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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국민투표 이후 계속된 뜨거운 여름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트로이카에 굴복했지만, 그리스 노동자들은 항복하지 않았다. 코스타스 피타스는 정치와 경제가 모두 요동치는 상황에서도 노동자들의 힘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썼다. 코스타스 피타스는 산업자원부의 공무원노동조합 사무국장이며, 안타르시아와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 소속 활동가다. 이 글은 8월 말에 쓰여졌다.

지난 5년간 그리스에서는 7~8월이 휴가철이 아니었다. 무더위 때문에 급격한 정치적 발전과 노동자 투쟁이 한 숨 고르던 일은 과거지사가 됐다. 특히 올해 7월 5일 국민투표 이후에는 아찔할 정도로 국면전환이 빨랐다.

7월 5일 국민투표에서 그리스 민중은 무려 61.3퍼센트가 긴축 반대에 표를 던졌다. 그리스 민중에 맞서는 세력은 은행 영업을 중지시키도록 강요한 유럽중앙은행, 그리스 자본가 계급 전반, 언론 재벌들, 정교회, 세대를 불문하고 보수 정당 및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속한 정치인 수백 명이었다.

매일같이 협박이 쏟아졌다. “[긴축에] 반대를 찍으면 그리스는 유로존에서 쫓겨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망할 것이다.” 시리자 소속 장관들조차 긴축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못했고 그래서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했다.

그럼에도 투표 결과는 노동계급이 뚜렷하게 긴축 반대 의사를 밝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테네 근교 부촌에서는 80퍼센트가 긴축에 찬성표를 던졌다. 노동계급 거주 지역인 아테네 서부와 피레우스에서는 반대표가 그만큼 압도적이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정부는 국민투표로 드러난 긴축 반대 의사를 바로 다음 날 찬성으로 뒤집어 버렸다. 치프라스는 간접세(부가가치세) 인상, 5백 억 유로[약 67조 원] 규모의 민영화, 더 내지만 더 늦게 받도록 연금 개악 등 일련의 가혹한 긴축 조처를 채권단과 합의했다. 치프라스는 내년에 불황으로 경제 규모가 3.3퍼센트 축소될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대규모 정부 재정 흑자를 유지하라는 요구도 수용했다.

시리자 정부는 이 모든 법안을 우파, 중도파,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손잡고 의결했다.

8월 초 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IMF의 ‘트로이카’[3인조]에 유럽안정화기구(ESM)가 더해진 “콰르텟”[4인조]이 그리스로 돌아왔다. 그들은 항만·공항 즉시 민영화, 공공부문 임금 삭감,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을 즉시 67세로 연장, 약국과 병원 이용료 신설, 정리해고 요건 완화, 노동 유연화, 단협 폐지, 부자들을 위한 더한층의 감세 등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8월 20일에 3차 “양해각서”를 체결하려면 이 모든 요구를 수용해야 했다. 새 양해각서에 따르면 그리스는 약 8백 억 유로를 새로 대출 받지만, 이 중 대부분은 기존 부채를 상환하고 은행 자본을 확충하는 데 쓰인다! 이것이 유럽연합(EU)의 진면모다.

시리자 정부 내 다수는 굴복했을지 몰라도, 기층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지난 5년간 긴축 반대 운동은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노동자들은 시리자의 행동에 실망했음에도 여전히 계속 투쟁하려 한다. 작업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목소리가 점점 더 많이 들린다. “우리는 표를 무기 삼았지만 그 무기를 뺏겼다. 이제 우리는 파업을 무기로 삼을 것이다. 이 무기만큼은 저들이 무슨 짓을 하든 우리에게서 뺏을 수 없다!”

7월 공공부문노총(ADEDY)은 새 법안이 의회에 부쳐지던 날에 파업을 벌였다. 아침에 열린 파업 집회에 수많은 노동자가 참가했다. 주된 구호 중 하나는 다음과 같았다. “‘좌파적 긴축’은 사기다. 옳은 것은 노동자들의 권리다.” 같은 날 아테네 철도·지하철 노동자들도 파업을 벌였다.

그 날 저녁, 수많은 사람들이 더 합류한 대열은 의회 건물 앞 신타그마 광장을 둘러쌌다. 경찰은 시위를 해산시키려 최루가스를 뿌리며 시위대를 공격했다.

1주일 후, 새 법안이 두 번째로 의회에서 투표에 부쳐지자, 수많은 노동자·청년이 ADEDY의 호소에 응해 신타그마 광장에 다시 모였다. [그리스 제2의 도시] 테살로니키를 비롯한 많은 다른 도시들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ADEDY는 “콰르텟” 기술관료들의 정부 건물 진입을 막아 달라고 조합원들에게 호소했고, 그 결과 기술관료들은 정부와의 일부 협상을 아테네 힐튼 호텔에서 해야만 했다.

“‘좌파적 긴축’은 사기다. 옳은 것은 노동자들의 권리다.” 7월 15일 3차 구제금융안에 반대해 파업에 나선 그리스 공공부문 노동자들. ⓒ사진 출처 그리스 〈노동자 연대〉

파업

ADEDY가 호소한 총파업을 비롯해 여러 차례 대규모 총파업이 벌어졌고, 공공부문과 민간 부문을 막론하고 수많은 작업장에서 투쟁이 터져 나왔다.

아크로폴리스를 경비하는 노동자들이 수개월에 걸친 임금 체불에 항의하며 7~8월에 두 차례 파업을 벌였다. 그리스 최대의 자동차 보험 긴급출동 서비스 기업인 ELPA의 노동자들도 행정당국을 점거해 임금 체불에 항의했다. ELPA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경영 참여를 전제로 기업을 국유화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스 최대 TV 방송사 중 하나인 ANT1에서는 기술진 30명에 대한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기술진 및 기자들이 파업을 벌이고 5일간 방송을 중단했다. 그보다 며칠 전, 아테네의 유력 일간지 〈엘레프테로스 티포스〉(‘자유의 언론’)와 〈에트노스〉(‘민족’)의 노동자 전원이 파업에 돌입했다.

테살로니키 시 당국 공무원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쓰레기 수거 사업 민영화를 성공적으로 저지했다. 철도 노동자들은 조업을 중단하고 신규 채용을 요구하고 정부의 철도 민영화 계획에 항의했다.

항만 노동조합은 최근 발표된 항만 민영화에 항의해 파업을 준비 중이다. 긴축에 맞선 병원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들이 섭씨 40도가 넘는, “평온했을” 여름 휴가철에 벌어진 일이다.

경제 투쟁 영역에서만 투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나치 황금새벽당에 대한 재판이 벌어지는 법원 앞에서 ‘인종차별·파시즘 반대 운동’(KEERFA)의 주도로 시위가 벌어졌다.

수많은 시리아·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아테네 여러 곳의 공원과 광장에 천막을 치고 생활하며 난민 지위 인정 및 거주지 제공을 요구하는 것에 연대하는 운동도 있다.

이런 기층의 압력 때문에 시리자 내 긴장이 심화됐다. 대부분 좌파연대 소속인 의원 40명이 긴축 법안에 반대표를 던졌고 그 후 25명은 시리자를 탈당해 민중연합이라는 당을 만들었다.

좌파연대의 시리자 탈당은 긴축에 맞선 저항에 힘을 더할 수 있기에 환영할 만한 발전이다. 민영화, 연금 삭감 등 모든 전선에서 좌파들이 공동전선을 구축해 함께 행동할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그 이후로도 시리자 중앙위원 52명이 긴축 법안에 항의하며 추가로 사임했다.

행동

8월 무더위에도 노동자들이 거리에서 투쟁하는 이런 때 노동자 운동에 필요한 것은 대규모 공동 행동을 조직할 좌파다. 항만·공항·국영 전력 기업의 민영화를 저지하고, 임금과 연금 삭감을 저지하고, 긴축 때문에 병원과 학교가 완전히 망가지는 것을 저지하려는 파업과 점거가 계속 벌어지는데 좌파는 여기에 개입해야 한다.

7월 5일 국민투표에서 반대표가 크게 나온 이후 이런 공동 행동의 가능성은 과거 어느 때보다 크다.

마지막으로, 노동계급이 대안으로 제시할 전망이 무엇인가 하는 점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시리자의 개혁주의 전략은 한계에 다다랐다. 노동자 운동과 좌파에게는 총체적인 반자본주의 전략이 필요하다.

반자본주의 좌파와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 그리스사회주의노동자당(SEK)의 연합인 안타르시아는 반자본주의적 전환 강령을 제시했는데 단지 선명성을 내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부채 전액 탕감, 노동자 통제 하에 은행과 대기업 국유화, 해고 금지, 유로존과 EU 탈퇴는 지금 여기서 노동계급의 삶을 지키기 위한 일련의 조처들이고 따로 떼어낼 수 없는 것들이다. 치프라스는 “위기를 탈출할 다른 방법은 없다”고 말하지만 이런 요구들이야말로 우리의 답변이며, 오늘날 긴축에 맞서 투쟁하는 민중의 무기다.

민중연합은 아직 자신들의 강령을 공식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민중연합 소속 저명인사 몇몇은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요구가 드라크마 화(貨)로 복귀, 은행 국유화, 사유화 중단 이상은 아닐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말하자면 유로존은 탈퇴하지만 EU에서 나가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충분한 대안이 못 된다. EU는 악독한 자본가들의 기구다. 긴축과 경제 협박, 인종차별, 제국주의적 개입이 EU의 뼛속들이 배어 있다. EU 자체와 완전히 결별하지 않는 한, 설령 “우리 측 조건에 맞춰” 유로존을 탈퇴해도 이들을 저지할 수 없다.

어느 계급의 통제 하에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인지가 중요한 쟁점이다. 노동자 통제 요구는 반자본주의적 강령을 위한 꽃 장식이 아니다. 제대로 대안을 구현하려면 병원 노동자들이 치료와 투약 과정을 주관하고, 은행 노동자들이 개입해서 돈이 투기가 아니라 연금에 쓰이도록 감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2년 동안 국영 방송국 ERT 노동자들은 노동자 통제가 공상이 아님을 보여 줬다. 날이 가면 갈수록, 노동자들은 점점 더 그런 행동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치프라스는 유럽 모든 나라의 정부가 그리스에 맞섰기 때문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7월 5일 국민투표를 앞두고 세계 곳곳에서 긴축 반대 지지 시위에 나선 수백만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에 긴축 반대를 밀고 나가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거대한 국제 연대 물결과 각국에서 벌어지는 긴축에 맞선 파업에서, 그리스 노동자들은 투쟁할 수 있는 희망과 힘, 영감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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