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 구조조정, 공기업 퇴출제, 성과연봉제…:
“공기업도 사기업처럼 만들겠다”는 새누리당의 공기업 개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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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와 여당이 공공부문 공격의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새누리당 의원 전원의 서명을 받아 공무원연금 개악안을 발의한 데 이어, 공기업 ‘개혁’과 규제 ‘개혁’ 관련 법안도 발의하고 당론에 준해 올해 안에 처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경제 부총리 최경환과 청와대 경제수석 안종범도 최근 ‘공공기관 정상화 2단계’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박근혜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핵심으로 공무원연금 개악뿐 아니라 공공기관 구조조정과 규제 철폐를 지목하며 공을 들여 왔다.
새누리당 경제혁신특별위원장 이한구는 이번 구조조정의 목표가 “공기업도 기업처럼 만들어 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기업을 민영화하거나 수익성 위주로 운영하겠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정상화 2단계
실제로 새누리당 ‘공기업 개혁’의 핵심 법안인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개정안에는 부채가 많은 공공기관을 퇴출하는 규정을 만들고, 5년에 1회 이상 공공기관 통폐합이나 기능 재조정, 민영화 등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구체적으로, LH공사의 임대주택, 코레일의 민자역사 11곳, 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 46곳(특히 발전 자회사)을 매각하고, 코레일의 적자노선 운영권, 한국도로공사의 고속도로 유지관리업무, 한국공항공사의 공항 운영권 등을 사기업에 넘기기로 했다. 또, 공공요금 결정에 “경제 논리가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공공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뜻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미 부채 감축을 명목으로 인천공항철도 매각을 추진하고, 국립대병원에 수익성 위주의 경영평가를 도입하려 해 왔다. 이제는 공운법을 바꿔 전면적으로 민영화와 요금 인상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강도를 강화하려고 노동자 사이에 경쟁을 격화시키려 한다. 호봉 자동승급제 폐지와 성과 연봉제 도입, 내부 평가와 연계한 퇴출 장치 마련,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공기업에서 성과주의 임금체계와 임금피크제가 전면 도입된다면 이것을 지렛대로 민간 기업에서도 임금에 대한 공격이 더 손쉽게 벌어질 수 있다.
한편, 노동부 장관이 추천하는 노동계 인사를 공공기관혁신위원회 위원과 공기업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에 참여시키기로 했던 내용도 임추위에만 참여시키는 것으로 후퇴했다. 이조차 확정된 것도 아니다. 내정된 인물을 승인하는 구실만 하는 임추위에 노동계 인사가 참여한다 한들 들러리 구실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한편, 새누리당은 규제를 새로 만들려면 기존의 규제를 없애야만 하는 ‘규제비용 총량제’ 등이 담긴 규제개혁특별법도 공기업 개혁과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규제 완화 정책으로 추진해 온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의료법, 관광진흥법 등은 의료의 공공성을 포기하는 법안이라는 반발에 부딪혀 왔다. 세월호 참사도 규제 완화 때문이라는 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기업의 이윤을 위해 규제 완화 법안을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판교 환풍기 붕괴 사고 이후 환풍구를 2미터 이상 높이로 만들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지만, 규제를 강화하면 안 된다며 강제 규정이 아니라 권고 사항으로 두기로 했다.
권고 사항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공무원연금 개악이라는 만만찮은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민영화와 규제 완화까지 동시에 전면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한국 경제 상황이 그만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 유럽의 경기침체와 중국의 성장 둔화, 최근 일본의 양적완화 추가 확대에 따른 엔저 상황은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최경환이 경제부총리로 취임한 뒤 경기 부양책을 시도했지만 경제는 살아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앞으로 성장 둔화에 따른 세수 부족으로 한국의 재정적자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이런 위험 요인을 미리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가 더 큰 파국을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전면적인 공공부문 공격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공공성 방어를 결합해서 싸우자
정부의 강경하고 단호한 공세에 맞서려면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이 강화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공격의 성격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는 앞서 말한 다급한 처지 때문에 동시 공격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동시 공격에 맞선 운동들을 분열시키려고 이간질도 하고 있다.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사내 복지와 공무원연금이 특혜라며 공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공격들은 공공부문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공세의 일환이고, 그나마 공공부문에서 지켜 온 좋은 조건들조차 후퇴시켜 노동조건을 하향평준화 하려는 시도다. 이런 공격들에 제대로 맞서지 못하면, 똑같은 재정 절감 논리로 공공성을 파괴하는 공세가 확대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 정부 공격의 최전선에 있는 공무원연금 삭감과 공공기관 ‘정상화’에 반대하는 투쟁은 서로 연대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이간질에 맞서기 위한 최상의 대응은 노동조건 방어와 공공성 방어를 결합해서 투쟁하는 것이다. 즉,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조건뿐 아니라, 공공서비스 지키기에도 관심을 갖고 적극 나서야 한다. 또 노동조건과 공공성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을 알리며 연대를 확대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상반기 공공기관 정상화 반대 투쟁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매우 아쉽게도 ‘정상화 1라운드’에서 (공공운수노조 스스로 평가하듯이) 정부의 공세에 무너졌다. 그런데 공공기관 노조들이 노동조건 방어와 공공성 방어를 충실히 결합해 투쟁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수도 있다.
파편화
정부는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사내 복지 삭감과 민영화, 구조조정, 연금 삭감, 복지 축소 등을 재정적자 감축이라는 맥락에서 한 묶음으로 추진하고 있다. 반면, 공공기관 노조들은 사내 복지 삭감에만 시야가 국한돼 파편화된 대응에 머무른 면이 있다.
초기에는 ‘정상화라 쓰고 민영화라 읽는다’는 구호를 걸었지만, 정부가 사내 복지 삭감을 본격적으로 압박하기 시작하자 민영화 등 공공성 방어 요구를 일관되게 내세우며 연대를 확대하지는 못했다. 또, 세월호 문제 ― 이윤에 눈이 멀어 공공성이 파괴된 결과 ― 와 연결해 투쟁을 확대하지도 못했다.
결국 정부는 사내 복지 삭감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물론, 사내 복지를 삭감하지 않으면 내년 임금과 성과급을 동결한다고 정부가 협박해 어려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사내 복지 제도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더 손해다. 또, 사내 복지 삭감이 민영화 등 공공부문에 대한 총체적 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에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사내 복지 삭감에 합의해서는 안 됐다.
한편, 공공기관 노조 활동가들은 흔히 노동조건 문제로 싸우는 것은 다른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도 보는데,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노동조건과 공공서비스 방어 문제는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공공서비스 제공자인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악화되는 것은 이들이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의 질도 악화시킨다. 의료 노동자가 장시간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하면 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고, 철도에서 인력이 감축되면 안전이 위협받는다.
모범
공공부문 공격이 민간부문 노동자들에 미칠 영향도 중요하다. 정부는 공공기관 정상화를 ‘모범’ 삼아 민간부문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임금도 공격하고자 한다. 실제 금융 사기업들은 공기업들의 사내 복지 삭감 후, 이를 따라 사내 복지 축소에 나서고 있다.
일각에서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공공성 방어에 나서야 한다고 하면서도, 노동조건은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려 민영화에 맞선 투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방 공기업과 공공기관들에 대한 사내 복지 삭감, 성과 연봉제와 임금피크제 도입 등 임금에 대한 공격, 공공기관 통폐합을 통한 인력 감축 등 정부가 공공기관의 노동조건 공격을 지속하고 있으므로 2단계 정상화 반대 투쟁에서도 1라운드 투쟁의 교훈을 잘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게다가 정부가 추진할 공기업 ‘개혁’은 민영화 등 공공성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내용들이 대거 포함돼 있으므로 공공서비스 방어와의 결합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공공서비스 삭감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고, 공공서비스 방어를 위해 가장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이다. 지난해 철도 파업과 올해 의료 민영화 반대 투쟁이 그랬다.
새누리당이 올해 안에 속전속결로 공기업 개악안을 처리하려 하는 만큼,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대대적인 공공기관 공격에 맞서 신속히 전열을 정비하고 노동조건과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