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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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선장과 일부 선원들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이 공개됐다.
공소장을 보면, 무리한 증개축으로 선박의 복원성이 떨어졌고, 화물 과적과 이를 위한 평형수 부족, 조타 실수가 겹치면서 결국 침몰이라는 참사가 일어났다. 4월 16일 배가 기울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선장과 일부 선원들은 침몰을 인지한 듯하다. 배가 완전히 복원력을 상실할 때까지 거의 1시간이 있었지만, 대피 명령을 포함해 어떤 조처도 없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대기방송만 7차례 했을 뿐이다. 심지어 이들은 자신들의 탈출이 어려워질까 봐 관제센터의 대피 명령과 인근 선박의 구조 협력 교신조차 무시했다. ‘제때 대피 명령만 했더라도’ 하는 원통함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청해진해운은 책임을 회피하려고 화물 적재 수치를 조작하느라 바빴다.
해경의 대처는 직무유기에 가깝다. 해경은 탑승 학생이 신고를 했지만, 위도 경도를 묻느라 시간을 허비했을 뿐 아니라 사고를 인지하고도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세월호 인명 탈출은 선장님이 직접 판단해 결정하라”고 말했을 뿐이다.
해경은 스스로 배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구조했을 뿐, 선내 구조 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인명 구조 명령권도 발동하지 않았다. 이 명령권을 발동하면 민간 단체들에도 필요 사항들을 요청할 수 있지만 해경은 민간업체 언딘을 중심으로 구조 활동을 펼쳤을 뿐이다. 구조를 위해 달려온 민간 잠수사 수백 명은 제대로 투입하지 않았다. 지휘 체계 혼란 운운하며 말이다. 해경과 언딘의 유착도 계속 밝혀지고 있다.
최근에는 해경과 119의 통화내용이 공개되면서, 고위 관료 ‘의전’ 때문에 구조가 늦어진 것 아니냐는 의혹도 생겨나고 있다.
책임
검찰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여전하다. 침몰의 직접적 원인, 제주VTS와의 교신 내용 등에 대한 의혹은 가시지 않고 있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 검경합동수사본부장은 용산 참사 사건을 담당한 부장검사 출신이다. 철거민들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우고 경찰과 정부를 철저히 비호했던 자가 고위 국가기관의 책임을 제대로 물으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껏 박근혜 정부는 진실 은폐와 통제에만 골몰해 왔다. 경찰은 희생자 가족들을 감시하려 사복 경찰들을 대거 배치했다. 사고 발생 다음날 청와대는 ‘유언비어’ 운운하며 정부 각 부처에 세월호 관련 SNS 대응지침을 내렸다. 홍보수석 이정현은 언론에 “한 번 도와주소” 하며 정부 비판 기사를 입막음하고자 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내부 상황반을 운영하며 “방송사 조정 통제”와 “방송 오보 적시 대응” 임무를 하달했다고 한다. 최근 주류 언론은 구원파를 연일 조명하며 사안의 본질을 흐리려 한다. 개신교 주류 측의 지지를 얻으려는 속셈이기도 하다.
따라서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및 가족대책위원회(이하 가족대책위)가 “정부나 국회 주도가 아닌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추고 ‘충분한 권한을 부여받은 예산, 인력이 보장된 진상조사기구가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가족대책위는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왜 그 많은 생명이 손 한 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차가운 바다 속으로 사라진 것인지, 정부의 대책본부는 그 시간 무엇을 했는지, 현장에서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 조사 대상에는 가족대책위의 요구대로 대통령도 포함돼야 한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바탕으로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그러면 청해진해운은 물론이고, 무능과 무책임으로 일관한 해경과 안전행정부, 정부 최고책임자인 박근혜도 응당 책임지게 될 것이다.
유가족들이 청와대로 행진하고 촛불이 커질 조짐이 보이자, 정부는 “정치적 이용” 운운하며 반격에 나서고 있다. 16일 유가족과의 면담에서도 박근혜는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등에 대해 “직접적인 답변은 피했다.” 따라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등 요구를 실현하려면 강력한 힘이 뒷받침돼야 한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촛불의 정당한 분노와 행동은 더 확산돼야 한다.
고질병
한편, 세월호 참사를 보며 많은 사람들은 삼풍백화점 붕괴와 성수대교 붕괴 등을 떠올렸을 것이다. 위험은 선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은 우리 아이들이 죽었지만 내일은 모레는, 당신의 아이들, 당신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는 한 유가족의 발언을 가벼이 들을 수 없는 이유다.
안전 관련 참사가 반복되는 진정한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체제가 이윤 경쟁을 동력으로 하여 돌아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들은 들이는 비용은 줄이고 이윤을 늘려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또한 기업들은 국가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 한다. 그래야 경쟁업체를 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관료나 정치인들도 특정 자본가들과 유착해서 특혜를 주는 방식으로 이득을 챙긴다. 이 체제에서 부패와 비리가 고질병인 것은 이 때문이다.
한편, 국가는 생산적 자원과 생산 체제를 지배해 권력을 가진 대자본가들의 이해득실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본가들의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익성인데, 국가는 사회간접자본을 제공하고,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등 수익성을 높이도록 돕는다.
국가는 세계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해 자국의 이해관계를 더 쉽게 관철시키려 한다. 첨단 무기에 천문학적 돈을 쓰고, 온갖 위험에도 핵무기를 위한 핵발전소를 짓는다. 이런 경쟁 논리 때문에 지진이 빈번함에도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에 핵발전소를 지었고 이는 결국 재앙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돈보다 생명’이라는 가치를 실현하려면 정부를 포함한 체제의 우선순위에 근본적으로 도전해야 한다.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과 의료 민영화 반대 투쟁은 노동자 투쟁이 다수의 안전과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임을 보여 준다. 터키 노동자들은 최근 일어난 탄광 폭발 사고에 분노해 정부에 항의하는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이윤 체제에서 이윤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은 체제를 멈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자꾸만 우리를 위험으로 내모는 체제를 멈추려면 이 잠재력을 실현시키려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