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진로 논쟁:
노동 중심성과 노동자 연대는 ‘철지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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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이후 진보진영의 갈 길에 대한 모색들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진보정의당과 진보신당 등에서는 ‘노동 중심성’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진보정의당 일각에서는 ‘노동 중심성’ 강화가 아니라 안철수나 민주통합당과의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 나오고 있다. 한 참여당계 인사는 조직 노동자와 결합해야 한다는 주장을 “철지난 대안”이라고 깍아내렸다.
진보신당 일각에서는 노동 중심성보다 다양한 피억압자들의 “무지개 연대”가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노동계급의 이질성이 커졌고 노동자의 의식이 소비 문화에 포섭됐기 때문에 더는 사회 변화의 핵심 주체로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제기에는 여러 논점이 포함돼 있다. 그런데 우선 ‘노동 중심성’이 무엇인가 하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흔히 노동 중심성을 노동자들의 작업장의 경제적 요구만을 중시하는 협소한 노동자주의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노동자주의와 노동 중심성은 명백히 다른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해 온 노동계급 중심성은 자본주의의 여러 억압과 착취에 맞서고, 민주주의와 정치적 권리를 진전시킬 결정적인 힘을 노동계급이 가지고 있다는 요지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독재권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데도 노동계급의 투쟁이 결정적 구실을 했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은 7, 8, 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지면서 독재로 회귀하는 것을 막고 민주화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
노동자계급은 직접 생산을 담당하며 이윤을 만드는 계급이기 때문에 체제에 가장 강력하게 도전할 수 있다.
즉 노동 중심성은 억압받고 착취받는 사람들의 “무지개 연대”가 승리로 나아가려면 누가 주도적 구실을 해야 하는가를 둘러싼 전략을 제시하는 개념인 것이다. 그런데 노동 계급이 과연 이런 힘이 있느냐는 이견을 제시하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단결의 잠재력
첫째는 정규직, 비정규직 등 노동계급의 이질성이 커졌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투쟁이 힘들 것이라는 제기다.
이런 주장은 흔히 조직된 정규직은 싸우려는 의지가 없고, 불안정한 비정규직 부문의 노동자들은 처지가 너무 열악해 싸움에 나서기 힘들다는 생각에 바탕하고 있다. 이들의 단결은 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초반에 독일 등 제국주의 국가의 상대적 고소득 노동자도 “노동귀족”이라고 불렸지만 1918년 독일 혁명에서 이 노동자들이 혁명의 주체로 등장했다. 최근 그리스 등 유럽에서는 공공부문 노동자 등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규모 파업에 나서기도 했다.
또 열악하고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저항에 나설 수 있다. 학교에서 “유령”취급을 받으며 짧게는 3개월짜리 초단기 계약을 해 온 청소노동자들도 저항에 나서 승리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줬듯이 말이다.
물론 이 두 세력의 단결은 결코 자동적인 과정은 아니다. 그럼에도 단결할 때 더 큰 힘을 낼 수 있다는 현실 때문에 이들이 단결할 잠재력은 존재한다. 실제로 지난해 11월과 12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화를 위해 파업을 했을 때 정규직 대의원들이 대체인력을 저지하며 함께 싸워 공장을 멈춰 세우기도 했다.
변혁적 활동가라면 이런 가능성을 보면서 노동자들의 단결을 추구해야 한다. 정규직, 비정규직, 조직, 미조직 부문의 차이를 과장하는 태도로는 이런 단결을 이끌기 힘들 것이다.
의식의 변화
둘째는 노동계급이 자본주의적인 의식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사회를 변화시키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다. 소위 ‘존재를 배반한 의식’ 논리다.
이것은 추상적 선전과 이데올로기만을 중시하는 입장과 연결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생산관계 속에서의 적대적 관계 때문에 자본가들과 이해관계가 끊임없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해관계의 충돌 때문에 노동자들은 투쟁에 나설 잠재력이 있다.
그리고 이런 투쟁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의식을 바꿀 수 있다. 여성과 남성이,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국내 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단결해 투쟁하는 과정을 통해 쌓였던 편견을 깨뜨리고, 이제까지 자본주의에서 억압받고 천대받던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자신의 힘을 자각하면서 거대한 의식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진보 활동가들은 노동대중 속에서 함께 행동을 건설하며 노동계급 의식의 발전을 도모해 가야 한다. 노동 대중과 거리를 둔 채 추상적 선전을 늘어놓거나, 갖가지 이유로 노동계급 정치조직들의 단결과 공동 행동을 거부하는 종파적인 태도로는 이런 변화를 이룰 수 없다.
부르주아 정치세력과의 무책임한 연합을 우선해서 노동계급 정치세력의 갈등과 분열을 자초해서도 안 된다.
노동중심 정치세력화와 노동계급의 단결은 여전히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