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교과서 활용 금지: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는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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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5일 교육부는 《416 교과서》의 활용을 금지하라는 공문을 시도교육청으로 내려 보냈다. 교육부는 ‘국가기관에 대한 부정적, 비판적 내용을 제시해 학생들의 건전한 국가관을 저해하고,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교육자료로 사용됨이 부적절하며, 학생 성장 발달단계상 비교육적 표현이 포함되는 등 교육의 중립성을 훼손하는 사안이므로 엄중 대처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그러나 부르주아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조차 교사의 교육 전문성과 자율성을 인정하고 있다. 정부의 이번 방침은 헌법 제31조 제4항의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에서 파생되는 교사의 교육의 자유’, 즉 교사의 수업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이것이야 말로 권력을 남용한 정치적 행위이다.
학교에 인력지원도 없이 안전과 관련된 숱한 전시행정을 지시하면서, 정작 평범한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갈 정도로 부조리한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을 보여 준 세월호 참사를 성찰하는 것마저 막으려는 정부야 말로 반교육적이다. 416교과서 사용 금지는 세월호 참사 지우기의 일환이다. 참으로 비열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정부의 행태는 “감추려는 자가 범인이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학생들은 미성숙해 판단력이 없으니,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회적인 문제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면 안 된다고 정부는 주장한다. 그러나 올바른 정보와 경험을 제공해 학생들의 판단을 돕는 것이 교사들의 할 일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참사 희생자의 대다수는 즐거운 추억을 꿈꾸며 수학여행 길에 오른 학생들이었다. 정부는 아직도 선내에 대기하라는 방송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던 학생들이 되도록 가르치라고 교사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한편, 교육부는 세월호 침몰 원인을 단순 ‘조타수의 조타 미숙으로 인한 급변침’이라 확정해 발표했다면서, 그 외의 의혹에 대해 교과서에서 언급한 것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이 조타 미숙으로 조타기를 끝까지 돌렸다고 하더라도 배가 한 순간에 복원력을 상실하는 사태는 생기지 않는다고 계속 비판해 왔다. 2심법원과 대법원도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조타 미숙 외에 다른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다.
대법원 판결에 근거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왜 확인되지 않은 주장인가?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확정적으로 발표한 정부야말로 문제이다. 일개 노동자들에게 정부가 져야 할 책임을 모두 덮어씌우려 하는 꼼수도 부족해, 본인들이 그토록 강조하던 법도 무시하며 억측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전교조 세월호 교과서 발행, 진실 규명 노력이 집대성되다
무고한 생명들이 차가운 바다에서 운명을 달리한 지 벌써 2년이 다 돼 간다. 그동안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해, 진실을 밝히기 위해 교사들이 해 온 여러 가지 실천과 수업을 모아 재구성한 《기억과 진실을 향한 416교과서》(이하 416교과서)가 최근 발간됐다. 전교조가 기획·발행했다.
416교과서의 첫 장을 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돈이라면, 인간의 목숨까지도 가볍게 팔아버리는 신자유주의 세계, 잔인한 폭력이 평화를 갈망하는 이들의 목을 조르는 억압적 세계가 우리 곁에 있다 … (중략) 세월호 참사 후 2년이 흐르면서 어떤 이는 잊자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잊으면 진실을 밝히지 못하면, 정의를 세우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중략)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교육적 실천의 첫걸음은 세월호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잊으라는 요구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다.”
이 교과서는 단순히 사건을 기록한 일지가 아니다.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지배자들의 신자유주의 책략의 종합세트였던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가르치고, 배우고, 토론하는 교사들과 학생들을 위한 길잡이로서 세상에 나왔다.
416교과서는 ‘기억과 공감’, ‘진실 찾기’, ‘정의 세우기’, ‘약속과 실천’ 총 4단원으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 단원 ‘기억과 공감’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참사에서 살아남은 자, 그리고 유가족들의 고통을 그려내고 있다. 이 교과서를 접하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삶들이 참사로 인해 송두리째 바뀌는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내, 세월호 참사가 결코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렇기에 세월호 참사의 고통을 공감하고, 참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진실 찾기’ 단원은 ‘세월호가 왜 침몰하게 되었는지? 살아남은 자들은 탈출해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을 뿐, 왜 한 명도 구조하지 않았는지?’와 같은 여러 의혹들을 질문으로 제시하고, 지금까지 밝혀진 것들을 소상히 담고 있다. 특히 세월호의 선령 제한을 완화한 것, 증축과 과적, 평형수 문제, 안전점검 미비 등을 설명한 부분은 이윤을 남기려고 생명, 안전과 관련된 규제를 완화하는 이 사회 체제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선장, 대피방송을 하지 않은 선원들은 도대체 왜 그랬는지?’, ‘근처에 구조 가능한 대형 선박들이 있었음에도 출동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도 묻고 있다.
이러한 의혹과 관련한 9가지의 사회 구조적 문제들이 ‘정의 세우기’ 단원에 담겨 있다. 규제완화, 안전보다 돈, 부정부패로 인한 운항관리 심사 부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 운항관리사와 해운회사의 이상한 관계, 선원 안전교육 부실, 해경과 구조업체의 유착 관계 의혹, 그리고 해운업 이윤을 내기 위해 여객선을 이용한 수학여행을 권장했던 정부의 행태까지, 자본의 탐욕과 이를 지원하고 수호하는 국가의 구조적 관계를 조목조목 짚어낸 부분이 인상적이다. 참사의 원인을 차근차근 만들어가며, 참사의 책임을 회피하는 정부에 정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정의 세우기 단원에는 최근 언론에서 이슈가 된 ‘미소의 여왕’ 이야기가 등장한다. 초등용 교재에 실린 ‘미소의 여왕’ 이야기는 2014년 9월 동시·동화·그림 등 세월호 참사를 추모한 작품을 모아 펴낸 책 《세월호 이야기》(한뼘작가들, 별숲)에서 인용한 것이다. 정부는 이 부분이 “동화 속의 여왕을 통해 대통령이 연상되도록 유도함으로써 대통령 및 정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조장”한다는 검토 의견을 내놨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꼴이다.
미소의 여왕
2014년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지켜 주지 못하고, 그 가족들을 지켜 주지 못해 대통령으로서 비애감이 든다. 세월호 참사의 철저한 진상규명이 돼야 된다, 이를 위해서 특별검사제, 특별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최종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유가족들은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켜진 것은 하나도 없다. 그간 정부는 진상 규명을 호소하는 유가족들을 외면하고 탄압했다. 대통령 본인의 입으로 말한 특검마저도 관철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의 완강한 반대 속에 결국 수사권과 기소권 없는 반쪽짜리 특별법이 통과된 것으로도 모자라, 시행령 등을 통과시키며 특조위가 조사권마저 제대로 사용할 수 없도록 온갖 방해공작으로 펴 왔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던지 특별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특조위 활동이 6월에 끝날지도 모른다. 여왕의 눈물이 추악한 ‘검은 눈물’이며, “슬프다”고 말한 그 입 속에서 시커먼 구더기들이 나왔다는 ‘미소 여왕’의 구절이 차라리 미화된 표현이 아닐까? 교과서는 옳게도 ‘사고’와 ‘사건’을 구분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와 자본에 의해 의도된 살인을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 단원 ‘약속과 실천’에는 2014년부터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있었던 특별법 제정과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 진상규명을 위한 투쟁의 기록이 담겨 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지지하는 서명에 순식간에 6백만 명이 모인 일, 생사를 초월한 ‘유민 아빠’ 김영오 씨의 46일 단식 투쟁, 2015년 특별법 시행령 폐기 운동까지 잊을 수 없는 2년의 시간을 돌아보노라면,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는 것과 앞으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피해자들은 그저 슬퍼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이 투쟁을 통해 깼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이들의 부모들은 부모이기에 도저히 이 투쟁을 그만 둘 수 없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은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를 건드리는 것이기에 우리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끈질기게 투쟁해야 한다. 1989년 영국에서 일어난 힐스버러 축구장에서 있었던 참사가 25년만에 진상이 밝혀지기 시작했듯이 말이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이해 초등학교 아이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고민하던 필자에게 이 교과서는 큰 영감을 줬다. 이 교과서가 교육현장에서 널리널리 활용되길 바란다. 초등과 중등의 차이는 크지 않고, 각 단원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어떤 자료와 방법으로 접근할지에 대한 고민이 더 중요할 것이다. 물론 학교에서 이 교과서 전체를 다룰 필요는 없고, 교사와 학생들이 상황과 목표에 맞게 발췌해 교과 시간, 창의적 체험활동, 학생 동아리 활동 등에서도 충분히 활용하면 될 것이다.
이 책은 아마 교과서로서는 적어도 국내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최초로 분석하고, 폭로한 교과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진실 규명은 세월호 참사를 유발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원인과 사회적 실체를 밝히는 과정을 통해서 비용 ·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시 되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이 교과서가 그런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때로 대중교육은 숨겨진 진실을 널리 폭로할 수단이 되기 때문에 이 교과서가 진실 규명에 훌륭히 기여하리라 기대한다.
또 세월호 참사는 2주기 운동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당장에 특조위 활동 보장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을 개정해야 하려면 국회를 움직여야 하고, 세월호의 온전한 선체 인양과 진상 규명을 위한 싸움도 계속돼야 한다. 앞으로의 진상 규명 상황 등에 따라 이 교과서의 일부 내용이 바뀌더라도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내년, 내후년까지 416 교과서가 많은 교사들, 학생들 사이에서 활용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