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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로동당 7차대회는 북한 체제 안정의 증거가 못 된다

지난 5월 초에 열린 조선로동당 7차대회에서 나온 공식 문서들을 다 합치면 1백 쪽이 훌쩍 넘는다. 36년 만의 당대회이니만큼, 당대회 공식 문서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이목이 쏠렸다.

이 문서들을 읽는 것은 엄청난 고역이다. 거의 모든 문장에 “위대한 수령”이나 “친애하는 김정은 동지” 등의 독재자 찬양이 들어가 있고, 북한이 “사회주의의 보루”라면서도 진정한 사회주의 전통에 완전히 반하는 주장이 곳곳에 있다.

김정은이 집권한 뒤로 정치국 회의와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열리고 이번에 당대회까지 열린 것을 두고 한 인터넷 매체는 조선로동당의 “집단적 협의·결정 구조가 복원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당대회 진행 과정과 결과 등을 보면,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당대회가 36년 만에 열렸지만, 김정은의 주요 직책은 선거가 아니라 “추대”로 결정됐다. 김정은은 당대회 전에 북한의 모든 시·도에서 당대회 대표자로 “추대”됐고, 당대회 대표자들에 의해서도 노동당 위원장으로 “추대”됐다. 그리고 당대회에서 “우리 당과 국가, 군대의 최고 영도자”로 떠받들어졌다. 선출되지 않고 “추대”된 권력자 김정은은 자신을 “추대”한 당대회에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5년마다 당대회를 개최한다는 규약이 사라졌기 때문에, 5년 후 차기 당대회를 열지 말지는 오로지 김정은의 의지에 달려 있다.

획일적 체제

김정은이 노동당 위원장이 된 것이 설사 당대표자들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라 하더라도, 이를 인민이 추대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김정은 자신이 이번 당대회에서 공개한 것을 보면, 당대회 대표자 3천6백여 명 중 당·정치일꾼*은 1천5백여 명, 군인은 7백여 명, 국가행정경제일꾼은 4백여 명에 이른다. 대표자의 압도 다수가 당과 국가의 관료나 군부 인사들인 것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핵심당원대표”가 7백18명이라고 하지만, 이들 가운데 노동자가 얼마인지 알 수 없을뿐더러 노동자라 하더라도 “노력영웅”*일 개연성이 크다. ‘당대회 중앙위 사업총화 결정서’(이하 ‘결정서’)에는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척도로 하여 사람들을 평가”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들이 누구일지는 뻔하다.

그러므로 조선로동당은 이름과 달리 노동자들이 아니라 지배 관료들의 당인 것이다. 북한 노동자들은 집권 정당의 중요한 결정에서 완전히 배제돼 있다.

조선로동당은 추정컨대 전체 당원 수가 3백만 명이 넘는 거대 정당이다. 그만큼 북한 사회 곳곳에 당 조직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당의 조직들은 해당 지역에서 노동자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기구가 아니다. 결정서는 김정은의 “유일적 영도 밑에 전당이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혁명적 규율과 질서를 엄격히 세워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당조직들은 자기 부문, 자기 단위 앞에 제시된 당정책, 기본혁명과업을 집행하는 데 모든 것을 지향시키고 복종시[켜야 한다.]” 즉, ‘수령’의 의지가 국가기관과 대중단체들에도 관철되는 “유일적 영도 체계”의 중심이 돼야 한다.

그리고 어떤 이견도 허용될 수 없다. 결정서는 이렇게 강조한다. “당의 사상과 어긋나는 그 어떤 자그마한 요소도, 그 어떤 ‘특수’도 허용돼서는 안 된다.” 오로지 당 기층은 수령을 향한 충성만을 보여야 한다.

한 친북 좌파 매체는 조선로동당이 “민주집중제” 원리에 따라 운영된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토론과 비판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조선로동당의 획일적 체제는 “민주집중제”가 아니라 “관료 집중제”일 뿐이다. 이번 당대회는 조선로동당이 매우 비민주적이고 당과 국가의 중요한 정책이 소수의 결정에 따라 이뤄진다는 점을 새삼 확인시켜 줬다.

그러나 조선로동당의 비민주성은 마르크스주의 전통이나 레닌의 당 개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레닌은 이렇게 강조한 바 있다. “행동의 통일, 토론과 비판의 자유. 오직 이 원칙만이 선진 계급의 민주적 당에 걸맞은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는 토론과 비판의 자유 없는 행동의 통일을 인정하지 않는다.” 실제로 레닌이 이끈 볼셰비키는 전혀 획일적이지 않았고 볼셰비키 당원들은 레닌에게 이견을 제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개인 숭배가 없었던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사회주의 정당의 당내 민주주의는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 원칙과 맞닿아 있다. 반대로 조선로동당은 (무오류의) 수령이 영도하지 않는 인민의 해방은 가능하지 않다고 전제한다. 이것은 관료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일 뿐이다.

따라서 조선로동당의 비민주성은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이 아니라 스탈린주의와 북한 사회의 성격(즉, 시장 자본주의와 본질이 다르지 않은 국가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한 것으로 봐야 한다.(북한 사회의 진정한 성격에 관해서는 《북한 국가자본주의의 형성과 위기: 마르크스주의적 분석》(김하영, 노동자연대)을 참고하시오.)

안정?

일부 자민통계 필자는 이번 당대회를 두고 “김정은 체제가 안정에 들어갔음을 보여 줬다”고 평가한다. 북한 당국이 이번 당대회를 열어 “어려운 시기를 지나 새로운 경제 도약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 줬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김정은은 북한 국가가 지난 20~30년 동안 취약해진 상태에서 권력을 물려받은 처지에 있다. 김정일은 아들에게 단지 권력만 준 게 아니라 안보와 경제 등 하루아침에 풀 수 없는 난제들도 함께 안겨 줬다. 그리고 그동안 김정은이 이 난제들을 제대로 풀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무엇보다 김정은은 경제에서 가시적 성과를 얻어야 했다. ‘고난의 행군’ 시기를 포함한 1990년대 동안 북한 경제는 크게 후퇴했다. 1945년 이후, 발달한 공업국에서 수십만 명이 아사하는 사태를 겪은 건 북한이 유일하다. 심각한 경제 위기와 고통 전가 때문에 대중의 불만이 증대해 왔다.

2000년대 대외 무역이 늘면서 북한 경제는 잠시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특히 북·중 무역이 북한의 전체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커졌다.

이런 배경에서 김정은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당대회에서 제시했고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같은 부분적 시장 개혁 조처들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낙후한 북한 경제가 충분히 회복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번 당대회에서 김정은 스스로 여전히 경제의 회복이 더디다는 점을 인정했다.

“경제 전반을 놓고 볼 때 첨단 수준에 올라선 부문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부문은 한심하게 뒤떨어져 있으며 인민경제 부문들 사이 균형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선행 부문이 앞서나가지 못하여 나라의 경제 발전에 지장을 주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그동안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을 표방해 왔다. 이번 당대회에서도 이를 재확인했다. 핵무기를 강화해 방위력을 확보하면, 상당한 자원을 경제건설로 돌려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당대회에서 김정은은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병진노선을 틀어쥐고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면서 인민경제 선행 부문, 기초공업 부문을 정상궤도에 올려세우고 농업과 경공업생산을 늘려 인민생활을 결정적으로 향상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북한 역사에서 이런 병진노선은 처음 제시된 게 아니다. 1960년대 김일성이 ‘경제-국방 병진노선’을 채택한 바 있다. 그러나 그때 미일 안보조약 개정, 베트남전쟁 본격화 등 북한 주변 정세가 악화하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병진노선 표방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은 국가 예산에서 국방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대폭 늘렸고 경공업 투자는 삭감해야 했다.

김정은의 병진노선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북한이 미국 같은 초강대국에 맞서 자체의 군사력을 증대해 자위한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 따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간 경쟁이 점증함에 따라 북한이 받는 압박도 커지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강화한다 해도, 상황은 나아지는 게 아니라 더 악화할 것이다. 그러면 더더욱 북한 당국은 국내 가용 자원의 막대한 몫을 경제 재건에 필요한 산업 부문이 아니라 군비 증강을 위한 산업 부문에 쏟아야 한다. “인민경제 부문들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게 매우 어려워지고, 북한 노동계급은 착취와 빈곤 증대 등 희생을 강요받게 된다.

중국과의 경제 관계가 긴밀해진 것은 김정은에게 또 다른 딜레마다. 북·중 교역이 증대한 것은 당장은 경제를 지탱하는 데 도움이 됐겠지만, 북한 경제가 중국 경제의 리듬(과 세계경제의 변동)의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됐다. 중국 경제의 경착륙 조짐이 점차 커지고 그에 따라 북한의 주요 지하자원 수출도 점차 부진해지자 북한 관료는 그 파장을 우려할 법하다. 2013년 장성택 처형의 명분 하나가 ‘지하자원과 토지를 외국[중국!]에 헐값으로 팔아먹은 매국 행위’였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중국발 경제 위기는 북한 관료 내부에 또 다른 긴장을 자아낼 수도 있다.

미국의 대북 제재에서 벗어나 대미 관계를 개선하는 것도 김정은 앞에 놓인 또 다른 난제다. 김정은은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강조하면서 “핵강국의 지위에 당당히 올라선 것만큼 그에 맞게 대외관계를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망은 밝지 않다.

따라서 ‘북한 체제가 안정됐다’는 주장은 희망 섞인 관측일 뿐이다. 불과 3년 전에 최고 권력자의 고모부(장성택)가 중심이 된 “현대판 종파” 사건이 일어났었다. 그만큼 관료 집단 내부의 동요와 분열이 컸던 것이다. 김정은의 이번 연설과 당대회 결정서에도 “세도”, “관료주의”, “양봉음위”처럼 장성택을 겨냥했던 용어들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앞으로도 김정은이 북한의 난제들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면 그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