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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을 ‘커밍아웃’하라는 주장이 섬뜩한 이유

이석기 의원 국정원 체포 사태를 놓고 진보진영 일부에서 우려스러운 목소리가 나왔다. “주체사상파는 커밍아웃하라”는 주장에서부터 “대가를 치르게 하라”는 주장까지. 분열해 온 진보의 역사가 남긴 서로에 대한 분노의 생채기는 그만큼 깊다. 그러나 그 상처를 국정원의 힘을 빌려 아물게 할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한겨레〉 칼럼니스트 박권일은 “이석기 사태의 본질이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의 침해일까?”라고 묻고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사상이나 이념이 아니라 … 총기 제조 및 시설물 파괴 등을 계획한 구체적 행위”라고 했다. “이석기 의원 스스로 사상과 신념을 공표”하고 있지 않고 “자신의 사상에 대해서 입을 꾹 다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상과 신념을 공표”하지 않는 것을 은근히 비난하고 “기만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사회주의자요’ 하고 몇몇 사회주의자가 당당히 외쳤듯, 자신의 ‘주체사상’을 “공표”하라는 것이다. 박권일은 국가보안법의 서슬 퍼런 칼날이 존재하는 이 나라에서 ‘커밍아웃하고 감옥에서 살아라’ 하고 강요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인가.

사상을 “공표”하지 못하는 것은 “기만”이 아니라, 감옥에 들어가지 않고 ‘생존하기 위한 선택’일 뿐이다. 이 “기만”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국가권력이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불체포 특권으로부터 나와 당당히 수사에 임하라” 하고 “헌법을 지키는 정의로운 진보”를 말했다.

그렇다면 1980년 헌법을 지키지 않고 총을 들었던 광주의 민중은 “정의로운 진보”가 아니었던 것일까? 1987년 ‘호헌 철폐’를 외치며 돌과 화염병을 들었던 민중은 “정의로운 진보”가 아니었던 것일까?

지금의 “헌법”은 “정의로운 진보”를 지켜주는 헌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헌법”을 지키지 않는 정의롭지 못한 진보는 ‘국정원’에 의해 판단되고 ‘국정원’에 의해 끌려가 “수사에 임”해야 하는 것인가?

박권일은 “국정원의 공안 탄압에 반대하면서 동시에 국회의원 이석기를 비판하는 것은 얼마든지 공존 가능할 뿐 아니라, 이 사태에서 유일하게 정당한 관점”이라고 말했다. 국정원뿐 아니라 “일부 엔엘 세력 역시 기만의 대가”라며 “얼음처럼 냉정해야 한다. 저 기만의 대가들에게 기만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사태에서 유일하게 정당한 관점”은 ‘이석기 종북 마녀사냥을 중단하고 국정원을 해체하라’는 것이다. “비판하는 것은 얼마든지 공존 가능”하지만, 그 “비판”이 ‘누구의 손’에 의해 이뤄지는가를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민중에 의해 판단되고 “대가를 치르게” 해야지, “기만의 대가(大家)”인 국정원의 손으로 “기만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은 진보로서 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