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 11년:
고용허가제 폐지를 위해 연대와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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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월 17일로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지 11년이 된다. 정부는 지금 이주노조의 규약에 고용허가제를 반대하는 취지의 내용을 담아서는 안 된다며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의 권리 향상을 위해 고용허가제는 꼭 철폐돼야 한다.
2004년 노무현 정부는 이주노동자 유입은 늘리면서도 체계적인 관리와 통제를 강화하려고 고용허가제를 도입했다. 그 전까지 이주노동자 유입을 관리·통제하던 산업연수제도는 국내 거주 이주노동자의 80퍼센트를 미등록 상태로 전락시키며 실패작으로 드러났다.
그 후속작인 고용허가제는 그야말로 살인적인 단속과 함께 도입됐다. 정부는 그물총, 가스총 등을 동원해 대대적인 “인간 사냥”을 벌였다. 단속을 피해 도망치는 과정에서 심장마비로, 추락사로 여러 이주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때문에 2003년 말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중단과 고용허가제 반대를 내건 명동성당 농성 투쟁은 무려 3백80일 동안 지속됐고 이 투쟁을 통해 지금의 이주노조가 만들어졌다.
단속·추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해마다 2만 명가량을 단속·추방해 왔다. 지금까지 이 과정에서 3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주노동자들로 하여금 고용허가제에서 이탈하지 않고 열악한 노동조건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이런 살인적인 탄압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고용허가제는 고용주에게 막강한 권한을 주며 노동자들에게 저임금과 열악한 조건을 강요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사업장 변경 사유는 고용주가 법을 위반했을 때만 가능하고, 사업장 변경 횟수도 3년 동안 3회로 제한돼 있다. 또 임금체불, 폭언, 폭행, 성폭행 등에 대한 입증 책임이 이주노동자에게 있다. 한국어와 한국의 법률, 제도에 어두운 이주노동자가 이를 해결하기란 매우 어렵다. 결국 부당한 대우를 참아 내라는 것이다.
게다가 고용주들은 노동부에 이주노동자 ‘이탈 신고’ 전화 한 통이면 이주노동자의 체류 자격을 박탈할 수 있다. 나중에 고용주의 허위 신고였음이 밝혀져도 법무부는 이들의 체류 자격을 회복시켜 주지 않는다.
‘단기순환’을 원칙으로 해서 정주(定住: 한 곳에 자리 잡음) 를 허용하지 않아 이주노동자들은 경기 변동에 따라 쉽게 쓰고 버리는 인력으로 취급받고 있다. 가족 동반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산업연수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는 바뀌지 않았다.
이주노동자 중 19퍼센트는 월 1백만 원도 못 받고, 74퍼센트는 월 2백만 원 이하를 받고 있다(이인영 국회의원실 조사). 이주노동자 절반이 하루 10시간 이상 일을 하는 것에 비춰 보면 시급이 형편없이 낮은 것이다.
특히 열악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은 월 평균 노동시간은 2백84시간, 월 평균 휴일은 2일, 평균 임금은 1백27만 원으로 최저임금도 못받고 있었다. 이들 중 77퍼센트가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 가건물 등에서 사는 등 생활 환경이 극히 열악했다. 농축산업의 여성 이주노동자들 중 31퍼센트가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경험했다(2013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
정부는 고용허가제가 노동3권을 보장한다고 선전하지만, 이는 완전한 위선이다. 정부는 고용허가제 폐지를 주장해 온 이주노조를 10년 째 인정하지 않고 역대 이주노조 위원장들을 모두 표적 탄압해 추방했다.
악화되는 이주노동자 처지
정부는 2008년 경제위기 이후에 이주노동자들의 처지를 더욱 악화시키고, 기업주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는 방식으로 고용허가제를 개악해 왔다.
2012년 이명박 정부는 사업장을 변경할 때 이주노동자들에게 구인업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이주노동자들이 회사를 직접 고르지 못하고 사업주들의 선택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게 해 사업장 선택 권리조차 박탈했다.
정부는 미등록 체류를 방지한다며 이주노동자 송출국 정부들을 압박해 이들 정부가 수백만 원에 이르는 이탈보증금을 이주노동자들에게 징수할 수 있게 했다. 또 2013년 말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출국한 이후에만 퇴직금을 수령할 수 있게 하는 사실상 퇴직금 강탈 제도를 도입했다.
또 국내 노동시장에 노동 유연화가 강화되면서 이주노동자들은 가장 유연한 노동력으로 사용되고 있다. 제조업과 건설업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하청 제조업 기업의 열악한 환경과 건설업에 만연한 다단계 하도급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 저출산, 노령화가 가속화되고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장기적으로 이주노동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그런데 이민자를 선별해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인종차별, 계급차별을 강화하고 있다. 돈이 많은 투자자는 아주 쉽게 영주권을 살 수 있다. 또 대학교수, 연구원 등 전문인력에게는 영주허용기준을 완화해 주고 있다.
반면에 고용허가제 비자로는 아예 영주권을 획득할 수 없게 하는 법률을 만들려 한다. 일부 숙련 이주노동자에 대한 기업주들의 요구가 커지고 있어 앞으로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노동자 중에도 장기 체류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이 노동자들의 정주 기회 확대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 규제를 더욱 강화하려는 것이다.
내국인 노동자 보호?
정부와 기업은 내국인 노동자를 보호하려면 이주노동자의 고용 업종을 제한하고,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고, 단기 순환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고양이가 쥐 생각해 주는 격이다. 내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는 노동시장 유연화 등 정부의 노동시장 공격 때문에 함께 피해를 보고 있다.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밀어붙이는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규제해 내국인 일자리를 보호하겠다는 주장은 완전한 위선이다.
그런데 고용허가제를 반대하면서도 내국인 노동자 보호를 위해 업종과 규모를 제한하는 등의 규제는 필요하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규제를 풀면 임금이 낮은 이주노동자들이 내국인 고용을 위협하고, 전체 임금 수준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주민 유입이 내국인 노동자들의 임금과 일자리를 열악하게 만들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사실 한국 정부 자신도 이주민들이 “일자리 창출 등 국내 경제성장에 기여”했다고 인정한 바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산업에 노동력을 공급해 생산에 기여하고 국내에서 소비를 해 경제에 이득이 된다.
실제로 일자리 상황은 주로 경기 변화에 달려 있다. 경제 상황이 좋아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면 내국인과 이주노동자 고용이 모두 증가하고 경제가 불황이면 둘 모두 고용이 감소한다.
물론 경제위기 시기에 줄어드는 일자리를 둘러싸고 노동자 간의 긴장이 커질 가능성은 있다. 정부와 기업주들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 경제위기의 책임을 떠넘기며 이주노동자와 내국인 노동자의 처지를 모두 악화시키고 싶어 한다. 이런 이간질에 말려들수록 노동계급의 힘은 약화되고 전체 노동자들의 조건이 악화될 수 있다.
가장 효과적으로 공격에 대응하는 방식은 내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들이 고용주들에 맞서 단결 투쟁하는 것이다. 경제위기 시기에 노동조건을 방어할 수 있는 힘은 단결해서 투쟁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이주노동자를 노조로 조직해 내국인 노동자와 단결 투쟁을 통해 처우를 개선한 사례가 곳곳에 존재한다. 금속노조 삼우정밀 지회를 비롯해 산하 여러 노조들과 건설노조 일부에서 이주노동자를 노조로 조직하고 투쟁해 처우를 개선하는 모범 사례를 만들었다.
2009년 금속노조의 실태조사를 보면, 당시 금속노조 사업장 2백여 곳 중 59곳이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었다. 이미 민주노총 조합원들 상당수가 이주노동자와 함께 일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를 노조로 가입시키려는 노력은 더욱 강화돼야 한다.
특히 우파들은 경제위기의 속죄양으로 이주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있기 때문에 이간질에 대처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중요하다.
이주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연대를 강화하는 것은 이주노동자들의 처지 개선뿐 아니라, 한국 노동계급 전체의 힘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노조에서 이주노동자와 단결을 추구해 나가는 것과 함께, 이주노조 합법화 쟁취 투쟁에 연대하고, 고용허가제 폐지, 단속 추방 반대 운동에 더 크고 강력하게 연대해야 한다.
인종차별 철폐! 고용허가제 폐지!이주노동자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 폐지!
8·30 이주노동자 행진
일시 : 2015년 8월 30일 (일) 오후 2시
장소 : 보신각
주최 : 민주노총, 이주공동행동, 이주노조, 경기이주공대위, 외국인이주·노동 운동협의회, 퇴직금 공동행동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