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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일자리 대안 논쟁:
국가는 청년 실업자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책임과 능력이 있다

역대 정부는 모두 청년 실업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정부 스스로 청년 실업을 양산하고 청년들을 저질 일자리로 내몰아 왔다.

국가는 그 어느 기업보다도 많은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다. 그런데 역대 정부는 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고용을 계속 공격해 왔다. 박근혜 정부도 올해 초 공무원연금을 개악하고, 공공기관 ‘정상화’라며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조건을 후퇴시키고 있다. 또, 공공부문에서 열악한 간접고용 비정규직 일자리가 계속 늘고 있다.

또, 자본의 이익에 호의적인 기구와 제도를 만들고 운영해 왔다. 이렇게 운영되는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과 긴밀하게 구조적으로 상호 연관을 맺고 있다.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맘껏 쓸 수 있도록 음으로 양으로 뒷받침한 것도 국가였다. 박근혜 정부도 올해 하반기 파견 확대와 기간제 사용 연장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따라서 국가부문 일자리를 공격하고, 재벌들을 뒷받침 하는 박근혜 정부가 청년 일자리 창출 운운하는 것은 역겨운 위선이자 유체이탈 화법이다.

그러나 정부는 분명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책임과 능력이 있다. 우선, 과세를 통해 모든 자본가들에게서 재원을 걷어들일 수 있다. 정부는 그동안 기업의 고용을 유도한다며 온갖 보조금을 줬지만 기업들은 고용을 전혀 늘리지 않았다. 세금만 기업들에게 들어갔을 뿐이다. 이런 돈을 국가부문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직접 써야 한다. 사회 전체적으로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깎아준 법인세를 다시 회복하고, 부유세를 과세한다면 재원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경제 위기 시기에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려면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중요하다. 그런데 국가에게 일자리를 요구하는 것은 이런 투쟁의 전술적 측면에서도 유리한 점이 있다. 국가는 안정적인 지배를 위해서라도 ‘국민의 대표자’를 자임하기 때문에, 개별 자본보다 아래로부터 압력에 좀더 민감하다. 국가부문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된 건 이런 이유도 있다.

국가 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라는 요구는 공공서비스를 늘리라는 요구와 직결된다. 특히, 한국은 공공서비스가 매우 취약한 나라이기 때문에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공공서비스가 필요하다. 또 이 요구는 민영화와 규제완화에 반대하고 인력 충원을 요구하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요구와도 연결된다.

한국의 사회서비스 고용 비중은 2008년 기준 14.7퍼센트로 OECD 평균 21.5퍼센트에 비하면 매우 낮다. 이 수치에는 민간에 위탁한 사회서비스 부문도 포함된다. 그러나 민간위탁 서비스 부문의 일자리는 노동조건이 열악한 경우가 많고, 그래서 서비스의 질도 열악하다. 따라서 국가가 직접 운영하고 고용하는 방식으로 사회서비스 투자가 늘어나야 한다.

예컨대, 현재 5.3퍼센트 밖에 안 되는 국공립 보육시설 비율을 50퍼센트(일본 58.5 퍼센트, 독일 40퍼센트, 스웨덴 75퍼센트) 이상으로 확충하고, 6퍼센트도 안 되는 공공병원을 유럽 선진국 수준(80퍼센트)까지 올리고, 학급당 학생 수를 OECD평균으로 낮추면 양질의 일자리를 차고 넘치게 만들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교육대학생연합이 9월 18일 시간제 교원에 반대하고 교사 확충을 요구하며 동맹휴업에 돌입하는 것은 정말 지지하고 고무할 일이다. 양질의 국가부문 일자리를 요구하는 청년·학생들과 조직된 노동자들의 단결된 투쟁만이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청년 일자리를 둘러싼 여러 대안들

심각한 청년 실업을 해결하려면 노·사·정이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청년유니온 김민수 위원장은 “청년 일자리라는 사회적 난제를 두고서는 ‘어느 한 측의 일방적 책임’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열악한 ‘주변부’ 노동 조건을 끌어올리기 위해 기업과 노동자 모두 청년 실업 해결을 위해 기금을 출연하고, 고용보험료를 인상하자고 주장한다. 또, 연대임금제를 통해 임금 격차를 해소하자고도 제안한다.

물론 ‘주변부’ 노동 조건을 끌어올리기 위해 청년유니온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나 청년 실업자에 대한 지원 등을 주장하는 것은 지지할 만하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에게 청년 실업의 명백한 책임이 있는데 노동자들도 양보하라는 것은 우선 공정치 않은 태도다. 아무리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라도 대부분 혹심한 착취에 시달리며 자신의 고용주들에게 이윤을 벌어다 주는 처지다. “현대차 공장에서 1년에 2천5백 시간 넘게 일하는 노동자가 1만7천여 명이나 된다. 하루 8시간, 주5일 노동을 기준으로 OECD 평균보다 거의 넉 달을 더 일하는 셈이다.” 그러니 기업주들이 벌어들이는 부에 비하면 이 노동자들의 임금은 새발의 피다. 고임금 노동자들이 좋은 일자리를 꿰차고 있는 게 아니라, 기업주들이 비용을 아끼려고 숙련 노동자를 혹사시키며 미숙련 청년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는 게 본질이다.

그런데 구도를 청년유니온처럼 잡으면 기업과 정부의 명백한 책임이 희석되고, 노·사·정 중 누가 청년을 위해 더 양보할 것인가가 관심사가 된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양보를 ‘이니셔티브’로 포장하게 된다. 하지만 노동자가 양보하면 사측과 정부가 도덕적 궁지에 몰릴 것이라는 생각은 공상적이다. 곧, ‘악마에게 손가락을 주면 몸 전체를 내놓으라 한다’는 냉엄한 현실에 부딪힐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공무원 연금 개악을 내어주니 이제는 노동시장 구조 개악도 받아들이라고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상대적 고소득 노동자들의 양보는 중소기업의 노동조건과 청년 실업자의 처지를 해결하긴커녕 오히려 더 열악하게 만들 것이다.

상대적 고소득 노동자들과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 그리고 대다수의 청년들의 이해관계는 연결돼 있다. “근로기준법의 해고제한 법리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제한이 개악되면 무노조·중소영세기업·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노동법이 포함하고 있는 보호장치를 잃게 된다.” 고소득 노동자의 임금 삭감은 더 열악한 처지의 임금 인상도 자제시키는 효과를 낸다.

이처럼 청년과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지 않고 부문주의적 시각으로 본다면 조금 더 나은 처지의 노동자를 먼저 공격해 전체 계급세력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고, 전체 노동계급과 피억압 계급에게 고통을 전가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전략에 제대로 반대하기도 어렵다.

한편, 정부가 온갖 매체를 동원해 “노동개혁은 아들, 딸의 일자리”라는 역겨운 광고를 해대자, 일각에선 “노동개혁이 아니라 재벌개혁”으로 맞받아치자고 주장한다. 물론 재벌은 청년 실업에 책임이 있고, 따라서 “재벌의 곳간을 열어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를 만들자”는 요구는 정당하다.

그러나 “재벌개혁”이라는 말은 좌파부터 우파까지 고무줄처럼 쓰인다. 특히 운동 내에선 중소상공인들을 지원하는 방식의 “재벌개혁”이 청년 고용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9월 2일 민주노총이 주도해 개최했던 ‘좋은 청년 일자리 만들기’ 기자회견의 요구 중 하나도 “중소기업 좋은 일자리를 위해, 원하청 불공정거래 중단, 골목상권 침해 근절 등 적극적인 경제민주화 정책 실시”였다.

그런데 이것은 중소기업 버전의 ‘낙수효과’ 논리와 같다. 중소기업의 성장해야 일자리도 늘고 중소기업 노동자의 처지도 나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소기업 자본가들이 비록 대기업에게 ‘단가 후려치기’, ‘갑질’을 당할지라도 그들은 자본주의에서 하위 착취자로서 노동자들과 적대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 얼마 전 중소기업을 포함한 경제 5단체가 노동시장 구조 개악 추진에 입을 모은 이유다.

따라서 한줌의 재벌과 대기업에 맞서 중소기업과 연대하자는 논리는, 중소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자신의 착취자에 맞서 투쟁하기 어렵게 만든다. ‘영세 중소상공인’도 그들이 고용한 노동자들에게는 ‘갑질’을 해댈 텐데 말이다.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임금피크제가 아니라 “소득피크제”를 하자는 제안도 있다. 즉, 소득의 상한선을 두고 그 이상 넘어간 부분을 청년 고용 재원으로 쓰자는 것이다. 청년좌파는 “임금피크제에는 임원 보수가 면제돼 있다”며 “기업의 이익이 분배되는 각 부문, 즉 임/직원의 보수와 주주배당 등이 모두 포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분명 현대차 노동자들은 임금피크제라는 노골적인 임금 삭감을 강요받고 있는데, 정몽구는 지난해 앉은 자리에서 2백15억 원을 벌었다는 사실은 불평등하기 짝이 없는 소득 분배의 현실을 보여 준다. 그러나 “소득피크제”는 소득의 상한선을 어디로 두느냐에 따라서 상대적 고소득 노동자의 임금 삭감에 뒷문을 열어줄 가능성이 있다. 청년좌파도 상한선에 대해서는 명확히 언급하고 있지 않다.

게다가 임원들의 보수와 배당으로 들어가는 돈은 노동자들이 만들어 내는 이윤의 작은 일부다. 물론 청년좌파는 사내유보금에도 상한을 두고 초과분을 고용에 쓰자고 하지만, 공식 성명을 봤을 땐 소득피크제에 더 강조점을 두는 듯 하다. 기업 이윤의 훨씬 많은 부분은 기업 내에 저축되거나 금융·부동산 등에 ‘투자’된다. 생산설비 등을 확장하는 데에도 쓰인다. 자본가들의 부와 권력은 이처럼 거대한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에서 나온다.

그래서 최근 금융권 대기업 임원들이 청년 고용에 동참하겠다며 연봉을 ‘자진 반납’하겠다고 부산을 떨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고임금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강요하기 전 도덕적 우위를 점하려는 쇼맨십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소득피크제는 실제 재원 마련에는 큰 도움도 안 되면서 면죄부 효과만 낼 수 있다.

한편,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이하 추진위)는 최근에 3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 7백10조 원 중 16조 원가량을 환수해 재원을 마련하고, 기업 규모에 따라 의무고용할당제를 실시해 45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 뒤, 임금보조금을 지급하자는 대안을 내놨다. 분명히 재벌에게 청년 실업의 책임을 묻고 그들의 이윤을 공격하는 것은 매우 정당하다.

그런데 이렇게 재벌의 사내유보금 중 일부라도 빼앗았다면 왜 그 돈을 다시 기업주들에게 임금보조금으로 지급해야 할까? 그 돈으로 국가가 직접 일자리를 늘리면 되는데 말이다.

이는 재벌의 이윤을 일부 뺏어 중소기업주들과 노동자들이 상생하자는 기존의 재벌개혁론에 뒷문을 열어줄 수 있다.

또, 추진위는 어떻게 사내유보금을 환수할 것인지에 대해선 다소 모호하다. 아마도 대중적 거리 항의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물론 거리 항의 운동도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국가와 재벌이 이런 급진적 조처를 받아들이도록 하려면 엄청나게 큰 압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재벌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투쟁해 자본의 이윤을 직접 공격하는 것이다. 국가가 그런 조처를 시행하려 해도 재벌들이 저항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