하는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에 올라가는 성과도 있었다.

또, 사측이 민주노조를 파괴하려 어용노조를 만들었던 SJM·유성·KEC 등에서 민주노조가 다시 승기를 잡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이 끈질기게 투쟁하며 사회적 지지 여론을 만들고 정치적 연대를 건설하면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 위기가 심화하면 지배자들의 대응은 더 악독해질 것이다. 최근 복직한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들이 바로 유급휴직에 들어간 상황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 준다. 자본주의는 기업들의 맹목적인 이윤 추구 경쟁 때문에 경제 위기를 낳고, 이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이 부담할 수밖에 없는 체제인 것이다.

따라서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 노동자들의 삶을 지키려면 자본주의 체제의 논리를 거부하는 관점에서 운동을 건설하며 대안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11월 14일 국경을 뛰어넘어 벌어진 유럽 노동자들의 공동총파업은 이런 대안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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