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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
병원들은 인력을 확충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라

오는 6월 29일 보건의료노조가 서울역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시청 광장까지 행진할 예정이다.(‘보건의료인력법 제정을 위한 6·29 백의의 물결 대행진’) 이 집회의 핵심 요구는 인력 확충이다.

국내 병원의 인력 부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의 환자 대비 간호인력 비율은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이다. 엄청난 노동강도 탓에 이직과 퇴직이 잦아지고 이 때문에 또 노동강도가 강화되는 악순환이 자리잡은 지 오래됐다. 최근 〈한겨레〉 보도를 보면 국립대병원 노동자들 중 55~77퍼센트가 “너무 힘들어서 병원을 떠나고 싶다”고 답했다. 한편에서는 엄청난 노동강도 때문에 과로사하거나 우울증에 걸리는 반면 간호사 면허 보유자의 절반은 직장을 떠나 있는 상태다.

병원 인력을 늘리는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조처는 법정 기준을 늘리는 것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노동강도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임금 탓에 지금도 해마다 새로 배출되는 인력은 대부분 수도권 대형 병원에 집중되고, 국립대병원을 포함한 공공병원들은 법정 인력 기준도 못 채우기 일쑤다. 장기 근속 유인도 크게 떨어진다. 따라서 임금 인상 등 노동조건 개선도 인력 확충만큼이나 중요한 요구다. 임금피크제, 성과연봉제 도입은 지금의 인력 부족과 인력 불균형, 노동강도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킬 것이다.

병원 노동자들의 인력 확충 요구가 지극히 합리적인 것이었음은 지난해 메르스 사태를 통해 비극적으로 입증됐다. 멀쩡히 입원해 있던 환자들이 목숨을 잃었고 유가족들은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유가족 자신이 2차, 3차 감염인이 된 경우도 많았다. 노동자들을 혹사시켜 부와 권력을 키워 온 병원 소유주들과 법인 이사들,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대기업과 정부 관료들은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았다. 심지어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던 문형표는 책임을 지고 물러난 지 넉 달 만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엄청난 여론의 반발에 떠밀려 인력 확충 계획을 일부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말 법이 개정돼 올해부터 확대 시행될 간호간병통합서비스(포괄간호서비스)는 가족들이 간병을 책임지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간호 인력을 늘리는 제도다.

예컨대 지금은 근무시간 중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 수가 상급 종합병원의 경우 대부분 10~12명, 종합병원 10~16명, 병원 24명 정도다.(사회공공연구소) 이래서는 제대로 된 간호는커녕 의료사고가 나지 않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해야 할 정도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이를 각각 7명, 8~12명, 10~14명으로 줄이도록 했다. 이들의 업무를 도울 간호조무사와 병동도우미도 일정 기준 인원을 채우도록 했다. 지난해까지 비슷한 기준으로 포괄간호서비스를 시범실시해 봤더니 이 정도 인력 확충만으로도 환자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올해 하반기에는 모든 공공병원에서 의무적으로 한 병동 이상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도입해야 한다. 국립대병원들도 여기에 해당될 뿐 아니라 환자 만족도도 높은 만큼 몇 년 안에 널리 확대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메르스 사태는 병원 인력 부족이 환자와 보호자들의 안전을 얼마나 위협하는지 잘 보여 줬다. ⓒ조승진

그러나 이 정도 인력으로는 간병 업무(식사 보조, 화장실 및 배변 보조, 각종 위생 조처 등)를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점도 드러났다. 전체 병동에서 포괄간호서비스를 실시한 서울의료원의 경험을 보면 인력이 일부 충원됐음에도 새로 늘어난 업무가 많아 노동강도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기존 병동 시설이, 부족한 인력으로 많은 환자를 감당할 수 있도록 된 구조다 보니 늘어난 인력만큼 효율성이 높아지지도 않았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따라서 인력 기준을 훨씬 높이고 시설 투자를 늘릴 필요가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상급 종합병원·종합병원·병원에서 간호사 수 대비 환자 수 기준을 각각 4명, 6~7명, 10~12명으로 줄이고 간호조무사와 병동도우미도 현행 기준의 두 배로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OECD 국가 평균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수는 4~5명 수준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상급 종합병원 사용자들이 산별교섭에 응하지 않는 상황에서 앞으로 지속적으로 인력 문제를 개선하려면 정부 차원의 계획이 필요하다고 보고 ‘보건의료인력지원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요구는 모두 지지할 만하다.

그런데, 박근혜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실시 속도를 최대한 늦추려 할 듯하다. 현재 건강보험 흑자가 17조 원이나 쌓여 있지만 정부는 올해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위해 고작 2천억 원가량만 추가 배정할 예정이다. 인력 확충으로 인한 비용 부담도 환자들과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 할 것이 뻔하다. 인력 기준이 늘어나는 만큼 건강보험에서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단순히 수가를 인상하면 환자 본인부담금도 늘어난다. 현행 간병비에 비하면 훨씬 적은 액수지만 그럼에도 이 비용이 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건강보험에 국고 지원을 줄이려 하는 상황에서 수가 인상은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따라서 국고 지원을 늘리라고 요구하고 기업주와 부자들이 더 많은 부담을 지도록 해야 한다.

또, 인력이 늘어나는 만큼 병원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의 임금 등 노동조건을 더욱 옥죄려 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은 명백히 이 방향을 향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성과연봉제 도입 시도를 막아내야 할 뿐 아니라 각 병원에서 임금과 노동조건을 지키기 위한 투쟁도 강화해야 한다. 이런 투쟁에서 노동자들이 가진 힘을 발휘할 때 정부는 물론이고 병원 측도 노동조합의 요구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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