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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비정규직:
현대차 사측의 악랄한 분열 시도와 ‘불법파견 면죄부 합의’

현대차 사측과 정규직 지부, 전주·아산 비정규직 지회가 8월 18일 ‘직접생산 사내하청 노동자 4천 명 신규채용안’에 합의했다.

정몽구는 끝내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았고, 정규직 전환 대신 일부 근속만 인정하는 신규채용을 관철시켰다. 여기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취하하겠다는 조건을 붙였다. 사내하청을 유지하고 이를 ‘진성 도급’으로 포장하기 위한 공정 재배치도 명시했다.

이번 합의는 정몽구의 불법적 사내하청 고용에 면죄부를 줬다. 이는 지난 10년 넘게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외치며 싸워 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염원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더구나 다른 사내하청·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데도 합의 직후 정규직 지부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의 단초를 만들었다”고 평한 것은 터무니없다. 이경훈 집행부는 합의에 따른 소송·고소고발 취하서를 접수하는 “소송 취하 대리인” 구실까지 떠맡았다.

울산 비정규직 지회는 합의를 거부했고, 아산 비정규직 지회 조합원의 43퍼센트도 이 합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사측은 전주·아산 조합원 5백50여 명을 신규채용하겠다고 별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적잖은 노동자들은 확실한 합의서도 없는 이 약속을 믿을 수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선고 연기와 이간질 시도

이번 합의는 8월 21~22일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선고를 코앞에 두고 나왔다.

사측은 합의 직후 우선 4백 명 신규채용 계획을 공고하고, ‘소송 취하자 명단 정리’를 이유로 법원에 선고 연기를 요청했다. 지난 4년 넘게 판결을 늦추며 정몽구를 측면 지원해 온 법원은 군소리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덕분에 사측은 숨통이 트였다. 선고가 강행됐다면, 1천여 명 안팎의 대규모 불법파견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사측은 2015년까지 찔끔찔끔 신규채용을 지속하면서, 어떻게든 노동자들을 흔들어 소송 규모를 축소시키려 할 것이다.

지금까지도 사측은 재판에 영향을 미치고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자 온갖 야비한 짓을 했다. 특히 사측은 재판에서 원고 1천6백여 명 전원의 개별 공정을 다 따져 보자고 달려들었다. 공정에 따라 누구는 불법파견이고 누구는 아니라고 이간질했던 것이다.

사측의 논리는 치졸했다. 사측은 같은 원청의 통제·지시 하에 일했어도, 조립라인과 분리된 공간에서 일하거나, 사용하는 부품이 정규직과 다르거나, 정규직-비정규직의 공정이 구분돼 있거나, 2~3차 하청업체면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했다.

심지어 전주공장은 상용차 생산의 특성상 한 사람이 작업을 끝내면 라인을 잠시 멈췄다가 움직인다는 이유로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우겼다.

이는 제한적으로 불법파견을 인정해 온 기존 판례들의 고질적 문제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그동안 법원과 노동위원회들은 불법파견 범위를 두고 제각기 엇갈린 판결을 해 왔지만, 대체로 조립라인에서만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일부는 좀 더 폭넓게 불법파견을 규정했지만, 이조차 뒤집어지기 일쑤였다.

이번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도 재판부는 제한적으로만 불법파견을 인정할 가능성이 있었다. 재판부는 공정별 차이를 따지겠다고 했다. 적어도 수백 명이 패소할 수 있었다.

이에 비정규직 지회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노조는 지난 2년여간 투쟁이 약화되면서 점점 더 법원 판결에 기댔지만, 오히려 선고는 거듭 연기됐고 공정별 차이는 더 부각됐다. 10년 넘게 함께 싸운 동료들 사이에서 희비가 엇갈렸고 두려움이 번져갔다.

사측은 이런 모순을 파고들어, “소송 패소자는 모든 희망을 잃을 것”이라며 신규채용안을 수용하라고 협박했다.

이 속에서 비정규직 지회들 사이에 갈등과 논란도 계속됐다. 상대적으로 재판에서 불리한 전주·아산 지회 집행부는 교섭에 더 매달렸다. 전주는 지난해 중앙노동위원회 판결에서 조합원의 60퍼센트가 불법파견을 인정받지 못했다. 아산은 2012년에 같은 중노위 판결에서 도장부 조합원 80여 명이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됐다.

결국 두 지회는 울산 지회가 교섭에서 빠진 상황에서 합의를 체결하는 데 이르렀다.

최근 2년여 투쟁을 돌아보며

: 정규직 지도부의 압박과 비정규직 지회의 후퇴

사측의 분열 시도가 본격화된 것은 2012년부터였다. 당시 사측은 8월 개정 파견법 시행을 앞두고 신규채용과 촉탁직을 확대하는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개정 파견법은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 노동자들뿐 아니라, 2년 미만자들에 대해서도 정규직 고용 의무를 부과했다. 안 그래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끈질긴 저항 속에 ‘불법파견의 대명사’로 찍혀 있던 현대차 사측은 더한층 부담이 생겼다.

그래서 사측은 2년 미만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전원 직고용 촉탁직으로 전환하는 한편, 2년 이상자들 일부는 신규채용하고 나머지는 공정 재배치 등을 통해 ‘적법 도급’으로 포장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올해 초까지 7차례에 걸쳐 2천32명이 신규채용됐고, 촉탁직 규모도 지난해 9월 기준으로 2천1백32명으로 늘어났다.

이는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흔들었다. 적잖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측의 강경 탄압과 전망 부재 속에 정규직 전환의 꿈을 포기하고 개별적으로 신규채용에 응시했다. 일부 조합원들도 지회의 신규채용 거부 지침을 어기고 그 대열에 합류했다. 노조에 남은 이들도 신규채용과 촉탁직 확대로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 간다는 위협을 느꼈다.

물론 이것은 예정된 결과가 아니었다. 투쟁이 난관에 부딪히고 점점 약화되면서 나타난 문제였다.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은 멀게는 2010년 점거파업 패배 이후로, 가까이는 2012년 다시금 재개된 투쟁이 꺾인 뒤로 어려움을 겪었다.

2012년은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약속한 문용문 집행부의 등장과 2월 대법원의 불법파견 확정 판결을 계기로 다시금 투쟁의 기회가 생겼던 때였다. 문용문 집행부는 공동 투쟁을 통해 1사1노조도 재추진하겠다고 공표했다.

울산 비정규직 지회도 1년 2개월간의 지도부 공백을 타개하고 새롭게 조직을 정비해 투쟁에 나섰다. 2012년 8월 13일 지회는 정규직 지부의 4시간 파업에 앞서 2시간 파업을 벌였다. 이날 정규직 노동자들은 대체인력 투입을 저지하며 비정규직 파업에 연대해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이어 16~17일에는 비정규직지회가 거의 2년 만에 전면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8월 20일 사측이 3천 명 신규채용 계획을 제시하면서 원하청 연대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 문용문 지부장이 신규채용안을 수용하라고 압력을 가한 것이다. 비정규직 지회는 “쓰레기안을 받으라는 거냐”며 격렬히 반발했다.

그런데도 문용문 집행부는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요구와 염원을 받아안기보다, ‘현실론’을 들어 타협을 종용했다. 그리고는 결국 정규직 임단투와 불법파견 특별교섭을 분리시켜 버렸다.

원하청 연대

이렇게 되자, 비정규직 지회는 조직이 이완되기 시작했고 투쟁도 전진하지 못했다. 게다가 울산지회 지도부는 ‘조합원 우선 정규직화’로 요구를 후퇴시켜 논란을 빚었다.

정규직 전환에서 조합원을 배제하면 안 된다는 주장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조합원 우선’ 요구를 내세워서는 악랄하게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는 사측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없었다. 이는 아직은 노조 밖에서 상황을 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고, 신규채용이라는 개별적 고육지책으로 이끌리는 이들을 집단적 투쟁으로 결집시킬 수 없었다.

당시 아산 지회 지도부는 요구 후퇴에 반대했지만 안타깝게도 상황을 역전시키지는 못했다.

그 뒤로도 비정규직 지회는 2012년 10월 대선 국면에서 천의봉·최병승 동지의 철탑 농성에 대한 지지가 확대되면서, 다시금 투쟁의 기회를 맞기도 했다. 지회는 11월 29일 경고 파업을 시작으로 이듬해 1월 30일까지 주 1~2회 파업을 이어갔다.

그러나 지회는 파업 수위를 높이며 투쟁을 확대하기를 주저했다. 2013년 1월 박근혜 인수위가 내각 구성에 난관을 겪던 시기를 노려 단호한 투쟁으로 초점을 형성할 기회도 잃어버렸다.

그리고 지회는 또 한 차례 요구안을 후퇴시켰다. ‘모든 사내하청’에서 ‘직접생산 하도급’으로 정규직 전환 범위를 좁힌 것이다.

그러나 이런 후퇴는 사측의 양보를 끌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문용문 집행부와 금속노조 지도부가 신규채용을 수용하는 잠정합의를 하려 해,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교섭장 봉쇄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문용문 집행부의 이 같은 태도는 정규직 노조에 대한 불신을 더 키웠다. 그리고 정규직에 대한 오랜 실망과 배신감 속에 비정규직 노조의 독자성을 고집했던 투사들에게 노조 통합이 노동자 단결에 이로운 방안이라는 믿음을 설득할 기회도 완전히 차단시켰다.

그 뒤로 투쟁은 점점 사그라졌다. 2013년 내내 철탑 농성이 지속되면서 간간히 부분 파업과 희망버스 시위 등이 있었지만, 사태를 바꾸지는 못했다.

신규채용이 계속됐고, 조합원들의 이탈도 이어졌다. 심지어 울산지회장은 2013년 8월 교섭에서 조합원들만 배제되지 않는다면 신규채용 방식의 협상안까지 수용할 수 있다고 후퇴했다. 정규직 지부와 심각한 충돌을 벌이며 반대했던 그 방식에 타협하려 했던 것이다.

당시 교섭은 논란 끝에 중단됐지만, 올 4월 재개된 교섭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됐다.

끝나지 않은 투쟁

종합해 보면, 이번 신규채용안 합의는 사측의 공세, 정규직지부의 압박, 비정규직 투쟁의 불투명한 전망 속에서 빚어진 절망과 고통의 산물이다.

그동안 정규직 지도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염원을 받아안아 사측에 일관되게 맞서기보다, 오히려 사측의 신규채용 압박을 비정규직 지회에 전달하는 벨트 구실을 했다.

올해 이경훈 집행부도 처음부터 불법파견 문제를 정규직 임단투와 철저히 분리시키며, 사측의 신규채용안을 놓고 사측과 비정규직 지회를 중재하는 구실을 자임했다.

이 속에서 원하청 연대에도 심각하게 금이 갔고, 비정규직지회들도 단호한 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전주·아산 지회의 신규채용안 합의는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다. 게다가 두 지회장은 총회에서 조합원들의 의사를 묻기 전에 이미 합의안에 서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둘러 교섭을 체결해야 한다는 조급함 속에 최소한의 노동조합 민주주의조차 무시해 버린 것이다.

지금 울산 지회와, 아산의 일부 조합원들은 어려운 조건에서도 ‘불법파견 면죄부 합의’를 비판하며 투쟁을 해 나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 동지들의 발걸음에 건투를 빈다.

비정규직 투사들은 지금까지의 투쟁 과정을 돌아보며, 후퇴를 바로잡고 다시금 단결해 싸울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정규직 활동가들도 이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함께해야 한다.

지난 투쟁을 돌아보면, 타협을 종용하는 정규직 지부 지도부로부터 독립적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를 한결같이 추진할 활동가들의 네트워크가 필요하다(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아우르는). 그런데 이런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제구실을 하도록 하려면 조합원 대중의 사기가 그다지 높지 않은 시기에는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단단한 조직이 구축돼야 한다.

선진 노동자들은 이와 같은 지난 시기 투쟁의 교훈을 곱씹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