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사 교과서 채택률 0%대:
전교조 규약시정명령 거부 성공과 철도 파업의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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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여고, 상산고 등 학교 20여 곳이 교사·학생·학부모들의 반발에 부딪혀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포기했다. 군인 자녀들을 위한 신설 학교인 파주 한민고도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뒤늦게 서울디지텍고가 교학사 교과서를 복수 채택하기로 했으나, 올해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게 됐다. 실로, 통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와 여당 등 우익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박근혜는 신년사에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편향된 인식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새누리당 의원 김무성·김희정 등은 학교 현장의 교학사 교과서 채택 철회를 “전교조의 테러”, “전교조의 억지”라고 비난했다.
교학사 교과서를 집필한 공주대 교수 이명희는 “한국판 홍위병들이 동원돼 교학사 교과서를 분서갱유하고 있다”고 했지만, 이는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반대가 광범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 줄 뿐이다.
교학사 교과서 채택이 여론의 압력에 밀려 계속 취소되자, 교육부가 교학사 교과서 구출 작전에 나섰다. 교학사 교과서를 포기한 20개 학교를 찍어 유례없는 특별조사에 들어간 것이다.
“더 큰 누군가의 외압을 받고 있는 이사장, 학교장들”이 역사 교사들에게 압력 넣기, 학교운영위원회(이하 학운위) 미개최, 절차상 문제가 없는데도 학운위에서 순위 뒤집기 등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위해 갖은 위법적 행동들을 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교육부 특별조사의 감사 대상도 되지 않았다.
“학교장의 간절한 요청으로 3순위로 학운위에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양심 선언한 동우여고 공기택 교사는 “역사 교사들에게 학교장이 행한 요청에 대해서는 왜 조사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언론에도 나왔는데 교육부는 나를 만나지도 않았다”며 특별조사의 목적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빗장
정부·여당·교육부까지 직접 발로 뛰며 교학사 교과서 구출 작전에 나섰지만, 사실상 완패했다. 제로에 가까운 채택률은 무엇을 보여 주는가?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한 지난해 9월부터 전교조와 시민사회 단체는 교학사 교과서 검정 취소 운동을 광범하게 전개했다.
식민지근대화론으로 일제 식민통치를 미화하고, 독재자 이승만·박정희와 이를 후원한 미국 제국주의를 찬양한 교학사 교과서는 대중적 반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수많은 오류와 표절 의혹 등에도 교과부가 법적 근거도 없는 자문위원회, 수정위원회까지 동원해 검정을 승인하고, 이것이 현장에까지 보급되자 사람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이러한 대중적 반감과 분노가 실제 불채택 운동으로까지 연결시킨 중요한 고리는 전교조의 시정명령 거부 결정과 KTX 민영화에 맞서 싸운 철도 파업이었다.
전교조는 지난해 하반기 정부의 시정명령을 조합원 총투표에서 압도적으로 거부해 전체 노동자들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전교조는 이 힘을 바탕으로 하반기에 전교조 탄압 저지와 교학사 교과서 퇴출 요구·채택 거부 운동을 꾸준히 전개해 왔다.
전교조의 바통을 이어받은 철도 노동자들의 민영화 반대 파업은 박근혜 정권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또, 박근혜 정부의 반동적 공세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생각을 확산시켰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전교조 교사를 포함한 역사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거부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안녕하지 못한” 학생들이 교학사 교과서 채택 비판 대자보를 부착하고, 학부모와 동문들의 웹사이트 비판 글 게시, 항의 전화, 1인 시위, 기자회견 등이 쏟아지면서 광범한 거부 분위기가 형성됐던 것이다.
이것은 12월 이전과는 사뭇 다른 광경이다. 그때도 많은 교사들은 친일·독재 미화 등 교학사 교과서의 극우적 역사 서술에 분노했다. 그러면서도 교학사 교과서를 학교 안으로 못 들어오게 막을 수 있을지를 반신반의했다. 전교조 조합원들이 많은 공립 고등학교는 확실하게 빗장을 걸 수 있겠지만, 전교조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사립고등학교에 대해서는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철도 파업이 12월 정치 상황을 주도하면서 미처 예상치 못한 변화가 생겼다. 이명희가 “인민 광풍”이라고 부른 항의 운동이 전국에서 일어난 것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2천여 고등학교 중에 한 손으로 꼽을 숫자의 학교가 채택하는 것도 용납할 수 없다는 기세다. 생산 지점에서 벌어진 투쟁이 상부구조에서의 투쟁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국정교과서는 독재 정권의 교과서 체제로 회귀하는 것
정부와 여당을 비롯한 우익들은 교학사 교과서를 통해 우익 역사관을 주입시키는 데 실패하자, 본격적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겠다고 발 벗고 나섰다.
새누리당 원내대표 최경환은 “역사 교과서 검정 제도가 국민 분열의 원인이 되고 불필요한 논란을 만든다면 국정교과서로 돌아가는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하자고 주장했다. 전직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헌정회까지 “교육부에 편수국을 부활시키고 학계 공론절차를 거쳐 한국사 교과서를 편찬해야 한다”며 국사 국정교과서 체제 부활을 촉구했다.
마침내 교육부가 편수조직을 부활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국정 교과서 시절에 운영하던, 바로 그 편수조직이다. 그리 되면 교육과정이나 교과서 검정 과정 전반에 정부가 직접 개입할 수 있게 된다.
박정희가 유신체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사교과서 국정화를 했듯, 박근혜는 지배계급의 입맛에 맞는 국가 이데올로기를 주입해 사회 분위기를 통제하고 싶어 한다. 과거 독재 정부의 반동적 통치를 정당화하고 이를 현재화하려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이 추진한 ‘역사교육 강화 방안’을 보면 역사 교육에 대한 국가 개입이 어떻게 추진돼 왔는지 보여 준다. 교육부는 2013년부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출제한 한국사능력시험을 통과해야 교사임용시험을 볼 수 있게 했다. 국사편찬위원장 유영익은 이승만을 국부로 찬양하는 뉴라이트 계열의 대부다. 또한 서울교육감 문용린은 중등 역사과 2급 정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 근현대사의 이해’ 수업의 강사로 뉴라이트 계열의 경희대 교수 허동현을 초청했다. 교사 임용단계부터 재교육과정까지 뉴라이트 계열의 우익 역사관을 교사들에게 주입하려 한 것이다.
검열
이렇듯 뉴라이트 계열의 한국사 교육과 국가정체성 확립 주장은 정부의 지지를 받으며 노골화됐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교학사 교과서가 공식적으로 학교 현장에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우익은 교학사 교과서를 발판 삼아 2017년 수능에서 한국사를 필수화해 역사 교육에 대한 국가 통제를 마무리하는 로드맵을 그렸다.
이것은 1986년 5·10 교육민주화 선언에 담긴 교사들의 여망을 정면으로 뒤집으려는 시도다. 당시 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은 “해방 이후 우리의 교육은 전 민족의 노예화를 획책하던 일제 군국주의 교육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채 시류에 따라 부침한 정치권력의 편의대로 길들여진 충직한 시녀로 전락”한 것에 맞서 싸우자고 호소하며 전교조 결성으로 나아간 바 있다.
따라서 교사들의 생각을 통제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라나는 세대인 학생들의 생각을 통제해 지배계급의 사상에 도전하기 어렵게 만들려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에 반대해야 한다.
물론 검정제도도 검열 제도의 일부다. 교육부 장관 명의로 고시된 교육과정에 따라 집필해야 하고, 집필된 역사 교과서는 국사편찬위원회에 제출해 검정심의회의 검정을 통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온전히 보장할 수 있도록 교과서는 자유발행 체제로 가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이슈는 검정이냐 국정이냐 사이의 선택에 있다. 국정은 박근혜가 지지하는 이데올로기가 반영되는 교과서이므로 국정체제를 반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