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 저지, 시간외 근무 개선, 인력 충원: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투쟁에 지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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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의료기관뿐 아니라 민간 병원에서도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국립대병원에 이어 지방의료원들에도 임금피크제를 예고했고, 애초 12월 말까지 완료하라던 도입 시점도 10월 말로 앞당겼다.
정부가 이처럼 공공부문 공격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최근 사립대학교 병원 중에는 처음으로 고대의료원 사측이 임금피크제 도입을 예고했다. 서울성모병원도 56~58세부터 진급과 호봉 승급을 동결하는 안을 내놓았다.
박근혜 정부가 공공부문에 대한 공격을 서두르는 것은 바로 이런 파급 효과 때문이다. 정부는 상대적으로 잘 조직되고 규모가 큰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사기업주들은 정부 정책이기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며 민간 부문에서 이런 공격들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따라서 보건의료노조가 산하 지부들(공공 의료기관과 민간 병원 모두)에 임금피크제 수용 금지지침을 내리는 등 완강히 버텨 온 것은 꼭 필요한 올바른 결정이었고, 앞으로도 지속돼야 한다. 한국노총의 노사정 야합과 정부·여당의 노동 개악 속도전 속에서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불안과 불만도 상당하다.
인력 충원
정부와 병원 사측은 메르스 사태 이후 관심이 높아진 병원 인력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마치 임금피크제가 그 일환인 것처럼 꾸며대고 있다.
실제로 메르스 사태는 병원 인력 부족이 환자와 보호자들의 안전을 얼마나 위협하는지 잘 보여 줬다. 병원 노동자들의 권리와 삶을 위해서뿐 아니라 환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서도 인력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그러나 임금피크제로 병원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기일 뿐이다. 정부가 관리하는 공공병원들은 정원을 늘리지 못하도록 총정원제를 시행하고 있고, 비정규직만 늘리고 있다. 민간 대형병원들도 간호등급제의 기준 자체가 너무 낮아 인력을 늘려봐야 인건비만 는다며 인력 충원을 외면하고 있다. 재정 절감과 수익이 노동자와 환자의 필요보다 우선인 것이다. 한국의 환자 대비 간호인력 비율은 OECD 평균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
그러다보니 최첨단 시설을 갖춘 병원에서 정작 간호사들은 식사 시간도 없어 밥을 ‘마시듯이’ 먹고, 무보수 시간외 근무가 당연시되고 있다. 3~4시면 퇴근해야 할 데이 근무자가 저녁 9시가 되도록 밥도 못 먹고 퇴근도 못하는 일이 수시로 벌어진다. “매년 간호사가 1백 명씩 그만두고, 숙련될 시간도 없이 친절과 정확한 간호만 강요받는다.”(김영준 경희의료원 지부장)
그런데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와 병원 측이 인력 확충은커녕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거짓 명분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에나 열을 내고 있는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의 ‘공공기관 임금피크제에 따른 채용 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에서 2014년까지 임금피크제 도입 기관의 채용률이 미도입 기관보다 낮은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심지어 고대의료원 사측은 ‘몇 명 되지도 않는 대상자 때문에 다른 직원들이 피해를 본다’거나 ‘간호사들은 [근속연수가 짧으니] 어차피 정년하고 무관하지 않냐’며 고약하게도 노동자들을 이간질하고 있다.
성과 경쟁 강요하는 임금체계 개편
그러나 임금피크제는 향후 십수 년 사이에 병원 노동자 상당수가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병원 노동자 대부분의 전반적인 노동조건 악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도 심각성이 있다.
정년을 채우는 간호사들이 얼마 안 되는 것은 사실인데, 그 이유는 주로 인력 부족에서 비롯한 살인적인 노동강도 같은 열악한 노동조건 탓이다. 그런데 임금피크제는 이런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정년을 채워봐야 기다리는 게 임금삭감이라면 누가 정년까지 일하겠는가?
또, 임금피크제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 개악의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지난해부터 정부는 병원 노동자들의 임금체계를 현행 호봉제에서 직무급제나 성과급제 등으로 뜯어 고치라고 압박해 왔다. 직무급제나 성과급제를 도입하면 병원 측이 노동자들에게 성과 경쟁을 강요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병원 측은 자기들 입맛에 맞는 ‘성과’ 평가 기준을 내세워 노동자들을 개인별로 길들이려 할 것이다. 부서나 ‘성과’에 따른 임금 격차는 임금 수준의 전반적 하락으로 이어지고,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단결하는 데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예컨대, 병원 노동자들이 대부분 겪고 있는 무보수 시간외 근무를 거부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임금피크제는 일반해고 요건 완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같은 박근혜 정부의 노동 개악과 한 묶음으로 추진되는 정책이다. 임금피크제 저지 투쟁은 병원 노동자들의 목전에 이미 다가온 더 커다란 공격을 막는 투쟁이고, 노동개악으로 큰 고통에 빠질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건을 방어하기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보건의료노조 산하 지부들이 쟁의권을 최대한 활용해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을 보여 준다면 매우 큰 의의가 있을 것이다.
총력 투쟁 결의대회를 발판으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하고, 지금 계획하고 있는 것처럼 10월 28일 파업 전야제와 29일 총파업 상경 집회로 힘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민주노총이 호소하는 노동 개악 저지 총파업에도 적극 동참해야 한다.
민주노총과 함께 박근혜의 노동 개악을 저지하자
한편, 민주노총은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에 맞서 10월 12~17일을 총파업 및 총력 투쟁 기간으로 정했다. 10월 14일 서울 지역 보건의료노조의 ‘환자·직원·노동 존중 병원 만들기! 2015년 산별 임단협 투쟁 승리! 노동시장 구조개악 저지! 총력 투쟁 결의대회’는 민주노총의 노동개악 저지 투쟁에도 큰 힘을 보탤 것이다.
메르스 사태로 드러난 심각한 인력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사측이 제멋대로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임금을 삭감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할 수 있게 한다는 정부의 계획에 병원 노동자들의 불만도 어느 때보다 크다.
정부와 병원 사측이 한통속으로 공격하는만큼 보건의료 노동자들도 민주노총과 함께 총파업 총력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는 가이드라인 발표 시, 국회 환노위 상정 시 전면 총파업 방침을 발표했다. 현재 민주노총이 준비하고 있는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 적극 동참하면서 총파업 돌입에 필요한 태세를 갖춰야 한다.
2013년 진주의료원 폐업 반대 투쟁이나 2014년 의료 민영화 저지 파업 때처럼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박근혜의 노동 개악에 맞서 투쟁에 나서면 수많은 청년들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
청년 일자리를 위한 임금피크제?
양질의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가 대안이다
병원 측이 인정하다시피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늘어나는 일자리는 병원 신규 채용 규모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 보건의료노조의 주장대로 “임금피크제, 성과연봉제, 저성과자 퇴출제는 좋은 일자리 파괴정책”일 뿐이다.
진정으로 청년 일자리를 늘리려면 경제 위기 시기에 꼭 필요한 공공서비스를 확대하고 이 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 점에서 보건의료노조의 보건의료 일자리 창출 요구와 그것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중요하다.
“포괄간호서비스를 도입해서 보호자없는 병원을 전면적으로 실시하면 10만 3천5백56명의 간호인력이 필요하다. 국가적으로는 일자리가 대폭 늘어나고, 국민들 입장에서는 간병비 부담이 대폭 줄어들고, 병원 입장에서는 환자안전과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꾀할 수 있는 그야말로 1석3조다.”(보건의료노조)
정부가 공공의료 예산을 대폭 확충하고 간호사 등 병원의 인력 기준을 크게 강화하면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기는 것은 물론 의료의 질도 크게 높일 수 있다. 당장 1인당 담당 환자수가 평균 10~15명인 한국 대형 병원의 간호사 인력기준을 OECD 평균 수준인 4~5명으로만 높이더라도 일자리 수십만 개가 새로 만들어질 것이다.
이 기사는 10월 14일에 일부 내용이 수정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