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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구조조정:
위기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지 말라

대우조선 분식회계와 구조조정 자금 지원 문제를 두고 속속 비리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관련자들이 줄줄이 체포됐고 정부는 이를 빌미로 강력한 구조조정을 압박하고 있다. 야당들은 청와대가 주도한 서별관 회의(비공개 경제금융점검회의)가 문제라며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회계분식’은 기업이 고의로 자산이나 이익을 부풀려 내놓은 회계조작 사기행각을 말한다. 박근혜는 적어도 지난해 10월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서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사실을 확인했다.

정부는 당시에는 이 사실을 꼭꼭 숨겼다. 이듬해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새누리당 인사들이 줄줄이 낙하산으로 내려가 경영하던 회사의 불법적 사기행각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 회의에 참석했거나 사실을 알고 있던 정부·금융권 인사들은 분식회계를 하는 기업들이 한둘이 아닌 터라 대우조선 건을 눈 감는 게 어렵지도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 경제개혁연구소는 재무제표상 “분식회계 징후”를 보이는 상장기업이 대우조선만이 아니라고 폭로했다. 특히 공사기간이 수년에 이르는 조선·건설업 등 수주산업은 산업의 특성상 분식회계가 손쉽다. 경기가 잘 나갈 때는 이것이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경기 전망이 어두워지고 부실 규모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자, 바로 어제까지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던 ‘우량’기업이 갑작스럽게 엄청난 적자를 가진 부실기업으로 추락했다.

7월 15일 거제에서 열린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연대 집회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첫 연대집회. ⓒ사진 김지태

대우조선은 2015년 5월 사장이 바뀌자마자 갑자기 적자 폭이 3조 원을 넘어섰다. 현대중공업도 2014년 9월 새 사장 취임 직전에 대규모 적자를 발표했는데, 지난 2년간 그 규모는 4조 8천억 원이나 됐다. 자신의 실적 쌓기가 중요한 신임 사장들은 전 사장들이 만든 부실의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봐 이 문제를 털고 가고 싶었던 것이다.

구명 보트

박근혜 정부는 분식회계를 은폐한 채 지난해 대우조선에 4조 5천억 원을 지원하고, 올해 추가로 대규모 구조조정 자금 확보에 나섰다. 이는 지배자들이 그토록 신봉하는 ‘시장 논리’와는 사뭇 다르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는 시장에서 도태될 기업은 그렇게 되도록 놔두는 게 시장 논리다.

그러나 자본과 국가의 구조적 의존성에 대해 조금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박근혜 정부의 조처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특히 오늘날 자본의 규모가 비대해지고 기업 간, 산업 간 연계가 그물망처럼 얽히고설켜 있는 상황에서 어떤 정부도 대자본의 파산을 손놓고 구경할 수는 없다. 한 기업이나 산업의 도산이 전체 경제에 미칠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2008년 세계경제 공황 이후로 세계의 주요 정부들이 부실기업을 구제하기 위한 ‘구명 보트’ 노릇을 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모든 기업주들의 부실과 비리를 감싸 주고 제 살길을 찾을 수 있도록 보듬어 안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가 굴러가는 원동력인 끊임없는 이윤 경쟁 때문에 기업주들은 각자 자기 살길을 찾으려고 정관계 로비에 힘을 쏟는다. 이 속에서 경쟁력이 약한 (중소조선소 같은) 기업들은 위기가 닥쳐도 정부가 제공하는 ‘구명 보트’에 오르기가 쉽지 않다. 대자본이라 해도 일부는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버림을 받기도 한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돌연 그동안 묵혀 뒀던 대우조선 분식회계 카드를 꺼내들며 대대적인 검찰 수사에 착수한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정부는 총선 직후 조선·해양업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 방침을 천명하면서 공격을 시작했다. 대우조선에 대한 검찰 조사에 착수하고 정관계 로비 의혹까지 밝혀 내겠다고 했다. 동시에 정부는 국내 5위의 재벌인 롯데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이고, 지난 7일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신영자를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박근혜나 검찰이 갑작스럽게 정의의 사도가 돼서도 아니고, 재벌 총수 때리기에 흥미가 생겨서도 아니다. 이 기업들은 모두 이명박의 “전리품”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명박과 그의 측근들이 막대한 돈을 받아 챙기고 뒤를 봐주던 곳들이다. 대우조선에는 이명박의 최측근들이 줄줄이 주요 요직에 앉았고, 전 사장들은 이명박 부인 김윤옥을 비롯해 당시 정권 실세들에게 뇌물을 갖다 바친 의혹이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롯데그룹도 이명박 정권 내내 밀월관계가 지속된 대표적 기업의 하나다.

갈등

박근혜가 이명박을 타깃 삼아 칼을 빼든 것은 노동계급에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명분 만들기이자 총선 패배 이후 첨예해진 정부·여당 내 계파 갈등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최근 비박계의 대표주자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무성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하고 “[대통령에게] 그동안 참고 참았다”고 발언한 것은 대선을 앞두고 집권당의 내홍이 더 커지고 있음을 잘 보여 준다.

이런 점들이 뜻하는 바는, 조선업 부실·부패에서 노동자들이 아무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 구조조정 과정에는 정부와 사용자들의 비리와 부패, 정치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이 깊이 새겨져 있다.

더구나 정부와 사용자들은 맹목적인 이윤 추구 속에서 위기의 씨앗을 키워 왔다. 한국의 조선업은 40여 년 전부터 정부의 강력한 지원 속에서 성장해 왔는데, 그 이점을 발판으로 세계 1위에 올랐지만 바로 그 이유로 비효율성이 극대화되면서 수익도 압박을 받았다. 조선업 위기의 주된 요인으로 꼽히는 해양플랜트 사업에 대한 투자가 대표적 사례다. 2012년 정부는 해양플랜트 산업 육성 정책을 적극 펼치며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고, 사용자들은 너도나도 엄청난 투자를 하면서 달려들었다. 그러나 몇 해 지나지 않아 성장의 원천이었던 그 투자가 수익성을 크게 잠식시킨 요인으로 바뀌었다. 미친 듯한 수주 경쟁 속에 약간의 손실은 별것 아닌 양 치부됐고, 유가가 떨어져도 다시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 일단 저가로라도 수주를 따내는 게 중요해졌다. 이런 과정에서 낭비와 비효율이 곳곳에 박혔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의 몫으로 돌려지고 있다. 정부·여당과 사용자들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두고 갈등을 벌이고 목에 칼을 대기도 하지만,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데서는 한통속이다. 수주가 줄고 수익성이 하락하는 상황,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가 계속 낮아지는 상황 등을 종합해 볼 때 정부와 사용자들은 단호하게 공격을 밀어붙일 태세다.

따라서 조선업 노동자들이 구조조정 저지를 내걸고 파업에 나서는 것은 완전히 올바르다. 박근혜 정부는 친이계를 겨냥해 대우조선 분식회계 문제를 터뜨렸지만, 서별관 회의에서 그 사실을 알고도 덮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곤혹스런 상황에 놓였다. 노동자들이 ‘위기에 책임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단호하게 싸운다면 저들의 공세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