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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폭격이 평화를 앞당긴다는 생각은 착각일 뿐이다
미국도 러시아도 당장 시리아 공습을 중단하라

9월 말 러시아는 전투기와 순항 미사일을 동원해 시리아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폭격은 미국 등 서방이 지난 1년 남짓 시리아에서 벌이고 있는 폭격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시리아인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더 많은 난민을 양산하고 있다.

그런데 불과 1년 남짓 전에 미국이 폭격을 시작했을 때 국내 진보진영이 대체로 비판적이었던 것과는 다르게 이번 러시아 폭격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훨씬 적다.

미국과 달리 러시아는 진보적일까?

일부 좌파, 특히 스탈린주의자들은 ‘러시아의 군사 개입은 미국과 달리 진보적’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미국 다음으로 많은 핵무기를 갖고 있고, 1999년 이후 체첸에서만 살육한 사람이 수만 명에 이르고, 과거의 지배력을 회복하려고 2008년 조지아(옛 그루지야)와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군사적 충돌을 감행하는 러시아를 진보적이라고 보는 것은 큰 착각이다.

러시아가 시리아에 개입한 이유도 전혀 진보적이지 않다. 평범한 시리아인들이 증오하는 아사드 정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시리아 대통령 아사드는 2011년 이래로 자국민을 수없이 학살한 장본인이다. 그리고 권력을 유지하려고 혁명을 종파간 내전으로 비틀었다. 아사드는 용의주도하게 종파주의를 부추겼고, 그 덕분에 가장 종파적 행태를 일삼는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이하 아이시스)가 반정부 진영 안에서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다.

일부 좌파가 이런 엄연한 현실마저 보아넘기면서 러시아를 진보로 포장하는 이유는 제국주의를 ‘미국의 패권주의나 침략’으로 협소하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으로는 어떤 나라든 미국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다면 진보로 간주하는 진영논리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레닌과 부하린 등 혁명적인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제국주의를 여러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서로 지정학적 경쟁을 벌이는 시스템 또는 네트워크로 이해했다. 따라서 오늘날의 미국처럼 가장 패권적이고 침략적인 국가뿐 아니라 그런 지위를 차지하려고 경쟁하는 모든 자본주의 강대국들을 타도 대상으로 삼았다.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라는 슬로건이 대표하듯이 말이다.)

이런 (국제주의적) 관점으로 보면 오늘날 미국이 중동에서 수렁에서 빠진 것을 틈타 러시아가 시리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또 다른 제국주의적 야욕에 불과하다.

강대국의 힘을 빌려 평화를 이룰 수 있을까?

러시아의 개입이 비록 선한 의도에 따른 것은 아닐지라도 결과적으로 시리아 내전의 종식을 앞당길 것이므로 환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러시아가 개입한 이상 미국은 시리아를 놓고 러시아와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고,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모종의 합의가 이뤄지면 시리아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아일랜드계 기자 패트릭 코번이나 국내 〈프레시안〉의 박인규 편집인이 이런 주장을 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이런 주장의 맹점은 2011년 시리아 혁명이 일어난 원인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시리아 혁명은 아사드 정권이 허울뿐인 ‘반제국주의’를 내세워 독재를 자행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친 것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반발로 터져나왔다.

그러나 미국이든 러시아든 시리아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미국은 아사드 퇴진을 운운하지만 아사드 정권 못지 않게 억압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정권이 후임으로 들어서길 원한다. 그리고 그마저도 미국한테는 부차적인 목표일 뿐이다.

아사드 정권 자체를 유지하려는 러시아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미국과 러시아가 힘을 합치더라도, 아이시스 격퇴나 아이시스와 모종의 휴전에 이를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다. (158호 기사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논평: 시리아를 폭격하는 또 다른 제국주의 ― 러시아’를 보라.) 설령 둘 중 하나가 실현될지라도, 그 결과로 시리아에 수립될 ‘질서’는 이라크처럼 종파간 갈등에 의존할 공산이 크다. 종파간 갈등을 부추긴 세력들이 서로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만든 질서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열강에 의존해서 시리아 문제를 해결한다는 관점은 시리아 혁명이 터져나온 이유와 오늘날 혁명이 종파간 갈등으로 뒤틀린 이유를 완전히 무시하기 때문에 결코 대안이 못 된다.

아랍 노동계급이 다시 전진하는 것만이 대안이다

진정한 대안은 바로 시리아를 포함한 아랍 노동계급의 투쟁이다. 아랍 혁명의 절정에서 노동계급은 이미 종파(시아파냐 수니파냐)와 종단(기독교냐 이슬람이냐), 인종(쿠르드인이냐 아랍인이냐 등)을 초월해서 단결하는 저력을 보여 줬다.

물론 지금은 시리아뿐 아니라 아랍 세계 전역에서 반혁명이 드세다. 그러나 2011년 혁명도 결코 녹록치 않은 조건에서 분출했다는 것과 오늘날 지배자들도 모순과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봐야 한다.

미국은 동아시아에 집중하길 바라고 그래서 중동에 직접 개입하기를 꺼린다. 그 대신 이해관계가 다른 세력(대표적으로, 오랜 앙숙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사이의 균형을 통해 중동 위기를 관리하려 하지만 그 계획은 처참하게 실패하고 있다.

러시아도 아사드 정권이 4년여의 내전을 거치면서 허약해졌기 때문에 구원투수로 개입한 것이다. 그러나 만만찮은 지상 병력 없이는 아이시스를 물리칠 수 없다는 어려움을 (미국과 마찬가지로) 안고 있다.

더 일반적으로 말해, 2011년 아랍 혁명의 발발 배경이 된 경제 위기와 정치 위기가 여전하다. 아랍의 가장 큰 산업국이라는 이집트조차 불만이 다시금 폭발하는 것을 막으려고 사우디아라비아 등에게서 해마다 수십억 달러의 원조를 받아야 하는 처지다.

더욱이 아랍 혁명을 경험한 수많은 사람들, 특히 노동계급 청년들은 더는 전과 같은 방식으로 살지 않겠다며 급진적인 정치적 대안을 찾고 있다.

아랍 역사의 엄중한 과제: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 건설

하지만 이런 조건들이 자동으로 혁명적 미래를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팔레스타인 출신 혁명적 사회주의자 토니 클리프는 무려 69년 전인 1946년 이렇게 썼다. “오늘날 세계와 중동에서는 혁명적 투쟁이 필요할 만큼 객관적 조건이 무르익었지만 중동에서의 혁명적 정당 건설은 어마어마한 격차를 두고 뒤쳐져 있다. 이른 시간 안에 이 격차를 메우지 못한다면 중동 민중은 재앙적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비극이게도 그 후 아랍의 운동과 혁명은 진정한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이 아니라 스탈린주의, 아랍 민족주의, 이슬람주의 세력이 차례로 이끌었고, 아랍 민중은 번번이 “재앙적 대가”를 치러야 했다.

오늘날 새롭게 투쟁을 지도할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조직을 건설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런 혁명 조직을 건설하려 할 때, 미국·러시아 등의 개입에 일말이라도 기대를 걸면 돌이킬 수 없는 정치적 타격을 입고 과거 아랍 좌파들의 실패를 답습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사회주의자들은 아랍 현지의 혁명가들이 이런 과제를 수행하는 것을 국제적 연대의 행위로 도울 수 있다. 반면, 폭격뿐 아니라 이른바 ‘외교적 해법’을 포함한 일체의 개입은 현지 혁명가들을 주변화시키고 노동계급을 열강의 처분만 기다리는 수동적 존재로 만들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박근혜 정부가 미국의 중동 개입을 거드는 것에 반대하고 박근혜가 행여 파병 움직임을 보이면 저지를 위한 행동에 나설 태세가 돼 있어야 한다. 러시아의 개입은 미국을 자극해, 결국 한국군 파병 사태를 부를 수 있다는 점을 강력히 의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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