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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 데이비드 하비 그리고 자본주의의 핵심 모순

본지는 지난 호에 데이비드 하비의 피케티 책 비평 글을 실었다. 마이클 로버츠는 데이비드 하비의 피케티 비평에 일부 동의하면서도 하비도 자본주의의 핵심 모순인 이윤율 저하 경향을 놓치고 있다고 비판한다. 마이클 로버츠는 2008년 경제 위기를 1930년대 대불황과 견줘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분석한 《대공황》(The Great Recession)을 썼고 자신의 블로그에 최근 경제 상황을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분석하고 논평하는 글을 꾸준히 게재하고 있다. 블로그에는 이 기사에서 언급되는 여러 글과 자료의 출처도 있다.

데이비드 하비의 피케티 논평의 타당성

데이비드 하비는 뉴욕시립대 대학원에서 인류학과 지리학을 가르치는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교수이다. 하비는 최근 새 책을 냈고, 토마 피케티의 책을 논평하기도 했다.

하비는 피케티의 책에 상당히 비판적이다. 그래도 하비는 피케티가 매우 유용한 자료를 내놓았음은 인정했다.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생산양식과 사회 관계로 자리잡은 1750년 이후 주요 자본주의 경제에서 부와 소득 불평등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잘 보였다는 것이다.

“피케티는 통계 자료(우리가 그와 그의 동료들에게 감사히 여기는)를 통해 자본주의 역사 내내 자본이 전례 없이 극심한 수준의 불평등을 일으켜 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게다가 마르크스가 자신의 《자본론》 1권에서 제시한 이론적 결론도 정확히 그런 사실이다.”

그럼에도 하비가 지적하듯, 피케티는 자본주의에서 왜 생산 위기와 투자 위기가 반복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비는 다음과 같이 썼다.

“피케티의 책은 2008년의 위기가 왜 일어났는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장기 실업과 주택 압류가 가하는 이중의 부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그의 책은 최근 미국 경제의 성장이 왜 중국과 달리 부진한 것인지, 유럽은 왜 긴축의 정치와 경제 부진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하비는 피케티가 마르크스를 읽어야 했다고 말한다.(나도 이 점을 지적한 바 있다.)

피케티가 마르크스를 읽었더라면, “《자본론》 2권(이 또한 피케티가 읽지 않은 동시에 별 거리낌 없이 일축해 버리는 책)에서 마르크스가 임금을 낮추려는 자본의 노력이 어느 순간이 되면, 자본이 만든 생산물을 흡수하는 시장의 능력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과소소비가 아니라 이윤율 저하가 위기의 근본 원인

하비는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설명을 마르크스의 《자본론》 1권이나 3권이 아니라 2권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 위기가 반복되는 이유가 설명되는 책은 사실 《자본론》 2권이 아니다. 주로 《자본론》 3권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3권에서 이윤율 저하 경향 법칙*과 그 상쇄요인들을 설명한다.

하비가 경제 위기의 원인을 ‘과소소비’로 설명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이 설명은 마르크스의 설명과 다르다.

아직 읽지 못했지만 읽어 볼 가치가 충분히 있을 새 책에서 하비는 이렇게 설명한다. “예컨대 재투자를 할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이 자본을 축적하려는 충동, 가장 값싼 생산수단을 사용해야 한다는 강박 탓에 소비자들이 소비할 수단[돈]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핵심 모순이다.”

실제로 하비는 경제 위기를 설명할 때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법칙이 유용하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하비는 이윤을 늘리려고 1980년대부터 추진된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어떤 수학적 법칙에 따른 것”(아마도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법칙을 가리키는 듯하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비는 마거릿 대처의 경제 자문인 앨런 버드가 “무심코” 털어놓은 진심을 인용한다.

1980년대의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은 “실업을 늘리는 매우 좋은 방법이었고, 실업 증가는 노동계급의 힘을 깎아 내는 매우 바람직한 방법이었다. … 마르크스의 용어로 말하면 자본주의의 위기, 곧 산업예비군을 다시 창설하고 자본가들이 전례 없이 높은 이윤을 얻게 하는 위기였다.”

내가 보기에 이 말은 오히려 1970년대 말에 제2차세계대전 이후 최저치로 떨어진 이윤율을 회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신자유주의의 목표였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하비는 1980년대 초에 일어난 심각한 더블딥 경제 침체로 자본이 파괴되고 그 가치가 하락해 이윤율이 회복된 것이 신자유주의 정책과 무관하다고 여긴다. 하비는 오히려 “정치가 작동한 결과였다”고 말한다.

하비는 임금몫이 줄고 그로 말미암아 ‘과소소비’가 나타날 위험성이 가계 부채가 엄청나게 늘어나 상쇄됐다는 점을 피케티가 보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바로 수요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피케티는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무시한다. 1990년대에 이 문제는 서브프라임 시장에 담보대출 자금이 많아지는 등 신용이 막대하게 확장되며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생긴 자산 거품이 2007~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과 신용제도 붕괴로 터지게 됐다.”

요컨대, 하비는 경제 위기의 원인을 수요 부족으로 본다. 신용 거품이 수요 부족을 상쇄할 수 있었지만 일시적으로만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비는 다음과 같이 옳게 주장한다.

“경제 위기는 한순간에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비록 경제 위기를 촉발하는 방아쇠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경제 위기로 표현되는 변화는 지질학에서 말하는 대륙 이동처럼 수년에 걸쳐 진행된다. … 경제 위기의 과정을 돌아보면 위기가 완전히 발현되기 꽤나 전부터 여러 징후가 나타났음을 어렵지 않게 포착할 수 있다.”

그러나 하비는 위기의 징후를 이윤율의 변동이 아니라 신용의 변동에서 찾는다. 하비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1980년대에 부채가 한 없이 늘고 국제 금융에 대한 규제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는 자본이 국경을 넘어 이동할 수 있고 세계 곳곳에 위치할 수 있게 해서 [국내에서 일어나는] 노동과의 갈등을 해소시키려는 목적의 방편이었다. 이런 추세는 2008년 9월 15일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몰락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또한 자본은 부(富)와 같은 말이 아니다

하비는 피케티가 “자본을 잘못 규정”한 것이 핵심 문제라고 올바르게 지적한다.

“자본은 사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과정이다. 자본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사용하는 순환 과정으로, 대개 노동력을 착취해서 더 많은 돈을 버는 과정이다. …

“신고전학파 경제 사상(피케티 사고의 토대) 전체가 동어반복에 기초하고 있다. 자본수익률이 얼마나 될지는 결정적으로 경제성장률이 얼마나 될지에 달려 있다. 자본의 가치가 그 자본이 생산한 것으로 측정되는 것이지 그 자본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것으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임스 갤브레이스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지적한 바 있다. 피케티는 자본과 ‘부’가 같은 것이 아님을 보지 못한다. 자본과 부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하비가 말했듯, 자본을 측정할 때 주택과 부동산 같은 부를 제외하면,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크리라는 피케티의 전망은 허물어진다.

에스테반 마이토가 새 논문에서 바로 이 점을 증명한다. 마이토는 피케티가 사용한 자료를 사용해, 피케티의 자본수익률 법칙이 아니라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 법칙이 현실에 더 잘 들어맞는다는 것을 밝혔다.

마이토는 이렇게 설명한다. “피케티의 관점에서 보면 자본은 생산이나 가치 증식 과정과 관계가 없다. 피케티에게 자본은 ‘부’와 같은 말로, 시장에서 교환될 수 있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뜻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자본을 자본주의 생산과 관련지어 설명했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의 타당성을 검증하려면, 설사 경험적 방법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자본의 기본 개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주택’을 자본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생산수단이 아니라 소비재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금융 자산’(생산 없이 화폐가 증식하는 M-M')이나 ‘토지’도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최근 시기(호황이 절정에 이르렀던 1960년 중반 이후) 내내, 심지어 피케티가 말한 자본수익률도 마르크스가 말한 이윤율과 함께 하락하는 추세이다. 전체 부에서 토지와 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이 기계류나 비주택 자산에 견줘 줄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핵심 모순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은 피케티의 자본수익률도, 하비의 ‘소비 수단 부족’도 아니다. 바로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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