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앞날과 선명 진보 언론에 거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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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자본주의 공직 선거의 효과를 과소평가한다. 선거에서 이기든 지든 별 상관없다는 식이다. 선전을 위해 자신들이 참여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선거 허무주의라고 할 만한 태도를 취하기 일쑤다.
하지만 선거는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거대한 계급투쟁보다는 덜 중요하지만 웬만한 계급투쟁보다는 흔히 더 중요하다. 특히, 한국처럼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하고 권위주의 정치 체제의 잔재와 유산이 비교적 강력하게 남아 있는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박근혜 정권의 등장이 노동계급 운동에 미칠 첫째 악영향은 국가 기구들을 통제하는 자리들이 좀더 강성 우파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점이다. 취임 초기에는
방금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김용준 전 헌재소장도 강한 보수 성향 인물로,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법과 질서”
또한 그는 우파 전직 의원 박세일이 이끄는 한반도선진화재단 고문,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장, 박근혜의 외곽 지지 단체 충청미래정책포럼의 고문을 지냈다. 그리고 그는 지난해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장차 박근혜의 인기가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친위대 중심으로, 더 우익적으로 인사가 이뤄질 것이다.
사실, 지배계급이 총선 때부터 일치 단결해 박근혜를 밀어줬다는 것 자체가 지배계급이 앞으로
그리고 박근혜가 최대의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세계 모든 곳의 우파들이 걸핏하면 거론하는 전형적인
또, 박근혜가 앞으로 근절하겠다고 선거 때부터 줄곧 내세운

어느 곳에서든 경제 위기에 직면한 강성 우파 정부는 좌파, 특히 급진적 좌파 단체들을 사찰하고 거듭 괴롭힌다. 그리고 흔히 이민자들을 속죄양 삼는다. 한국 같으면 이민자들보다 친북 좌파와 혁명적 좌파가 속죄양이 되기가 더 쉽다.
국가 탄압이 아무도 물리칠 수 없는 불가항력의 것은 아니다. 단결이 가장 효과적인 방어 수단이다. 그래서 박근혜 하에서는 공동전선이 특히 중요하다.
공동전선
공동전선이 중요하다 함은, 공동전선 구축이 매우 중요한데도 그 과업을 방해하고 운동을 분열시키는 초좌파주의에도 반대해야 함을 뜻한다. 초좌파주의는 매우 급진적
가령 1920년 9월에 절정에 이르렀던 이탈리아 공장 점거 투쟁에서
1921년 3월 독일 공산당 KPD의 소위
단결한 대중 투쟁만이 이윤과 권력을 위해 작정을 하고 덤비는 우파들에 대항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박근혜 정권의 등장으로 노동계급 운동에 미칠 둘째 악영향은 지배계급의 자신감과 노동계급 대중의
하지만 지배자들의 자신감은 오래가지 못할 수도 있다.
부패는 정권의 도덕적 기반을 와해시켜 통치의 정당성을 훼손시키고, 지배자들을 책임 전가에 몰두하게 만들어 서로 분열시킨다. 이동흡 임명 시도를 놓고 새누리당과 헌재 내 일각에서도 임명 철회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도 그가 지금 부패의 상징이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의 정치적 기반인 우파들과 지배계급은 복지 제공을 기피하고 싶어한다. 〈레프트21〉은 고전 케인스파적 요구들을 행동강령의 일부로 제시하면서, 박근혜 정부가 그와 정반대 방향을 지향해 경제를 오히려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폭로해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가 분노한 대중을 선거에서 달랠 수 있게 해 준 선심성 공약을 희석시키고 누더기로 만들어 버린다면, 즉 공약을 사실상 어긴다면 그의 통치의 정당성은 순식간에 사상누각이 될 것이다.
우파들과 지배자들은 특히 복지 제공을 혐오한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복지 제공이 기대를 높인다는 것이다. 특히, 국가의 책임과 사회적 권리라는 생각을 고무한다. 반면에 개인의 노력과 경쟁이라는 생각은 경시하게 만든다. 또한 시장의 엄격함과 사용자의 원칙을 무디게 만들 것이다. 게다가 자칫 부유층의 조세 부담을 증대시킬 수 있다.
그래서 순전히 자본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복지는 아예 제공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단지 자본의 집행 기구일 뿐인 것은 아니다. 국가와 자본은 크리스 하먼이 말한
이런 모순 때문에 박근혜는 복지를 제공하되 생색내기식의 알량한 복지만을 제공할 것이다. 그것도 직접세로든 간접세로든 노동계급이 재원을 대도록 할 것이고, 그나마 결과는 노동계급 내에서의 소득 재분배일 것이다
아킬레스건
그러므로 〈레프트21〉은 박근혜 정부의 미온적 복지 제공을 폭로하고, 복지 공약의 조삼모사식 배신을 폭로하고, 조세 불평등을 폭로해야 한다. 특히, 조세 불평등 폭로와 함께 요구해야 할 부자 증세는 극도로 예민한 쟁점이다. 실제로 시행된다면 정부는 자본가와 그들의 압력단체로부터 큰 압박을 받게 되고 자칫 그들과 척지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이 보기에 알량하기 그지없던 사회정책을 시행한 노무현이 그토록 부유층과 그 정치인들의 증오를 샀던 주된 이유도 세금
박근혜 복지 공약은 세금 문제가 아킬레스건이다. 〈레프트21〉은 부자 증세를 요구하고 법인세 감면을 반대해야 한다. 동시에, 이미 역진세인 세금들
물론 자본주의 하에서 세금 문제를 둘러싼 투쟁은 주로 자본가 계급과 중간계급이 벌여 왔고, 그것도 성공적으로 벌여 왔으며, 노동계급은 거기에 끼어들기가 흔히 어려웠다. 그러므로 〈레프트21〉 지지자들은 세금 문제를 둘러싸고 운동을 일으키겠다는 생각에는 일단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선거에서 박근혜의 결정적 승인勝因이었지만 집권 유지에는 최대 장애물이 될 그의 복지 공약을 폭로하기 위해 〈레프트21〉은 조세 정의의 부재를 예리하게 폭로해야 한다.
그리고 박근혜의 복지 공약 물타기나 누더기 만들기를 폭로할 때 그것을 사회 변혁 운동가들의 행동강령적 요구들과 연관시킴으로써 운동 건설의 기회도 엿봐야 한다.
요컨대 박근혜가 승리할 수 있었던 바로 그 요인 때문에 그는 조만간 통치의 정당성을 잃고 이데올로기적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위기가 곧바로 대중 저항으로 이어질까?
박근혜의 복지 공약을 믿고 그를 지지했던 후진적인 노동자 부분이 그의 사실상의 공약 파기에 분개해 먼저 투쟁에 나설 가능성은 비록 아예 없진 않다 해도 매우 작을 것 같다. 그보다는 박근혜의 조삼모사식 복지 공약 이행을 위해 그동안 얻은 이득을 강제로 회수당하게 된 노동자들이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위기 덕분에 저항할 자신감이 되살아나 반격하기 시작하는 시나리오가 더 큰 가능성일 것 같다.
저항의 가능성
그렇다 해도, 만일 그 시나리오가 현실화한다면 그것은 특정한 양질전이 과정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 즉, 수많은 작은 노동자 투쟁들이 대부분 비기거나 패배하고, 간간이 소수의 투쟁은 승리를 거둬, 계급투쟁의 교착 상태가 이어지다가, 마침내 강성 정권의 정치적 위세가 현저히 약화된 것을 보고 노동계급 대중의 자신감이 올라 결국 큰 투쟁이 분출하는 그림 말이다.
물론 특정한 경제적 투쟁이 정치적 투쟁으로 급성장하는 시나리오도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노동조합 고위 상근간부층의 개혁주의적 영향력을 아래로부터 돌파할 만한 현장 노동자들의 자신감은 당장은 충분치 않을 것 같다.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주로 경제 불황으로 말미암아 그럴 것이고, 게다가 강성 정권의 등장으로 자신감을 얻은 사용자들의 탄압도 그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개혁주의적 노조 상근간부층의 영향력을 상당 부분 견제할 수 있는 사회 변혁적 노동자 대중정당이 존재한다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좌익 정치조직들은 너무 작은데다 종파적 편협함과 경직성으로 말미암아 노동자 투쟁을 더 키우는 것보다는 좌익적이지만 흔히 공허한 슬로건 내놓기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개혁주의의 영향력에 대응하기보다는 오히려 뜻하지 않게 개혁주의자들의 입지를 강화해 주는 걸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필자 생각으로는, 정치 영역에서든 산업 영역에서든 공동전선이 잘 구축돼 이럭저럭 성공적인 저항이 전개될 때 비로소 돌파구가 열릴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은 필자가 다른 곳에서 발표한 글을 조금 수정해 기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