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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는 저질 일자리 확대책일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를 왜 단호하게 거부해야 하는가?

박근혜는 고용률 70퍼센트를 달성하겠다며 시간제 일자리를 핵심 정책으로 꺼내들었다.

청년들을 포함해 워낙 많은 사람들이 괜찮은 일자리가 없어 고통받고 있어서 일자리 창출은 중요한 문제다. 오랫동안 진보진영은 정부가 공공부문에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지금 박근혜가 하려는 것은 이와는 정반대다. 좋은 일자리 군(群)의 아성을 깨고 유연화를 강요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경총 같은 기업주 단체는 “과도한 고용보호법과 강성 노조의 중첩적 보호를 받는 대기업, 정규직, 유노조 부문으로 인해 우리 나라의 노동시장 경직성이 심화”됐다고 불평해 왔다. 그들은 규제를 덜 받고 비정규직이나 저임금 일자리를 확대하고 싶어 한다. 박근혜가 노동유연화를 적극 추진하는 이유다.

ⓒ이윤선

첫 타깃은 공공부문으로, 정부는 전일제 일자리 하나를 쪼개 두 개의 시간제 일자리로 대체하겠다고 한다. 시간제 일자리는 곧 민간부문으로도 확산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박근혜는 고용률 수치를 조금 올리는 통계 장난을 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임금 노동자층의 증가로 전체 노동계급의 처지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간제 노동자가 늘어난 영국에서 최근 실업률 하락의 이면에서 펼쳐지고 있는 현실이다.

투잡

박근혜 정부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한다. 기존의 시간제 일자리가 처참한 수준의 열악한 일자리라는 것을 의식한 표현이다.

현재 노동자 10명 중 1명이 시간제로 일하는데, 현대경제연구원의 추계를 보면 이 중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는 3.3퍼센트에 불과하다. 시간제 일자리 노동자들은 대개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비자발적으로 시간제 일자리에 종사하는 비중은 무려 56퍼센트로, OECD 평균 13.1퍼센트를 크게 웃돈다.

지난 3년간 노동부가 지원한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도 질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폭로된 것을 보면,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의 시간당 임금은 평균 6840.6원에 불과했다. 이는 정규직 노동자 평균 시급의 44.7퍼센트, 비정규직 평균 시급의 73퍼센트 수준이다.

ⓒ이윤선

공공부문 내 시간제 일자리의 조건도 형편없다. 돌봄강사의 경우 26.3퍼센트가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계약자인데, 이들은 실제 노동시간보다 축소된 근로계약을 강요당해 왔다. 주 15시간 이하의 초단시간 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적용이 안 되는 것을 악용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앞으로 만들어질 공공부문 시간제 일자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를 것이라며 선을 긋지만, “양질”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시간제 공무원 제도를 보면, 공무원 연금도 받지 못하는데다 무엇보다 전일제로의 전환이 불가능하다. 박근혜는 “시간제”가 어감이 안 좋다며 “시간선택제”로 바꿨지만, 노동자들에게 진정한 선택권(전일제 전환)은 주지 않는 것이다.

근무시간에 비례해 임금을 지급하고, 승진 연수도 근무시간에 비례해 인정하겠다는 것은 얼핏 괜찮은 조건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승진은 전일제보다 곱절 가량 뒤쳐질 수 있고, 적은 노동시간만큼 저임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정부가 시간제 공무원이 ‘투잡’ 갖는 것을 허용한 것은 이런 현실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네덜란드나 독일 등 유럽의 시간제 일자리 경험을 보면, 아무리 정규직 또는 상용형 시간제라 하더라도 저임금과 경력 전망의 불리함을 극복할 수 없었다.

이중의 굴레

박근혜의 계획은 더많은 여성을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내몰 것이다. ⓒ이미진

박근혜는 마치 시간제 일자리가 여성에게 기회를 주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박근혜 식 “일과 가정의 양립”은 이중의 굴레일 뿐이다. 여전히 여성은 가정에서 육아의 주된 책임을 져야 하고, 가정 밖에서는 부차적인 노동력 취급을 당한다.

지금도 우리 나라 남녀 간 임금 격차는 OECD 국가 중 가장 크다. 여성 시간제 일자리가 확대되면 여성 빈곤이 증대하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더욱 낮아질 것이다. 여성 시간제 일자리가 많은 네덜란드에서 여성들이 고위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낮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를 통해 여성들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내려 한다. 그러나 이는 공공 보육시설을 확충해 무상 보육을 제공하지 않고 개별 가정의 여성들에게 육아를 떠넘기겠다는 얘기다. 최근 한국을 방문했던 카텔레네 파쉬어 네덜란드 노총 부위원장은 이것이 바로 네덜란드 방식이었음을 인정했다:

“스웨덴에서는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보육시설을 확충하는 등 다른 선택을 했다. 스웨덴은 출산율도 높고 정규직도 많다. 네덜란드는 시설이 부족하고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에 노동시간 유연화를 택했다.”

유연

박근혜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정책의 문제점에 진보진영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그러나 대응 방안을 둘러싸고는 입장 차이가 있다.

일각에서는 시간제 일자리 자체에 반대하기보다, 시간제 일자리의 질을 개선하고 시간제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간제 노동에 대한 차별 금지라든지, 전일제로의 전환 같은 방안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독일이나 네덜란드의 경험을 보면, 아무리 시간제 일자리 보호 규정이 있어도 시간제 일자리 확대에 따른 저임금 노동자층의 대규모 양산을 막을 수는 없었다. 독일은 물론 네덜란드에서도 빈곤 노동자가 크게 증가했다. 특히 시간제 노동에 종사하는 단독가구주는 더 흔하게 빈곤에 빠졌다.

독일과 네덜란드에는 전일제로 전환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 하지만 기업주가 ‘일감이 없다’고 하면 그만이다. 파쉬어 네덜란드 노총 부위원장은 “현실에서는 풀타임에서 파트타임 전환이 더 쉽고 그 반대는 여전히 어렵다”고 말했다.

시간제 일자리 보완론이라고 할 만한, 앞서 언급한 입장의 밑바탕에는 유연노동이 기업주뿐 아니라 노동자들에게도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듯하다. 노동자들은 육아나 가족 돌봄 또는 여가를 위해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바꾸거나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시간을 통제하기가 어렵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사용자다. 그들은 노동자의 필요는 안중에 없고 경영상의 필요에 따라 노동시간을 배치한다. 사용자들에게 유연성이란 초과수당 없이 노동시간 연장하기, 물량 없을 때 노동시간 단축하고 임금도 삭감하기, 유급휴일 축소하기, 노동자 자르기 등을 아울러 에두르는 코드명 같은 것이다.

노동자들이 정말 일과 가정, 일과 삶을 병행하기를 바란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임금과 노동조건 악화 없이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실노동시간 단축은 미루면서 노동시간과 임금의 유연화[근속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연공급 해체 등]를 추진해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이 치르게 하려 한다.

박근혜의 시간제 일자리는 노동비용을 절감하고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정책이다. 시간제 일자리 증대는 저임금 노동자를 대거 양산할 뿐 아니라, 전일제 노동자들의 조건에도 압력을 가해 전일제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도 동반 하락시킬 것이다.

따라서 노동운동가들은 박근혜의 시간제 일자리 도입에 문을 열어주지 말고 유보 없이 반대해야 한다.

저항

안타깝게도 일각에서는, 노동조건이 상대적으로 나은 공공부문이 시간제 일자리 반대 투쟁을 하면 고립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해할 만한 걱정이다. 시간제 일자리 정책에 반대하는 여론과 “사회적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공공부문 노동자들 자신이 싸울 때 시간제 일자리의 문제점도 사회적 이슈로 떠오를 수 있고, 연대의 초점도 형성할 수 있다.

노동운동 내에 — 심지어 일부 급진 좌파조차 — 공공부문·대기업 노동자들을 ‘노동귀족’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런 시선을 의식하는 공공부문·대기업 노동자들 가운데도 자신의 노동조건 개선을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는 견해가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이런 수세적 자세는 긴축을 강요하며 공공부문을 공격하는 정부에 맞서 효과적으로 싸우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한편, 시간제 일자리 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노조 전략이라는 주장도 있다. 물론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은 시간제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함께 투쟁해야 한다. 그러나 어차피 시간제 일자리 도입을 막을 수 없다며 시간제 노동자 조직화로 건너뛰는 것은 당면한 시간제 일자리 반대 투쟁을 사실상 회피하는 것이다. 지금은 공공부문 일자리의 질을 끌어내리려는 박근혜 정부에 단호하게 반대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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