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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불안정과 한반도

이 글은 2012년 12월(대선 전)에 쓴 것이다. 몇 년이 지났지만 현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게재한다.

중국의 부상과 그것을 견제하고 헤게모니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전략으로 동아시아의 불안정이 증대하고 있다. 한반도는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불안정과 긴밀히 연동돼 있다. 단지 부차적, 주변적으로 엮여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한가운데 있다. 첫째, 미국이 “아시아로 중심축 이동”을 하면서 한미동맹을 대중국 포위 전략의 하위 파트너로 삼고자 한다. 둘째, 미국이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고 압박하면서 사실은 중국을 겨냥한 군사적 대응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 이런 현실은 특정한 상황과 맞물려 한반도의 긴장을 증폭시킬 수 있고, 이에 따라 한반도는 동아시아 불안정의 최전선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쟁점들은 국내에서 정치적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

2013년 또는 가까운 미래에 이 두 가지는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고 어떤 문제들을 낳을 것일까? 여기서는 이에 대한 전망을 바탕으로 2013년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쟁점과 과제를 살펴보려 한다.

먼저, 미국은 지속적이고 강도 높게 동맹 강화 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몇 년 전부터 한미 양국은 전략동맹을 표방해 왔는데, 이것은 한국의 역할과 책임이 한반도를 넘어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전 세계로 확대된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치르는 동안 한국은 강력하게 파병을 요구받았다. 이제 미국은 “아시아로 중심축 이동”을 하면서 더욱 노골적으로 한미동맹을 중국 포위 전략의 한 축으로 삼으려 한다.

2012년 6월에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의 공동선언 전문을 보면 이 점이 잘 드러난다. 공동선언은 한미동맹이 “역내 평화와 안보의 근간”이라며 이 지역의 “현존 및 부상하는 도전”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함임을 공언한다. 그 “도전”은 구체적으로 “이 지역에서의 군비 증강, 군사 능력 및 활동 증대, 비전통적 안보 위협의 부상, 그리고 우주·해양 및 사이버 영역 등에서의 점증하는 위협”이다. 명백히 중국을 가리키고 있다.

또, 공동선언은 “지역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한·미·일 3자 안보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3자 협력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히고 있는데, 거기에는 “인도주의적 지원, 재난구호, 해양안보, 항행의 자유,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 이것들은 모두 냉전 해체 이후 미국이 군사적 개입의 명분으로 삼아 온 것들이다. 특히 “항행의 자유”는 중국과 주변국 간에 영유권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군사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명분이다. 예를 들면,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해역에서 주변국 선박 단속을 강화하려는 것에 대해 주변국들은 “항행의 자유” 침해라고 한다. 이는 곧, 한국이 미국·일본과 함께 이런 문제에 군사 개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요컨대 미국은 자국의 아시아 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해 한국이 지역 내 역할을 강화하기를 바란다. 힘도 더 쓰고 돈도 더 쓰라는 얘기다. 그 전부터 시작되긴 했지만, 특히 이명박 정부 시절에 한미동맹은 이런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이것은 한국이 미국의 종속국임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지배계급은 미국의 충실한 동맹이 됨으로써 그 자신이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이득을 얻고 자신의 국제적 지위를 상승시키고자 한다. 전 주한 미국 대사 버시바우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이 점을 꿰뚫고 있다. “미국과의 진정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이명박 정부에 제공하는 것은 한국이 세계에서 더 중요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한국의 자긍심 높은 열망에 어필할 수 있다.”

또, 안보 보장은 전통적으로 한국 지배계급이 미국에 유착하기를 바라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이런 점을 잘 아는 미국은 중국 위협론을 내세워 안보 불안을 자극함으로써 중국 견제가 한국의 안보 이익과도 합치한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다. 역시 버시바우의 말이다. “우리가 더는 한국에 주둔하지 않는다면 확실한 것은 부상하는 중국이 자신의 점증하는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영향력을 한반도로 확장하기가 더 쉬워질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중국의 야망이 대만을 탈환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한국에 상기시켜 줘야 한다.”

그럼에도 한미동맹 강화에 관해 한국의 지배자들이 일치된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대 교역국으로서 중국의 중요성이 증대해 온 현실을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지배자들은 확실히 20년 전과는 달라진 주변 질서에 직면하고 있고, 이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국가 이익에 더 부합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일부 전략가들은 한국이 ‘잘못된’ 선택, 즉 미국을 버리고 중국에 접근할까 봐 걱정한다. 브레진스키는 최근 저서 Strategic Vision: America and Crisis of Global Power에서 한국이 머지않은 미래에 중국의 지역적 패권을 받아들여 중국 쪽으로 점점 기울거나, 중국이 통일을 지원하는 것과 한미동맹 축소를 맞바꿀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싱크탱크들은 대개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면서 중국과도 협력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정답’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런 입장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할수록 모순에 봉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새누리당과 박근혜는 한미관계를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심화·발전시키는 동시에, 한중관계를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입장이다. 물론 강조점은 명백히 전자에 있다. 그래서 박근혜가 정권을 잡으면 한미동맹 강화 추진에 힘을 쏟고 그에 따라 여러 문제를 양산할 것이 분명하다.

한편, 민주당과 문재인은 새누리당과 그 전신들의 한미동맹 일변도를 비판하며 주변국과의 호혜관계를 강화하는 ‘균형외교’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박근혜에 비해 한중협력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민주당의 외교·안보·통일정책 브레인 구실을 하는 ‘한반도평화포럼’은 “세계 및 지역 질서가 미·중 두 강대국을 축으로 재편”되고 있고 “한국 경제의 대중 의존이 심화”된 것의 전략적 함의를 강조한다. 그러나 민주당과 문재인이 한미동맹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한미동맹을 중시하되 한중협력을 균형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미국이 한미동맹을 중국 포위 전략의 한 축으로 삼으려는 상황에서 한미동맹과 한중 협력이 조화를 이루기는 매우 어렵다. 문재인이 정권을 잡으면 이런 모호한 입장은 결국 미국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에 도전하지 않고, 한미동맹을 훼손시키지 않는 선에서 타협을 거듭하면서, 한계와 모순을 드러낼 공산이 크다.

이것은 이미 노무현 정부가 보여줬던 바다. ‘전략적 유연성’ 합의가 대표적인 사례다. ‘전략적 유연성’은 주한미군의 활동 범위를 한국 방위뿐 아니라 지역과 세계로 확대시킨 것으로(한미동맹의 적용 범위도 확대됐다), 한국 영토가 미군의 해외 발진 기지가 되는 근거를 마련해 준 셈이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이를 합의해 줘 놓고는,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단서를 단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주한미군은 이 단서에 의한 제한을 받고 있지 않다. 이미 주한미군은 미·필리핀 연합훈련(2011), 미·일 연합훈련(2012) 등 역내 군사 훈련에 참가하고 있고, 앞으로 더 자주 그럴 것이다. 이 훈련들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겨냥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만약 동중국해나 남중국해에서 실제로 군사 분쟁이 발생해 주한미군이 발진하면 중국은 한국 내 발진 기지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다. 한국이 전화에 휘말릴 수 있는 것이다.

또, 이것은 최근 민주당과 그 외교 안보 브레인들이 제주 해군기지 문제에 관해 취하는 태도를 봐도 알 수 있다. 문재인은 현행 공사를 중단하고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해군기지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해군기지는 “해양 안보를 위해, 앞으로 해양강국을 위해 필요한 사업”이라는 것이다. 한반도평화포럼도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미군 함정이 사용해 이 해역에서 미중 간 긴장을 조성하고 한중 관계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진보 진영의 주장을 반박했다. “균형외교를 추구한다면 주변국이 한국의 정상적 안보체계 강화 노력을 우려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공상적이다. 한국 정부가 “균형” 운운해도 중국 포위를 노골화하고 있는 미 핵잠수함과 항공모함이 중국 연안 코앞인 제주도 해군기지를 드나든다면, 중국은 이곳을 대중국 포위의 최전선으로 여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번지르르한 명분과 희뿌연 이상론 이면에는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이해관계가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정상적 안보체계 강화”는 노무현 시절 자주국방 명분의 군비 증강을 떠올리게 한다.

박근혜나 문재인 가운데 누가 정권을 잡든 한미동맹 강화를 둘러싼 쟁점은 정치적 분열을 일으킬 것이다. 우리는 한미동맹을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시키려는 우파에 반대하고, 미국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에 도전하지 않고 결국은 타협하는 민주당의 근본적 한계와 모순을 들춰내면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야욕과 한국 정부의 친제국주의 정책, 군사력 강화 기도에 반대해야 한다. 가까운 미래에 제기될 수 있는 쟁점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미국이 재정 적자 때문이 국방 예산을 삭감해야 하는 처지에서 군사비 부담을 동맹국인 한국에 떠넘기려 하면서 생겨나는 문제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방위비 분담금 증액과 미국 무기 구매를 통한 전력 증강 요구 같은 것이다. 이것은 재정 적자라는 미국의 약화된 처지를 반영하는 것이자, 동맹에게 부담을 떠넘김으로써 동맹국 민중의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쟁점이다.

방위비 분담금이란 주한미군의 주둔 비용(인건비 제외) 중 일부를 한국측이 부담하는 것인데, 2014년부터 적용될 방위비 분담금 책정을 위한 협상이 2013년에 시작될 것이다. 이미 미국은 한국측 분담 비율을 현재의 42퍼센트에서 50퍼센트로 올려달라고 요구한 상태다. 미국의 요구대로 인상되면 2014년 방위비 분담금은 연 1조 원을 넘게 된다. 주한미군이 더는 한국 방위만 담당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전략적 유연성으로 한반도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주둔 비용까지 더 내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기 짝이 없다. 전시 작전권이 환수되면 미국은 정보 수집이나 훈련비 등에 대한 분담도 요구하며 비용 부담을 더 지우려 할 수 있다.

한국은 고가의 미국 무기를 구매하는 부동의 1위 국가다. 특히 이명박 정부 말기 들어 미국 무기 구매 계획이 눈에 띄게 늘었다. 2011년 이명박이 국빈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이것이 무기 수입에 대한 보은이라는 의혹도 일었다.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인 2012년 미국에서 구매하는 무기 계약액이 사상 최대인 14조 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보도와 함께 말이다. 미국은 제 지갑은 닫고, 한국이 미국 무기를 도입해 전력을 증강하길 바란다. 예를 들어, 2011년 7월에 한미연합사령관으로 부임한 제임스 서먼은 “해외 미군사령관 중에 아파치 헬기 대대가 없는 사령관은 나 혼자밖에 없다”며 한국군의 아파치 헬기 도입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고 한다. 이라크로 차출된 뒤 돌아오지 않고 있는 주한미군 아파치 헬기 대대의 공백을 한국이 메우라는 것이다. 실제로 2012년 9월 한국 정부는 신형 아파치헬기 36대를 포함해 첨단 공격형 헬리콥터 72대를 도입하겠다고 미국에 알렸다. 이는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국에 따르면 무려 62억 달러(약 7조 원) 규모다.

한국의 미국 무기 도입을 일각에서처럼 미국(특히 군수산업체)의 이해관계만으로 볼 수 없다. 한국 지배자들도 스텔스 기능의 고성능 전투기, 아파치헬기,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등 고가 무기를 도입함으로써 자체 전력을 증강하는 데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다.

둘째, 한·미·일 3자 군사협력과 관련된 문제들이 제기될 것이다. 미국의 대중국 군사 전략에 협력하는 것 자체가 동아시아 불안정을 자극하고 한국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어 논란이 될 수 있는 쟁점이지만, 특히 한일 군사협력은 폭발력이 클 수 있는 쟁점이다. 한국은 일제 식민지 경험이 있고, 일본은 분명한 사죄 입장을 여전히 밝히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2012년 한일 군사정보협정을 몰래 추진하다가 일본과의 서명 체결 1시간 전에 급히 보류했다. 거센 비판과 후폭풍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차기 정부에서 한일 군사협력 문제는 다시 제기될 것이다. 미국 태평양사령부는 지난 수년 동안 한·미·일 3자 안보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새누리당은 애초 한일 군사정보협정에 찬성하는 입장이었고, 비판이 거세게 제기된 뒤에야 비로소 박근혜는 “절차와 과정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에만 유감 표명을 한 정도다. 문재인은 현재 반대 입장이지만, 그동안 민주당이 보여준 태도를 보면 장차 현실적 불가피성을 내세우며 ‘제한적’ 범위 안에서의 협력을 수용할 수도 있다.

사드의 포대 하나 구입비만 1조 원 정부는 긴장과 갈등을 악화시키는 데 천문학적 돈을 쏟아붓고 있다. ⓒ미사일 방어국

이와 관련해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방어(이하 MD) 체제에 참여할 것인가도 중요한 쟁점이다. 한·미·일 3자 안보협력을 추진하는 데서 미국의 핵심적 관심사는 MD의 한·미·일 협력 추진이다. 한일 군사협정으로 군수지원과 정보교류가 이뤄지게 되면 한·미·일 MD 협력이 가능한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현재 정부는 미국 주도 MD 참여를 한사코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국방장관 리언 파네타는 2012년 10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과 미국이 미사일방어를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또, 국방부는 신형 패트리어트 미사일 PAC-3 시스템 구축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는데, PAC-3는 미국 주도 MD의 핵심 무기 체제다. 2007년에도 진보진영은 PAC-3 도입이 미국의 MD 체제 참여를 의미한다며 거세게 반대했고, 결국 정부는 PAC-3 대신 독일형 중고 패트리어트 미사일 PAC-2를 도입한 바 있다.

한·미·일 군사협력, 특히 한·미·일 MD 협력에 반대해야 한다. 그것은 한국이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에 가담하는 것을 뜻하고, 동북아의 긴장을 한층 증폭시킬 수밖에 없다. 또, MD 참여에는 막대한 예산이 든다. 〈한겨레〉에 따르면, PAC-3 요격체계를 구축하는 데 적어도 2조 원이 필요하다.

셋째, 앞의 두 문제와 긴밀히 연관되는 것으로 국방비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2013년 국방 예산은 35조 4천억 원이다. 2012년보다 7.6퍼센트나 증가한 것으로, 복지 예산의 무려 36퍼센트나 된다. 한국의 국방비는 지난 1992년 8조 4천억 원, 2002년 16조 2천억 원, 2012년 33조 원으로 10년마다 곱절로 늘어 왔다. 증가 속도가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앞에서 설명한 여러 이유에서, 경제 위기로 긴축이 예상되고 복지가 확대돼야 하는 상황에서도 국방비는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박근혜의 안보정책 담당자인 전 국방장관 김장수는 “우리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 예산은 2.4퍼센트 정도인데 미국은 4퍼센트”라며 “핵심 군사 능력을 확보하려면 국방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국방예산을 빼서 복지로 전환시키는 것은 안 된다”고도 못박았다. 문재인의 안보정책 담당자인 백군기는 한술 더 뜬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국방예산을 매년 줄여 [국방]개혁 완료 시점이 연기됐다”며 “참여정부 국방비 증가율은 연평균 8.8퍼센트였던 반면 현 정부는 5.4퍼센트였다”고 비판했다. “지속적 국방개혁을 위해 안정적 예산 확보가 절실하고” “국방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복지 중의 복지”이므로 국방이 복지에 희생돼서는 안 된다고도 강조했다. 그러므로 누가 당선되든 새 정부는 조만간 긴축을 추진하며 노동자들을 공격할 텐데 우리는 이것을 국방비 증액과 대조하며 모순을 들춰내고, 국방비를 복지로 돌리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 밖에도 제주 해군기지 문제는 여전히 문제가 될 것이다. 또, 전시 작전권 환수 이후 군사지휘체계 구성 문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문제 등도 있다. 한국 지배자들은 미사일 사거리를 8백 킬로미터로 연장한 데 이어, 2014년 3월까지 개정해야 하는 한미원자력협정에서 우라늄 저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리를 갖길 원한다. 이것은 한국 우익의 핵무장 야욕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군 해외파병 문제도 다시금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

이제, 이른바 북한 문제에 관해 간단히 살펴보자. 흔히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 군사 도발을 통해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한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북한이 인공위성 로켓 발사에 성공한 상황에서는 그런 생각이 그럴 듯하게 여겨질지 모른다. 그러나 북한의 인공위성 로켓 발사라는 사건을,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와 서해에서 미국과 그 동맹들이 중무장한 채 일삼는 군사훈련, 일본 자위대의 대 중국 전진 배치와 전력 증강, 한국의 탄도미사일 사거리 연장과 나로호 발사 시도, 중국의 차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ICMB) 둥펑-41 실험 등등 2012년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라는 맥락 속에 놓고 본다면, 북한을 동북아 불안정의 주범으로 모는 것이 얼마나 과장인지 금세 깨달을 수 있다.

오히려 문제는 미국이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면서 이를 명분으로 동아시아 패권을 유지한다는 자신의 전략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것을 명확히 보여준 사례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상호포격 사건이었다. 오바마 정부는 한반도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부시와 마찬가지로 이를 동맹 강화와 군사력 증강의 기회로 이용했다. 미국은 천안함 사건을 명분으로 주일 미 공군 기지를 오키나와 밖으로 이전시키려는 일본 하토야마 정부의 계획을 무산시켰다. “일본 국민도 북한 공격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클린턴)는 것이 미국의 논리였다. 일본은 “동북아 안보 정세의 최근 전개[천안함 사건을 가리킴 — 김하영]에 의해 미일동맹의 의의가 재확인”됐다는 데 합의했다. 미국은 전략적 요충지를 지키고 미일동맹을 회복한 것이다.

또, 미국은 한국에도 핵우산 제공을 약속하는 등 동맹의 필요를 각인시키고 한반도 주변에서 연합훈련을 지속했다. 이는 한반도 긴장을 증대시키는 효과를 냈고 그런 과정에서 연평도 사태가 일어났다. 연평도 사태가 일어나자 미국은 바로 다음 날 조지워싱턴 핵 항공모함을 요코스카 기지에서 출항시켜 닷새 만에 서해 군사훈련에 투입했다. 연평도 사태를 이용해,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중국 앞바다에 항공모함을 들여놓은 것이다.

미국은 동맹 강화, 한·미·일 안보협력, 한·미·일 MD 협력 등이 필요한 으뜸가는 이유로 항상 북한의 ‘위협’을 꼽는다. 2012년 발표한 신국방전략에서도 미국은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을 언급하며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고 방어하기 위해 동맹국 및 다른 지역국가들과 효과적으로 협력”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이 “아시아로 중심축 이동”을 하고 동아시아 동맹국 및 다른 나라들과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임은 필자가 다른 글에서 충분히 설명했다. MD 추진도 마찬가지다. 위키리크스는 미국이 MD 구축을 위해 북한의 위협을 이용해 왔다고 폭로했는데, 사실 이것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과연 미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려 하느냐는 물음이 제기된다. 전 통일부장관 임동원은 2010년 한 토론회에서 “북한 핵 문제가 정말로 심각하다고 본다면 미국이 그걸 해결하는 건 어렵지 않다”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한반도의 긴장이 좀더 계속되는 게 미국의 국익이라는 판단에 토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묻고 싶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실제로 오바마 정부는 “전략적 인내”를 표방하며 북한을 향해 아무런 관계개선 이니셔티브를 취하지 않았다.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서 북한 ‘위협’ 부풀리기가 하는 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점을 주목한다면, 오바마의 대북 정책이 단지 이명박 정부에 끌려 다닌 결과이고 따라서 한국에서 정권이 교체되면 한반도 정세가 획기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민주당측의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 군사적 중점을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는 미국에게 북한 ‘위협’ 부풀리기는 여전히 유용한 카드일 것이다. 그 결과 북미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고 지금 같은 상태에 머문다면 새 정부가 남북 화해협력을 추구한다 해도 여러 제약을 받고, 일부 정책은 한계에 봉착할 공산이 크다.

물론 북미 사이에 대화와 협상이 시작될 수도 있다. 북한 ‘위협’을 이용하며 압력과 제재를 가하는 방식의 문제점은 ‘위협’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2009년 6월부터 사용후 연료봉을 추가로 재처리해 무기화했고, 2010년에는 영변에 새로운 중소 규모의 경수로와 최신식 우라늄 농축시설을 건설했다. 그리고 2012년 12월 인공위성 로켓 발사에 성공했다. 물론 미국은 다시 제재를 가할 테고 그러면 대화 국면에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만약 북한이 제재에 대해 핵 실험으로 대응한다면 이 시간은 더 길어질 것이다. 그러나 인공위성 로켓 발사나 핵실험 같은 일이 벌어지면 위기 관리의 필요성도 제기되기 마련이다. 지난 4월 인공위성 로켓 발사 뒤에도 북미 간 물밑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대화가 시작되더라도 북미관계의 실질적 정상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설사 핵·미사일 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개선을 맞바꾸는 합의에 도달하더라도 그것의 세부 방식(사찰과 검증, 핵폐기 대상과 방식, 보상 제공 등)을 정하거나 이행하는 과정에서 대화가 중단되고 갈등이 증대하고 결국 파탄에 이를 수 있다. 이것이 지금까지 계속된 북미 대화의 패턴이었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이 체결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환상을 품었지만 이 합의는 7년이 넘도록 한반도에 실질적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아마도 오바마 정부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추가 실험을 하지 못하도록 상황을 관리하고자 할 것이다. 2012년 2.29 합의의 성격이 정확히 그랬고, 그해 4월 인공위성 로켓 발사 뒤 북미 접촉의 목적도 같았을 것이다. 그때 미국은 대북 적대시 의도가 없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남한의 미사일 사거리 연장과 한일 군사협력 추진에 북한이 반발한 데서 보듯이, 북한의 입장에서는 한미동맹 전력 증강이나 MD 추진을 대북 적대 정책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미국이 북한을 대화 테이블에 붙잡아둔 채 또는 합의의 족쇄를 채운 채 자기 할 짓은 다 하는 식이라면 북한이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비핵 개방 3000’)이 실패로 드러나면서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남북대화 재개를 표방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동안 비핵화 우선 입장을 취하면서 남북관계는 완전히 얼어붙었고, 제재가 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북중 관계는 한층 긴밀해졌다. 미국과 남한 등의 대북제재(1874호)로 인해 감소된 북한의 교역액보다 같은 기간 북중 교역의 증가 규모가 7배 이상 컸다(2011년 말 기준). 2009년 이후 중국이 비핵화보다 북한 체제의 안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된 결과다.

‘원칙’과 ‘포용’ 모두를 계승하겠다는 새누리당 박근혜의 대북정책 공약은 모순이 많고 신뢰하기 어렵다. 북한 당국 자신이 “반공화국 모략소동에 매달리면서 북남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고 반문할 정도다. 무엇보다 박근혜는 긴밀한 한미동맹이 한반도 평화에 최우선이라는 입장이므로 그의 대북정책은 북미관계와 보조 맞추기를 중시할 것이다.

문재인은 임기 1년 내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겠다며,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를 함께 풀겠다고 한다. ‘선先 북핵문제 해결’ 입장을 취하다가 남북관계의 진전을 이루지 못한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대한 일종의 반성이다. 그러나 돌아봐야 할 것은 단지 선후先後 문제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협력 정책이다. 노무현 정부는 공상적이게도,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보상을 바라며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도왔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승리한다면 다른 ‘악의 축’ 국가들로 전선을 확대할지도 모르고, 실제로 북한은 큰 위협을 느끼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부시가 집권 말에 대북 대화에 나선 것은 이라크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라크 수렁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미국을 이라크 수렁에 빠뜨린 것은 전 세계 반전운동과 이라크 내 해방 운동의 합작품이었다.

만약 문재인이 당선한다면 실제로 대북 화해협력을 추진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정책은 어떤 국면에서는 그의 “한미동맹 공고화” 정책과 모순을 빚게 될 것이다. 그럴 때 때로 미국과 불화도 일으키겠지만, 투털대고 고뇌하고 우파의 눈치를 보다가 마침내 현실론을 꺼내며 미국과 타협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즉, 그의 대북정책은 미국의 아시아 전략과 대북정책이 부과하는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할 가능성이 클 것 같다. 민주당이 ‘변화’를 꾀하려 애쓴다 하더라도 진정한 권력자들인 재벌 등 대기업들이 기존의 국제관계에 걸린 이해관계를 크게 벗어나고자 하지도, 그럴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북한이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한다’는 미국과 남한 정부의 과장과 위선에 반대하고, 오히려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과 그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한미동맹 강화가 동아시아 불안정을 증대시키고 있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 정부의 군비 증강 노력도 동아시아 불안정을 부추기는 데 한몫 하고 있다. 북한의 인공위성 로켓 발사에 대한 문재인의 태도를 보면, 민주당이 이런 비판으로부터 전혀 예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대북 제재와 압박에 반대하고,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불안정을 증대시키는 자국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 사회 변혁 지지자들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각주

[*] 이 문구만 놓고 보면 한국군이 개입되지 않겠다는 것인지, 한국의 원치 않는 개입을 초래할 수 있는 주한미군의 동북아 분쟁 개입 자체를 제한한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이종석을 비롯한 친노무현 파는 이것이 후자, 즉 전략적 유연성 자체에[즉, 주한미군의 이동에 — 김하영] 제한을 가한 합의였다고 강변한다. 반면, 당시 합의(2006년 1월 한미 전략대회 공동선언)의 당사자였던 반기문은 전자라고 설명했다. 즉, “한국 정부나 국민이 원하지 않는 분쟁지역에 한국군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에[즉, 한국군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에만 — 김하영] 합의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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