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시리자 정부의 행보는 유럽 노동운동에 양면적 영향을 끼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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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자가 집권한 지 1백 일이 돼 간다. 그동안 시리자 정부를 둘러싸고 어떤 일이 있었고, 앞으로의 전망은 어떨지에 관해 김종환 기자가 4월 26일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의 지도적 당원인 파노스 가르가나스와 대화를 나눴다.
시리자가 집권한 약 1백 일 동안 그리스 정부가 파산할지도 모른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그리스 정부는 5월 11일에도 IMF에 빚을 갚아야 하는데, 과연 가능할까 하는 회의론이 여기저기서 제기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시리자 정부는 기한에 맞춰 빚을 갚아 왔다. 이를 통해 시리자 정부는 정부 재정을 흑자로 맞출 수 있음을 유럽 지배자들에게 입증하려 한다.
그렇게 해서 유럽 지배자들과의 타협에 도달하고 8월을 넘기면 당분간 그리스 정부가 갚아야 할 빚은 그리 많지 않다. 시리자는 바로 이것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시리자는 8월까지만 버티면 개혁 정책들을 본격적으로 펼 수 있다며 그리스 대중과 좌파를 달래고 있다.
여기에 그리스 정부 파산 ‘예측’ 보도들은 유럽 지배자들과 시리자 정부의 협상 과정이 매우 힘들고 지난한 것으로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낸다. 그래서 유럽 지배자들과의 합의 결과 시리자가 큰 후퇴를 하더라도 분노가 터져나오기보다는 안도감이 확산될 수 있다.
이런 시리자의 전술에 대해 파노스는 이렇게 지적한다. “시리자 대표이자 그리스 총리인 치프라스의 전술은 두 축으로 돼 있습니다. 한 축은 그리스 정부 재정을 흑자로 만들 수 있음을 유럽 지배자들에게 입증하는 것입니다. 다른 축은 마침내 합의에 이르렀을 때, 안도하는 여론이 지배적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시리자는 선거 때의 공약을 어겨야 할 것이다. 또, 시리자 정부와 유럽 지배자들이 대립하는 듯한 상황에서도 실제로는 긴축이 시행되고 있음도 보아야 한다.
한편, 신민당 등 그리스 우파는 “시리자 정부가 나라를 파산으로 내몰고 있다”며 “디폴트 위기”를 이용하려 한다. 하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다. 우파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워낙 낮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리자 정부가 곧 무너지거나 조기 총선이 곧 실시될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파노스는 이렇게 전망한다. “그리스 파산 예측은 빗나가고, 시리자 정부와 유럽 지배자들은 5월 말이나 6월 초에 합의에 도달할 듯합니다.”
이런 전망은 혁명적 좌파에게 장기적 안목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시리자 정부가 압력을 받아 곧 사라질 ‘막간극’ 정부라고 보는 전망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시리자 정부는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좌파는 장기적 안목으로 상황을 보며 시리자 정부를 압박할 운동과 투쟁을 건설하고, 시리자의 왼쪽에서 지지층을 키워야 합니다.”
여전한 그리스 운동의 전투성
다행히 중요한 투쟁이 계속되고 있고 그리스 좌파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전투적 정서가 크다. 이는 시리자 정부에 대한 좌파적 압력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공영방송국 ERT를 다시 운영하기로 하는 법안이 최근 국회를 통과했다(비록 만족스럽기만 한 내용은 아니지만). ERT는 전임 정부가 비용 절감을 위한 긴축 정책의 일환으로 폐쇄한 방송국이다. 한 푼이 아쉬운 정부가 ERT를 다시 운영하겠다고 한 것은 아래로부터의 노동자들의 압력 때문이다.
3월 21일과 4월 20일 인종차별과 파시즘에 맞서 일어난 시위도 중요한 사례다. 나치인 황금새벽당에 대한 재판에 맞춰 조직된 4월 20일 집회에 SEK 당원들이 주도하는 노동조합과 반나치 연합체 ‘인종차별·파시즘 반대 운동’(KEERFA)뿐 아니라, 공산당도 큰 대열을 이루어 참가했다.
아쉽게도 시리자는 이 집회에 공식적으로 참가하지는 않았다. 소수 지지자들이 참가했을 뿐이다. 그나마도 시리자 측 사람들은 ‘판결을 사법부에 맡겨야 한다. 법원 앞 거리에서 시위를 벌일 것이 아니라 평화롭게 앉아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 시위는 성공적이었다. 다음 기일인 5월 7일에 맞춘 시위도 준비되고 있다.
파노스는 5월 1일 국제 노동절 파업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날 파업은 긴축이 계속되는 것에 노동자들이 항의한다는 것을 보일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특히, 부채 상환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중앙 정부가 지방 정부에게서 돈을 걷으려는 것에 항의하는 것이 중요한 쟁점입니다. 5월 중에 병원 노동자들이 파업할 예정인데, 교사 등 공무원 전체로 확산될 수도 있습니다.”
시리자 정부에 가해지는 우파적 압력과 시리자 내 좌파의 한계
시리자 정부는 우파들의 압력도 받는다. 이를 보여 주는 사례가 재소자 처우 개선 법안을 둘러싼 논란이다. 그리스의 우파들은 시리자가 제출한 이 법안이 수감된 ‘테러범’들을 지원하는 법안이고, 따라서 시리자가 ‘테러리스트’들과 연계가 있다는 비방 운동을 벌였다. 경찰을 지휘하는 내무장관이 이 캠페인에 사실상 동조했다.
얼마 전 아테네대학교에서 아나키스트들이 점거 농성을 벌였을 때도 우파들은 경찰을 투입해 시위를 진압하라는 운동을 벌였다. 시리자는 며칠 동안은 저항했지만 결국 굴복했다. 경찰이 대학 캠퍼스에 난입해 시위대를 끌어낸 것이다.
시리자의 연립 파트너로, 우파 정당인 그리스독립당의 대표이자 국방장관인 파노스 카메노스도 마찬가지다. 그리스 정부가 IMF에 갚을 돈을 마련한다고 난리통을 겪는 와중에 그는 해상 초계기 개량 사업을 위해 미국 군수업체 록히드마틴과 5백만 달러어치 계약을 체결했다.
이처럼, 수많은 요인들이 치프라스와 시리자를 오른쪽으로 떠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리자 좌파의 행보는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시리자 내 좌파 의견그룹들의 연합인 레프트플랫폼의 지도자이자 에너지부 장관인 파나이오티스 라파자니스는 러시아 가스를 그리스로 들여오는 문제를 놓고 러시아 대통령 푸틴과의 협상을 이끌었다. 이것은 유럽연합과의 협상에서 그리스의 협상력을 키워 주는 ‘영리한 외교정책’으로 비쳐졌다.
그러나 그 결과가 그저 좋은 것만 것 아니다. 파노스는 이렇게 지적한다. “시리자 지도부의 전술에 함께함으로써 레프트플랫폼은 치프라스와 그가 이끄는 협상에 얽매이게 됩니다.”
시리자와 유럽의 좌경적 흐름
파노스는 유럽 좌파들의 낙관을 이렇게 보고한다. “지금은 노동자들이 긴축에 맞서면서 유럽 전체가 좌경화할 수도 있는 시기입니다. 그리스에서는 시리자의 집권으로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고, 사람들을 크게 고무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스페인 등지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 이 흐름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예측합니다.”
그러나 파노스는 상황이 일면적이지 않음을 지적한다. “그리스에서 벌어지는 일은 유럽의 좌경적 흐름에 양면적 영향을 끼칩니다. 사람들은 시리자 정부가 희망을 상징하므로 시리자 정부에 연대합니다. 그러나 지금 시리자 정부는 우경화하고 있고,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시리자 정부로부터 우경적 압박을 받기도 합니다.”
치프라스가 골몰하고 있는 유럽 지배자들과의 타협이 성사되면 유럽 전역의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미 독일 좌파 안에서는 시리자 지도부의 협상 중시 전술로 말미암아 날카로운 논쟁이 벌어졌다(본지 온라인 기사 참조). 스페인 포데모스 안에서도 비슷한 논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혁명적 좌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파노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혁명적 좌파는 우파의 위협으로부터 시리자 정부를 지키면서도, 이런 논쟁에 비판적으로 개입해야 합니다. 이것은 대중의 좌경화 흐름을 유지하는 데서 중요합니다. 이런 흐름이 성공적으로 유지되면서 스페인 등지에서 좌파 정부가 들어서는 것은 시리자 정부뿐 아니라 혁명적 좌파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