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피케티의 사회주의 시급하다》(피케티, 은행나무, 406쪽, 20,000원):
불평등의 경제학자 피케티가 제안하는 자본주의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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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에서 심화되는 불평등을 실증적으로 드러내 명성을 얻은 경제학자 피케티가 새 책을 냈다. 《피케티의 사회주의 시급하다》는 피케티가 2016~2021년 프랑스 중도좌파 경향의 신문인 〈르몽드〉에 기고한 글을 모은 책이다.
불평등 전문가의 책인 만큼 불평등에 관한 흥미로운 통계도 접할 수 있다. 예컨대, ‘남녀 간 임금 격차는 19퍼센트인가, 64퍼센트인가?’ 하는 글은 프랑스의 남녀 간 임금 격차가 나이가 들수록 커져, 50세 무렵이 되면 60퍼센트를 넘고 은퇴 직전에는 64퍼센트에 이른다고 밝힌다. 프랑스에서도 여성 차별이 상당한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불평등, 포퓰리즘, 기본소득, 부유세, 브렉시트, 여성 차별, 환경 문제 등 다양한 현안들에 관한 피케티의 견해를 접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사회 개혁 논의들이 활발한 시점이라 이 책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피케티는 이 책 서문에서 불평등 완화를 위한 대안을 압축적으로 밝히고 있다. 피케티는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 반대에 그치면 안 되고 사회주의라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피케티가 말하는 사회주의는 고전적 의미의 혁명적 사회주의가 아니고, 옛 소련 사회를 사회주의로 보는 스탈린주의적 대안도 아니다(이 책에는 중국의 불평등을 비판하는 글도 있다). 일종의 사회민주주의적 대안이다.
“권력 및 지배 관계 전반”
피케티는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교육의 평등과 복지국가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진정한 평등을 이루려면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권력 및 지배 관계 전반”이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 피케티는 25세 청년들에게 ‘최소자산’(프랑스의 경우 1인당 평균 자산의 60퍼센트 정도인 12만 유로(1억 6000만 원가량))을 지급하는 최소자산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한다. 청년들에게 최소자산을 지급하려면 매년 국가소득의 5퍼센트가량이 필요한데, 이는 누진자산세·누진상속세(최고위 납세자들의 세율을 80~90퍼센트로 인상) 등으로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피케티는 최소자산제가 기본소득제와 달리 기존 복지를 삭감하지 않고도 도입할 수 있어 장점이 있다고 넌지시 내비친다.
한국에서도 정의당이 지난 총선 때 ‘청년 기초자산제’(만 20세 청년에게 3000만 원 지급)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민주당 정치인 중 일부도 비슷한 제안을 했다. 피케티보다 액수가 작지만 말이다.
한편, 피케티는 노동자 경영 참여도 중요한 대안으로 제시한다. 스웨덴이나 독일 등에서 노동자 경영 참가가 시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사용자와 완전히 동등한 권한을 부여 받고 있지 못한데, 노동자 대표가 기업 이사회의 절반까지 차지하는 ‘공동경영’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노동자 경영 참가는 노동이사제 등의 이름으로 노조 지도자들이나 개혁주의 정치인들이 추구하고 있다.
물론 부자들의 세금을 더 걷어 가난한 청년들을 지원하고, 기업 경영을 사용자들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피케티의 주장에는 꽤 급진적인 함의가 있다.
그럼에도 이런 정책들이 자본주의의 “권력 및 지배관계 전반”을 바꿀 것이라고 보는 것은 공상적이다.
청년들에게 상당한 수준의 기초자산을 준다 할지라도 자본주의적 경쟁이 계속되는 한 망하는 자와 흥하는 자가 생겨 나고 불평등은 다시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경영 참여도 마찬가지다. 불황이 심화될수록 시장 경쟁에서 기업이 살려면 노동자들이 협조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든다. 이는 결국 임금 삭감이나 해고 등을 수용해야 한다는 압력을 강화시킬 것이다.
실제로 독일에서 신자유주의적인 하르츠 개혁이 추진될 때 노동자 경영 참가는 이를 막는 데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다(관련 기사: ‘독일 노동운동가가 말하는 ‘하르츠 개혁’의 진실’, 〈레프트21〉 115호). 그리고 경영 참가만이 아니라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기업들도 이윤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는 많다.(관련 기사: ‘협동조합이 효과적인 대안일 수 있는가’, 〈레프트21〉 105호)
프루동 식 대안
사실 기초자산제나 경영 참여 같은 피케티의 대안은 ‘소자산가들의 평등한 시장경제’를 꿈꾼 프루동 식의 대안과 닮아 있다. 그러나 이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압박은 자본가들이 착취를 더욱 효과적으로 하는 것을 강제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래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자본주의적 경쟁을 그대로 둔 채 불평등을 개선하려는 프루동 식의 대안을 부르주아 사회주의라고 규정한 바 있다.
한편, 피케티 대안의 한계는 그를 유명 스타로 만들어 준 그의 책 《21세기 자본》에서 나타난 그의 ‘자본’ 개념의 한계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연상시키는 제목과는 달리 피케티는 부동산 등 자산 일반을 자본이라고 지칭하는 부르주아 경제학의 개념을 따랐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말하는 ‘자본’은 단지 돈이나 자산을 뜻하는 게 아니다. 자본은 서로 경쟁하며 노동자를 착취해 증식해야 하는 가치이다.
이런 약점 때문에 피케티는 자산 불평등이 심화되는 현실을 잘 폭로했지만, 불평등의 핵심 원인에 노동자에 대한 경쟁적 착취가 존재한다는 점을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맞서려면 경쟁적 착취라는 자본주의의 핵심 동학에 도전해야 한다. 이는 착취받는 노동계급이 집단적으로 투쟁에 나설 때 가능하다.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했듯 “자본주의의 사슬은 그것이 벼려진 곳[생산 분야]에서 끊어져야 한다”.
물론 사회주의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피케티 책의 출간은 한국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바가 있다. 이를 통해 진정한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하는 점에 대한 토론이 활성화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또 피케티의 제안에는 분명 급진적인 요소가 있다. 부자들에게 90퍼센트에 달하는 소득세, 자산세를 거두려면 이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힐 것이다. 이에 맞서려면 상당한 수준의 노동자 투쟁이 필요할 것이다. 비록 피케티가 이런 동력을 그다지 주목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당대 프루동주의나 공상적 사회주의자들과 논쟁했듯 진정한 사회주의는 계급투쟁과 분리돼 건설될 수 없다. 피케티가 말하는 사회주의를 위한 권력관계 재편은 자본가 권력을 타도하기 위한 노동자 혁명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